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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 8% 밑도는 순간 정크본드로 추락”

“BIS 8% 밑도는 순간 정크본드로 추락”

‘국내 은행 42조원 손실’ 보고서로 정부와 금융권에 당혹감을 안겨줬던 신용평가회사 피치의 장혜규 한국사무소 금융담당 이사(애널리스트)는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에서 “BIS 8%를 너무 편안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장 이사는 소위 ‘피치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인물이다.

지난 12일 밤 10시쯤 인터넷에 올라온 보고서 하나에 정부와 은행권이 발칵 뒤집혔다. ‘2010년까지 국내 18개 은행이 42조원의 손실을 볼 것으로 추정된다’는 피치의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다.

다음날 새벽부터 정부와 은행권은 긴박하게 움직였다. ‘의도가 불순하고 불공정하고 비합리적인 보고서’라는 게 정부와 은행권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스트레스 테스트’ 작성에 참가한 장혜규 피치 한국사무소 금융담당 이사(애널리스트)는 다른 생각이다.

“예측도 아닌 스트레스 테스트에 정부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너무 가혹한 가정’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았다. “외환위기의 절반 정도 수준으로 가정한 것이 과연 현재 금융위기 상황에서 무리한 것이냐”고 반문하는 입장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8일 장 이사와 단독인터뷰를 가졌다. 장 이사는 시종 조심스럽게 답변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스트레스 테스트일 뿐”



>> 이런 반응을 예상했나?

“스트레스 테스트는 신용평가 과정의 일환으로 비관적인 시나리오 아래 이뤄지는 테스트다. 그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를 예상 손실과 구별해야 한다. 시끄럽게 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프레스 릴리스도 안 했다.”


>> 왜 이런 보고서를 발표하게 됐나?
“금융위기가 심화하면서 아시아는 어느 정도까지 나빠질까 점검하는 차원에서 은행 등 금융기관의 자본적정성을 점검하고 있다. 홍콩도 했고 베트남, 대만도 했다. 아시아 각국을 돌아가면서 점검하는 차원이다.”


>> ‘의도’에 대한 의혹이 많았다. 자체 신용평가 자료로만 활용하지 왜 발표했나?
“의도 같은 것은 없다. 피치에서는 신용평가 과정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피치의 의견을 매년 많은 스페셜리포트로 낸다. 신용평가 과정의 투명성 제고는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작년 말에 시작한 국내 은행 자본에 대한 스페셜리포트가 3월에 완성됐다. 신용평사로서 균형 잡힌 의견을 내기 위해 피치 내부에서 충분한 사전 검토 후 공개한 것이다.”


>> 영국계 언론에 대한 불만이 고조된 시점에 영국계 신용평가사에서 나온 보고서라 의혹이 더 많은 것 같다.
“피치는 다국적기업이다. 누가 강요해서 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반응에 놀랐다. 파이낸셜타임스와 연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번 보고서에서 테스트에 인한 국내 은행의 자본 감소액을 예상 손실로 받아들이면 적절하지 않다. 이 보고서는 전문 투자자들이 돌다리가 단단한지 확인해 보는 차원에서 검토하는 것이다.”


>> 정부나 은행권이 화가 많이 났다(은행연합회는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밝혔고, 이창용 금감위 부위원장은 영국 피치 본사를 항의 방문했다).
“말 그대로 스트레스 테스트다. 현재 어려운 상황이 진행되는 것이 맞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핵폭탄이 터지면, 몇 명이 죽는다’ 그런 식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외환위기 때 충격의 절반 정도를 가정한 셈이며 그런 가정이 그렇게까지 무리한 것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번 보고서는 포캐스트(예측)가 아니라는 점이다.”(실제 피치 보고서에도 ‘Fitch notes that this is a stress test and not a forecast’란 표현이 있다.)


>> 그래도 정부나 국내 은행, 금융연구원에서는 잘못된 가정, 가혹한 가설이라는 불만이 많다.
“스트레스 테스트의 가정은 당연히 비판적인 상황을 전제로 테스트하는 것이다. 피치에서 설정한 가정이 적절하다고 본다. 또 일부에서 우리가 내년까지 경제성장률을 -2.5%로 가정했다고 하는데, 보고서를 봐라. 그런 가정은 하지도 않았다.”


>> 한국 정부가 과민 반응한다고 보나?
“정부 입장도 이해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덜 성숙했다는 느낌이다.”

정부와 은행권은 피치의 스트레스 시나리오 가정 자체가 너무 비관적이어서 추정치 자체를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피치는 보수적으로 비관적 시나리오를 가정할 경우 국내 은행의 대출 손실률을 건설PF 12%, 제조업 10%, 모기지 1%, 소매대출 8%, 기타 6%로 가정했다(물론 연율은 아니다).

그렇게 나온 자본 감소가 2010년 말까지 42조원이고 단순자기자본비율(TCE)이 4%로 하락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은행 손실 추정은 피치만 한 것은 아니다. 국내 증권사들도 지난해 말 일제히 ‘은행의 잠재 부실’을 경고했다. 부실 추정 규모는 피치보다 훨씬 가혹했다. 한화증권은 국내 은행의 잠재적 위험자산을 348조원으로 추정했다.

국내 금융권 총 운용자산의 25%에 해당하는 규모다. 한국투자증권은 잠재위험자산을 301조원으로 추정했다. 유진투자증권과 삼성증권은 잠재부실자산 규모를 각각 68조원, 44조원으로 추정하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BIS가 8% 이상이면 우량은행이라고?”


특히 잠재적 위험자산 중 국내 증권사들이 추정한 손실 가능금액은 최소 11조원(유진증권)에서 최대 110조원(한투증권)이다. 미분양 주택, 미시행 PF, 키코(KIKO), 조선소 선수금보증(RG), 주택담보대출, 중기 대출 등 부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 분야 역시 피치와 공통되는 부분이 있다. 이에 대해 장혜규 이사는 “우리와 같은 맥락에서 잠재적 위험에 대해 경고를 울린 것으로 본다”며 “경고에 대해 민감하게 거부하면 건전한 시스템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현실화되지 않은 부실에 대한 우려감이 증폭된 것은 맞지 않나?
“스트레스 테스트의 가정은 충분히 비관적이어야 한다고 본다. 최악의 상황에서 평균 4%의 자기자본은 그렇게 나쁜 수치가 아니다. 오히려 이번 결과로 피치 내부에서는 한국 은행들의 장기 신용등급을 급하게 더 내려야 하는 부담을 덜었다고 본다. 만약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가 더 나빴으면 공개 전에 신용등급을 조정했을 것이다.”


>> 국내 은행 개별등급은 내리지 않았나? 정부가 금융지원 대책을 계속 내고 있고, 은행도 자체 자본 확충을 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측면은 있지 않은가? 수개월 전에 약 1년 기간을 두고 등급조정을 고려해 보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최근 수개월간 세계적으로도 은행업의 영업환경이 급격히 악화됐다. 다행히 국내 은행들은 정부의 신속한 지원 등으로 다른 선진국 은행보다 훨씬 잘 견디고 있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국내 은행들의 자산 건전성이 빠르게 악화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다른 부문에서도 특별히 더 좋아진 것이 보이지 않는다. 외화유동성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으며, 어려운 시기가 더 길어질 가능성이 있고, 은행은 여러 부분에서 한국은행과 정부 지원을 받고 있는 상태여서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국내 은행들의 자체 신용도 등급(Individual Rating)을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본 확충 여력과 관련해서는, 논리적으로 보면 모든 회사는 무한정 자본을 조달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 은행들이 자체 능력으로 자본을 대량 확충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최근 국내 은행이 증자를 많이 했는데 일부 은행은 보통주를 발행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 한국 정부는 20조원 규모의 은행 자본확충 펀드에 이어 40조원 규모의 구조조정기금과 금융안정기금도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어떻게 평가하나?
“정부 대책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지원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다만, 정부 지원의 성격에 따라 은행 신용등급도 장기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예컨대, 정부 지원을 받는 곳은 장기적으로 외부 지원을 배제한 자체의 신용도가 취약해지는 경향이 있다. 정부 돈이나 공적 자금이 들어오면 언젠가는 빠져나갈 것이다. 하이브리드채권이나 우선주를 발행해 정부가 지원을 해도, 만기가 되거나 언젠가는 회수해야 할 것인데, 그 공백을 누가 어떻게 메울지를 잘 지켜봐야 할 것 같다.”


>> 정부는 국내 은행의 BIS 비율 등 자본 적정성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최근에는 8%가 넘어도 공적 자금을 투입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는데.
“BIS가 8% 이상이면 규제상으로는 우량은행이라 할 수 있으나, 8% 수준의 은행을 우량은행으로 보기는 매우 힘들다. 일부에선 8% 밑으로 내려가는 순간 정크본드로 본다. 부실금융기관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평균 8%면 금융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봐도 된다. 그리고 외국 투자자본은 BIS 비율이나 자기자본비율을 보는 기준이 더 올라가고 있다. 8%에 얽매이면 안 된다. 다행히 한국 정부가 국내 은행의 BIS 비율을 충분히 8% 이상에서 유지되도록 하려는 의지가 강하며, 피치는 이를 긍정적으로 보고 장기 신용등급에 반영하고 있다.”


>> 다른 문제는 없나?
“정부가 자꾸 은행에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라고 하는데, 잘 통제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1999년부터 2000년 IT 버블이나 지난 카드대란 때도 정부의 사후적 조치들이 또다시 문제를 발생시켰다. 생각해 보라. 은행이 2~3년 전부터 중소기업 대출을 확 늘린 배경은 정부가 주택담보대출을 압박하면서다. 균형 잡힌 정책을 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중소기업 대출이 다 성공적이고 안정적이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정부에서 은행을 너무 압박하면 나중에 원했던 바가 아닌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조심스럽게 봐야 한다.”


>> 중기가 어려운데, 은행에서 돈이 나가지 않는 것은 문제 아닌가?
“정부가 중소기업에 대출 늘리라고 압박하고, 정책적으로는 웬만하면 다 살려주는 방안을 내놓고 있는데, 장단점이 있다. 단점이 별문제 없이 지나가면 괜찮은데 나중에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 구조조정 차원에서 기업 부실이 빨리 드러날수록 좋다는 얘기로 해석하면 되나?
“대출 만기 연장해 주고 중소기업을 살리더라도, 대출 연장해 준 기업들이 다 살아난다고 보기 어렵다. 정상화 시기만 길어진다. 자칫 기업 부실과 관련해 은행들이 산출한 건전성 지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한국의 은행 1년 사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



>> 외국 언론에선 국내 은행 예대율 문제를 자주 지적하는데.
“CD(양도성예금증서)를 예대율에 포함하느냐 아니냐는 기준에 따라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큰 문제가 아니다. 다만, 한국 정부가 외국에서 IR을 할 때 은행 재무제표에서 엔화사모사채 등을 빼고 원화대출만 대출로 간주해 산출한 후 별다른 주석도 안 달고 100% 조금 넘는다고 발표하는데, 다른 기준으로 더 높은 수치를 산출하면 해외 투자자와 대화가 잘 되기 힘들다.”


>> 외신이나 국제 신용평가사에 대한 정부 대응에 문제가 있나?
“외신은 한국의 은행시스템 전체적인 측면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정부가 좀 큰 그림으로 접근했으면 좋겠다. 어떤 측면에서 접근하느냐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 가령 외신에서 시스템 전체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는데, 한국 정부가 외신에서 틀린 부분만 찾아내서 다시 반박하고 공격하면 외신이 일부 데이터 오류나 테크니컬한 실수는 수정하겠지만, 기존적인 뷰(관점)는 바꾸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외국인이 왜 한국에 관심을 갖느냐다. 한국이 미워서가 아니다. 아시아 국가 중 외국인이 가장 많은 채권을 갖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일본은 자국 내에서 거의 소화되고, 중국이나 대만은 채권이 거의 없다. 홍콩이나 싱가포르 투자자들은 거의 대부분 국내 은행과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이 발행한 채권을 다 들고 있다. 내가 갖고 있는 채권이 어떻게 될 것인지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국내외 관점이 너무 다르다.”


>>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지난해부터 국내 시중은행 위험설이 계속 퍼졌다. 18개 시중은행 중 정말 위험한 곳이 있다고 보나?
“최소한 1년 사이에 국내 은행이 페일(Fail)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 부실금융기관으로 지정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얘기다. 어려움은 예상되지만 견뎌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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