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와 Guru의 대화 6
CEO와 Guru의 대화 6
최홍성 사장 조선호텔의 경영을 맡은 지 1년 반 됐습니다. 요즘도 내가 이 업에 맞는 대표일까 하고 자문할 때가 있습니다. 또 과연 내가 잘하고 있나 스스로 돌아보죠. 핵심역량 경영이라는 관점에서 지금 조선호텔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김재우 소장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목표를 높게 설정한다는 겁니다. 목표와 현실 사이의 갭에 주목하는 건 자연스런 일이죠. 핵심역량에 대해 여러 가지로 접근할 수 있지만 지금 처한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타얼라이언스, 스카이팀 같은 항공동맹은 원가 절감을 위해 항공사들이 연합한 것인데 예약, 발권 등을 공동으로 합니다. 지구 한 바퀴를 도는 항공사는 없기 때문에 글로벌 동맹을 맺은 겁니다. 그런데 조선호텔은 이미 1980년대에 웨스틴호텔 그룹과 파트너십을 맺었습니다.
항공사들보다 먼저 글로벌 동맹을 맺은 거죠. 사람들 눈엔 서울 도심에 있는 가장 오래된 호텔이지만 일찍이 글로벌 경쟁을 해온 겁니다. 조선호텔에 지금 가장 필요한 건 글로벌화입니다.
최홍성 저희 고객의 60%가 외국인입니다. <인스티튜셔널 인베스터> , <아시아 머니> 등 해외 유력 매체들이 해마다 한국 최고의 호텔, 세계 100대 호텔로 선정하고 있습니다. 사실 조선호텔의 핵심역량 중 하나는 브랜드 그 자체입니다. 조선호텔 하면 한국 사람은 물론이고 미국 사람들도 많이 압니다. 어느 면에서는 웨스틴보다도 더 잘 안다고 할 수 있죠.
김재우 조선호텔의 브랜드 가치는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호텔의 외국인 고객은 주로 북미 사람들이겠죠? 그렇다면 그쪽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 경영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글로벌화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필요한 게 바로 새롭게 보는 자세입니다. 사물을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는 거죠. 산업화 시대 초기에 가장 중요한 건 돈이었습니다.
일사불란이 미덕이던 그 시절 사람은 인건비를 발생시키는 비용 요소에 불과했죠. 그런데 지금은 사람이 주인공인 시대입니다. 사람을 어떻게 능동적으로 조직하느냐가 중요한 세상이 됐습니다. 새롭게 봐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압축성장 시대에 우리는 선진국의 팔로우어(follower)였지만 이제 추종할 대상이 없다는 거예요. 우리는 지금 창조해야 합니다. 스스로 길을 내야 합니다. 그러자면 사물을 새롭게 봐야 합니다.
브랜드도 키우면 핵심역량
최홍성 CEO는 조직의 장으로서 조직을 관리하는 역량도 있어야 하지만 해당 기업이 영위하는 업 자체에 대한 식견이 필요합니다. 호텔은 터놓고 말씀 드리면 방 팔고 밥 파는 게 업이죠. 그런데 저는 사실 음식이나 와인을 잘 모르는 채 경영을 맡았습니다.
사회에 나와 삼성물산 해외 주재원, 삼성영상사업단 캐치원을 거쳐 세콤(에스원)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했죠. 오랫동안 서비스업에 종사했지만 호텔업은 처음이었습니다. 하지만 호텔도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가령 주말에 두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극장에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호텔에 가서 밥을 먹을 수도 있죠.
서로 다른 업종 간에 경쟁이 이루어지는 시대입니다. 김 소장님은 최근까지 10여 년간 CEO를 지내셨는데, 기업의 핵심역량을 떠나 CEO에게 요구되는 핵심역량은 무엇입니까? 아시아> 인스티튜셔널>
김재우 IBM을 9년 동안 경영하면서 회사를 완전히 바꿔놓은 루 거스너 회장은 나비스코라는 과자 회사 CEO 출신입니다. 메인 프레임 시대에 나비스코에서 IBM으로 자리를 옮긴 건 A에서 Z로 이동한 거나 마찬가지예요.
우리나라 사람 같으면 미쳤다고 했을지 모릅니다. 롯데제과 사장이 삼성전자 사장으로 옮긴 격이니까요. 그런데 기업을 구성하는 요소는 제품 내지 서비스가 전부가 아닙니다. 사람도 있고 시스템도 있죠. 제품만 보는 건 기업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게 아닙니다. 기업이든 공공 단체든 CEO는 인적 자원, 재무적 자원 등 가용 자원을 적절히 배치해 최대의 성과를 내는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지속 가능한(sustainable) 경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100년 가까이 된 기업이 10개 안팎인데 일본은 5만 개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기업을 존속시키기 위해서 아들이 아니라 사위한테 경영권을 넘기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CEO에게 필요한 자질은 업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고객의 특성을 파악하는 능력, 글로벌 감각, 유연성 등이라고 할 수 있죠.
고객이 중요한 까닭은 공급보다 수요가 많았던 시대가 가고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어서입니다. 사실 업에 맞는 CEO야말로 핵심역량 중 핵심역량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업에 대한 해석이 중요하고요. 업에 맞지 않는 사업은 버려야 합니다. 맞으면 그 방향으로 과연 어디까지 갈 건지 목표 지점을 정해야죠.
그 지점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역량을 키우는 게 곧 혁신입니다. CEO는 천지가 개벽하는 상황에서도 제대로 된 방향을 찾아내야 합니다.
김재우 소장도 삼성을 떠나 97년 건자재업체인 벽산의 경영을 처음 맡았을 땐 벽산 제품을 잘 몰랐다. 만성 적자에 유동성 위기까지 겹친 풍전등화의 상황에서 그가 핵심 사업이었던 석고보드를 버리기로 결정하자 벽산의 구성원들이 동요했다. 원망이 그를 향했다.
‘석고보드가 뭔지도 잘 모르는 신임 사장이 회사를 살린답시고 알짜배기 공장을 팔아 치웠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는 그 후 40년 역사의 벽산에서 상호만 빼고 거의 모든 것을 바꿨다. 결국 벽산은 살아났고, 일 년 만에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최홍성 핵심역량을 아웃소싱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호텔의 매출액이 700억 원인데 연간 300억 원 정도 구매를 합니다. 그런데 신세계푸드는 연간 5000억 원어치를 구매해요. 그래서 제가 경영을 맡은 후 음식 구매는 신세계푸드에 위탁했습니다. 구매는 우리의 핵심역량이 아니니 그룹의 핵심역량을 활용하는 거죠.
김재우 인상적인 사례군요. 사실 실패도 자산입니다. 과거의 실패로부터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개인도 실패를 잘 극복하면 내공을 쌓을 수 있습니다.
핵심역량도 아웃소싱하는 시대
최홍성 우리 호텔이 세계 100대 호텔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50대 호텔에 진입하지 못하는 건 보수적인 기업문화 때문입니다. 1914년에 건립된 가장 오래된 호텔일뿐더러 태어날 때부터 최고의 호텔이다 보니 좋은 전통뿐 아니라 나쁜 전통도 생겼습니다.
저는 CEO가 두 가지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바로 혁신과 창조죠. 그런데 혁신엔 저항이 따르고 창조는 리스크를 수반합니다. 막상 부닥쳐 보니 창조보다 혁신이 더 어려운 일 같습니다. 핵심역량의 관점에서 혁신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습니까?
김재우 사업을 재해석한 후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와 현실 간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사람과 시스템과 품질을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혁신이죠. 조선호텔의 핵심역량 중 하나가 글로벌 동맹이라고 했습니다만, 구성원들의 글로벌 감각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미달한다면 그 간극을 메우는 것도 혁신입니다.
독일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이 쓴 <히든 챔피언> 에 보면 설립 50년 만에 세계 시장 점유율이 80%에 이른 기업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대졸 구성원의 비율이 20%에 불과합니다. 생산성의 비결이 뭘까요? 사람들로 하여금 일에 빠져들게 한 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왜 해야 하는지 알면 그 일을 더 잘합니다. 반대로 시키는 대로 하다 보면 생산성이 떨어지죠. 관점이 바뀔 때 사람은 새로 눈을 뜹니다.
최홍성 지식경영 시대 핵심역량은 바로 사람입니다. 우리 호텔은 지난해 94년 만에 처음으로 공채를 실시했습니다. 호텔은 수시 채용이 일반적이지만 두 차례에 걸쳐 88명을 뽑아 배치했죠. 또 기존 인력을 핵심역량화하기 위해 학습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이를 위해 예산 외로 10억 원을 배정했습니다. 그룹 쪽에서 꼭 그렇게 해야 하느냐는 이야기도 들었죠. 요즘은 학습 조직에 맛을 들인 직원들 사이에서 회식 자리가 줄었다는 소리가 나옵니다. 단골이던 북창동 맥줏집도 잘 안 갑니다.
최 사장은 아침형 CEO다. 매일 6시20분이면 출근해 30분 동안 호텔과 식당을 둘러본다. 정문 벨보이, 주방 조리사 등 그때 그때 마주치는 직원들과 3~5분씩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눈다. 취임 초 경계의 눈초리로 지켜보던 직원들이 요즘은 출장 등으로 한 일주일 이 행사를 거르면 “어디 다녀오셨느냐”고 묻는다.
1년을 넘기면서 ‘과연 얼마나 갈까’ 하던 시선도 바뀌었다. 그는 “임원들의 경우 호텔 경력이 20, 30년”이라며 “꾸준히 대화해 한 명 한 명의 마음을 얻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재우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궁극적으로는 품질을 바꿔야 합니다. 사람이 바뀌려면 시간 관리 방법도 바뀌어야 합니다. 우선 쓸데없는 데 빼앗기는 시간을 줄여야 합니다. 그러자면 내가 쓰는 시간을 분석해 봐야죠. CEO가 시간 관리를 잘하기 위해서도 위임이 필요합니다.
일례로 ‘해야 할 것’을 지시할 게 아니라 알아서 하라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만 적시하는 겁니다. 그래야 실무자들이 어떻게 할지 연구를 해요. 품질 역량은 빼놓을 수 없는 핵심역량이죠. 품질을 높이려면 표준이 있어야 합니다. 서비스업도 제대로 경쟁을 하려면 서비스 스탠더드가 있어야 합니다.
최홍성 제가 임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조직을 바꾸려면 먼저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다 바꾸기도 쉽지 않은데 앉은 자리에서 여러분이 바뀌면 좋지 않으냐?” 혁신을 싫어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득권을 내려놓기란 사실 쉬운 일이 아니죠.
김재우 로컬 차원에 머물고 있는 조직문화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자면 관점이 바뀌어야 합니다. 반 컵의 물은 물이 반이나 남은 것일 수도 있고 반밖에 안 남은 것일 수도 있죠. 구성원들이 같은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오죽하면 잭 웰치 전 제너럴 일렉트릭(GE) 회장이 이런 이야기를 했겠습니까? “자신이 믿는 것을 구성원들이 알아듣게 하고 싶다면 열 번이 아니라 백 번이라도 이야기하라.” 하지만 CEO는 바로 이런 데서 기쁨을 찾는 사람입니다. 1톤의 모래 속에서 0.1mg의 사금을 찾는 사람에 비유할 수 있죠. 이렇게 생각하면 사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죠. 경영자는 1백만 분의 1의 가능성에 도전하는 사람입니다. 히든>
김재우 소장이 말하는 핵심역량 경영 독특한 회사를 만들라 독특한 회사만이 살아남는다. 지속 가능한 경영은 회사를 유일무이한 기업으로 만드는 것이다. 101년 된 미국의 자존심 제너럴 모터스(GM)는 저물었지만 풍력발전 모터를 만드는 독일의 에넬콘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영위하는 업을 재해석하라 업에 맞지 않은 사업은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방향이 맞으면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역량을 키워야 한다. 업에 맞는 CEO야말로 핵심역량이다. 모든 사물을 새롭게 봐라 우리나라는 더 이상 선진국의 팔로우어가 아니다. 우리 스스로 길을 내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사물을 새롭게 보는 자세다. |
삼성물산이 맺어준 멘토와 멘티 두 사람은 1970년대 후반 삼성물산에서 만났다. 당시 최홍성 사장은 평사원, 김재우 소장은 부장이었다. 90년대 후반 김 소장이 삼성그룹을 떠났지만 두 사람은 30년 이상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최 사장은 김 소장에 대해 “내가 미처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시곤 했는데, 한마디로 나에게는 멘토 같은 분”이라고 말했다. “당시 중동 전쟁터를 누비면서 군수품 비즈니스를 했습니다. 큰 장사를 어떻게 하는 건지 현장에서 몸으로 실전을 가르쳐 주셨죠.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신 분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만나서 가르침을 받고 용기도 얻곤 하죠. 제가 마음으로 따르는 인생 선배입니다.” 김 소장은 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군납 수출로 이름을 날렸다. 삼성물산 첫 베이루트 지사장으로 있으면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에 군복 등 1억100만 달러어치를 납품하는 계약을 따내 ‘101 사나이’ 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최 사장은 그와 함께 출장도 많이 다녔는데, 그가 임원으로 있을 때도 출장을 가면 한 방을 썼다고 회고했다. “그 시절 상사맨들이 허풍을 많이 떨었습니다. 단가 10달러는 받아야 하는 물건을 역량이 없어 8달러에 팔고도 큰소리를 치는 식이었죠. 상담이라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김 소장님이 전범이라 할 만한 거래를 후배들에게 많이 보여 주셨습니다.” 김 소장은 최 사장에 대해 “독서를 많이 하는 CEO”라고 귀띔했다. 그는 최 사장이 1년 반 전 조선호텔 CEO로 자리를 옮길 때 만난 이야기를 했다. “호텔이라는 생소한 업이 과연 자신에게 잘 맞을지 고민하더군요. 또 CEO는 처음인데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듯했습니다. 30여 년 지켜보면서 제가 포착한 최 사장의 장점은 유연성입니다. 서비스업의 성패는 MOT(Moment Of Truth), 고객과 구성원 즉 외부 고객 및 내부 고객과의 접점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서비스업 CEO에게 필요한 자질이 바로 유연성입니다. 최 사장은 며칠 전 회갑을 넘겼지만 아주 유연합니다.” 그는 “최 사장은 겉과 속이 여일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사람이 주인공인 시대에 남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다는 건 굉장한 경쟁력입니다.” 듣고 있던 최 사장이 이 대목에서 “김 소장님과의 관계에서는 그렇게 처신했지만 반골 기질도 꽤 있다”고 덧붙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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