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 커플에겐 무엇을 팔까
게이 커플에겐 무엇을 팔까
지난 11월 22일 서울 인사동에서 글로벌 인사 조직 컨설팅 회사 에이온휴잇의 최고다양성책임자(Chief Diversity Officer) 안드레 타피아(51)를 만났다. 문화, 인종, 성의 다양성을 포용하자고 말하는 그는 인사동에 있는 가게 ‘토방’에서 아톰 인형, 공깃돌 등을 유심히 살폈다.
그는 인사동 경인미술관에 있는 찻집에서 의자 대신 온돌방과 방석을 선택했다. 페루 리마 출생인 그는 온돌을 처음 접하는지, 방이 따뜻해지는 원리를 물었다. 그는 다리를 접었다 펴며 약간 불편해 했지만 바닥이 따뜻해 좋다며 1시간 이상 앉아 있었다.
안드레 타피아는 1995년 에이온휴잇에 입사해 2003년 CDO가 됐다. 그는 다국적 기업인 이 회사의 다양성 전략과 비전을 책임졌다. 그동안 백스터, 메리어트, 모토로라, 언스트앤&영 등을 대상으로 다양성과 포용에 관한 컨설팅을 했다. 지난 11월엔 여러 기업의 다양성 담당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기 위해 서울을 찾았다.
‘다양성과 포용이 비즈니스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는 타피아가 CDO로 일하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그는 “다양성을 고려하면 새로운 시장이 보인다”고 말했다. 예컨대 여성, 게이, 젊은이들의 구매력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이들의 특성을 고려한 제품, 서비스를 개발하면 새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도 기존과는 다른 시선, 방법으로 접근해야 할 시장이다.
타피아가 CDO가 됐을 때만 해도 최고다양성책임자가 거의 없었다. 이제는 모토로라, 인텔, 시스코, IBM 등 여러 글로벌 기업에서 CDO나 다양성 관리자를 두고 있다. 기업에 국경이 없어지면서 ‘다양성’과 ‘포용’이 그만큼 중요해졌다. 뉴욕에 본부를 둔 ‘다양성 최고 실천 사례(Diversity Best Practices)’라는 싱크탱크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다양성을 주제로 세미나를 연다. 다양성 관리자들을 초청해 행사가 열린 현지에서 어떻게 다양성 문제를 다루고 있는지를 살핀다. 서울에 오기 직전 타피아는 중국에서 열린 이 세미나에 참석했다. 하지만 여전히 다양성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타피아는 미국 병원에 물품을 공급하는 대형 업체의 사례를 들었다. 이 업체는 다양성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성장 전략은 ‘인구가 급증하는 미국의 4대 도시에서 회사 물품의 공급률을 높인다’에 두고 있었다. “업체 관계자에게 ‘인구 증가가 히스패닉계와 동남아 출신 근로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느냐’고 했더니 ‘그 점은 몰랐다’고 답하더군요. 새로운 고객에게는 다양성에 기반을 둔 새 접근법이 필요합니다.”
미국의 농기계·산업장비 생산업체인 존 디어는 인도 시장에 진출하며 트랙터 디자인을 조금 바꿨다. 인도인들은 트랙터를 농사 지을 때뿐만 아니라 운송수단으로도 쓰는 점을 고려했다. 기존 트랙터는 가족과 함께 타기에는 위험했다. 여럿이 함께 타도 안전하도록 트랙터를 디자인했다.
2005년 PC사업 부문을 매각하기 전 IBM은 게이 시장에 진출하고자 게이, 레즈비언 마케팅팀을 따로 만들었다. 사내의 게이, 레즈비언 그룹에 이 시장에 접근하는 데 도움을 달라고 요청했다. IBM은 컴퓨터, 네트워크 서비스를 제공할 때 게이에게 친근하게 대하는 방법을 찾았다.
미국 금융업체들은 게이 커플 대상 서비스를 개발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 아내에게 재산이 상속된다. 타피아는 “아내는 남편과 20년 이상 거래해온 금융업체를 무시하고 새로운 회사를 찾아 떠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게이 커플의 경우 오랫동안 우수 고객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게이 커플에게는 상속, 공동 소유, 보험 등에 관한 전문적인 법률 지식, 상담이 필요하다. 금융업체는 이런 부분을 고려해 게이 커플을 위한 금융서비스 제품을 디자인하는 전문가를 뒀다. 타피아가 다양성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개인적인 환경이 영향을 미쳤다. 리마에서 태어난 그는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니다 미국 유학을 했다. 이곳에서 독일계 미국인을 만나 결혼했다. 그의 주변에는 아시아, 유럽 출신 친구가 많았다.
처음에는 그도 문화 차이를 모르고 실수한 적이 있다. 회사에서 회의를 하는데 대학 교육을 받은 백인 여성 직원이 그의 말을 들으면서 메모를 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태도를 보고, 그녀가 제 말에 동의한다고 판단했어요. 하지만 미국에서는 그게 ‘당신 얘기를 듣고 있다’는 의미더군요. 그 차이를 파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요즘은 새로운 다양성을 경험하고 있다. 그의 딸 마리셀라(20)가 페루 청년과 결혼했다. 마리셀라는 미국에서 리마로 가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댄스클럽에 갔다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타피아는 딸의 남자친구와 함께 페루 여행을 하며 그의 진가를 확인했다. 타피아는 다른 방법이 없어, 남자친구가 약혼자 비자로 미국에 들어오게 했다. 그리고 몇 주 만에 결혼을 허락했다. “결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아내가 ‘나도 스물에 국제결혼을 했다’고 하더군요. 지금 딸, 사위를 보면 무척 즐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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