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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상륙작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포천중문의대 교수

지난 5월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에서 <기네스 북> 에 오를 만한 큰 행사가 있었습니다. 한국전립선관리협회와 서울노인복지센터가 격년으로 여는 두 번째 무료진료 행사입니다.

이름도 아주 깁니다. ‘효로 가는 길, 어버이날 기념 전립선 대강연회 및 무료진료 행사’입니다. 2년 전 처음 이 행사를 기획할 당시가 떠오릅니다.

사실 엄두가 나지 않았지요. 약품 값, 임상 검사비, 구조물 설치비, 인건비 등 예산은 어떻게든 마련한다고 하지요. 그러나 900여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채혈, 요속, 잔뇨, 초음파 등 첨단 전문 검사를 하는 일, 교수진과 일대일 상담을 하는 일까지. 과연 정해진 시간에 다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답니다.

하지만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란 말을 떠올렸습니다. 비록 군의관이지만 그래도 한때 해병대 소령이었답니다. ‘밀어붙이자!’는 오기가 발동합니다. 우리협회 진료 능력의 한계를 시험해 보자는 뜻도 있었습니다. 준비 회의를 하면서 행사 코드명을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정합니다.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쓰고 있는 날(6월 6일)이 한국의 현충일이자 노르망디 상륙 65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철저한 준비, 일사불란한 팀워크, 후퇴는 없다. 뭐 이런 것이 상륙작전의 이념 아니겠습니까? 이왕이면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상륙작전이었다는 ‘노르망디’를 갖다 붙입니다. 몇 차례의 도상훈련이 실시됩니다.

5월 9일 오전 8시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 832명의 배뇨장애를 앓고 계신 어르신네들이 오른쪽 가슴에 번호표를 붙이고 순서대로 강당에 들어옵니다. 동영상을 동원한 이 나라 최고 수준의 교수 강의를 듣습니다.미리 표시된 동선을 따라 3~4m마다 배치된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차례로 검사실을 통과합니다.

마지막 진료상담실, 어르신들이 좀처럼 만나기 힘든 유명 교수들 앞에 앉습니다. 전립선 질환에 대한 모든 검사 결과가 첨부된 차트를 보고 그야말로 전문적인 평가가 내려지고 충분한 설명을 해드립니다. 필요한 분께는 치료제도 넉넉히 드립니다. 정확히 오후 5시, 분 단위 오차도 없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무사히 끝났습니다.

진료를 마친 마지막 어르신이 상비약, 음료수가 잔뜩 든 쇼핑백을 들고 환한 얼굴로 행사장을 떠납니다. 그들을 보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유럽을 해방시키듯 배뇨 곤란으로 고생하는 우리 어르신들을 해방시켜 드린 것입니다. 강의, 설문조사, 검사, 상담에 이르기까지 전문적인 진료 행사가 완벽하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 큰 힘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어르신들의 성숙한 질서의식입니다. 그 힘들고 복잡한 검사 과정을 거치면서도 노인 특유의 투정도 시비도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잘 따라주시는지. 옷차림은 남루하지만 질서를 지키는 것은 영국의 노신사가 따로 없습니다. 또 하나는 서울 종로에 있는 사찰 조계사에서 위탁 경영하는 서울노인복지센터 직원들의 열정과 팀워크 덕분입니다.

매일 2500여 명에게 무료 급식을 하고 평생교육을 실시하는 엄청나게 큰 노인복지 시설입니다. 공무원들보다 운영이 매끄럽습니다. 봉사가 몸에 밴 분들이니, 단순히 직업이라는 개념을 떠나 마음으로 일을 합니다. 불평 하나 없습니다. 늘 웃는 얼굴입니다. 질서정연하게 진료를 끝내고 돌아가는 어르신들, 열심히 마무리 작업을 하는 자원봉사자들을 보면서 마음이 흐뭇해집니다.

우리 모두에게 노구를 이끌고 질서를 지키는 어 르신들의 모습을, 웃으며 남을 돕는 봉사자들의 땀방울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불현듯 지나갑니다. 대한민국 어르신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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