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놀부 꿈꾸는 세 프랜차이즈
제2의 놀부 꿈꾸는 세 프랜차이즈
'품질의 위력이 사업설명회보다 더 세다.'
품질을 무기로 성장 가도를 질주하는 프랜차이즈 기업이 눈에 띈다.
특별한 마케팅을 하지 않았음에도 가맹점이 날로 증가하는 독특한 기업들이다.
디델리(라볶이 전문점), 천상(일본음식 전문점), 레빠니(프레즐 전문점)가 대표적이다. 이들의 성공 비결은 품질, 이를테면 '맛이 좋다'는 입소문이다.
기본 메뉴는 단 3개. 김밥·라볶이·라베리떼(우동을 넣은 스파게티)가 전부다. 라베리떼는 최근 선보인 메뉴. 창업 후 20년 동안 두 개의 메뉴로 승부를 걸었다. 적어도 20여 종이 넘는 음식을 파는 일반 분식점과 비교해도 단출하다. 하지만 내실이 탄탄하다. 전국 주요 도시에 가맹점을 둔 어엿한 프랜차이즈 기업이다. ‘라볶이 전문점’ 디델리의 얘기다.
1997년 서울 사당동에서 33㎡ 규모로 시작한 디델리는 현재 가맹점 52곳을 두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강릉·춘천·대전·대구·부산 등 주요 도시에 있다. 월 2500만원가량을 버는 알짜 매장도 수두룩하다.
메뉴 3개로 시장 평정
흥미로운 건 디델리의 성장 방정식이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사업설명회를 열지 않았다. 광고를 한 적도 없다. ‘맛이 좋고 장사가 잘된다’는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에게 가맹점을 내준 게 차곡차곡 쌓였다. 비결은 뭘까.
디델리는 무조건 버리고 쪼갰다. 창업 초기 선보였던 냉면·떡볶이 등 여러 메뉴를 과감하게 포기했다. 디델리 김길상 대표는 “전문성을 갖추는 게 급선무였다”고 했다. 여러 음식을 대충 만드는 것보다 하나라도 제대로 내놓겠다는 전략이었다. 이를 위해 주 타깃 층도 쪼갰다. 10~20대 여성 입맛에 꼭 맞는 새콤달콤한 소스를 개발하는 데 여러 해를 보냈다.
메뉴와 공략 층만 나눈 게 아니다. 재료도 쪼갰다. 100인분 기준으로 포장된 재료는 받지 않았다. 무조건 ‘1인분 기준’으로 나눠 달라고 했다. 사시사철 ‘똑같은 맛’을 내기 위해서였다. 디델리 김명자 본부장은 “신선하고 균일한 재료와 독특한 소스 덕인지 ‘맛이 좋다’는 입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고 말했다. “그러자 전국에서 가맹점을 열고 싶다는 문의가 속출했다.” 입소문이 프랜차이즈 기업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된 셈이다.
김 대표는 올해부터 가맹점 사업을 본격화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늘릴 생각은 없다. 더 중요한 건 ‘가맹점이 잘되게 하는’ 거란다. 그는 “사업설명회를 열 번 하는 것보다 지금 있는 가맹점을 잘 키우는 게 낫다”고 말했다. 입소문이 마케팅을 누른다는 것이다.
프랜차이즈 업계에 ‘제2의 놀부’가 꿈틀댄다. 마케팅보단 ‘품질’로 명성을 쌓은 외식 브랜드 놀부의 성장 전철을 좇는 기업이 늘어난다. 1987년 15㎡ 음식점으로 조촐하게 시작한 놀부는 ‘보쌈 맛이 일품이고 인심이 넉넉하다’는 입소문을 발판으로 연 매출 1000억원(본사 기준)이 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이상헌 창업경영연구소장은 “품질과 노하우로 역량을 쌓은 프랜차이즈 기업이 성장하고 있다”며 “뻥튀기 홍보로 가맹점을 늘리는 데 바쁜 기업과는 성장 유전자가 다르다”고 분석했다.
제2의 놀부 기업은 소소한 마케팅에 기대지 않는다. 좋은 품질이 핵심 무기다. 가맹점을 늘리는 게 목표도 아니다. 그러니 예비 사업자를 홀리기 위해 감언이설을 남발할 필요가 없다. 일본음식 전문점 이자까야(居酒屋)로 인기를 끄는 천상은 대표적이다.
서울 이태원과 서소문에 직영점이 있는 천상의 가맹점 수는 5곳. 너무 적다고? 그렇지 않다. 올 들어 생긴 수가 그렇다. 매월 한 개씩 가맹점이 개설된 격이다. ‘제대로 된 이자까야’라는 소문이 한몫했다. 마케팅이 아니라 입소문이 힘이었다는 얘기다.
천상의 성장 비결은 꾸준한 ‘발품’이다. 발품으로 새 메뉴를 개발해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천상의 히트 상품으로 꼽히는 구운 고등어 초밥, 오징어 내장조림은 이 업체 박순임 대표가 일본 시장 구석구석을 훑고 다닌 끝에 발굴한 메뉴다. 박 대표는 요즘도 석 달에 한 번씩 현해탄을 건넌다. 최소 2박3일 일정으로 도쿄(東京)에 있는 쓰키지(築地) 수산시장 등을 두루 돌아다닌다. 한국인의 입맛에 꼭 맞는 메뉴를 찾기 위해 발품을 아끼지 않는 거다.
가맹점 수보다 신뢰가 중요
메뉴만 신경 쓰는 게 아니다. 재료도 꼼꼼하게 선별한다. 천상은 냉동 재료를 쓰지 않는다. 1999년 창업 때부터 거래한 시장에서 아직도 공급 받는다. 좋은 조건에 재료를 주겠다는 업체가 많지만 박 대표의 대답은 언제나 “노”다. 그는 “재료가 바뀌면 맛이 바뀌고, 품질을 신뢰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엔 서울 용산에 200㎡ 규모의 소스공장도 세웠다. 프랜차이즈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선 소스 맛이 같아야 한다는 지론에서다.
박 대표는 올해 말까지 가맹점 수를 10여 개로 늘릴 계획이다.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별다른 마케팅 계획은 없다. “그렇게 홍보하느니 맛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그의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미국식 도넛의 일종인 프레즐 전문점을 운영하는 레빠니 이황찬 대표의 생각도 똑같다. 이 대표는 최근 한 지상파 방송사의 출연 제의를 받았다. ‘레빠니의 성공 스토리를 말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고심 끝에 거절했다. 굳이 알릴 이유를 찾지 못해서다. 2000년 창업한 레빠니는 프레즐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곳이다. 첫 번째 매장이었던 압구정점은 ‘연예인 집합소’로 유명했다. 한류 스타 배용준을 비롯해 최강희, 서인영 등 유명 연예인이 자주 찾아서다.
레빠니의 인기 비결은 간단하다.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굽기 때문에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형적인 슬로 푸드 형식이다. 좋은 맛을 위해 ‘빨리’라는 컨셉트를 아예 지운 게 효과를 봤다. 원두 로스팅 공장을 직접 운영해 신선한 커피를 제공하는 것도 강점이다. 다른 프레즐 전문점보다 메뉴가 많지 않은 것도 독특한 점. 이 대표는 “메뉴를 늘리는 것보다 프레즐 한 개 한 개에 정성을 쏟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3개의 기본 메뉴로 시장을 평정하는 디델리의 성공 방정식과 닮았다.
레빠니의 가맹점 수는 현재 5곳이다. 2009년 이후 개설됐는데 모두 입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올 목표는 가맹점 수를 10여 개로 늘리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이참에 ‘사업설명회를 한번 하자’고 권한다. 그게 고속성장하는 지름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 대표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그게 ‘슬로 푸드’라는 레빠니의 DNA에 걸맞다고 생각한다. 그는 “맛이 알려지면 가맹점은 늘어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품질 유지 위해 시스템 구축해야
대신 가맹점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할 방침이다. 그중 하나가 ‘유통 마진’ 포기다. 본사가 가맹점에 재료를 공급하면서 얻는 마진을 없앴다는 얘기다. 재료비를 줄여 가맹점 스스로 품질에 신경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상헌 소장은 “기존 프랜차이즈 기업과 달리 가맹점을 제대로 운영해 홍보 효과를 꾀하려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다”며 “이런 유형의 기업은 품질에 승부를 걸기 때문에 고객층이 두텁고 브랜드 신뢰도가 높다”고 말했다. 그래서 “놀부처럼 안정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많다”고 이 소장은 설명했다.
이런 ‘제2의 놀부’ 기업이 주목되는 건 프랜차이즈 업계의 한계를 스스로 극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 업계는 가맹점을 늘리기 위한 본사의 뻥튀기 홍보, 여기서 비롯되는 가맹점 폐업, 그리고 무차별한 브랜드 확대로 얼룩지고 있다. 국내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평균 수명은 5년이 채 되지 않는다. 질보단 양에 치중한 결과다.
하지만 제2의 놀부 기업은 다르다. 품질에 주력한 덕에 안정적 성장궤도에 진입했다. 브랜드 수를 늘리기보단 한 우물을 깊숙이 판 것도 돋보이는 경쟁력이다. 가맹점을 보는 시각도 크게 다르다. 천상의 박순임 대표는 “가맹점을 무작정 늘리는 게 능사가 아니고, 가맹점이 얼마나 내실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꼬집었다.
레빠니 이황찬 대표도 "여유자금이 부족하거나 의지가 약한 사람에게 가맹점을 내주면 오히려 손해"라며 "프랜차이즈 기업은 가맹점 수가 아니라 신뢰로 평가 받는다"고 강조했다.
물론 제2의 놀부 기업이 풀어야 할 과제는 아직 많다. 모든 가맹점의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하루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본음식 전문점 천상처럼 투자를 통해 소스 공장을 세운 것은 배워야 할 점이다. 비교적 허술한 가맹점 관리 시스템도 손봐야 한다. 품질(맛)을 유지하는 건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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