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논리적, 아쉬운 건 유연성
한국인 논리적, 아쉬운 건 유연성
채양선 기아자동차 마케팅사업부 상무, 이영희 삼성전자 해외마케팅사업부 전무, 정화경 제일모직 해외상품사업부 상무. 각 분야 일류기업에서 주목 받는 세 사람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글로벌 화장품 업체 로레알 그룹 출신이라는 것이다. 로레알 그룹은 랑콤, 비오템, 슈에무라, 키엘 등 23개 화장품 브랜드를 세계 130개국에 판매한다. 직원 수는 6만4600명에 달한다. 특히 인재 양성에 공을 들여 글로벌 인재 사관학교로 불린다.
11월 4일 리차드 생베르(56) 로레알코리아 대표를 만나 로레알의 글로벌 인재 양성법과 해외시장에서 한국인의 경쟁력에 대해 물었다. 생베르 대표는 31년째 ‘로레알맨’으로 일하고 있다. 주로 제품, 비즈니스 개발 업무를 맡았고 10년 전부터 인재 배출에 주력해 왔다.
- 로레알 그룹이 생각하는 글로벌 인재란?
“페이스(FACE)를 갖춘 사람이다. 페이스는 Flexibility(유연성), Autonomy(기업가정신), Communication(의사표현력), Energy(열정)를 뜻한다. 또 ‘시인’과 ‘농부’로 표현할 수 있다. 창의적이고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시인과 현실적이고 실용성을 추구하는 농부의 능력이 동시에 요구된다.”
- 그런 인재를 어떻게 가려내나.
“로레알은 공채 없이 비즈니스 게임 대회나 마케팅 공모전을 열어 신입사원을 선발한다. 온라인 비즈니스 게임에 참가해 통과하면 인턴십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두 달 동안 인턴으로 일한 학생 가운데 일부가 ‘경영 훈련 프로그램’으로 입사한다. 6~10개월 동안 여러 부서에서 경험을 쌓으며 자신이 어떤 직무에 맞는지 시험하는 프로그램이다. 중요한 것은 6개월은 꼭 현장 판매직으로 일하게 한다는 점이다. 나 역시 20년 동안 운영해온 이 프로그램 출신이다. 마케팅 게임인 ‘브랜드 스톰’은 국내 예선을 거쳐 본사 CEO와 임원 앞에서 본선을 치른다. 같은 문제를 내지만 돌아오는 답은 모두 다르다. 각 나라의 특성을 반영한 솔루션이 다양하게 제시된다. 글로벌 능력과 지역적 특성을 동시에 알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글로벌 인재사관학교 로레알생베르 대표는 브랜드 스톰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로레알코리아의 신지은 과장을 마케팅 게임을 발판 삼아 글로벌 인재로 성장한 예로 들었다. 신 과장은 2003년 브랜드 스톰 예선 2위를 차지해 한국 로레알파리에서 인턴십을 했다. 프랑스 본사 프로덕트 매니저를 거쳐 지금은 한국에서 마케팅 매니저로 일한다.
- 채용에서 로레알코리아가 본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본사 방침을 원칙으로 하되 한국 상황에 맞춰 적용한다. 한국에서 대학생 채용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한국 학생들의 잠재력과 능력에 무척 놀랐다. ‘시인’과 ‘농부’ 가운데 농부의 능력이 뛰어나다. 높은 교육수준 덕분인 것 같다. 하지만 교육방법 때문인지 본인을 표현하는 시인의 능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선발할 때 유연성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중점을 둔다.”
로레알코리아는 리크루팅 때마다 15~ 20명의 인턴사원을 모집해 1년에 40명가량이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 인사관리 면에서는 어떤 노력을 하나?
“로레알 그룹도 위계질서는 있다. 하지만 권한을 위임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직종 간 순환근무도 일반적이다. 젊은 직원이 최대한 능력을 발휘해 빨리 성장할 수 있게끔 기회를 준다. 30대 이사도 쉽게 볼 수 있다. 본사에서는 이를 ‘패스트 트랙 커리어’라고 부른다.”
- 한국에서 패스트 프랙 커리어를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없나?
“나이가 많은 직원도 젊은 사람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로레알 그룹에 입사할 때 이미 경쟁환경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인력의 비중과 역할은 어느 정도인가?
“한국 국적으로 로레알 그룹에서 일하는 사람은 28명이고 내년에 32명으로 늘어날 것이다. 미국, 중국, 프랑스, 일본, 홍콩, 태국에서 일한다. 적은 수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들 모두 매니저급 이상, 즉 관리직이다. 직군은 마케팅, 세일즈, R&D(연구개발) 등으로 다양하다. 한국 인재는 세계시장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로레알 그룹 아시아지역 인사총괄인 올리비에 르코크는 한국 직원에 대해 ‘충성도가 높고 위기 대처 능력과 미적 감각이 뛰어나다’고 평했다.”
조기 책임 부여와 권한 위임이 경쟁력
- 세계시장에서 일하기 위해 한국인이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면?“교육열이 강하고 교육수준이 높은 것이 한국의 특징이다. 전통적이고 학술적인 방법이다. 서양은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유연성을 강조한다. 이 부분을 더 개발한다면 앞으로 글로벌 인재로 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뛰어난 부분은 계속 키워 가야 한다. 한국에 와 직원들의 보고서 작성과 프레젠테이션 능력을 보고 무척 놀랐다(그는 놀랐다는 부분에서 very를 네 번이나 사용했다). 다른 나라와 차별화되는 점이다. 단순히 양이 많고 형식이 뛰어난 것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심층적이다. 서양인의 프레젠테이션은 산만한데 한국인의 보고서는 설득력이 높고 구조가 잘 짜여 논리적이다. 한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확실히 인지하고 나서 발표한다.”
올 2월 로레알코리아 대표이사로 취임한 생베르 대표는 장폴 아공 로레알 그룹 회장이 신임하는 핵심 임원으로 알려졌다. 1200여 명 한국 직원을 이끄는 그에게 한국시장 확대는 글로벌 인재 양성이라는 임무 못지않게 중요하다.
-로레알 그룹에서 로레알코리아는 어떤 위치에 있나?“세계 화장품 시장에서 한국은 13위를 차지한다. 또 아시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로레알 그룹의 10대 전략 국가 중 한 곳으로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은 항상 관심의 대상이다. 한국 소비자는 화장품과 관련한 지식 수준이 높다. 전문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레알은 1993년 한국에 진출해 14개 브랜드를 알렸다. 4개 부서로 나눠지는데 백화점 시장에서 로레알코리아는 2위다. 헤어살롱사업부와 병원약국사업부는 시장 1위의 성과를 자랑한다. 시판사업부의 경쟁이 가장 치열하다. 올해 3위를 기록했다.”
시판사업 시장의 경쟁상대는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이다. 그에게 경쟁 전략을 묻자 뛰어난 소수 제품을 내놓는 것이라고 답했다. 메이블린 뉴욕과 로레알 드 파리 2개 브랜드에서 혁신적 제품을 선보여 소비자를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그는 “좋은 직장문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여성 과학자 지원, 환경 콘서트 개최 등 사회공헌 활동도 계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생베르 대표는 9개월 동안 한국에서 생활하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열정’이라고 했다.
어린아이부터 정부 고위층까지 모두 성공에 대한 열정이 강해 보인다는 것이다. 신문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경제, 문화, 스포츠 면의 ‘랭킹 기사’를 보고 이를 느꼈다고. 그는 “이 열정이 글로벌 인재로 성공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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