불황에 시장점유율 ‘확’ 늘려라
불황에 시장점유율 ‘확’ 늘려라
'혁신과 창조적 파괴’를 강조한 경제학자 슘페터에 따르면 ‘불황기는 역전의 시기’다. 호황기가 승자의 시기라면 불황기는 그 반대다. 불황기엔 모든 투입 요소의 가격이 낮아진다. 신규 진입이 쉬워지고 투자 비용은 싸진다. 후발주자에 기회의 창이 열리는 것이다.
이때 기업의 추격이 활발해진다. 물론 불황기에만 추격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기술과 수요 패러다임 변화기도 추격과 역전의 기회를 제공한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할 때 한국이 일본을 IT부문에서 따라잡았다. 이런 추격을 가능케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기술혁신 능력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독자적인 제품 개발력이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지속적인 공정혁신 능력이다. 선발기업보다 좋은 제품을 개발할 능력이 없으면 추격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면 어떻게 혁신 능력을 확보할 것인가? 열쇠는 학습 과정에서 찾아야 한다. 학습에는 좋은 선생과 교재, 그리고 끊임없는 혼자만의 예습·복습이 필요하다.
좋은 선생이란 외국기업·대학 연구소 등이다. 배우는 방식은 외국기업에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으로 제품을 납품하거나, 아니면 기술제휴·라이선싱·지분제휴·공동개발 등 다양한 학습 경로를 이용해야 한다. 이런 다양한 방식으로 선진 지식에 접근성을 확보한 후 사내 연구개발 조직을 운영해 끊임없는 노력을 수행해야 한다.
세계적인 완구업체로 성장한 오로라월드가 과거 OEM을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OBM (자기브랜드생산)으로 치고 나간 데엔 자체 디자인 능력이 뒷받침됐다. 외국 바이어들이 오로라월드의 제품이 좋고 차별성이 있으니 신생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주문을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주성엔지니어링이나 선스타가 대기업과의 불화나 외국업체의 특허소송으로 위기를 겪었어도 계속 시장에서 버텨온 것도 품질이다. 이것이 없으면 장기적인 추격은 불가능하다. 제품개발 능력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성공적 추격 사례들을 보면 하나같이 선발기업과는 다른 제품을 개발하고 새로운 경로를 개척해 나갔다.
추격유형으로 말하면 ‘경로창출형 추격의 길’을 걸어갔다는 것이다. 개별 사례를 살펴보자. 심로악기는 유럽식의 수작업 방식과 일본 스즈키의 프레스 방식·대량방식을 결합한 마이스터 공법을 기반으로 대량생산이라는 새로운 기술경로를 개척했다. 쿠쿠홈시스는 1998년 외환위기로 OEM 주문이 끊기자 기존의 전기밥솥 제조 기술과 가스압력밥솥 기술을 결합했다.
이를 통해 전기압력밥솥이라는 새로운 기술경로를 개척했다. 또한 HJC헬멧은 기존의 ABS와 PC용 플라스틱 소재를 적절히 혼합해 견고성과 충격 흡수성을 보장하는 신소재를 개발해 성공했다. 아모레퍼시픽도 선진 명품 화장품을 그대로 모방해 따라가기보다는 신개념 한방 화장품을 앞세워 고급 화장품 시장에 진입했다.
이때 개발하려는 제품이나 기술의 성격이 자신에게 새로운 것일수록 외부 지식기반에 대한 접근은 중요하다. 심로악기는 독일인 마이스터를 초빙해 배웠다. 한국도자기의 경우는 로얄 달통 그룹 산하의 연구소에서 본차이나 기술을 배웠다. 또 은나노 기술을 도자기에 도입하기 위해 이 분야 전문 기술업체인 미지테크와 합작회사를 차렸다.
인터넷 산업처럼 기술 발전의 속도가 빠르고 다른 기술과의 통합이 자유롭게 일어나는 분야에서는 끊임없이 신기술 기업을 인수하는 전략이 유효하다. NHN이나 구글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아무도 모르게 전략을 추진하라
제품을 스스로 개발하고 생산할 수 있게 되면 그 다음 다가오는 문제는 이 제품을 시장에 파는 일이다. 가령 OEM 단계에서는 ‘나는 생산만, 마케팅은 외국의 주문자가 다’ 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독립하려면 스스로 마케팅을 해야 한다. 이는 대단히 어려운 도전이다. 더구나 과거 OEM 주문을 주던 외국업체들이 견제하는 경우가 많아 더더욱 어렵다.
특히 부품·소재 기업의 경우는 국내 대기업조차 국산 제품을 외면하는 장벽에 부닥친다. 부품·소재의 질이 최종 소비재의 질을 좌우하기 때문에 최종 소비재를 생산하는 대기업들은 부품과 소재 선정에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품질이 더 좋으면서 가격도 더 싸지 않으면 구매협상조차 시작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런 난관을 극복하려면 다양한 전략이 필요하다. 선진국 시장보다 신흥시장을 먼저 공략하는 전략이 효과적인 때가 있다. 또한 물건을 먼저 외상으로 줘 쓰도록 한 뒤 나중에 돈을 받는 신용판매 전략도 활용됐다. 선진국 시장 등에서 스스로 판매망을 구축하는 경우에는 꼭 해당 시장에 경험이 있는 외국인 마케팅 인재를 채용해야 한다.
새롭게 등장한 저렴한 마케팅 방법은 새로운 고객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 식품용기 락앤락이나 저가화장품 미샤 등에서 보듯이 홈쇼핑이나 인터넷 등 새로운 마케팅 채널을 통해 단기간에 관심을 끈 사례들도 있다. 이런 새로운 마케팅 방식 활용은 기술개발에서와 비슷하게 경로창출형 마케팅 방식이라고 부를 수 있다.
추격 과정에서 부닥치는 또 하나의 난관은 기존 업체들의 견제와 방해다. OEM에서 OBM으로 이행을 선언하면 주문을 주던 선진 브랜드 업체들이 주문을 끊는 견제가 들어온다. 특허·상표 등 지재권을 침해했다는 소송, 후발업체를 죽이려는 저가공세 및 덤핑도 종종 발생한다. 부품소재 산업에서 한국 업체가 개발하면 그때부터 일본 등 외국 업체의 가격 덤핑이 시작된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오로라월드, 선스타, 주성엔지니어링 모두 특허 및 지재권 소송을 겪어야 했다. 이는 후발 추격 기업들은 추격의 시작 단계에서부터 기존 업체들의 지재권 소송 등 각종 견제에 미리 대비해야 함을 시사한다. 그러지 않으면 회사 운명 자체가 중도에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오로라월드의 경우 선발업체의 제소에 대비해 제조물 책임보험에 가입했다.
또한 OBM으로 이행을 매우 비밀스럽게 진행했다. 이 회사는 미국에 자체 판매망을 구축하기 위한 현지 법인명을 오로라라고 쓰지 않고 전혀 노출이 안 되게 새로운 이름으로 등록했다. 쿠쿠홈시스의 경우도 자체 브랜드 제품 개발 자체를 비밀리에 추진했고, 신제품 개발 공정 자체를 밤에만 진행했다고 한다.
차별화된 제품 개발을 통한 경로창출형 추격으로 시장에 진입했다면, 이렇게 획득한 시장을 유지·방어하는 데도 지속적인 학습과 혁신 노력이 중요하다. 후발 중소기업의 사례를 보면 종종 한 번의 성공을 이어가지 못해 결국 경쟁에서 도태되는 경우가 많다. 그 원인의 상당 부분은 지속적 혁신과 학습 메커니즘을 사내에 정착시키지 못한 것이다.
지속적인 혁신과 신지식에 접근하는 것이 격차 유지의 첫째 조건이라면 더 뚜렷한 진입장벽을 구축하는 것은 한층 공고한 시장방어 전략이 된다. 각 회사 고유의 암묵적 지식이 시장을 유지하게 해주는 주요한 방어막이 된다는 것이다. 쿠쿠홈시스는 적절한 압력을 50가마니에 해당하는 밥을 지어가는 과정에 찾아냈다.
HJC 헬멧은 ABS와 PC라는 두 가지 다른 플라스틱을 어떤 비율로 합성해야 하는지를 반복 실험 속에서 찾았다. 심로악기가 나무로 만든 몰드(주형 또는 거푸집)와 철로 만든 몰드의 약점을 모두 극복하는 제3의 우레탄 몰드를 개발한 것도 반복되는 실험에서 얻은 경험의 결과다. 락앤락은 오래 열고 닫아도 강도와 유연성이 유지되는 플라스틱을 반복 실험을 통해 개발했다.
이들 결과는 과학적 탐구를 기반으로 현장 실험을 통해서만 확보가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다른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접근이 어려운 것들이다. 특히 중소기업의 이런 지식은 특허를 내면 바로 노출되기 때문에 특허보다는 사내 기밀로, 자체 브랜드로 지키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수 있다.
OBM기업으로 자리를 잡은 한국의 대표적 추격 성공 기업들은 국내에서는 주로 연구개발과 마케팅을 담당하고 해외에 생산기지를 보유하면 세계 전역에 유통망을 갖춘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했다. 이런 글로벌 체제의 구축은 생산비 절감 등 여러 면에서 자신의 경쟁 우위를 공고히 하고 후발 진입자에게는 위협적인 진입장벽이 되고 있다. 여기서 기업별 차이를 좀 더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마케팅도 남달랐던 추격 성공기업
첫째, 중국 등 동남아를 해외 저가 생산기지 및 저가제품 시장으로 활용한다. 하지만 제품에 따라서는 고가품 시장 공략을 위해 아예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에 연구개발뿐 아니라 고가품 생산기지를 운영하는 사례도 있다. 예컨대 심로악기는 악기의 본고장인 독일에서 공장을 운영한다. 심로악기는 중국에서는 저가 브랜드인 ‘세인트 안토니오’를 생산·판매하고 독일에서는 고급브랜드인 ‘카를 하인리히’를 생산·판매한다.
또 후진국 시장과 선진국 시장에서의 마케팅 전략이 다르다는 것이다. 아모레퍼시픽은 한국 국가 브랜드가 약한 선진국에서 종종 한국 기업 제품임을 철저히 숨기는 전략을 구사한다. 반면 중국 등 시장에서는 오히려 한국 제품임을 앞세우는 전략을 쓴다. 락앤락의 경우는 중국에서 만든 제품을 중국에서 판매하는 것이 아니고 미국에 수출용으로 활용한다.
이는 미국인들이 보기에 ‘made in China’나 ‘made in Korea’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인들이 보기에는 ‘made in China’와 ‘made in Korea’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한국 공장에서 만든 제품은 오히려 중국 시장에 한국산임을 내세우며 파는 독특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준비된 후발주자가 불황을 역전의 기회로 이용하는 전략은 몇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불황기에는 전반적으로 수요가 감소한다. 그러나 시장점유율은 바꿀 수 있고, 불황기에 시장점유율을 바꾸어 놓으면 호황기에 그대로 매출 증가로 이어진다.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방법은 광고·마케팅 강화다. 현대자동차가 미국에서 구사하는 방법이다. 한편 IT 분야에서는 고전하는 상대 기업 혹은 상대 기업의 핵심 근로자를 인수하거나 스카우트하는 것이 유효한 전략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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