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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빈 ‘2005 모스크바발 타전’

신동빈 ‘2005 모스크바발 타전’

계산된 게임이었다. 러시아 시장을 보란 듯이 뚫을 자신이 있었다. 주변 평가는 달랐다. 누구도 성공을 예측하지 않았다. ‘경영의 신(神)’이 온다 해도 쉽지 않은 승부라는 비관론이 나왔다. 난제도, 변수도 그만큼 많았다. 이처럼 롯데 신격호-신동빈 부자의 ‘러시아 프로젝트’의 출발은 상큼하지 않았다. 하지만 도전정신과 치밀한 전략으로 무장한 기업인은 속설과 편견을 무너뜨리는 법이다. 20여 년 전 러시아 시장에 진출한 롯데그룹은 지금 글로벌 브랜드와 한판 대결을 벌인다. 브랜드 인지도는 아직 떨어지지만 기세만큼은 매섭다. 롯데판 러시안 룰렛. 게임의 신(辛)이 미소를 띠고 있다. 롯데그룹의 ‘러시아 스토리’를 신동빈 부회장에게서 들었다.
▎88올림픽 후 신격호 회장이 노크 … 1997년 러 모라토리엄 선언에 곤혹 신동빈 부회장 처음엔 신중론이었다가 2002년 이후 적극 공세로 2008년 러 금융위기 빠졌으나 롯데는 리스크 관리 체력 비축

▎88올림픽 후 신격호 회장이 노크 … 1997년 러 모라토리엄 선언에 곤혹 신동빈 부회장 처음엔 신중론이었다가 2002년 이후 적극 공세로 2008년 러 금융위기 빠졌으나 롯데는 리스크 관리 체력 비축



“호텔 객실 수가 300개가 넘습니다.” 올 6월 열린 ‘롯데호텔 모스크바’ 부분 개장식 현장. 말쑥한 정장 차림의 한 남자가 VIP를 일일이 찾아 다니며 설명하느라 여념이 없다. 막힘도 없다. 객실 수(304실)는 물론 호텔 규모, 서비스 방법까지 줄줄이 꿰고 있다. 현지에 파견된 실무자였을까. 아니다. 신동빈 부회장이었다. 롯데호텔 좌상봉 대표는 신 부회장의 이런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털어놨다. “(신 부회장에게) 롯데호텔 모스크바에 대해 수시로 현황보고를 했다. 하지만 (신 부회장이) 이처럼 속속들이 알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러시아는 유럽의 관문”신 부회장의 성격 탓일 수 있다. 그는 꼼꼼하기엔 둘째가라면 서럽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땐 숱한 자료와 정보를 스스로 수집하고 공부한다. 하지만 그런 성격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그는 요즘 러시아 프로젝트에 혼신의 힘을 쏟는다. 러시아 진출에 거는 기대도 무척 크다. 단순히 러시아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더 큰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러시아는 카자흐스탄·우크라이나·우즈베키스탄 등 기존 러시아 연방국가로 가는 교두보다. 유럽 진출의 관문이기도 하다. 러시아 시장을 공략하는 게 마지막 목표는 아니다.” 신 부회장의 말이다. 러시아를 글로벌 경영의 거점으로 삼고 있다는 얘기다.

러시아에 깃발을 꽂은 롯데 계열사는 많다. 롯데칠성음료는 탄산우유 ‘밀키스’로 러시아 시장을 평정하고 있다. 롯데백화점(2007)·롯데호텔(2010)의 모스크바점 개장으로 러시아엔 이른바 ‘롯데플라자’가 형성됐다. 롯데제과·롯데상사도 러시아를 개척하고 있다. 그야말로 고속질주다. 여기서 궁금한 게 있다. 모든 사업이 의지로만 되는 건 아니다. 그럼 누군들 성공하지 못하랴. 사업엔 때가 있게 마련이다. 급작스럽게 출현하는 돌발변수도 잘 극복해야 한다. 이게 기업인이 가져야 할 지혜다.

2008년 11월. 러시아는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았다. 러시아에 ‘큰 판’을 벌였던 기업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글로벌 기업도 예외일 순 없었다. 인터콘티넨털·포시즌 등 세계 굴지의 호텔체인은 ‘모스크바 호텔 건립 플랜’을 취소하거나 미뤘다. 달리 방법이 없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롯데는 거침없이 달렸다. 질주는 지금도 계속된다. 롯데제과는 모스크바 남서쪽에 생산공장을 올 9월 예정대로 완공한다. 롯데호텔 모스크바도 ‘6월 부분 개장 목표’를 별 탈 없이 달성했다. 9월 완전 개장도 무리 없어 보인다. 비결은 대체 뭘까.

혹자는 러시아 푸틴 총리의 힘 때문이라고 말한다. 서울을 방문할 때마다 꼭 롯데호텔에 투숙하는 푸틴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결과 아니냐는 거다. 푸틴 지원설은 다음과 같다. 1990년대 초 롯데그룹은 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알마티 등 일부 지역에 100만 달러 상당의 과자류를 선물했다. 1992년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스포츠 선수단에 의료기기를 지원했다.

이때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대외협력담당 부시장이 푸틴이었다.

그럴듯하지만 사실과 거리가 멀다. 롯데와 푸틴의 인연은 개인적인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롯데가 러시아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건 창업주 신격호 회장과 신 부회장의 강력한 의지 때문이었다. 시계추를 1988년으로 돌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신격호·동빈 부자(父子)의 ‘모스크바 스토리’를 따라가 보자.

그해 어느 날. 박세직 88올림픽 조직위원장(당시)은 신 회장에게 SOS를 쳤다. “대부분의 기업이 공산권 국가 지원을 꺼립니다. 냉전에 대한 반감 때문으로 보입니다. 롯데가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다급한 구조요청. 이유는 이랬다.

▎롯데백화점 모스크바점 개장 기념 테이프를 끊고 환하게 웃고 있는 신동빈 부회장.

▎롯데백화점 모스크바점 개장 기념 테이프를 끊고 환하게 웃고 있는 신동빈 부회장.





러시아 사업 표류, 신중론 vs 공격론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1984년 LA 올림픽은 이데올로기의 격한 대립으로 반쪽짜리 올림픽으로 전락했다. 서울 올림픽은 달라야 했다. 그런데 이번엔 다른 난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 대부분의 공산정권이 서울 올림픽 참가를 망설이고 있었다. 박 위원장의 요구는 쉽게 말해 ‘공산권 국가의 올림픽 참가 경비를 지원해 달라’는 것이었다. 신 회장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지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리고 내린 중대 결단. “서울 올림픽 기간 중 소련(당시) 스폰서 역할을 하겠다.”

▎신동빈 부회장이 캐논 안산공장을 순시하고 있다.

▎신동빈 부회장이 캐논 안산공장을 순시하고 있다.

유능한 기업가는 한번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신 회장은 평소 짠돌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절약하지만 투자가 필요한 순간엔 과감하게 돌진한다(『롯데와 신격호, 도전하는 열정에는 국경이 없다』 중 일부). 신 회장의 뇌리에 뭔가 스쳤음이 틀림없다. 롯데 한 임원의 회상이다. “소련을 후원했을 뿐 아니라 소련 선수의 경기 땐 롯데 임직원이 동원됐다.”

롯데의 적극적 후원에 감동한 사람은 그라모프 당시 소련 체육부장관. 그는 롯데와 좋은 파트너십을 맺기로 했다. 올림픽이 끝난 후 롯데 임직원을 손수 초대하기도 했다. 바로 이때 롯데의 ‘러시아 판로’가 열렸다고 보면 된다. 실제 1990년대 초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제과의 제품이 러시아에 수출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 회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본격적 비즈니스를 원했다. 이른바 ‘현장경영의 꿈’이었다. 먼저 러시아 부지를 매입했다. 롯데플라자를 건설하기 위한 땅이었다. 한·러 수교(1990년)가 이뤄진 이후인 1992년엔 그룹 기획조정실(현 정책본부) 안에 해외사업본부를 만들었다. 주로 공산권 국가의 상황을 검토하기 위한 조직이었다. 1996년엔 현지 합작법인도 세웠다. 별 탈 없어 보였다. 신 회장의 꿈은 알차게 여무는 듯했다. 하지만 웬걸. 뜻밖의 사고가 터졌다.

1997년 가을,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것이다.

신 회장이 세운 한·러 합작회사는 벼랑에 몰렸다. 매입한 부지에 추진하던 땅파기 공사가 일순간 중단됐고, 약속 받은 건설기한도 종료됐다. 위기였다. 결단이 필요했다. 그래도 신 회장은 사업을 접을 뜻이 없었다. 1997년 롯데그룹 부회장에 오른 신 부회장도 나름의 판단이 필요했다. 롯데그룹 국제실 황각규 부장(당시)에게 이런 지시를 내렸다. “러시아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검토해 주십시오.” 돌아온 답변은? “현지 상황이 만만치 않습니다.”

신 부회장은 당시 기억을 더듬었다.

“자금을 회수하자는 신중론과 문제가 있는 파트너의 지분을 인수해 독자적으로 사업을 하자는 공격론이 그룹 안팎에서 나왔다.” 어떻게 양분됐을까. 경영진 1세대는 신 회장의 뜻을 존중해 러시아 시장의 잠재력을 높게 봤다. 반면 신 부회장을 비롯한 젊은경영진은 현지 상황의 불확실성에 더 주목했다. 신중하자는 취지였다. 지금껏 롯데가 이처럼 둘로 나뉜 적은 없었다. 갈등이라기보단 당시 상황이 그만큼 불가측했다는 얘기다.

결정은 신 회장이 했다. 경영진에 그는 이렇게 주문했다. “눈앞의 상황에 급급해 할 것이 아니라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언젠가 비즈니스에 국경이 없어지기 때문에 해외 진출 전략을 써야 한다. 그런데 유럽은 롯데가 바로 진출하기에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러시아를 통해 유럽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다른 기업보다 먼저 시작해야 한다.”



러시아 특급 호텔에서 해법 찾다신 회장의 뜻은 확고했고, 신 부회장은 이를 따랐다. 그렇다고 신 부회장이 부친의 뜻에 100% 동의했다고 보긴 어렵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신 부회장은 부친인 신 회장과 닮은 점이 많다. 그중 현장경영 철학은 그야말로 부전자전(父傳子傳)이다. 부친처럼 신 부회장도 각종 행사 참석과 매장 방문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국내외를 가리지도 않는다. 시간이 날 때마다 롯데백화점·롯데마트·세븐일레븐 매장을 수시로 돌아다닌다. 이때 수행비서가 따라붙지 않는 것도 부친과 똑같다. 사무실에 앉아서 보고만 받아선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해서다.



게다가 그는 누구보다 현장경험이 많고 글로벌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 회장의 남다른 교육 효과다. 신 부회장은 1977년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靑山學院大學)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컬럼비아대학에서 MBA(경영학석사)를 받았다. 이후 롯데그룹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노무라증권에 입사(1981)해 영국 런던지점에서 1988년 2월까지 근무했다.

“일본의 노무라증권에 입사해 영국 런던지점에서 평사원으로 7년간 근무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다른 회사에 근무하면서 충분한 경험을 쌓으라는 부친의 배려 때문이었다. 실제 여기서 국제경제의 예민한 맥을 보고 배웠다.”

그런 그가 러시아의 상황을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 100% 동의했을 리 만무하다. 신 부회장이 러시아에 간 것은 2002년 롯데플라자 기공식 때다. 그는 때를 놓치지 않았다. 현장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느낌이 좋았다. 그는 “러시아의 시장과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며 “엄청난 잠재력을 느꼈다”고 했다. 이젠 사업성을 봐야 했다. 롯데플라자의 중심인 백화점·호텔이 진출했을 때 성공할 가능성이 있겠느냐는 거였다.

그는 러시아 출장길에 오를 때마다 특급호텔을 바꿔가며 투숙했다. 호텔의 규모·가격·서비스 등을 손수 체크할 요량이었다. 여기서 확신을 얻었다. 롯데플라자 기공식에 참석한 날로부터 3년이 훌쩍 지난 2005년의 일이다. 러시아 시장에 대해 1000여 일 동안 고민했다는 얘기다. “러시아에 있는 글로벌 호텔의 서비스와 시설 수준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숙박비는 한국의 두 배 이상이었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현저하게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진출하면)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신 부회장은 생각이 많다. 생각이 많으면 박자를 놓치기 십상이다. 한번 놓친 박자를 따라가려면 속도를 더 내야 한다. 신 부회장이 그렇다. 그는 한번 결정하면 머뭇거리지도, 주춤하지도 않는다. 무서울 정도로 속도를 붙인다. 롯데그룹의 한 임원은 “신 부회장이 러시아 시장에 확신을 가진 2005년 이후 단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다”며 “마음만 먹으면 무섭게 실천하는 게 그의 경영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런 성향을 알 수 있는 것은 M&A(인수합병)다.

신 부회장은 올 들어 유통업계에 나온 대형 매물 2건을 손에 넣었다. 1월 편의점 바이더웨이를 2700억원에 인수한 데 이어 2월엔 GS백화점과 GS마트를 1조3000억원에 거머쥐었다. 이를 통해 롯데는 백화점-마트-홈쇼핑-편의점으로 이어지는 유통업계의 수직계열화를 이뤄냈다. 7월엔 호남석유화학이 말레이시아 소재 석유화학회사 ‘타이탄’ 인수에 성공했다. 인수금액만 1조5000억원에 달하는 초대형 M&A였다. 롯데그룹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올해만이 아니다. 최근 2년간 M&A에 쏟아부은 금액은 4조원에 이른다. 2007년까진 M&A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그였다. 기회다 싶으면 맹수처럼 달려드는 습성이 잘 읽힌다.

그렇다고 찬스 때 경계를 늦추는 것도 아니다. 긴장을 풀면 위기가 눈앞에 다가온다는 점을 신 부회장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기회일수록 더 꼼꼼하게 시장을 파악한다. 지금도 그렇다. 신 부회장은 러시아 프로젝트를 공격적으로 추진하면서도 신중함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이제는 ‘다 됐다’며 마음을 푹 놓을 만하지만 여전히 어려움을 강조한다.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경고 시그널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시장진입 장벽이 높은 만큼 다른 경쟁 업체들이 진출하기에 큰 어려움이 따른다. 눈앞에 큰 어려움이 있지만 큰 산을 하나 넘으면 그 너머에는 큰 경쟁력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신동빈, 롯데의 유전자를 바꾸다”공격과 방어의 절묘한 조화. 신 부회장의 경영 스타일이다. 그 덕인지 롯데는 실패를 그리 많이 하지 않았다. 러시아 프로젝트는 순항한다. 무엇보다 롯데 브랜드의 인지도가 점차 높아진다. 신 부회장은 “2007년 예약택시를 타고 롯데플라자를 가자고 하면 100명 중 99명이 모른다고 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건물 이름뿐 아니라 정확한 위치까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M&A의 후유증도 없다. ‘승자의 저주’에 빠지지 않았다. 신 부회장 자신도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그룹의 핵심 역량인 유통·식품·화학을 중심으로 진행한 M&A가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최근 인수한 GS리테일·바이더웨이는 그룹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중국 타임스, 매크로, 현대석유화학, 케이피케미칼, 파키스탄 PPTV 인수 모두 성공적이었다.” 아쉬움은 없을까? 그는 “오비맥주와 대우인터내셔널은 너무 고평가돼 인수하지 못했는데,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신 부회장이 실권을 잡은 2004년(정책본부장 취임) 이후 롯데는 많이 변했다.

보수적 DNA를 탈피하고 있음은 물론 경영성적표도 향상됐다. 무엇보다 몸집이 부쩍 커졌다. 롯데그룹의 2004년 전후 실적을 비교하면 매출은 2000년 12조9000억원에서 2009년 45조2000억원으로 250%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9000억원에서 3조1000억원으로 3.4배가 됐다. 계열사와 직원 수도 약 2배(31개→60개, 3만1000명→5만5000명)가 됐다. 신 부회장이 진두지휘하는 글로벌 프로젝트, 특히 러시아 사업에도 탄력이 한껏 붙고 있다.

그럼에도 신 회장은 아직 만족하지 않는 눈치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많은 기업이 안정이냐 지속성장이냐의 기로에 놓여 있다.

지금으로선 변화가 무기다. 안정은 도태다. 롯데도 예외일 수 없다. 지속성장의 열쇠를 글로벌 전략에서 찾아야 한다.” 그래서 나온 게 비전 2018이다. ‘2018년 롯데 매출 200조원, 아시아 톱 10 글로벌 그룹’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다. 이런 맥락에서 롯데가 유럽 진출의 거점으로 삼고 있는 러시아는 중요하다.

초석은 일단 잘 세웠다. 신 회장과 신 부회장의 공이다. 이제 유럽 관문을 뚫는 일만 남았다. 러시아 시장에 롯데의 DNA와 콘텐트를 제대로 집어넣느냐가 관건이다. 답은 신 회장의 오랜 경영철학에 숨어 있을지 모르겠다. 거화취실(去華就實). 형식을 따지기보단 내실을 취하는 게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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