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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체 게바라’

‘조선의 체 게바라’



조 우 석지난해 이맘때 등장했던 놀라운 책 한 권 ‘저항과 아만(我慢)’을 리뷰하며 이렇게 표현했다. “함께 기뻐하자. 18세기 천재 시인 이언진(1740~1766)의 등장은 밋밋했던 근대 이전 문학사에 내려진 느닷없는 축복이다. 저자 박희병 서울대 교수가 감히 ‘(연암) 박지원과 마주 세울 만한’(41쪽) 사람으로 평가한 18세기 해체주의자 이언진은 한글세대와의 가슴 벅찬 만남이다.”(중앙일보 2009년 11월 28일자) 책이 감동적이면, 리뷰 역시 그러해야 하는 법이다. 제목을 보면 딱딱해 보이지만 완전 오해다. 편안한 읽을거리만 찾는 세태 속에서 그런 제목에 더 신뢰감이 간다.

그 책은 조선후기의 천재 시인 이언진의 시 170수를 평가하고 해설했는데, 감동은 그 이상이었다. 내친 김에 리뷰의 마무리도 소개하자. “숨이 턱턱 멎을 지경이다. 세 살 위인 연암 박지원을 포함한 이덕무· 다산 등 18세기 신진 사대부들이 체제 안의 지식인이라면 호동은 완벽한 아웃사이더다. 이런 시의 등장이 우연일까? 자기만의 문장론이 있었을 것이다. 아무렴! 그는 섣부른 고전세계를 반복해 희롱하는 낡은 시를 “옛사람 쥐구멍이나 찾기”라고 일갈했다. ‘천재+혁명가’인 호동 연구는 이제 시작이다. 물꼬를 터준 ‘저항과 아만’의 등장에 갈채를 보낸다.”

1년을 조금 넘긴 지금 굿 뉴스가 전해졌다. 이언진 평전 ‘나는 골목길 부처다’가 같은 출판사(돌베개)를 통해 나왔다. 저자는 물론 박희병이다. 중인(中人) 신분의 요절한 천재 시인 이언진의 사전적 정보부터 살펴보자. 이언진은 동시대인 연암의 ‘우상전(虞裳傳)’이라는 글을 통해 현재까지도 그 이름이 알려졌다. 우상은 이언진의 자(字). 즉 ‘우상전’은 연암 박지원이 이언진을 그린 짧은 글이다. 하지만 이언진의 본령은 현존하는 연작 시집 ‘호동거실’에 있다.

그의 시를 관류하는 인간 평등의 메시지와 사회적 차별에 맞선 항거는 기존 조선 문단에서 결코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 더 놀랍기는 ‘호동거실’ 연구가 부진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그간 ‘동호거실’이라는 엉뚱한 이름으로 불려왔으며, 실체 파악 시도도 없었다. 박희병은 고려대 소장 필사본 ‘송목각유고’를 발견, 판본비교를 통해 170수의 시를 완비하고 이를 처음 완역했고 평설까지 선보였다. 그리고 1년 뒤 등장한 ‘나는 골목길 부처다’는 저자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펴낸 평전이다.

이언진의 작품 몇 점을 직접 읽어보자. 가슴이 뛴다. 1년 전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보다 더 좋다. 그의 혁명적 세계인식, 그를 토해내는 언어 구사의 에너지 때문인데 어떤 현대 시인에 못지않게 읽는 이의 가슴에 육박해오는 힘이 있다. 그리고 그건 파격을 넘어 파천황(破天荒)의 경지다. ‘호동거실’의 시 두 편을 연속해서 읽어보자(그의 작품은 제목 없이 숫자로만 돼 있다. 저자 박희병의 분류다. 앞으로 나올 모든 시는 모두 전문(全文) 인용이다). “시인으론 이태백과 같은 성/ 그림으론 왕유의 후신”(원문은 생략), 자기의 문장 실력이 이태백· 왕유와 같은 급이라는 선언이 서슴없다.

그건 자부심의 차원을 넘어 자신의 비범성을 스스로 안다는 얘기인데, 진정 놀랍다. 술이부작(述而不作)의 문화적 전통을 가진 조선조에서 이런 식의 당돌한 존재 선언이란 유례가 없다. 그런 당돌함은 급기야 자기와 부처는 동급이라는 말로도 표현된다. “과거의 부처는 나 앞의 나/ 미래의 부처는 나 뒤의 나/ 부처 하나 바로 지금 여기 있으니/ 호동 이씨가 바로 그.” 자신이 현재불(現在佛)이라는 선언이다. 흥미로운 건 말투다. 점잔떨기와는 담을 쌓았다. “이따거의 쌍도끼를/ 빌려와 확 부숴 버렸으면/ 손에 칼을 잡고/ 강호의 쾌남들과 노닐었으면.”

옛 한시에서 이런 변칙을 보신 적이 있나? 그리고 웬 이따거(형님)? 이언진은 당나라 등 고전시의 낡은 세계에서 흔히 쓰는 낡은 용어와 굿바이했다. 부운(浮雲, 떠다니는 구름) 공담(空潭, 인기척 없는 연못)…. 당나라 시에 주로 등장하는 이런 시어들은 아름답다. 그러나 유통기간이 끝났다. 이언진은 그 대신 중국 당대의 일상어인 백화문인 따거 등을 수용했다. 그래서 그는 조선의 반시(反詩)주의자다. 조선의 체 게바라라고 해도 좋다.

그가 ‘수호지’의 이규 등 떼도둑과 자기를 동일시한 시 세계는 너무도 강렬하다. 말하자면 자신은 ‘조선의 프롤레타리아문학가’인 셈인데, 당대의 미발표작이라서 저항의식이 이토록 시퍼렇다. 자기를 부처라고 선언하는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반면 세상의 외진 곳을 끌어안는 가슴도 더 없이 널널하다. “더러울 때는 똥물과 같고/컴컴할 때는 칠통(漆桶)과 같다./사람의 마음도 이러하거늘/내가 왜 문 앞 골목 싫다고 하겠나.” 참고로 그의 아호가 호동( )인데, 그건 골목길이란 뜻이다. 책 제목도 여기서 따왔다. 그는 골목길 시정잡배야말로 성현과 다를 바 없다고 선언한다.

조선조의 지배질서를 정면에서 거부하는 목소리가 이토록 선명한 사례를 나는 알지 못한다. 다음의 시도 음미해보시라. “호동( )에 가득한 사람들 그 모두 성현/ 배고파 고통에 시달리고 있어도/ 양지(良志)와 양능(良能)을 지니고 있음을/ 맹자가 말했고 나 또한 말하네” 분명 그는 조선시대에 ‘불온한 학문’이던 양명학을 따랐는데, 그것도 양명학 좌파다. 사람은 타고난 지혜(양지)와 능력(양능)이 있으니, 사회적 계급마저 혁파돼야 한다는 인식이다. 양명학뿐인가?

여기에 노장사상과 불교를 회통하며 인간해방·사회해방의 메시지를 뽑아냈다. 얼떨떨한 점은 어떻게 해서 하늘 아래 둘도 없는 도깨비 시인 이언진이 느닷없이 등장했느냐 하는 점이다. 옛사람이 만든 틀과 격식을 깨지 않고 되도록 따른다는 술이부작의 전통을 그는 어찌 감히 뽀개버리는가? “시는 투식(套式)을, 그림은 격식을 따라선 안 되니/ 틀을 뒤엎고 관습을 벗어나야지/ 앞 성인이 간 길을 가지 말아야/ 후대의 진정한 성인이 되리.”

하지만 이언진의 삶은 실로 불우했다. 이번 평전에서 확인되지만, 그는 서얼 출신에 사회활동에 한계가 분명한, 미천한 신분인 역관(譯官)에 불과했다. 그런 계급적 한계가 이언진의 몸을 태우고 갉아 먹었으리라. 갖가지 신병도 그 결과로 얻었을지 모른다고 저자 박희병은 암시했다. 이번 평전의 소득은 그의 삶을 어느 정도 밝혀낸 것이다. “아내는 거미 같고 자식은 누에 같아/ 나의 온 몸 칭칭칭 휘감았어라”

워낙 혼자서 삐죽 솟았던 이언진이기에 동료애를 확인할 만한 사람도 주위에 드물었다. 사회적 연대와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일은 애시 당초 불가능했으리라. 그에게 시 쓰는 일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는 두 가지 방식으로 답을 했다. 시란 유희 삼아 쓰는 원고이자, 경우에 따라선 피를 토한 글이었다고. 내가 볼 때 ‘피를 토한 글’에 훨씬 무게가 실린다. 그걸 새삼 확인시켜주는 다음 시 구절이 200여 년 뒤를 사는 우리 현대인의 가슴을 친다. “이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감옥/ 빠져나올 어떤 방법도 없네.”

[필자는 문화평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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