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의 왕’ 요로결석
‘통증의 왕’ 요로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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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70년대 서울 장충체육관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고, 흑백 TV 화면을 통해 온 국민을 들뜨게 했던 프로레슬링! 그 중심에는 박치기로 유명한 김일이라는 선수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청소년뿐 아니라 청·장년층까지 김일 선수를 영웅으로 여겼고 프로레슬링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이상한 것은 어느 순간, 그렇게 요란을 떨던 TV에서 프로레슬링이 사라져 버립니다.
국민 뇌리에서도 이 경기는 지워집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요즘에는 케이블 TV가 안방에 밀려오면서 레슬링이나 그게 그거인데 이름만 요상한 K-I, UFC 같은 신종 격투기가 30여 년 만에 다시 인기몰이를 합니다. 역시 돌고 도는 게 세상사입니다. 엊그제 재일교포 유도선수 출신인 추성훈의 격투기 시합을 보면서 30여 년 전 어떤 장면이 떠올라 혼자 킬킬거립니다.
격투기를 보는 것 자체를 무식한 것으로 매도하는 아내가 곱지 않은 눈으로 쳐다보며 한마디 합니다. “남은 피 터지게 싸우는데 웃기는 왜 웃어요!” 잊을 수 없는 옛날 이야기. 30여 년 전 프로레슬링의 인기가 절정에 있을 무렵입니다. 막 퇴근을 하려는데 응급실에서 급히 찾는 방송이 들립니다.
당직 인턴의 간단한 브리핑을 듣고 진찰대 위의 환자를 봅니다. 생전에 이런 환자를 본 적이 없습니다. 마치 산이 누워있는 것 같습니다. 신장 195cm, 체중 130kg로 진찰대 길이가 모자라 무릎 아래가 밖으로 나와 있습니다. 일본인 프로레슬러인데 이 무지무지한 거구의 선수 몰골을 보니, 신나게 집어 던지는 선수이기는커녕 다 죽어갑니다.
얼굴은 창백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연방 오른쪽 옆구리를 만지며 “이타이(아프다), 이타이!” 하고 소리를 꽥꽥 지릅니다. 환자는 죽겠다고 아우성인데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에 웃음을 참을 길이 없었습니다. 언뜻 떠오르는 게 알래스카에서 연어를 잡는 집채만한 그리즐리 곰입니다.
당시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꽤 알려진, 덩치 그대로 오오쿠마(大熊·큰곰)란 선수입니다. 진찰을 하고 X선 촬영을 하니 우측 요관에 콩알 크기의 결석이 보입니다. 진통제 주사로 환자가 기력을 찾은 다음 짧은 일본말로 설명을 해줍니다. 아는 병이니 출국하는 대로 근본 치료는 일본에서 하도록 했습니다. 위로도 할 겸 몇 마디 농담도 건넵니다.
“오오쿠마상! 김일 선수의 박치기에도 끄떡없던 분이 겨우 콩알만한 돌로 이렇게 맥을 못 쓰다니 이게 웬일입니까?”
“센세이, 말도 마세요! 김일 선수의 헤딩구(박치기)는 게이샤 주먹 정도예요. 세상에 이렇게 아픈 건 생전 처음입니다.”
사각의 링에서는 야수 같은 레슬러인데 순진한 것이 꼭 어린애 같습니다. 더구나 곰 같은 덩치로 일본 특유의 공손한 인사를 하는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납니다. 그런데 최고로 아픈 것을 표현하는 단어는 무엇일까요? 바로 산통(疝痛)이란 말이 있습니다. 질병이란 의미의 ‘ ’ 밑변에 뫼산(山) 자가 들어앉은 것을 보면 이 아픔이야말로 산같이 크다는 뜻에서 유래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바로 이 말을 쓰는 병의 대표적인 것이 요로결석, 그중에서도 요관 결석입니다. 아마도 통증 콘테스트를 한다면 이 산통이 금메달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 아픔의 정도가 환자들 표현에 의하면 지옥이 따로 없답니다. 그런데 요즘 요로결석쯤은 손 하나 대지 않고 충격파라는 것을 쏘아 모래알같이 부셔서 오줌으로 내보냅니다. 참 좋은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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