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해진 ‘메이드 인 재팬’ 캐논, 왜?
불량해진 ‘메이드 인 재팬’ 캐논, 왜?
|
2005년 이후 캐논은 12종류의 SLR (Single Lens Reflex) 카메라 신제품을 발매했다. 그중 5개 기종에서 불량제품이 발견됐다. 그간 라이벌인 니콘은 제품 불량이 발견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제품발매 대수가 적은 올림푸스나 소니 등에서도 제품 불량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제품불량 내용도 여러 가지다. 작년 12월 발매된 프로급 아마추어를 위한 카메라인 5D Mark II는 촬영한 화면에 흑점이 나타나는 일이 발생했다.
이는 화상센서나 소프트웨어의 문제로 추측되는 데 반해, 프로를 위한 카메라인 1D Mark III는 AF(자동초점 기능) 불량이거나 촬영 도중 거울이 떨어지는 것 등은 기기의 문제로 모두 제조현장에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들이다.
2005년부터 작년 가을까지 3년간 계속된 디지털카메라 업계의 호황. 세계 카메라 시장은 이 3년 동안 1.4배 성장해 2.2조 엔의 시장으로 커졌다. 특히 SLR 카메라의 가격이 낮아지고, 유저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시장은 연평균 25%씩 급성장해 왔다. 이 SLR 시장에서 압도적인 2강은 캐논과 니콘이다.
양사 합해 세계 점유율의 80%를 점하고 있다. 파나소닉 등 전자 메이커들을 포함해 여러 회사가 유력한 시장에 침투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이 2강의 점유율을 흔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좀체 점유율을 늘리기 힘든 다른 회사들이 적자를 보고 있을 때, 캐논과 니콘만이 시장확대의 수혜를 입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세계 1위 캐논이 가장 이익을 많이 냈다. 콤팩트 디지털카메라에서도 세계 1위를 점하고 있는 캐논은 SLR, 콤팩트디지털카메라 등을 모두 합쳐 연간 2560만 대를 발매하고 있으며, 이 결과 라이벌인 니콘이나 소니보다 배 이상인 26.7%의 수익률을 올렸다. 캐논은 SLR 모든 종류를 포함해 디지털카메라의 70%를 일본 국내공장에서 제조하고 있다.
가뜩이나 인건비가 높은 일본에서 제조하면서도 압도적인 수익률을 올린 것은 정말 놀랄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캐논에서 계속 불량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캐논만의 문제가 아니라 고품질의 대명사인 메이드 인 재팬 신화를 흔드는 아픈 현실로도 다가올 수 있는 문제다.
일본 생산인데 수익률은 왜 높나?
캐논의 주력 카메라 공장은 미타라이 후지오 회장의 고향인 규슈 오이타현에 있다. 이곳에 오이타사무소 등 2개 공장이 있는데 여기서 캐논 카메라의 70%가 생산된다. 콤팩트카메라는 중국이나 말레이시아 공장에서 제조하기도 하지만 DSLR의 경우는 모두 이 오이타에서 생산한다.
이 공장에는 수천 명의 청부(請負) 노동자가 근무하고 있다. 청부직원은 비정규직의 하나로 A기업에서 비용절감 등을 목적으로 제품 생산을 B회사에 모두 맡기면, 이때 B사의 직원을 청부직원이라 부른다. 하청업체나 도급업체 직원과 유사한 말이다. 청부직원들이 바로 캐논의 카메라를 제조하는 주역들인 것이다.
정사원이나 파견직원은 조립은 하지 않고 제조관리와 보수를 담당하고 있다. 외부영상을 전자신호로 변환하는 CMOS모듈을 생산하는 30대 한 청부직원은 “다른 회사 공장에서 캐논으로 와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클린룸의 오염이었다”고 말했다. 이 공정은 미세한 먼지도 들어가선 안 되기 때문에 먼지나 오염물질이 없는 클린룸에서 진행된다.
한편 현장에서 일하는 30대 청부직원 한 명은 먼지는 불량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말했으며 또 다른 직원은 “빛을 비추면 클린룸에서 대량의 먼지가 춤추고 있는 게 보였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물론 클린룸에서 요구되는 수준은 반도체나 의약품, 식품 등 제조과정에 따라 다를 수 있고 카메라 제조과정의 경우 이들보다는 덜 까다롭긴 하다.
그렇다고 하지만 ‘먼지가 춤추는 클린룸’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 클린룸 설계전문가는 “그 정도면 클린룸이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이타현 공장 직원은 마스크도 쓰지 않는다. 캐논 홍보부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품질에 크게 관련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왜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방치되고 있는 걸까? 그것은 클린룸 내부가 캐논의 입장에서는 치외법권과 다름없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청부계약은 업무수탁원인 회사, 곧 캐논이 현장의 청부회사에 소속된 직원에게 직접 지시를 한다든가 명령을 할 수 없다.
반대로 직접 지시를 하면 위장청부가 돼, 노동파견법상 위법으로 처리된다. 이 때문에 캐논 직원은 작업자를 데리고 있는 회사의 관리자에게 지시하고 여기서 현장 직원들에게 전달하게 된다.
“간부 시찰 때만 깨끗하게”
직접 지시가 가능한 파견 직원을 쓰는 것도 방법이나 캐논은 3년 이상 같은 업무를 본 파견 사원을 정직원으로 채용해야 하는 법 때문에 쓰지 않고 있다. 생산량에 따라 인력이 조정돼야 하는데 파견사원을 쓰면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같은 비정규직원을 쓰더라도 파견사원을 쓰면 인재를 빌리는 것으로 볼 수 있고, 청부직원은 공장에 다른 회사 직원이 일하는 결과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앞의 클린룸의 경우에도 캐논의 직원은 원칙적으로 클린룸 내의 현장에 가서 지도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한 청부직원의 증원이다. “클린룸 상부에는 창문이 있어 주 1회 정도 높은 사람이 창문을 통해 시찰합니다. 그때만 깨끗하게 보이도록 하고 있죠.” 캐논 관계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2007년 10월의 사건은 제조현장의 불합리성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사례다.
한 노동자가 공장 안에서 라이터를 사용하다 불이 난 것이다. 당시 소화기로 불을 끄는 바람에 생산라인이 아예 멈춰버렸을 정도로 작지 않은 사건이었다. 공장 내에서 화기엄금이라는 수칙이 있지만 근무자 사이에서는 외장에 흠이 생기면 공공연히 라이터로 지져 흔적을 없애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캐논 홍보부에서는 “작은 화재 사건이 있었고 청부회사의 관리지도 소홀에 원인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있다고 해서 캐논이 소지품 검사를 한다든지 하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청부회사 쪽에서 맡아 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청부계약에 따라 관리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면을 잘 보여준다.
책임 소재에 대해 청부회사와 캐논의 입장은 서로 팽팽하다. 청부회사는 “캐논이 공구와 부자재를 항상 간신히 공급하며, 불량재고분을 뜯어 사용하라고 한다”고 증언했다. 자신들 과실로 인정되면 그 불량재고를 떠안아야 하는 청부회사로서도 한 치도 굽히지 않는 것이다.
최근 불량사태가 늘어난 것에 대해 캐논 홍보부는 “원인은 기종에 따라 여러 가지나 제조현장의 먼지나 노동자들의 기술 수준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작은 문제를 공표해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들리는 소리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인건비 높은 일본에서 이익률을 높이고 있는 캐논이 무리수를 두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보험사 대출 늘고 연체율 올랐다…당국 관리 압박은 커지네
2길어지는 내수 한파 “이러다 다 죽어”
3"좀비버스, 영화야 예능이야?"...K-좀비 예능2, 또 세계 주목받을까
4킨텍스 게임 행사장 ‘폭탄테러’ 예고에...관람객 대피소동
5美항모 조지워싱턴함 日 재배치...한반도·中 경계
6공항철도, 시속 150km 전동차 도입...오는 2025년 영업 운행
7두산 사업구조 재편안, 금융당국 승인...주총 표결은 내달 12일
8‘EV9’ 매력 모두 품은 ‘EV9 GT’...기아, 美서 최초 공개
9민희진, 빌리프랩 대표 등 무더기 고소...50억원 손배소도 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