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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빵 먹어 본 자만이 生의 맛 안다

눈물빵 먹어 본 자만이 生의 맛 안다

자영업자가 위험하다. 글로벌 불황 한파를 맞고 휘청댄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100년 만에 찾아왔다는 불황을 보기 좋게 뚫고 승승장구하는 자영업체도 적지 않다. 과거 눈물 젖은 빵을 먹었지만 지금은 성장가도를 질주하는 자영업자 3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33세에 유력 생명보험사의 광화문 부지점장(1992년) 등극, 연 7200만원을 버는 고액 연봉자. 실사출력 자영업체 서울그래픽의 오세동(50) 사장은 ‘잘나가는’ 라이프플래너였다.

국내 최초 남자 라이프플래너 30인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소자본 창업을 서둘렀던 게 패착이었다. 뭐든지 서두르면 화를 입게 마련이다.

부지점장으로 상한가를 치던 1992년 말, 그는 돌연 사표를 던진다.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만류했지만 그의 황소고집을 꺾지 못했다. 오 사장의 꿈은 기업 CEO. 더 늦기 전에 ‘내 사업’을 하고 싶었다. 결과는? 줄줄이 망했다고.

제법 많은 금액을 투자해 창업한 비디오방은 경쟁업체가 속출하면서 폐업하고 말았다. 자영업에 도전한 지 불과 4년 만인 1996년 말, 오 사장의 가슴엔 실업자 딱지가 붙었다. 남은 것은 빚이요, 주름살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바로 이듬해 외환위기까지 터졌다. 이젠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신세. 그는 자존심을 접고 핸들을 잡았다. 월 120만원에 변호사 운전사로 취업했다. “좌절할 틈도, 절망할 시간도 없었죠. 그저 애들 분유 값 벌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하지만 단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대형 빌딩 지하엔 운전사 대기실이 있다. 운전사들은 그곳에서 때론 화투를 치고, 수다를 떤다. 일종의 소일거리다. 오 사장은 달랐다. 60㎡ 남짓한 지하 대기실에서 ‘백조의 꿈’을 키웠다. 창업 서적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퇴근하면 새 아이템을 찾기 위해 서울시내 곳곳을 훑었다. 그는 “운전사 시절 3시간 이상 자 본 기억이 없다”며 아픈 기억을 끄집어냈다.



뼈아픈 실패 ‘발품’으로 극복

그런 각고의 노력 끝에 찾아낸 아이템이 바로 실사출력이다. ‘실사출력이 미래 블루칩이 될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오 사장은 서울 시내 실사출력 업체를 일일이 찾아다녔다.

3개월 넘게 시장조사를 한 끝에 그는 창업을 결심한다. 운전사 생활 3년 만인 2000년 12월의 일이다. 그렇다고 성공을 장담할 순 없는 일. 그는 끈기로 밀어붙였다.

시장조사 때 눈도장을 찍어 놓은 규모가 큰 실사출력 업체를 끈질기게 찾아가 하청을 받아내고, 교회·절 등 남들이 공략하지 않는 곳도 주저 없이 찾아갔다. 한번 고객으로 삼으면 놓치는 법이 없었다. 저가 전략을 버리고 제대로 된 품질로 승부를 건 게 주효했다. 실례로 아름다운 가게와 맺은 인연은 올해로 8년째 이어지고 있다.

아름다운 가게의 현수막은 대부분 오 사장이 출력한 작품이다. 그는 아직도 ‘나 홀로’ 일한다. 전화도 혼자 받고, 밥도 혼자 먹는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다. 오후 8시 이전 퇴근한 적도 많지 않다. “자영업자들이 몰락하고 있다죠. 우리 매출도 반 토막 났어요. 이전엔 월 500만원은 거뜬했는데, 이젠 250만원 벌기도 벅찹니다.

시간 쪼개 일하고, 발품을 팔 수밖에 없죠.” 그는 의외로 느긋했다. 뼈아픈 실패에서 배운 교훈은 ‘천천히, 느긋하게’라고 말했다. ‘조바심 내고 서두르면 낭패 보기 십상.’ 오 사장의 실패 경제학이다. 자영업자들은 작은 파이를 두고 치열하게 싸운다. 이른바 출혈 경쟁. 밀리면 죽고, 버티면 산다.

자영업자의 세계만큼 치열하고 냉정한 곳도 드물다. 오세동 사장은 “장사 셈이 가장 많은 곳은 자영업계”라고 말했다. 그래서 자영업자 세계에선 남들과 똑같은 전략으론 승부를 내기 어렵다. 뭔가 달라도 많이 달라야 한다. 여기 꼼꼼한 고객카드 하나로 소비자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자영업자가 있다. 천우농수산 코퍼레이션의 백의장(69) 사장이다.

백 사장은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농수산 가공식품 수출업체 대표였다. “직원 수는 100명이 넘고, 월 매출은 2억원에 달했죠.” 2000년 정년퇴임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인생2모작을 꿈꾸지 않았다. 손자 재롱 보는 맛에 살길 원했다. 그러나 모 국가기관과 소송이 붙은 이후 그의 인생항로는 180도 달라진다.

“국가기관이 거짓말을 일삼더군요. 중소 상인이 다 죽게 생겼는데도 그랬어요. 그래서 제가 소송을 제기했죠. 거기서 느낀 게 있습니다. 약한 사람을 위해 남은 인생을 바쳐야겠다고요.”2006년 그는 자비 5000만원을 툴툴 털어 자영업체 천우농수산을 창업했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질 좋은 농수산 식품을 값싸게 팔 요량이었다.



품질도, 고객관리도 기본

큰 회사에 다니다 영세 자영업자로 컴백해 우습게 보이진 않았을까? 그의 답변은 예상 밖으로 단호했다.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몰라요. 깜짝 놀랐죠. ‘아! 이래서 자영업자가 몰락한다는 얘기가 나오는구나’ 했어요.”

그는 노익장을 한껏 과시했다. 환갑이 훌쩍 지났음에도 좋은 농수산물 산지를 직접 찾아 나섰다. 전남 여수, 해남, 충남 당진 등 안 가 본 곳이 없다. 그것도 직접 트럭을 몰고 다녔다.

그 덕분인지 그는 최고의 산지에서 농수산물을 공급받는다. 때론 지역 주부 모임의 도움도 톡톡히 받았단다. 백 사장은 “여기까진 기본”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백 사장이 더욱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고객관리다. 한번 찾아온 고객을 재방문하게 만드는 게 자신만의 경영전략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가 매일 작성하는 고객카드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만난 날은 검은색, 농수산물을 판 날은 빨간색, 고객이 물건을 재구매했으면 초록색으로 기록한다. 컴퓨터를 제법 잘 사용하지만 수기를 고집한다. 백 사장은 “볼펜으로 쓰고, 자를 대고 줄을 쳐야 고객의 얼굴과 이름이 잘 매치된다”고 말했다. 그에게 수기란 돈이 아닌 진실과 신뢰 추구인 모양이다.

이렇게 꼼꼼하게 작성한 고객카드만 해도 120장에 이른다. 여기에 기록돼 있는 고객은 그야말로 충성도 높은 단골손님일 게다. “큰 기업이든 작은 기업이든, 자영업자든, 고객에게 신뢰를 주는 것이 생명입니다. 한번 찾은 고객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신뢰를 얻는 지름길이죠. 언제까지 고객카드를 꼼꼼하게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힘이 닿는 한 계속하고 싶어요.”

백 사장의 고객카드, 신뢰의 표징이자 고객을 끌어들이는 힘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한파에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들이 속속 무너진다. 곳곳에서 ‘죽겠다’는 아우성이 쏟아진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나만의 전략’으로 승승장구하는 자영업체는 적지 않다. 100년 만에 찾아온 불황을 보란 듯이 뚫고 성장을 거듭하는 곳도 있다.

자영업자로 출발해 프랜차이즈 기업 창업주로 성장한 CEO를 소개한다. ‘피땀 흘린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속설을 몸소 보여주는 그런 CEO다. 김빠지지 않는 맥주 가르텐비어로 유명한 디즈의 한윤교(47) 대표는 삼성전자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생산·품질·공정 관리가 그의 고유 임무.

재직 중 기계 설비를 개선해 생산력을 극대화한 공로를 인정받아 우수사원에 뽑히기도 했다. 그러나 입사 후 10년이 되던 1990년, 한 대표는 회사를 박차고 나온다. 자리를 덥힐 틈 없이 항상 무언가를 찾아 나서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이었다. 그는 “10년이면 오래 버텼다”고 회상했다.

이후 수입가구점을 운영하며 제법 큰돈을 만졌고, 인터넷방도 창업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1999년 월드컵 휘장 사업자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이 사업은 당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다. 한 대표로선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업이 뒤틀어질지 상상조차 못했다. 일은 순조롭게 풀렸고, 월드컵 휘장 사업권(대전, 충남, 전북 라이선스)도 별탈 없이 획득했다. 이제 남은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뿐이었다. “제 인생에 기적이 찾아온 줄 알았습니다. 대박도 그런 대박이 없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사업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월드컵 휘장 사업권에 돌연 문제가 생기면서 그의 제품이 아닌 ‘Be the Red’ 티셔츠가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그가 제작했던 컨테이너 6대 분량의 티셔츠, 깃발, 모자는 뒷전으로 밀렸다.



“한때 자살까지 생각”

대박은커녕 12억원이 넘는 빚만 남았다. 급기야 신용불량자로 전락해 그야말로 쪽박을 찼다. 불운은 끝없이 계속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3년엔 월드컵 휘장로비 사건에도 얽혔다.

실형을 받진 않았지만 사파의 모리배로 몰려 검찰에 끌려간 것만 여러 차례다.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오랏줄에 묶이기도 했다. 그해 한 대표는 대전 둔산동 모처 월세 40만원의 지하실에 은둔했다.

몸도 마음도 지쳤을 때다. “살기 싫었어요. 이렇게 인생이 끝나는가 보다 했죠. 자살을 시도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더군요.” 그렇다고 인생을 포기할 순 없는 노릇. 재기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새로운 아이템이 필요했다. 그 무렵 한 대표의 뇌리엔 삼성전자 시절 남미에 출장 갔을 때 눈여겨봤던 신기한 맥주잔이 스친다. “남미 사람들은 길고 가느다란 잔에 맥주를 따라 마시더라고요. 그땐 마냥 재미있기만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업 아이템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가르텐비어의 특허제품 ‘냉각테이블’은 이렇게 개발됐다.

‘만약 그 길고 가느다란 잔을 테이블에 끼워 세울 수 있다면’이라는 단순한 생각이 특허제품으로 이어진 것이다. 냉각테이블은 맥주의 최적 온도라는 4~6도를 유지해준다. 동시에 김빠짐까지 방지해 냉각테이블만 있으면 어느 때건 톡 쏘는 맛을 즐길 수 있다. 최근엔 이를 응용해 만든 냉각테이블 발광장치 등 2개 제품을 특허출원했다.

한 대표가 중소기업청이 주최한 ‘2008 전국소기업소강공인대회’에서 지식경제부장관상을 받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러나 특허가 곧 대박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한 대표로선 이 특허를 구체화할 자금도 없었다. 신불자가 무슨 돈이 있었겠는가. 한 대표는 고육지책으로 박람회라는 박람회는 모두 찾아가 노크했다.

문전박대를 당해도 멈추지 않았다. 냉각테이블을 출시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중 2004년 초 대전시가 주최한 박람회에 우여곡절 끝에 이 제품을 출시했고, 그곳에서 바로 운명의 투자자를 만난다. 한 대표는 그 투자자를 어르신이라고 불렀다. “한 어르신이 ‘재미있는 제품이군’이라며 휴대전화번호를 알려주는 거예요. 며칠 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죠. 그랬더니 2억원 빌려줄 테니 ‘한번 해봐’라고 하더라고요.”

맥주 전문점 한 곳을 낼 수 있는 수준의 투자였지만 그로선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 “투자금액이 적다고 실망했느냐고요? 절대 그러지 않았어요. 감지덕지했죠. 이제 인생의 2막을 활짝 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그는 사활을 걸었다. 낮엔 일하고 밤엔 거리로 나가 전단지를 뿌렸다.

부족한 마케팅 자금을 발품과 사생결단의 자세로 만회할 요량이었다. 대전시 안팎에 ‘재미있는 맥주 전문점이 생겼다’는 입소문이 퍼지며 덩달아 가맹점 문의전화도 쏟아졌다. 신불자에서 맥주 전문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로, 또다시 프랜차이즈 업체 CEO로 성장하는 드라마틱한 순간이었다.

현재 이 회사의 가맹점 수는 223곳(직영 3곳)에 이른다. 지난해 1월 초(128호점) 대비 74% 증가한 수다. 놀라운 점은 지금껏 단 한 곳도 폐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폐점률 0%는 한 대표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수치다. 매출액 증가폭도 크다. 2008년 150억원의 매출액을 올린 이 회사는 올해 46% 늘어난 220억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그는 아직도 대전에 산다. 서울 사당동 본사와 대전을 매일 오간다. KTX가 그의 주요 운송수단이다. 왜 대전 거주를 고집할까? 이유는 무척 특별하면서도 애달프다. “어려웠을 때 일을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한 대표의 쓰라린 아픔과 꿈 그리고 희망을 실은 KTX는 오늘도 힘차게 달린다. 마치 그가 인생항로를 질주하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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