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JSA에서 만난‘용의자의 딜레마’

JSA에서 만난‘용의자의 딜레마’

이른 아침에 택시를 타고 국방부에 가자고 하니 택시기사가 “군인이냐”고 묻는다.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지역을 다니다 보니 어느 새 내게서 군인의 향기가 나는가 보다. 물음에 답하고자 비무장지대를 다녀와서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으며, 오늘은 마지막으로 파주에 간다고 하니, 택시기사의 아들이 파주에 있는 1사단에 근무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른 아침에 만난 작은 인연이다.
▎도라전망대에서 본 개성 코앞에 보이는 이곳이 개성공단으로 도라산역에서 자동차로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다. ⓒ이상엽

▎도라전망대에서 본 개성 코앞에 보이는 이곳이 개성공단으로 도라산역에서 자동차로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다. ⓒ이상엽

어쩌면 우리 국민 대부분은 군인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2008년 기준으로 65만여 명의 군인이 있다. 이들의 가족이 4인이라면 군인의 직계 가족만 260만여 명이다. 군인 한 명당 가까운 친인척이 10명 있다고 가정하면, 군인 친인척은 650만여 명에 달한다.

이 둘만 합쳐도 910만여 명이다. 만약 군인 한 명당 가까운 친구가 10명만 있다고 하면 군인 친구만 650만여 명이고, 이들을 모두 합치면 1560만여 명에 이른다. 결국 우리 국민 세 명 중 한 명은 군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이야기다. 여기에 군인과 관련된 산업이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국민까지 고려하면 국민 두 명 중 한 명은 군인 및 군대와 관련이 있게 된다.

군(軍)은 이처럼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평범한 시민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구태여 국토방위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국방부의 간단한 정책이나 국방과 관련된 작은 이슈가 항상 주목 받는 이유다. 국방부가 더욱 열린 국방부가 돼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강북강변도로를 지나 자유로를 달리면 이제는 오랜 친구처럼 낯익은 철책이 길을 따라 같이 달린다. 강 너머에는 북한 개풍군도 우리와 함께한다. ‘통일의 관문’이라고 쓰인 검문소를 지나 얼마 가지 않아서 JSA경비대대 Camp Bonifas에 도착했다. 태극기와 유엔기가 동시에 펄럭이고 있었다.

마침 문산에서 통일촌을 왕래하는 93번 버스가 대대에 도착하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 일행은 모두 ‘기자’ 완장을 차고, 경비대대에서 간단하게 현황 설명을 들었다. 캠프 보니파스(Camp Bonifas)대대는 유엔군 사령부의 작전통제를 받는다. 주된 임무는 공동경비구역을 경비하고, 남북군사정전위원회의 활동을 지원하고 비무장지대 내에 있는 대성동 자유의 마을 치안을 유지하는 것이다.

공동경비구역에서는 역사를 방불케 하는 수많은 일이 일어났다. 1976년에는 북한군이 미군 장교를 도끼로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Camp Bonifas의 Bonifas는 당시에 살해됐던 미군 장교의 이름이다. 1984년에는 소련 특파원이 월남한 사건이 있었고, 1998년에는 고 현대그룹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500마리의 소떼를 몰고 이 지역을 이용해 방북한 바 있다.

2007년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 지역을 경유해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Camp Bonifas에서 JSA를 가는 길에는 대성동 자유의 마을을 볼 수 있다. 이 마을에는 현재 50여 가구 2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 마을 주민들은 정부에서 제공한 토지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주민에겐 토지에 대한 소유권이 없고 경작권만 부여된다. 여기서 생산한 농산물은 면세혜택을 받는다. 원칙적으로 외지인이 이 마을 주민이 되려면 결혼을 통해 며느리로 들어오거나, 아주 드문 경우지만 데릴사위로 들어오는 방법이 유일하다.



열린 국방부 돼야 하는 이유이 마을 주민의 지위를 유지하려면 1년 중 8개월 이상 주거해야 하는데, 다만 교육을 위해 외지에서 부모가 자녀와 함께 생활하는 경우, 주거 요건에서 예외가 인정된다. 비무장지대까지 침투한 한국인의 각별한 교육열을 반영하는 규정인 셈이다. Camp Bonifas에서 공동경비구역으로 가는 길에는 미군이 주둔했던 지역을 볼 수 있다.

북한이 한국을 침범하는 경우 반드시 거쳐야 할 지점이기 때문에 소위 미군의 ‘인계철선’이 있었던 지역이다. 1991년에 미군이 이 지역에서 완전 철수해 군사분계선 바로 밑에 있었던 고전적인 의미의 미군 인계철선은 사라졌다고 한다. 공동경비구역에는 군사정전위원회와 관련된 다섯 개의 조그만 건물들이 군사분계선에 남북으로 걸쳐 위치하고 있다.

남북으로 걸쳐 있는 건물들에서 각각 20여m 떨어진 곳에 동서 방향으로 북쪽 중앙에는 판문점이 있고, 남쪽 중앙에는 자유의 집이 있다. 우리 일행이 자유의 집을 거쳐 군사정전위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6∼7명의 우리 경비병이 북쪽을 바라보며 경계근무 중이었다. “항상 이렇게 경계를 서느냐”고 물으니 “방문객이 있는 경우에는 방문객을 북한군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경계병을 늘린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마침 북쪽의 판문점에서는 한 북한군 병사가 망원경을 통해 남쪽을 계속 감시하고 있었다. 비무장지대를 무수히 다녀봤지만 북한군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것은 처음이다. 눈앞의 북한군과 그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국군에 둘러싸인 다소 생소한 상황이 지속되는 동안 머릿속엔 오만 가지 상념이 스친다.



인계철선 사라진 공동경비구역군사정전위원회의 회의가 열리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바깥에서는 남북 방향으로 걸쳐져 있는 건물의 중간에 군사분계선이 있기 때문에 그 선을 넘어가지는 못한다. 건물 안에는 군사분계선을 따라 탁자가 동서방향으로 놓여 있다. 남쪽에서 북쪽을 바라볼 때 동서 방향으로 놓인 탁자의 왼쪽 끝이 북측 대표의 자리, 오른쪽 끝이 남측 대표의 자리다.

이 탁자의 가운데 선을 따라 마이크 세 개가 일직선으로 놓여 있다. 건물 내에서 탁자 위에 그려진 일종의 군사분계선이다. 그런데 건물 바깥과는 달리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이 군사분계선은 의미가 없어지고, 적어도 건물 내에서는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으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이 건물에는 남쪽에서 들어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북쪽에서 들어와도 된다. 이때 북쪽에서 들어온 사람들도 남쪽에서 들어온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적어도 건물 내에서만큼은 군사분계선을 지나 남쪽을 자유롭게 올 수 있다. 이 건물의 남쪽과 북쪽에는 각각 바깥으로 통하는 문이 있다.

이 건물에서 남쪽으로 향한 문을 열고 나가면 남한이고, 북쪽으로 향한 문을 열고 나가면 북한이다. 남쪽에서 들어온 사람들은 남쪽 문으로 나가고 북쪽에서 들어온 사람들은 북쪽으로 나간다. 우리가 건물 내에 있을 때는 북쪽 사람들은 건물에 들어오지 않는다. 북쪽에서 사람들이 들어와 있을 때는 남쪽 사람들은 이 건물에 들어가지 않는다.

우리가 건물 내에 있는 10여 분 동안 두 명의 군인이 건물 내에서 우리를 보호하고 있다. 한 명은 북측 대표가 앉는 자리 뒤에서 동쪽을 바라보고 있고, 다른 한 명은 북쪽으로 통하는 문 앞에 자리 잡고 남쪽을 보고 있다. 역시 훤칠한 키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낀 군인들이다.

경계병들은 허리를 약간 굽힌 채 마치 달리기를 시작할 때처럼 90도에 가까운 각도로 양팔을 굽히고 있었고, 두 주먹은 옆에서 볼 때 핏줄이 보일 만큼 불끈 쥐어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자세로 우리가 건물 내에 있는 동안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경계병들에게 “왜 그런 자세로 있느냐”고 물어보니 “건물 내는 위험지역이고 따라서 만일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가장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분단의 생생한 현장을 온몸으로 느끼고 나서 공동경비구역을 빠져나온 경제학자의 감회는 남다르다. 2008년 12월을 기준으로 북한은 119만여 명, 한국은 65만여 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인구 대비 군인 비중은 1.35%지만, 북한은 5.13%에 달한다.

남북한은 예비 병력으로 각각 304만여 명, 770만여 명을 보유하고 있다. 예비 병력까지 합친 경우 북한 인구의 38.3%가 병력이다. 2007년을 기준으로 북한의 국방비는 4억9000달러로 전체 재정의 15.8%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국방비는 264억 달러로 전체 재정의 15.5%다(원-달러 환율 950원 기준).

2006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국민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비율은 2.8%로 미국 4.0%, 러시아 4.1%보다는 낮지만 일본 0.9%, 중국 1.3%, 독일 1.3%, 영국 2.3%보다는 높다. 남북한의 군사비 지출은 절대금액에서는 차이가 나지만 재정의 15% 이상을 국방비로 사용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경제학적으로 볼 때 남북한 군사비 지출은 일종의 용의자의 딜레마 게임 결과다.


남북한, 총 재정 중 15% 이상 국방비용의자의 딜레마 게임에서는 두 명의 범죄 용의자가 각각 격리된 공간에서 범죄 혐의를 조사받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이때 범죄 용의자가 모두 범죄 사실을 고백하면 둘 다 범죄에 상응하는 형벌을 받게 된다. 반대로 둘 다 범죄 사실을 부인하면 둘 다 가벼운 형벌을 받는다.

만약 둘 중에 한 명만 범죄 사실을 고백하면 그는 곧 석방되고, 범죄 사실을 고백하지 않은 다른 한 명은 둘 다 범죄 사실을 고백한 경우보다 더욱 큰 형벌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게임 결과는 모두 범죄를 고백하게 된다(상대방이 고백하든 그렇지 않든 자기는 항상 고백하는 게 유리하다.

이는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만약 둘 다 범죄를 고백하지 않으면 둘 다 훨씬 더 적은 형벌을 받을 수 있음에도 둘 다 범죄를 고백해 결과적으로 더 큰 형벌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남북한의 군사력 증강문제도 용의자의 딜레마 게임으로 설명할 수 있다. 남북한 모두 군사력을 증강시키지 않으면 (경제학적으로 볼 때) 이는 남북한에 모두 유리하지만, 실제로는 남북한 모두 군사력을 증강하는 방안을 선택하게 된다. 만약 한국이 군사력을 증강하지 않고 북한이 군사력을 증강하면 한국은 커다란 안보위협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볼 때 이러한 용의자의 딜레마 게임에서 남북한에 모두 유리한 결과가 도출되려면 남북한이 서로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이 군사력을 감축하는 경우 북한도 군사력을 감축할 것이라는 신뢰가 있으면 한국이 군사력을 감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군사분계선 바로 너머에는 개성공단이 있고, 바로 아래에는 LCD단지가 있다. 국방비의 10%만 줄일 수 있다면 개성공단을 더욱 크게 하고, 더 많은 LCD단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효율적 국방비 지출 긴요그러나 남북한 상호신뢰는 이론상의 이야기일 뿐 그동안 북한이 보여온 예측 불가능성으로 인해 우리가 북한에 줄 수 있는 신뢰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어도 단기간에 신뢰에 기반한 상생의 해답을 얻기는 불가능해 보이며, 군사력 증강게임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분간 지금 수준의 국방비 지출 비율이 불가피한 것이라면 늘어나는 국방비를 효율적으로 지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기존 연구를 보면 한국의 경우 국방비 지출이 경제성장을 저해하지는 않는다는 결론을 낸 경우가 많다. 물론 경제성장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것이 경제성장을 촉진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향후 국방비는 보다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지출구조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 국방비는 절대 규모의 증감뿐만 아니라 사용상의 효율성 제고라는 측면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방 연구개발(R&D) 투자를 잘 활용해 민간과 군대가 함께 쓸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다면 이는 군대는 물론 국가경제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국방 사회간접자본도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다. 군용으로 개발된 비행장을 평상시에는 민간비행기가 활용할 수도 있다. 군인으로 복무하는 기간이 한국 젊은이들의 인적자원을 개발하고 향상하는 기회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국방과 경제가 같이 발전하는 미래지향적 군경(軍經)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공동경비구역에서 나와 도라전망대를 방문하니 이곳에는 이미 수많은 관광객이 있었다. 들리는 바로는 주로 일본인과 중국인이었다. 개성에서 12㎞ 동남 방향에 위치한 도라전망대에서는 송악산, 개성 시내 그리고 개성공단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 망원경으로 개성공단을 보니 ㈜호산XXX라는 한국기업의 상표도, 한국산업인력공단이라는 안내판도 보인다.

사천강이 임진강으로 향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신1번 국도와 경의선이 비무장지대와 군사분계선을 넘어 사천강을 횡단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도라전망대 바로 옆에는 북한군의 제3땅굴이 있다. 땅굴은 주로 바위지대를 뚫어 만들어졌다. 고개를 약간 숙이고 땅굴 내부 북쪽으로 걸어가는 동안 바위 사이에서 물방울이 쉼 없이 떨어지고, 조금씩 떨어진 물은 북쪽으로 1000분의 3 각도로 기울어진 수로를 따라 북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남북출입국사무소를 방문하니, 사무소 관계자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남북출입국사무소의 영문표기는 Inter Korea Transit Office였다. 남북을 Inter Korea라고 번역한 것이 눈에 띈다. 인천공항이나 외국 국경에서는 Immigration Office(이민국)라는 표현을 쓰며, Transit이라는 용어는 주로 이 지역을 경유해 비행기나 배를 환승하는 것을 의미한다.

남북한 간의 왕래는 법적으로 국가 간의 왕래가 아닌 것이다.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 방문국의 비자를 받는 것과는 달리, 북한의 개성공단을 출입하는 경우에는 북한비자를 받는 것이 아니라 방북증명서를 이용한다. 이민국직원들이 법무부 소속임에 반해 남북출입국사무소의 관계자는 법무부 소속이 아니라 통일부 소속의 공무원이었다.


도라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 시내남북출입국사무소의 바로 옆에는 도라산역이 있다. 도라산역은 군사분계선에서 남쪽으로 2.3㎞ 떨어져 남방한계선에 걸쳐져 있고, 서울에서 56㎞, 평양에서 205㎞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다. 서울에서 출발하는 경의선은 임진강역에서 도라산역을 거쳐 장단, 판문, 봉동, 손하를 거쳐 개성으로 연결되며, 궁극적으로는 신의주까지 연결돼 있다.

도라산역에서 현황을 설명한 코레일 관계자는 남북이 기찻길을 연결한 이후 처음으로 북한 지역으로 향했던 열차를 운행했던 베테랑 기관사였다. 이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열릴 때 남북 공동응원단을 구성하고, 남쪽의 응원단이 남북 기찻길을 이용해 중국으로 가는 계획이 있었다고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북한 지역의 경의선 선로를 점검할 기회가 있었는데, 경의선 기찻길 상태가 양호했으며, 특히 평양에서 신의주까지의 기찻길은 선로 상태가 매우 양호했다고 한다. 결국 중국 땅을 거치는 TCR, 중국과 몽골을 거치는 TCMR과 러시아를 거치는 TSR을 이용해 유럽으로 가는 열차는 기술적으로는 아무런 장애가 없다는 이야기다.

단지 사람들이 가진 불신과 불안감이 이 거대한 선로를 가로막고 있을 뿐이다. 도라산역에서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부시 전 미 대통령이 함께한 사진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다. 양국의 정상은 각자 방문록을 남겼는데, 김 전 대통령이 남긴 내용은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시대’였다.

이를 본 순간 부시 전 대통령의 방문록이 궁금해졌다. ‘May This Railroad Unite Korean Families(이 철도가 한국인들의 가족 재결합에 도움이 되길 기원합니다)’. 평화도, 번영도, 군축도, 경협도 아닌 가족의 재결합을 언급하는 절묘한 외교상의 방문록이었다.



부시 전 대통령의 외교상 방문록파주 기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땅굴과 도라전망대, 남북출입국사무소와 도라산역, 개성공단과 파주LCD단지, 공동경비구역이 존재하는 파주는 오늘날 분단 한국과 분단 경제를 상징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보여주는 생생한 현장이었다. 파주 기행과 함께 DMZ 기행도 막을 내렸다.

물 위의 DMZ를 해병대가 지키는 서해안 지역, 규제와 반규제의 갈등 속에서 부동산거래소가 가장 많은 중서부 지역, 천연의 생태가 천 년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중동부 지역, 그리고 금강산의 자태가 부러웠던 동해안 지역까지 DMZ와 민통선 지역은 서로 다른 색깔과 향기의 파노라마를 연출하고 있었다.

서해안 DMZ지역은 환황해경제권의 중심을 이룰 서울~인천~개성의 트라이앵글 중핵으로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중서부 DMZ지역은 경제적 개발가치가 극대화될 수 있도록 중앙 단위의 계획과 특화된 장기개발계획이 절실하다. 중동부 DMZ지역은 행정구역을 통합하고, 최상의 보존계획을 수립해 후대에 영원히 물려줄 자연생태계의 보고를 만들 필요가 있다.

동해안 DMZ지역은 속초, 설악산, 금강산, 원산 등을 관통하는 환동해경제권의 중심지역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 이 꿈을 꾸는 지금 이 순간 남북한이 언제쯤 용의자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긴 상념이 엄습해 온다.

◆‘DMZ는 살아 있었네’ 시리즈 마지막 회입니다. 그간 독자님들의 성원 감사드립니다. 다음 호에 전체를 정리하는 좌담이 이어질 예정입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우리금융, 글로벌 ESG 보고서 경진대회서 대상 수상

2코스닥협회, 제16회 대한민국코스닥대상 시상식...최고상 클래시스

3서울경제진흥원, 2024년 중기벤처부·산업부 장관 표창

4삼성바이오에피스, 차기 수장에 김경아 내정...고한승 삼성전자로

5"콧물 찍, 재채기도? 반려견 면역력 이렇게 하세요"

6트럼프, '관세전쟁' 주도 무역대표부 대표에 '그리어' 내정

7진에어, ‘블랙프라이데이’ 진행...국제선 최대 15% 할인

8테일즈런너RPG, 사전 공개 서비스 시작

9현대차, 인도네시아 EV 충전 구독 서비스 시작

실시간 뉴스

1우리금융, 글로벌 ESG 보고서 경진대회서 대상 수상

2코스닥협회, 제16회 대한민국코스닥대상 시상식...최고상 클래시스

3서울경제진흥원, 2024년 중기벤처부·산업부 장관 표창

4삼성바이오에피스, 차기 수장에 김경아 내정...고한승 삼성전자로

5"콧물 찍, 재채기도? 반려견 면역력 이렇게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