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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다 보니 나누는 것도 닮더군요

함께 살다 보니 나누는 것도 닮더군요



도곡동 힐데스하임 빌라. 가구당 330m²가 넘는 강남에서 최고급 빌라형 아파트 중 한 곳이다. 1층에 김항덕(69)·이혜원(60) 부부가 살고 있다. 푸른 정원이 마음에 들어 구입했다고한다. 아파트 공동 정원인데도 부부의 개인소장용 조각품이 여러 곳에 전시돼 있었다. 보다 많은 사람이 보고 감상하라는 부부의 배려다.

김항덕 회장은 SK그룹에서 전설적인 인물이다. 사원으로 시작해 39세에 유공 사장을 맡았고, SK그룹 최초로 유전 개발에 성공했다. 고(故) 최종현 SK그룹 회장의 신임을 받아 SK 대표이사 부회장까지 올랐다. 현재는 중부도시가스 회장을 맡고 있다.

그런 그가 내조형 남편으로 변신했다.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싶다는 아내의 뜻을 존중해 2003년 재단 건립 기금으로 30억원을 지원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회사 수익의 5%를 기부하고 있다. 재단 인터뷰를 하겠다는 말에 부부가 함께했다. 그가 정식으로 인터뷰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염지현 기자 두 분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김항덕 회장 항상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고 도우며 사는 거죠. 남을 돕는 것은 저를 돕는 일이며, 사회와 체제를 지키는 일입니다. 제 가족은 사회에 속해 있고, 사회는 나라에 속해 있잖아요.나라가 안전하지 않으면 저희 가족도 불안할 겁니다. 따라서 남을 돕는 게 저희 가족을 보살피는 일이죠.



이혜원 이사장 (웃으며)당신 얘기는 너무 어려워요. 제가 라디오에서 들은 얘기인데요. 옛날에 한 임금이 백성이 잘살 수 있는 지침을 만들려고 당대 최고의 학자들을 불러 한 질 분량의 책을 편찬했답니다. 하지만 내용이 너무 방대해 백성들은 이해할 수 없었죠. 이에 임금은 한 권 분량으로 요약하라고 학자들에게 지시했어요. 이번에도 백성들이 안 읽더라는 거죠. 결국에는 “단 한문장으로 설명하라”는 명이 떨어진 거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학자들이 내놓은 명언이 뭔지 아세요? 바로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겁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고상한 말보다는 남들보다 더 여유롭게 살고 있으니 보답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염지현 이사장님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하기 위해 재단을 세우신 거네요.



이혜원 대한적십자사에서 여성봉사 특별자문위원으로 한 10년 일했어요. 그러면서 더 나이가 들면 뭘 할까 생각하다 사회봉사로 길을 정했지요. 그런데 막상 하려고 보니 막막했어요.



김항덕 한참 고민을 하더니 사회복지에 대해 공부하겠다고 하더군요.



이혜원 네. 오십 줄에 대학원 문을 두드렸죠. 학교에 가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 싶었죠. 그곳에서 복지기관이 어떤 곳인지 미리 체험한 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현장에서 어려운 사람을 직접 돕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제 갈 길은 아닌 거 같았어요.이보다는 재단을 통해 지역사회를 돕는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필요한 곳에 지원해야겠다고 결심했죠.



염지현 회장님께서도 바로 재단 설립에 찬성하셨나요?



김항덕 아내가 그러더군요. 지금 우리가 돈 많이 벌어서 뭐 하겠느냐고…. 남을 돕는 데 의미 있게 쓸 테니까 도와주겠느냐고 물어보더군요. 기꺼이 하겠다고 했죠. 건립 기금으로 30억원을 지원해 줬어요.



이혜원 남편 도움 없이는 힘들었죠. 저는 기업에 예속되는 활동보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2003년에 독립 재단으로 출발하게 됐죠. 남편에게 재단 출연금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출연금 이자만으로는 활동하기가 힘들어요. 그런

데 제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기부해 달라는 얘기를 잘 못해요.



김항덕 출연금 이자는 연 2억원밖에 안 될 거예요. 사업비로는 매년 10억원 정도 쓰이죠. 그래서 매년 이익금의 5%를 재단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거는 지켜가라고 얘기해 놨어요.



이혜원 다른 재단과 차별화된 사업도 진행하고 있어요. 대표적인 게 ‘내일을 위한 休’라는 프로그램이에요. 사회복지 실무자를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사회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사회복지사 처우가 좋진 않아요.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에 노동 강도가 심하죠. 그래서 그들이 1년에 한 달 정도는 마음 편히 쉴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어요. 한 달간 가족과 함께 보내

거나 여행을 다니는 등 값진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면 더 의욕적으로 일할 수 있지 않겠어요? 해당 기관과 얘기해 사회복지사가 한 달간 쉴 동안 인건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복지사들에게 인기가 대단해요. 복지사로서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동기가됐다며 감사 메일이 쏟아지더군요.





기부는 화끈하게, 생활은 검소하게

염지현 성격과 운영방식도 독립적인데 왜 중부라고 이름을 지으셨죠?



김항덕 보통 복지재단을 재산의 피난처로 생각하는 시각이 있더군요. 재단 허가 받는 데 굉장히 힘들었어요. 당시에 조금 여유가 있었으면 이름도 낭만적으로 짓고 했을 텐데요.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죠.



이혜원 중부도시가스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지역 주민들에게 혜택을 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지원의 70%는 충남 쪽입니다. 중부 이름에 만족해요. 특히 중부 CI가 예뻐요(CI는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이란 의미로 나무 모양이다). 이거 그냥 쓰면 공짜잖아요.



김항덕 부부는 닮나 봅니다. 제가 가족들에게 절약과 검소한 생활을 강조하거든요.예를 들어 아이가 껌을 씹다가 무심코 휴지한 장을 꺼내면 혼납니다. 휴지 반쪽으로 되는 것은 무조건 반쪽으로 쓰자는 거죠. 돈이 아까운 게 아니라 물자가 아까운 거죠. 휴지 한 장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자원과 공정이 필요한데요.



이혜원 제가 최근에 깨달은 게 있어요. 헬스클럽에 가면 수건을 한 장 내지 두 장을 써요. 그곳에 가운도 있고 아주 큰 목욕수건도 있잖아요. 그것을 안 써요. 내가 그것을 왜 안 쓰나 생각해 봤더니 아깝더라고요.



김항덕 (아내를 보며) 나도 그래. 운동 때 쓴 타월 있잖아. 그것으로 닦고 짜서 쓰고 마지막으로 한 장 더 쓰고 끝내지. 여러 장 쓸이유가 없어요. 물만 많이 쓰지.



이혜원 맞아요. 돈은 가치 있게 써야 기분이 좋아요. 백화점 잘가지도 않지만 신제품은 별로 입지 않아요. 대부분 아웃렛 매장에서 사거나 백화점 세일할 때 사요(그녀가 입고 있는 블라우스도 아웃렛 매장에서 1만원 주고 샀다고 한다).



김항덕 이 사람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죠. 그래서 건강관리는 확실하게 해줍니다. 저녁마다 양재천으로 운동 다녀요.



이혜원 아무리 바쁘고 피곤해도 운동은 못빠지게 하죠. 2시간 걷는 날도 있고, 헬스장에서 1시간 트레이닝을 받기도 하고요. 골프 한 날은 그걸로 면제를 받죠.(웃음)



김항덕 시간이 더 있으면 좋겠어요. 둘 다 바쁘다 보니 밤에 운동을 하거든요. 재단 행사로 밤 12시에 집에 들어와도 옷 갈아입고 운동하러 가죠.



이혜원 얼마나 우스운지 몰라요. 저더러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데요. 걸을 때마다 “걸어야 산다” “걸어야 산다”고 구호를 외치죠. 처음엔 너무 힘들다고 택시 타고 돌아가겠다고 했는데요. 이제는 2시간 정도는 거뜬히 걸어요.



김항덕 함께 운동한 지 10년 됐죠. 살아보니 건강이 가장 중요하더군요. 주변에 보면 친구나 친구 부인이 아픈 경우가 많아요. 나이가 들어서인지 점점 많아지네요. 그래서 아내에게 자주 얘기합니다. 우리가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열심히 걷고 운동해야한다고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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