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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y & Investing] 해외서 돈 빼돌리다 큰코 다칩니다

[Money & Investing] 해외서 돈 빼돌리다 큰코 다칩니다

기업인 A씨는 몇 년 전 해외에 설립한 현지법인과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우회상속을 시도하다가 국세청에 적발됐다. 수법은 화려했다. 우선 이들 회사를 통해 매출단가를 조작하거나 가짜 용역대금을 지급하는 방법으로 비자금을 만들었다. 이 돈을 스위스 등 외국 금융회사에 예치한 건 물론이다. 다음 과정은 자금세탁이었다. 이 돈은 5~7곳의 금융사를 거친 뒤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와 라부안 등에 설립한 페이퍼컴퍼니에 입금됐다. 최종 투자처는 국내외 금융상품과 부동산이었다.

“비자금을 완벽하게 은폐하기 위해 가족신탁회사(패밀리트러스트) 명의로 위장한 자산을 조세피난처에 있는 신탁회사에 위탁하는 등 수법이 치밀하고 정교했다”는 게 국세청의 설명이다.

중소기업인 B씨는 사업을 확장한다며 외국에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한 뒤 국내에서 투자금을 송금했다. 하지만 이 돈은 투자가 아닌 고급 주택 구입에 쓰였다. 사업으로 위장해 B씨와 가족들이 머물 집을 사들인 것이다.

해외투자나 금융거래를 가장해 세금을 회피하는 일이 앞으론 힘들어질 전망이다. 국세청이 역외탈세와의 전쟁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이현동 국세청장은 1월 17일 전국 관서장 회의에서 “일부 고소득 자영업자, 대재산가 등 세법 질서를 저해하는 탈세자에 대해서는 엄정히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세청은 변칙적 금융·자본 거래는 물론 해외투자 소득을 신고하지 않거나 해외에 재산을 은닉하는 행위 등을 집중적으로 추적할 방침이다.

엄포가 아니다. 국세청은 이미 역외탈세추적전담센터를 신설했다. 국내 기업과 고소득 자산가의 해외 은닉·탈루 소득 동향 파악을 전담하는 곳이다. 해외 현장 정보 수집과 조사도 강화한다. 홍콩 등 국제금융 중심지 4곳과 중국 상하이 등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한 지역 6곳, 해외 한인 밀집지역 5곳 등 최대 15곳이 대상이다. 이를 위해 올해 58억원의 ‘특별예산’도 확보했다. 미국 워싱턴, 프랑스 파리 등 전 세계 6곳이던 세무관 파견 지역도 올 초 중국 상하이, 베트남 하노이를 추가해 8곳으로 늘렸다.

발표 다음날인 1월 18일 국세청이 동국제강 세무조사에 전격 착수한 것도 역외탈세 추적 강화와 관련이 있다는 해석을 낳고 있다. 서울지방국세청은 이날 조사요원 20여 명을 동국제강에 보내 상당한 분량의 회계자료를 확보했다. 동국제강의 수출입 거래 등 해외거래 부분을 집중 조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순위 27위인 동국제강은 전기용광로에서 고철을 녹여 철근과 빔류를 생산하는 제강회사다. 동부제강과 함께 업계 1, 2위를 다툰다. 업종 특성상 해외 거래가 많다. 국내 고철 공급이 절대 부족하다 보니 러시아·일본 등 해외에서 원료를 사온다. 생산품의 상당 비율은 중국 등에 수출한다. 몇 년 전부턴 브라질에 합작 제철소 건립도 추진 중이다. 회사 측은 “2007년 하반기 조사 이후 4년 만에 실시되는 정기 세무조사인 것으로 안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이현동 청장은 1월 17일 관서장 회의에서 역외탈세를 강력하게 막을 것이라고 밝혔다.

국세청이 대대적으로 나선 것은 그만큼 역외탈세가 많아졌다는 방증이다. 국세청은 지난해에만 신고하지 않은 해외 소득 6224억원을 찾아내 3392억원을 추징했다. 올해는 이 금액이 1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국내에선 세원관리 체계가 상당히 잘 갖춰져 구조적 탈세가 불가능해졌다”며 “탈세 규모가 큰 사람은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 기업은 물론 개인의 해외투자는 대부분 자유화돼 있다. 5만 달러가 넘는 외화를 외국 은행에 예치하려면 한국은행에 신고하면 된다. 하지만 탈세를 목적으로 빠져나가는 돈이 이런 꼬리표를 달가워할 리 없다. 알게 모르게 음성적으로 해외로 유출되는 자금이 상당하다고 국세청은 파악하고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건 두 가지다. 먼저 파생상품 등 첨단 금융기법이다. 단순 송금이라면 쉽게 잡아낼 수 있지만, 투자 형태로 나가기 때문에 탈세를 목적으로 한 건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둘째는 전문가의 도움이다. 국내에 살고 있는 개인이 직접 해외 조세피난처에 계좌를 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은행 PB나 법무법인, 회계법인의 도움 없인 어려운 일이다. 파생상품과 전문가를 겨냥한 국세청의 안테나가 높아질 전망이다.

기업과 고액 자산가는 긴장할 수밖에 없다. 국세청은 아직 ‘대재산가’ ‘대기업’의 범위를 특정하고 있지 않다. 역외탈세를 주로 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부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설명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대재산가는 돈 많은 중소기업 사장, 금융이나 부동산 자산이 많은 이들로 상속 받거나 자수성가한 사람들로 볼 수 있다”며 “대기업은 해외 자회사를 이용해 해외수익을 파킹하거나 탈세할 만한 규모가 되는 회사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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