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바이러스’ 출현할까
‘황제 바이러스’ 출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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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추수감사절을 며칠 남겨둔 미국 위스콘신주 시보이건의 한 도살장. 열일곱 나이의 한 사내아이가 매형이 돼지 31마리를 도축하는 일을 돕고 있었다.
일주일 뒤 그 아이는 돼지의 내장을 제거하는 작업도 거들었다.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아이의 가족은 닭 한 마리를 구입했다가 차가운 초겨울 날씨 때문에 집 안에 뒀다.
12월 7일 그 아이가 인플루엔자(플루:유행성 독감)에 걸려 사흘 동안 앓다가 동네병원에서 치료 받은 뒤 완쾌됐다. 다른 식구들은 아무도 독감에 걸리지 않았다.
이 사례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 아이가 감염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이전에 나타났던 종과 달랐다. 야생조류·인간, 그리고 돼지에게서 발견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혼합형인 H1N1 돼지 인플루엔자였다.
당시엔 그냥 무시됐지만 그 바이러스는 4년 뒤 세계를 경악시킨 한 바이러스로 이어지는 진화 갈래의 중간 단계였다. 2009년 4월로 순간이동을 해보자. 위스콘신에서 멀리 떨어진 멕시코 라 글로리아에 거주하는 에드가르 엔리케 에르난데스가 심한 독감을 앓았다. 주범은 위스콘신에서 발견된 바이러스와 비슷한 돼지·조류·인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혼합형인 H1N1으로 판명됐다.
한편 이곳에서 수천 km 떨어진 카이로에서는 이집트 정부가 돼지는 질병의 근원이라고 판정하고 인구의 대부분이 이슬람 신자(따라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인 이 나라에서 돼지 30만 마리를 매몰처분하라고 지시했다.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의 사건은 각각 현재 펼쳐지는 신형 플루 위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포의 시기엔 책임 전가가 우리 인간의 습성이다. 지금 비난의 화살은 수스 도메스티카(Sus domestica: 돼지의 학명) 전체, 아니면 멕시코라는 나라를 겨누고 있다. 이런 책임 소재 공방은 과학적인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질병의 대유행을 통제하려는 노력에 아무런 쓸모가 없고 최악의 경우엔 해롭기만 한 정부의 조치를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 우리는 글로벌화된 세계에 산다. 세균이 한 곳에서 생겨나 그 세균을 돕고 부추기는 인간 활동을 통해 다른 곳으로 퍼져나가고, 또다시 인간 활동과 활발한 이동 덕분에 며칠, 심지어 몇 시간 내에 방대한 지역을 가로질러 전염시키는 상황이다. 어딘가에 비난의 화살이 겨눠져야 한다면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인간의 학명)를 표적으로 삼아야 한다.
아울러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같은 세균에게 진화·변이·전파의 새로운 기회를 주면서 세계의 생태를 변화시키는 우리의 명백한 생활방식이 그 표적이 돼야 한다. 2005년 위스콘신주 공중위생국은 시보이건에서 병든 돼지를 추적했다. 그러나 그 아이가 도축을 도왔던 돼지는 지역 전체의 여러 농장에서 공급된 것으로 판명됐다.
양돈업자 모두는 자기 가축이 건강했다고 주장했다. 위스콘신 보건당국은 감염된 아이와 그 가족들의 혈액 샘플을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있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보냈다.
CDC 과학자들은 그 H1N1 바이러스가 1999년 뉴칼레도니아에서 처음 발견된 인간 플루, 수년 동안 아시아와 위스콘신주에서 퍼졌던 두 가지 형태의 돼지 플루,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조류 플루 바이러스와 일치하는 각각의 RNA 유전 물질을 조금씩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필리핀 마닐라의 한 돼지 도살장. |
2006년 미국 돼지수의사협회는 인간이 자신의 H1N1 바이러스를 돼지에게 옮겨 미국 중서부를 중심으로 사육되는 돼지들에게 널리 플루를 퍼뜨렸다고 보고했다. 1년 뒤 오하이오주의 한 카운티 박람회에서 많은 돼지가 감염 증상을 보였다. 하지만 그 돼지를 다루는 인간에겐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주범은 위스콘신주에서 나타난 종과 흡사한 형태의 H1N1 바이러스였다. 그 바이러스는 인간에게서 돼지로 옮아 갔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지난해 아이오와주립대(에임스 소재)의 연구자들은 대형 사육농장의 돼지들이 농장의 닭, 야생조류, 그리고 인간에게서 인플루엔자 감염에 위험하게 노출돼 있다고 경고했다.
아일린 태커와 브루스 잰키는 학술지 미국 감염성질환 저널(The Journal of Infectious Diseases)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돼지의 개별적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유전자 조합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미국의 양돈업계는 개별적 생산 시스템 안에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막는 데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무엇인가가 변하고 있었다. 돼지는 자기 앞에 떨어지는 것을 뭐든 먹어 치우고 서로 자주 몸을 문지르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질병이 한 우리 내에서 쉽게 전염된다. 돼지의 위는 놀라울 정도로 미생물(세균)들을 잘 견뎌낸다. 그래서 돼지고기를 날고기로나 덜 익혀 먹은 사람들에게 질병을 일으켜 왔다.
1918년의 인플루엔자 대유행은 18개월 동안 약 1억 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그에 대한 역학조사에 따르면 주범은 인간에게서 돼지에게 옮겨 갔다가 다시 인간에게 되돌아온 H1N1 인간 플루 바이러스였다. 바이러스의 차원에서 보면 인플루엔자는 지극히 불안한 미생물로 끊임없이 변이하고 진화한다.
인간의 유전 물질은 DNA이지만 돼지 인플루엔자의 유전 물질은 RNA의 형태로 염색체에 느슨하게 들러붙어 있다.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투하면 염색체가 완전히 해체된 뒤 복제돼 더 많은 바이러스를 만든 다음 혈류를 타고 들어가 몸 전체에 퍼진다. 이런 복제 과정에서 세포 부근에 있는 다른 유전 물질도 합쳐진다.
만약 이 바이러스가 인체 세포 안에서 복제된다면 인간의 유전 물질이 첨가된다. 마찬가지로 닭 세포라면 조류 유전 물질이, 돼지 세포라면 돼지 RNA가 흡수된다. 인플루엔자 진화에서 두 가지 형태의 플루 바이러스가 하나의 동물 세포에 동시에 들어가 염색체 전체를 바꿔 “완전히 재조합된” 바이러스를 만들어내면 이른바 ‘대박’이 터진다.
위스콘신주 시보이건의 10대가 감염된 것은 삼중 조합 바이러스였다. 동물 3종(그중 하나는 인간)의 유전자 조각들을 가진 새로운 바이러스다. 하지만 그런 일에 누가 신경을 쓰는가? 수의사, 양돈업자, 그리고 바이러스 학자들은 이따금씩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공중보건·정부·의학계에선 혼합형 바이러스를 가진 돼지가 가족 농장과 대규모 양돈 시설을 감염시켰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았다.
태커와 잰키의 2008년 논문은 지금 생각하면 선견지명이 있었던 듯하다. “돼지는 신종 조류·포유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만들어 내는 이상적인 숙주일지 모른다. 그 바이러스는 인간 사회에 대유행을 일으킬 잠재력을 지닌 새로운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 … 미국 양돈업계에서 돼지와 인간 사이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전염이 상당히 흔하며 쌍방향으로 이뤄지는 게 분명하다.”
9개월 전 텍사스주 보건부는 CDC에 병든 돼지에 노출된 주민에 관해 보고했다. 그 텍사스 주민은 독감에 걸렸는데 아무에게도 옮기지 않고 며칠 뒤에 완전 회복했다. CDC 과학자들은 그 환자의 혈액에서 “돼지 인플루엔자A(H1N1) 삼중 조합 바이러스, 즉 A/위스콘신/87/2005 H1N1”을 발견했다. 3년 전 시보이건 10대가 감염된 것과 똑같은 바이러스였다.
그러다가 지난 3월 2009의 신종 플루 유행이 시작됐다. 위스콘신·오하이오·텍사스에서 대수롭지 않게 지나간 조류·인간·돼지 바이러스식으로 사태가 흘러갔다면 이번에도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람이 생명을 잃었다. 3월 중순 멕시코의 여러 주에서 통상적으로 보고되던 인플루엔자 발병 건수가 갑자기 치솟았다.
거의 동시에 캘리포니아 남부의 보건 당국은 어린이가 걸린 서로 다른 두 건의 플루를 발견했다. 샌디에이고 카운티의 열 살짜리 남자 아이와 임페리얼 카운티의 아홉 살짜리 여자 아이였다. 둘 다 회복했지만 가족에게 전염됐다는 증거가 있었다. CDC는 4월 초 그 아이들의 혈액 샘플을 조사했다.
예상이 적중했다. H1N1 삼중조합 인플루엔자였다. 한편 멕시코에선 같은 기간 동안 심한 플루가 50건 이상 발생했다. 멕시코 정부는 그 혈액 샘플을 캐나다 위니펙에 있는 저명한 전염성 질병 연구실에 보냈다. 캐나다 과학자들은 멕시코의 수수께끼 바이러스가 H1N1이라고 확인했다. 그러면서 신종 플루의 대유행 가능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멕시코에선 에드가르 엔리케 에르난데스에게 관심이 집중됐다. 그 아이는 4월 2일 신형 플루에 걸렸다. 에르난데스의 감염에 대한 책임은 라 글로리아에 있는 그 아이의 집 부근에 위치한 미국인 소유의 대형 양돈장으로 돌려졌다. 라 글로리아 주민들은 오랫동안 그 양돈장의 악취와 먼지 때문에 생활이 불편하다고 불평했다.
그래서 에르난데스가 플루를 앓자 곧바로 그곳이 감염원으로 지목됐다. 에르난데스가 돼지에게서 나온 H1N1을 흡입한 게 사실일지 모른다. 그러나 지난 3월 발생한 다른 플루 발병으로 미뤄보면 시기가 맞지 않는다. 결국 에르난데스는 2009년 신종 플루 발발의 시발점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 바이러스가 오랫동안 진화해 왔으며 미국과 멕시코의 대형 양돈장 생태계에 의해 더욱 빨리 변이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과학자들은 그 바이러스에서 87년 미국 인디애나주 양돈 농장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전자 요소를 발견했다. 그 점에서 보면 신종 플루는 ‘조류 인플루엔자(H5N1)’와 비슷하다.
90년대 초 중국 남부 지방의 야생 철새에게서 나타나 97년 홍콩에서 인간에 전염된 바이러스를 말한다. 그 바이러스가 지난 12년 동안 진화하면서 대형 양계장과 주요 철새 이동 중심지 덕택에 급속히 전파되고 새로운 유전 물질을 흡수했다. 2005년 시베리아와 유럽에 H5N1이 퍼졌을 때 유엔과 미국은 자금과 과학적 전문지식, 그리고 필요한 인프라를 동원해 조류 인플루엔자를 찾아내 통제했다. 주로 감염된 닭을 매몰처분하는 방식이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H5N1 바이러스가 돼지와 인간에게 전염됐다. 그래서 그 바이러스가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전염될 가능성도 있다고 판명됐다. 그리고 인간이 그 바이러스에 전염되면 극히 위험하다. H5N1에 감염된 인도네시아 환자의 82%가 사망했다. 인간에게 침투한 H5N1의 세계 전체 치사율은 63%로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세균 중 하나가 됐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현황을 알아보자. 첫째, 지금 세계에는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했다. 그 바이러스는 사람과 사람, 그리고 어쩌면 돼지와 사람 사이에서 아주 전염성이 강한 듯하다. 다행스럽게도 이 신종 플루는 항바이러스제 타미플루(오셀타미비르)와 릴렌자(자나미비르)로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다른 주요 항플루제인 아만타다인 계열의 약에는 내성이 있다. 이 신종 플루는 지금도 진화 중이며 이동 중이다. 그 궁극적인 궤적은 지금으로선 알 도리가 없다. 얼마나 치명적인지도 아직 모른다. 멕시코는 H1N1 환자의 입원자 수와 사망자 수를 집계할 수 있었지만 지난 3월 말 그곳에서 퍼진 이래 그 바이러스에 몇 명이나 감염됐는지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멕시코의 사망자 수를 150명이라고 보자(5월 초 현재 100명을 넘어셨다). 예컨대 감염자 1000만 명 중 150명이 사망했다면 그 정도는 일반적인 겨울철 플루와 비슷한 치사율이다(매년 미국에서만 겨울철 플루로 3만6000명이 숨진다). 그러나 만약 감염자 수가 5000명이라면 사망률은 3%나 된다(1918년 인플루엔자 대유행의 사망률보다 1%포인트나 높다).
따라서 감염자를 확인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다. 둘째, 세계에는 신종 플루와 밀접하게 관련된 2008년 H1N1 인간 바이러스가 이미 퍼져 있다. 널리 퍼지긴 했지만 크게 치명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지난해 이 바이러스는 타미플루에 완전한 내성을 보였다. 만약 2008년 H1N1 인간 바이러스가 신형 돼지·인간 바이러스와 재조합된다면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럴 경우 좀 더 내성이 강한 인플루엔자 변종으로 진화해 릴렌자만이 치료가 가능할지 모른다(릴렌자는 흡입기구로 복용해야 한다). 셋째, 세계에는 닭을 포함한 조류 중에 좀 더 오래된 인플루엔자가 널리 퍼져 있다. 이것이 때론 인간을 감염시킨다. H5N1 바이러스가 여기에 포함된다. 이 인플루엔자는 오랫동안 퍼졌기 때문에 진화가 여러 갈래로 진행됐다.
그중엔 약에 내성을 가진 형태도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집 안의 뜰에서 닭을 기르는 일이 흔한 이집트에선 H5N1에 감염된 주민이 상당수이며 전염이 통제되지 않는 듯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H5N1이 인간에게는 점점 덜 치명적이 돼 간다는 증거 때문에 고심한다. 이 조류 플루 바이러스가 점점 덜 치명적인 형태로 진화하면 사람들 사이에서 더욱 널리 퍼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난 4월 말 이집트 정부가 국내에 있는 돼지 30만 마리 전부를 플루 통제조치라는 미명 아래 매몰처분한 일은 너무도 황당하다. 5월 첫째 주 현재 기준으로 H1N1의 돼지 바이러스는 이집트에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닭에 H5N1 바이러스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지금까지 68명이 H5N1에 감염돼 23명이 숨졌다.
이집트는 닭의 경우 전량 매몰처분을 하지 않았다. 닭고기가 이집트인들의 주요 식재료이기 때문이다. 반면 돼지고기는 소수인 기독교 신자들만이 먹는다. 이집트의 한 이슬람 단체는 돼지 인플루엔자를 “이교도들에 대한 신의 복수”라고 선언했다. 이집트의 무슬림 형제단은 최근 카이로 소재 미국 해군 의학연구소(NAMRU: 수십 년 동안 중동 지역 전체에 공중 보건 서비스를 제공했다)의 폐쇄를 주장했다.
또 그들은 이집트 당국이 자국에서 출현한 H5N1 바이러스 샘플을 WHO에 보내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원내에 진출한 이 단체는 인도네시아의 보건장관 시티 파딜라 수파리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수파리는 2006년 이후 인도네시아의 H5N1 샘플을 WHO에 보내지 않았다.
또 그는 자카르타에서 NAMRU를 쫓아내려 한다. 지난 4월 28일 수파리는 선진국 제약회사들의 세계 매출을 올리려고 신종 (돼지) 플루가 유전자 조작돼 퍼뜨려졌을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수파리는 이틀 뒤 그런 요지의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발언의 내용은 수파리 장관의 오랜 주장과 일치했다.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들이 제약회사의 이익을 위해 가난한 나라를 등쳐 먹는다는 주장이었다. 수파리는 WHO·미국과 열띤 공방전에서 ‘바이러스 주권(viral sovereignty)’을 고집했다. 각 국가는 자국 내에서 발견되는 바이러스를 독점적으로 소유할 수 있으며, WHO나 다른 나라와 공유를 거부할 권리가 있고, 그 바이러스에서 만들어진 백신이나 다른 제품들로 얻는 모든 이익을 요구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인도네시아는 그 원칙 아래 2005년 이래 자국에서 출현했다고 간주되는 적어도 50가지의 H5N1 변종에 대한 외부 세계의 접근을 거부한다. 과학자들은 다양한 바이러스 변종에 대한 접근 없이는 H5N1이 인도네시아에서 인간에게 위험한 특징을 발달시켰는지, 또 그곳 감염자들의 높은 사망률이 특이한 바이러스 특성 때문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따라서 바이러스 주권은 인도네시아인뿐 아니라 세계 전체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한다. WHO는 4월 30일 또 다른 수파리의 주장을 반박했다. 인도네시아인들은 특별한 유전적 또는 환경적 특징을 가졌기 때문에 신종 (돼지) 플루로부터 안전하다는 주장이었다.
반면 멕시코는 책임감 있는 국가가 잠재적인 신종 플루 대유행에 대응하는 모범을 기꺼이 보여주었다. 학교와 오락 시설, 그리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를 신속히 폐쇄했다. 이미 경제위기에 시달리는 멕시코는 그 때문에 더욱더 어려운 경제 상황에 직면했다. 그러나 멕시코의 극적인 조치는 멕시코인들의 생명을 구하는 동시에 2009년의 신종 플루 확산을 늦추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세계는 멕시코에 고마움을 표해야 한다. 세계 각국 정부는 멕시코의 대응에 주목하고 거기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아시아 국가들은 과거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유행 때 사용하던 체온계를 다시 끄집어내 입국자들의 체온을 재느라 아우성이다. 그런 조치는 사스 통제엔 주효했다.
사스 바이러스는 거의 사람들이 열이 많을 때만 전염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플루엔자의 경우는 다르다. 플루는 감염자가 열은 고사하고 아무런 증상이 없을 때도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부 정부는 미주산 돼지고기 제품 수입을 금했다. 가공된 소시지를 먹어도 플루에 걸릴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전혀 사실이 아니다.
돼지와 관련된 더 현명한 조치는 이상하게 변한 생태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리는 수많은 인구에게 육류를 공급하려고 그런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가축 수십억 마리가 좁은 공간에 밀집 사육되며, 그 가축들이 세계 각지의 가공공장에 공중으로 운반되고, 임금이 형편없는 이주 근로자들이 감염된 가축에 노출되는 희한한 세계를 말한다.
그리고 한때 세계의 빈민이었던 인도인과 중국인이 중산층으로 진입하면서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다. 80년 당시 중국의 개인당 연간 육류 소비량은 약 20kg이었지만 지금은 50kg이 넘는다. 83년 세계는 연간 1억5200만t의 육류를 소비했다. 97년엔 2억3300만t으로 늘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2020년이면 세계의 돼지고기·닭고기·쇠고기·양식 물고기 소비량이 3억8600만t을 넘어서리라고 내다본다.
이런 생태계는 돼지와 닭의 경우 인플루엔자의 온상이며 바이러스의 진화를 촉진한다. 하루빨리 이런 생태계를 되돌리는 데 손을 쓰지 않으면 언젠가 진짜 심각한 플루 대유행을 부를 게 뻔하다. 그때는 1918년의 끔찍한 상황은 새 발의 피일지 모른다.
인플루엔자의 과거와 현재 A History of the Flu 지난 300년 동안 인플루엔자 대유행은 30~40년마다 한 번씩 찾아왔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신종 플루가 발생했다. 의료 전문가들은 현 세대의 ‘인플루엔자 대유행’이 마침내 온 게 아닌가 우려한다. 백신이 없던 시절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새로운 변종이 생겨나면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1918년 ‘스패니시 인플루엔자(Spanish Influenza)’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약 1억 명이 사망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전체 희생자보다 많다. 인플루엔자 백신은 1944년 미국에서 개발됐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새로운 형태로 변이할 때마다 과학자들은 새 백신을 개발해야 했다. 이번의 신종 플루가 기존의 백신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아직 모른다. 현재 과학자들은 필요할 경우 새 백신을 만들려고 바이러스 샘플을 수집 중이다. 새 백신이 나오려면 수개월이 걸린다. 최초로 기록된 인플루엔자부터 현재의 신종 플루까지 간략히 정리해본다. 기원전: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BC 460~BC 370)는 인플루엔자 비슷한 증상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1580년: 최초로 기록된 인플루엔자 대유행. 과학자들은 스페인 왕 필리페 2세가 이끈 정복군이 유럽 전역에 치명적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퍼뜨렸다고 본다. 1700년대: 세계 전체에 세 차례의 인플루엔자 대유행과 두 차례의 주요 전염병이 발생했다. 의사들은 최선을 다했지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성행위로 감염된다는 견해도 있었다) 속수무책이었다. 19세기: 도시의 성장과 세계적인 교역의 증가로 사람들의 이동이 빈번해지면서 인플루엔자 대유행이 꼬리를 물었다. 1837년 1월 독일 베를린에선 플루 사망자가 출생자보다 많았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선 공공 서비스가 중단됐다. 1918년: 최악의 인플루엔자 대유행. 세계 전체에서 약 1억 명이 숨졌다(제1차 세계대전의 전체 사망자 수는 1900만 명이었다). 스페인에서만 800만 명이 사망했다. 그래서 ‘스패니시 인플루엔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럼에도 스패니시 인플루엔자는 문화적으로는 큰 충격을 미치지 않았다(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가렸기 때문인지 모른다). 1944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백신 개발. 시간이 흐르면서 과학자들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다. 바이러스를 분리해서 실험실 배양으로 백신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막으려는 다른 노력은 여전히 별 효과가 없었다. 1957년: 아시아 인플루엔자 대유행. 과학의 발전으로 신속한 확인이 가능했기 때문에 대응이 효과적이었고 제한적이긴 했지만 백신도 널리 보급됐다. 그런데도 세계 전체의 희생자는 약 200만 명에 이르렀다. 1968년: 마지막으로 기록된 일반 인플루엔자 대유행. 일명 ‘홍콩 플루’로 약 3만4000명이 숨졌다. 많은 사람이 예방 조치로 마스크를 매일 착용했다. 1976년: 돼지 인플루엔자가 미국 뉴저지주의 한 군부대에서 발생했다. 보건 관리들은 스패니시 인플루엔자의 부활일지 모른다고 우려했지만 백신 개발로 미국인의 4분의 1이 접종을 받았다. 백신 부작용으로 25명이 사망했지만 돼지 인플루엔자로 사망한 사람은 없었다. 1997년: 조류 인플루엔자(AI)로 18명이 사망했다. 대다수는 감염된 조류와 직접 접촉으로 병을 얻었다. 2003년: 한국의 몇몇 농장에서 AI 바이러스가 발견됐다. 한국 정부는 전국에서 거의 100만 마리의 닭과 오리를 매몰처분했다. 2004년: 2003년 이후 약 400건의 AI 감염이 보고됐다. 베트남의 피해가 특히 심했다. 2004년 64개 주 전부에서 감염이 발생했다.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AI가 에이즈만큼 두려운 전염병으로 인식되면서 지금도 많은 사람이 닭이나 오리 고기를 먹으려 하지 않는다. 2009년: 신종 플루의 대유행 조짐. 전문가들은 지난 90년 동안의 의학 발전으로 1918년만큼 피해가 크진 않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멕시코에선 피해가 커지고 있다. |
변이를 계속하는 전염성 강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A Contagious, Mutating Flu Virus Could Infect Millio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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