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의 진면목을 알린다
한국 기업의 진면목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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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초 삼성전자의 가전 부문은 우울한 소식을 접한다. 미국시장에서 대세로 자리 잡고 있던 양문형 냉장고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글로벌 기업 두 곳에 각각 소비자 조사와 브랜드 컨설팅을 맡겼는데 ‘삼성 브랜드로는 어렵다’는 비관적인 결론이 나왔다.
당시 삼성전자는 세계 90여 개국에 양문형 냉장고를 수출하고 18개국에서 점유율 1위에 올라 있었지만 미국시장에서는 두각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는 ‘삼성’이 아닌 새로운 브랜드로 미국에 진출할 것을 권했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삼성’ 브랜드는 저가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유통업체들도 양문형 냉장고는 ‘삼성’이 아닌 다른 브랜드로 진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생각은 달랐다. 삼성 브랜드의 이미지를 높여야만 향후 미국에서 나오는 다른 제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다. 고민하던 삼성전자는 다시 한번 브랜드 컨설팅을 의뢰했다. 이번에는 외국 회사가 아니라 국내의 조그마한 브랜드 컨설팅 회사인 브랜드앤컴퍼니였다.
소비자 편의 최대 고려한 제품 설계
브랜드앤컴퍼니의 이상민 사장과 최윤희 부사장은 모든 것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했다. ‘지금까지 미국의 양문형 냉장고 시장을 차지하고 있던 월풀, GE, 메이텍은 과연 문제가 없을까?’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한 두 사람은 일단 소비자들을 직접 만났다. 소비자 조사 결과 양문형 냉장고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기존 브랜드들이 자만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른 브랜드들이 진출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미국 가전업체들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 개발을 등한시하고 기존 제품을 계속 출시했다. 소비자들은 더 넓은 공간과 냉동칸 확대, 디자인 개선 등을 요구했지만 업체들은 대응하지 않았다. 브랜드앤컴퍼니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수용하고, 딜러들에게 삼성 양문형 냉장고의 장점을 교육하면 삼성 브랜드로도 승산이 있다’는 결론을 냈다.
삼성전자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냉장고 안에 화장품이나 약품을 보관할 수 있는 칸을 따로 만드는 등 소비자들의 편의를 최대한 고려한 제품을 설계했다.
또 냉장고가 미국 가정에서 알림판을 한다는 점에 착안해 포스트잇이 잘 붙는 표면재질을 채택했다. 동시에 딜러들에게 매뉴얼화된 제품 설명서를 지급하고 교육시켜 삼성 제품의 특징을 잘 설명하도록 했다. 또 24시간 고객서비스센터 운영 등 삼성전자는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제공한다는 확신을 소비자에게 심어주려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중소기업 브랜드 기초부터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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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앤컴퍼니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 설립됐다. 내수시장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고,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통해 비용감축을 하며 대부분의 중소기업 등은 도산을 면치 못했다.
국내 경기가 나빠지면서 기업들은 수출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수출 브랜드 관리에 관심을 돌리던 기업과 함께 상품의 이미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세련된 소비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브랜드 관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에 따라 이 사장은 회사를 설립했다.
이 사장의 예측은 적중했다. 첫째 고객은 국내 굴지의 그룹인 LG였다. 1995년 럭키금성에서 LG로 사명을 바꾼 후 LG전자 역시 금성사(GoldStar)라는 브랜드를 바꾸는 중이었다. LG는 당시 세계적인 브랜드 전문가인 버클리 대학의 데이비드 아커 교수에게 컨설팅을 의뢰했지만 아커 교수는 “이상민 사장과 최윤희 부사장에게 일을 맡기는 게 좋겠다”고 되돌려 보냈다.
아커 교수는 최윤희 부사장의 스승인 동시에 이 사장과 학문적으로 교류가 있었다. 브랜드앤컴퍼니는 이때부터 LG전자의 브랜드 교체 전략을 수립해 나갔다. 금성사를 LG로 바꾸면서 대중 브랜드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바꾸는 것이 LG전자의 요구사항이었다. 금성사의 브랜드 파워가 센 나라와 약한 나라를 구분해 서로 다른 전략을 썼다.
브랜드 파워가 강력한 중남미 쪽의 파나마나 우루과이 같은 곳에서는 금성사와 LG를 서서히 교체하면서 연속성을 유지했다. 반대로 미국이나 유럽 등 GoldStar의 브랜드 파워가 약하고, 저가형으로 인식된 곳에서는 마치 새로운 브랜드를 등장시키듯 LG를 선보였다. 과거와의 단절인 셈이다. 이런 전략에 따라 LG전자는 2004년까지 서서히 브랜드 교체를 수행했다.
전략이 성공적이었던 것은 오늘날 LG전자의 성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 역시 “LG가 ‘골드스타’ 브랜드를 ‘LG’ 브랜드로 훌륭하게 변화시킨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이처럼 브랜드앤컴퍼니의 이 사장과 최 부사장은 그동안 외국계 기업이 독식해온 마케팅과 브랜딩 분야에 뛰어들어 성과를 내고 있다.
앞서 언급한 회사 외에도 브랜드앤컴퍼니는 메가패스, 스카이, 네이트, 에버랜드, 네스팟, 삼성플라자, AK플라자, SK텔레콤, KT 등의 브랜드 전략에도 참여했다. 최근에는 중소기업청과 브랜드앤컴퍼니가 함께하는 ‘수출중소기업 글로벌 브랜드 육성 사업’을 통해 수출을 위한 중소기업의 브랜드를 기초부터 더욱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브랜드앤컴퍼니는 그동안 사람들이 가지 않았던 브랜드 컨설팅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20억원으로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멀지만 브랜드 컨설팅 기반이 전혀 깔려있지 않은 황무지에서 과감한 도전 정신으로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 가고 있다. 최 부사장은 “브랜드 업계는 매일매일이 도전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소비자의 생각을 꿰뚫고 브랜드를 출범시키는 데는 시장에 대한 통찰력, 이론 및 실무 능력, 그리고 도전정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사장은 “브랜드앤컴퍼니를 설립할 때 5대 그룹에서 브랜드를 총괄하는 부사장 자리 제안도 있었지만 특정 회사에 소속되는 것보다 브랜드 전문 컨설팅사를 통해 폭넓은 일을 경험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안정된 대기업 대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기업가 정신이 오늘의 브랜드앤컴퍼니를 만든 셈이다.
글쓴이 최수빈 기업가정신 탐사단(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3학년)·chewpine@natel.com 이주연 기업가정신 탐사단(명지대 영어영문학과 3학년)·harry725@naver.com 이석호 기자·lukoo@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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