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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시즌 볼만한 한국영화

크리스마스 시즌 볼만한 한국영화


강유정 연말이 되면 혼자만의 시간이 그리워진다. 그런데 사실 이 말은 모순이기도 하다. 매일매일 송년회와 모임에 지친 사람에게는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하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다지 바쁘지 않은 사람, 누군가 함께 할 만한 사람이 없는 외로운 싱글 혹은 독신자들, 혼자만의 시간이 벅차다 못해 슬퍼지는 사람들 말이다. 영화는 이 두 경우 모두에 훌륭한 해결책을 선사한다. 추운 겨울 다정한 데이트 코스가 되어주기도 하고, 하릴없이 지루한 시간을 견디게 해주는 것이 바로 영화다. 그런데 예년보다 더 빨리, 더 독한 추위가 찾아온 2010년 12월을 채워 줄 한국 영화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연말이면 유독

그리워지는 얼굴,

첫사랑


['김종욱 찾기' 12월 8일 개봉]

첫사랑은 왜 12월에 더 보고 싶을까? 남아 있는 달력 한 장의 불안은 그만큼 멀어진 첫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돌아오곤 한다. 장유정의 ‘김종욱 찾기’는 첫사랑이라는 흔하디 흔한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사고뭉치 무대감독 서지우는 첫사랑을 핑계로 청혼을 거부한다. 현직 군인인 아버지는 그놈의 첫사랑 만나나 보자며 첫사랑 찾기에 나선다. 첫사랑을 찾아주는 사무소, 소장 한기준은 이 말도 안 되는 사업을 시작한 ‘청년실업가’다.

영화는 여느 로맨틱 코미디답게 전혀 다른 두 남녀가 티격태격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남녀가 조금씩 서로의 빈 곳을 발견해 애정으로 채워 간다. ‘김종욱 찾기’는 몇몇 새로운 코드로 낡고 오래된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물을 계승한다.

새로운 코드 중 하나는 여자와 첫사랑이다. 대개 첫사랑은 남자의 발목을 붙잡는 아름다운 알리바이로 활용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여자다. 지우는 인도 여행 중에 만난 김종욱이라는 남자를 알리바이로 현재의 모든 사랑을 유예한다. 사실, 여행지의 하루 밤만큼이나 낭만적 변명이 어디 있을까?

‘김종욱 찾기’는 관객의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이 순진한 열망과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싶은 현재의 열정을 잇는데 성공한다. 뮤지컬 원작이지만 뮤지컬을 고스란히 따오는 방식을 거절한 것도 성공 요인 중 하나로 보인다. 뮤지컬과는 전혀 다른 독립적 작품으로서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는 의미다.

군복무 기간의 공백기 이후 돌아온 공유는 완벽한 첫사랑과 모자란 찌질남을 1인2역으로 연기하며 배우로서의 성장을 보여준다. 털털한 순정파로 변신한 임수정의 연기도 탁월하다.

연애는 새로울 것은 없지만 해도해도 새로운 즐거움이 있다. 이 모순과 역설 가운데 날마다 업데이트되는 로맨틱 코미디의 비밀이 있지 않을까? 사랑하라, 그러면 즐겁지 아니한가. 달콤, 발랄, 신선한 로맨틱 코미디, ‘김종욱 찾기’다.



어른들끼리 돌려보는 야한 농담집

['쩨쩨한 로맨스' 12월 1일 개봉]

로맨틱 코미디에는 법칙이 있다. 서로 다른 남녀가 우연히 만나 티격태격하며 싸우다 정들고 마침내 연인이 된다. 둘만 잘되면 끝, 뭐 대개 이런 식이다. 그래서 식상하기도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는 언제나 새로운 듯 매년 돌아온다. 사랑이 멈추지 않는 한 로맨스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듯. 이뤄지지 않는 사랑은 멜로드라마에서 눈물로 변하고, 이뤄진 커플은 코미디로 관객들에게 다가온다. 쩨쩨한 로맨스는 진부한 로맨틱 코미디의 문법을 살짝 비틀어 새로운 자극을 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쩨쩨한 로맨스’가 선택한 변화의 코드는 바로 ‘섹스’다. 그것도 말로 주고받는 섹스 말이다.

이야기는 두 ‘루저’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남자는 그림 실력이 뛰어나지만 자기만 아는 어려운 만화를 그려 아직 등단하지 못한 만화가다. 여자는 섹스칼럼니스트인데 막상 섹스 경험이 너무 일천하다. 외국 칼럼이나 영화를 보고 인용한다는 것이 거의 베끼기 수준이니 상상력만 나날이 늘어 간다. 이 두 사람이 1억원이 넘는 상금을 노리고 의기투합한다. 성인만화 공모전에 응모하기로 한 것.

하지만 말만 잘하는 섹스칼럼니스트와 냉소적인 만화가의 만남이란 게 예상하다시피 티격태격 충돌이 잦을 수밖에. ‘쩨쩨한 로맨스’는 이 충돌 가운데 섹스 코드를 끼워 넣어 두 사람의 사랑싸움에 약간의 긴장과 에너지를 더했다. 사실 두 남녀가 만나 가까워지는 과정이란 게 섹슈얼리티의 긴장과 꼭 닮았다. 영화는 이 감정들을 세밀하게 접근해 제목처럼 쩨쩨한 로맨스를 채워나간다.

20~30대 여성의 새로운 헤로인으로 떠오른 이선균과 최강희의 만남이 영화의 특징을 배가시켜준다. 솔직함으로 무장한 꽤 강도 높은 대사들도 재미를 선사한다. 이 연말에 연인과 함께 본다면 귀여운 공감을, 동성 친구들과 본다면 좀 더 솔직한 고백들을 들을 수 있는 가벼운 소품이라고 할 만하다.



영구가 마피아

대부의 숨겨진 아들이라면?


['라스트 갓 파더' 12월 30일 개봉]

일본의 대표적 작가주의 감독 기타노 다케시가 유명한 일본 코미디 배우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도 코미디언 출신 감독들이 몇몇 있는데 서세원, 이경규, 심형래가 바로 그들이다. 그중에서도 심형래 감독은 꾸준히 영화를 만들 뿐만 아니라 영화계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자 하는 욕망도 강렬하다. 판타지 블록버스터를 만들었던 심형래가 이번엔 자신의 주특기인 코미디로 돌아왔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브랜드 네임이자 고유명사라고 할 수 있을 ‘영구’로 복귀했다는 사실이다. 영구를 내세운 만큼 그는 확실히 웃긴 영화를 만들어 보겠다고 선언했다. 덜 생긴 외모, 덜떨어진 행동, 누가 봐도 2%쯤 부족한 영구가 대부의 숨겨진 아들이라니, 일단 설정 자체는 웃기는 데 성공했다.



조선족과 탈북자의 목숨 건 생존전쟁


['황해' 12월 23일 개봉]

나홍진 감독은 영화 ‘추격자’로 일약 스타감독으로 떠올랐다. 그와 함께 한국 영화의 블루칩으로 등극한 배우들이 있으니 김윤석과 하정우가 그렇다. ‘추격자’는 하정우라는 아직 낯선 배우에게 파렴치한 살인범의 이미지를 선사해주었고 김윤석에겐 다중적이고 복합적인 캐릭터를 부여해주었다. 용서도 화해도 없는 말 그대로 잔혹한 결말로 관객들을 스산하게 만든 작품이기도 하고, 2010년까지 이어진 스릴러 열풍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나홍진의 두 번째 영화 ‘황해’는 조금 더 잔혹하고, 조금 더 격해졌다. 옌볜에서 택시를 운전하며 구질구질한 일상을 살아가던 구남의 삶은 형편없다. 아내는 한국에 돈을 벌러 갔지만 6개월째 소식이 없고, 돈을 불린답시고 마작판에 끼어들었지만 벌기는커녕 밑천마저 잃는 지경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살인청부업자 면가가 손을 뻗어 온다. 그는 한국에 가서 누군가를 죽이라고 말하며 그 대가로 어마어마한 돈을 제안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구남은 면가의 제안에 응한다.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은 구남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워낙 꼼꼼한 작업으로 정평이 나있는 나홍진 감독은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 극한의 촬영을 감행했다는 소문이다. 옌볜과 서울을 넘나드는 조선족과 탈북자의 형편을 사실적으로 재현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절박함까지 담아내고자 했다. 전편 ‘추격자’ 역시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혈투였다면 ‘황해’의 추격전은 각자 자기 목숨을 건 생존전쟁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면서도 다르다. 강한 남자들의 거친 액션과 잔혹한 무자비로 특징지어지는 2010년 영화계의 대미를 장식할 만한 강인하고 거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가족과 볼 수 있는 휴먼드라마


['헬로우 고스트' 12월 22일 개봉]

연말이라면 지나치게 잔혹하거나 강렬한 영화보다는 가족과 함께 소박한 코미디를 보는 편이 더 즐거운 선택일지 모른다. 2009년 ‘과속스캔들’로 부담 없는 청량 코미디를 선사했던 차태현이 새로운 코미디 영화로 돌아왔다. 상만(차태현)은 더 이상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다. 하지만 약을 먹어도, 강물에 투신해도 쉽게 죽질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상만의 눈에 갖가지 사연을 지닌 귀신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문제는 그 귀신들이 상만의 몸을 빌려 나름 하고 싶은 일들을 해나가기 시작한다는 것. 변태 할배(이문수), 골초 귀신(고창석), 폭풍 눈물(장영남), 식신 초딩(천보근)은 상만의 몸에 빌붙어 그를 괴롭힌다. 결국 상만은 귀신들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다.

‘헬로우 고스트’는 차태현의 매력과 귀신들 각각의 캐릭터에 의존하고 있는 작품이다. 흥미로운 설정인만큼 곳곳에 웃을 만한 지점들이 있고 무엇보다 가족이 함께 볼만한 건전한 웃음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무난하다. 코미디로 시작하지만 휴먼 드라마에 가까운 감동으로 마무리된다.

[필자는 영화평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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