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장벽 10% 증가하면 7만 명 구조조정 압박
무역장벽 10% 증가하면 7만 명 구조조정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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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제난이 심각하다. 세계 주요국은 지금 수출부진·대량실업 등 숱한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겪는 ‘마이너스 성장’을 돌파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
해외발 불황 회오리가 덮친 시계 제로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공조’다. 세계 주요국이 ‘공조의 끈’을 탄탄히 하면서 경기부양에 힘써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하지만 이 끈은 현재 ‘썩은 동아줄’로 전락한 지 오래다. 자국 이기주의에 빠진 세계 경제는 구심점을 잃은 채 ‘바다’가 아닌 ‘절벽’으로 돌진하고 있다. 그야말로 분열 양상이다.
그 중심에 보호무역주의가 있다.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지는 것이다. 공공부문 사업을 할 때, 자국산(産) 철강 사용을 의무화하는 미국의 ‘바이 아메리칸 조항’이 대표적이다.
미국 1위 은행인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가 올해 졸업 예정인 외국인 MBA 채용 계획을 취소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숨은 뜻은 자국 출신 MBA 수료자를 채용하겠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도 최근 신화학물질관리제도(REACH) 등 상대적으로 높은 자국의 환경 및 안전기준을 수입품목에 적용하고 있다. 신화학물질관리제도는 유럽연합 내에서 연간 1t 이상 제조·수입되는 모든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평가해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환경규제가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등장한 셈이다.
이는 ‘1930년대와 같은 보호주의의 회귀를 경계하며, 향후 1년간 투자·무역에 관한 장벽을 도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한 G20 회담 합의문(2008년 11월 20일)에 위배되는 것이다.
보호무역주의 강화, 한국엔 ‘독’
겉으론 철저한 자유무역주의를 선언해 놓고, 속으로는 ‘무역 장성’ 쌓기에 혈안이 라는 말이다. 선진국만 그런 게 아니다. 신흥개도국도 다를 게 없다. 이들은 아예 직접 규제를 꾀하고 있다. 신흥개도국은 올해 들어 반덤핑·상계관세·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 등 총 38건의 무역규제조치를 발동했다.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면 세계 교역물량이 감소한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교역 규모가 전년 대비 2.1∼2.8%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면서, 그 이유 중 하나로 보호무역주의를 꼽았다. 이 예상은 1차 오일쇼크(1973∼74년) 직후였던 1975년(1.9% 감소) 이후 33년 만에 가장 큰 감소폭이다.
보호무역의 ‘부메랑’은 이처럼 날카롭다. 이런 상황이 한국 경제에 좋을 리 만무하다. 한국은 전형적인 수출 중심 국가다. 무역 의존도는 76%에 달한다. 수출이 부진하면 한국 경제가 뿌리째 흔들리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수출 경기가 괜찮은 것도 아니다. 국내 수출은 2008년 11월 전년 대비 19.5% 감소한 후 2008년 12월, 2009년 1월에 각각 17.9%, 33.8%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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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한 하향세다. 수출이 부진의 늪에서 허우적대는데, 보호무역주의까지 강화되면 우리로선 버텨낼 재간이 많지 않다. 삼성경제연구소 정호성 글로벌연구실 수석연구원은 “설상가상의 상황”이라고 잘라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보호무역주의가 우리의 밑바닥 경제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보호무역으로 해외수요가 감소하면 생산량 감소, 조업중단, 비정규직·정규직 구조조정을 유발한다.
이는 곧바로 소득감소, 소비위축으로 이어진다. 한국 경제의 중추신경과 혈관을 온통 마비시킨다는 것이다. 숫자를 대입해 보자. 삼성경제연구소는 수입규제건수, 다시 말해 무역장애물이 10% 증가하면 전체 수출액이 2%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수출액이 2% 줄어들면 해당 산업의 생산량이 평균 1% 감소한다는 게 정설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수출감소에 따른 고용조정 압력분석’에 따르면 수출이 2% 감소하면 0.9%의 생산이 줄어든다.
생산감소는 감산 등 조업중단을 초래한다. 심할 경우 비정규직·정규직의 구조조정 압력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수출이 2% 감소하면 기계산업은 7870명, 경공업은 4578명, 자동차와 반도체 분야는 각각 3159명, 2122명이 구조조정 압력을 받는다.
수출 주력산업에서만 총 2만4000명, 이외 산업에선 4만 명의 고용이 감소할 수 있다는 게 이 연구원의 분석이다. 무역장애물이 10%만 증가해도 7만여 명의 고용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고용률이 낮아지면 당연히 소득이 감소하고,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는 내수 경기의 속절없는 추락을 의미한다.
보호무역주의 ‘강화 바이러스’가 수출 경기를 거쳐 내수시장까지 전염시킨다는 것이다. 무시무시한 환류 구조다. 사실 보호무역주의는 열 자의 창검와 천 근의 철퇴가 일합을 펼치는 그런 결투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이다. 팔을 직접 꺾지 않고, 문을 좁게 만들어 어쩔 수 없이 팔을 접게 만드는 게 요즘의 보호무역주의다.
가령 이명박 정부가 강조하는 그린산업에 수백억원을 투자해 친환경 상품을 만들었다고 가정하자. 세계 주요 국가가 환경 기준을 살짝 높이면 이 상품은 졸지에 쓸모없는 계륵으로 전락한다.
보호무역주의는 무형의 싸움
전문가들이 보호무역 확산에 대비해 사전 예방책은 물론 사후 대응책까지 완비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종합적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상되는 무역규제를 모두 수집해 보호주의가 예상되는 품목에 대한 사전 모니터링 제도를 운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제적 공조체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무역제한조치가 취해졌을 때, 국제적 공조가 탁월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코트라가 최근 ‘수입규제대책반’을 꾸리고 정부가 직접 나서 국제 공조의 매듭을 다시 짜고 있는 것은 의미 있는 변화다. 조병희 코트라 통상조사처장은 “무역보호무역주의에 빠르게 대응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조치하기 위해 수입규제대책반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갈 길은 아직 멀다. 우리의 정보 수집 능력은 아직 미흡하다. 세계무역기구(WTO) 무역정책검토제도(Trade Policy Review Mecha-nism)만 봐도 그렇다. 이 제도는 WTO 회원국의 무역정책 및 관행에 대해 다자간 평가·검토를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엔 차별적 요소가 숨어 있다. 무역정책 검토 주기가 회원국의 무역 규모에 따라 다르다.
미국·유럽연합·일본·캐나다 등 4대 교역은 2년 주기로 실시하지만 우리나라는 4년이다. 무역규제 관련 정보교류에서 최소 2년은 뒤처질 수밖에 없는 환경인 셈이다. 정호성 연구원은 “WTO 무역정책 검토제도를 살펴보면, 우리가 왜 정보획득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지 알 수 있다”며 “하루빨리 무역규제 관련 전문가를 양성하고, 제도를 완비해 시시각각 변하는 정보를 꿰뚫어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보호무역주의는 국가 차원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민생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대비책을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보호무역주의가 거시경제뿐 아니라 옆집 아저씨 호주머니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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