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실 주인, 1조 그룹 오너 꿈꾸다 _ 최등규 대보그룹·서원밸리GC 회장
독서실 주인, 1조 그룹 오너 꿈꾸다 _ 최등규 대보그룹·서원밸리GC 회장
껌팔이에서 성공한 독서실 사장으로. 이만 해도 드라마 주인공으로 손색없다. 그런데 이 사람이 중견그룹 오너가 됐다. 이보다 극적인 성공 스토리가 얼마나 있을까? 주인공은 최등규(63) 대보그룹·서원밸리GC 회장이다. 하지만 그를 ‘인물 다큐멘터리’의 주연으로 삼기엔 아쉬운 면이 많다. 대보그룹은 ‘흙 속 진주’ 같은 기업이다. 30년 연속 흑자 기록에 부채비율은 100%가 채 되지 않는다.
그룹 매출은 1조원에 육박한다. M & A(인수합병)한 기업은 ‘승자의 저주’에 빠지기는커녕 ‘승자의 찬가’를 부른다. 창업 30주년 만에 일군 성과는 두드러짐을 넘어 눈부시다. 이 사람, 이 기업의 경영전략과 성장 방정식은 대체 뭘까. 이코노미스트가 2월 10일 서울 강남 수서에 위치한 대보그룹 본사 회장 집무실에서 최등규 회장을 만났다.
1974년,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편의 작은 빌딩. 이곳엔 50명이 정원인 작은 독서실이 있었다. 이름하여 ‘광화문 독서실’. 뻔한 이름에 규모는 작았지만 인기가 대단했다. 방학이면 지방학교 학생이 몰려왔고, 웃돈을 주면서 “우리 아이 좀 넣어달라”고 애원하는 부모도 있었다.
편의시설이 좋아서? 초현대식 독서실이라서? 둘 다 아니다. 독서실 주인의 철저한 학생 관리가 이유였다. 주인은 학생이 노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독서실에 왔으면 공부하도록 만드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여겼다. 고학생에겐 자비를 털어 장학금을 줬다. 깐깐하지만 마음 넉넉한 주인에게 장학금을 받은 학생 중엔 이낙연(민주당) 의원도 있었다. 광주일고를 졸업한 이 의원은 서울대를 이곳에서 다녔고, 지금도 그 주인을 ‘형님’으로 모신다. 광화문 독서실 주인의 이름은 최등규, 당시 나이는 26세였다.
장학금 주던 독서실 주인 ‘최등규’충남 보령이 고향인 그는 빈농의 아들이었다. 경작지는 기껏해야 아홉 마지기(5940㎡·1800평). 마을 주민 대부분이 20마지기를 소유하고 있었으니 팍팍한 살림살이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5남2녀 중 장남이었던 그는 대학에 진학할 형편이 아니었다. 무언가 하기 위해선 상경(上京)밖에 답이 없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직후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뾰족한 수가 있었던 건 아니다. 말 그대로 ‘무작정’이었다. 서울 생활은 ‘모짊’ 그 자체였다. 스스로 “낙천적이었던 성격이 변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지금의 용산경찰서 맞은편에 있었던 독서실에서 관리인으로 근무했다. 새벽엔 신문배달을, 낮엔 껌을 팔았다. 짬을 내 영어학원 경비도 섰다. 돈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한 거다. 푼돈을 차곡차곡 모아 얻은 첫 성과물이 바로 광화문 독서실이었다. 상경한 지 3년여 만의 일이다.
이쯤 돼도 눈물겨운 성공 스토리다. ‘신파극’을 만든다면 딱 좋은 소재거리다. 하지만 광화문 독서실은 ‘최등규 인생’의 시작에 불과했다. 1970년대의 ‘독서실 주인’ 최등규는 매출 1조원을 눈앞에 둔 중견그룹 오너가 됐다. 공식 직함은 대보그룹 회장. 건설·유통·레저·통신 등 4개 부문 10개 계열사가 있다. 임직원은 3000명이 훌쩍 넘는다. 대보 하면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가 많을지 모르겠다.그럴 만하다. 대보는 규모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재계에선 ‘숨은 알짜 기업’으로 손꼽힌다. 익숙한 사업도 많다. 대보는 고속도로 전광판과 하이패스 시스템을 운영한다. 비행기 이착륙 시간을 알려주는 전광판 운영업체도 대보다. 국내 10대 명문 골프장으로 꼽히는 서원밸리GC는 계열사다.
대보의 올해 목표는 매출 1조원 달성이다. 지난해엔 8500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된다. 달성한다면 의미 있는 기록이다. 이코노미스트가 최등규 회장을 만나 그의 경영철학과 인생 스토리를 들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최등규 회장은 기골이 장대한 장군 체격이다. 돌격대장 이미지가 강해 때론 ‘작은 정주영’으로 불린다. 투박하고, 공격적이고, 거침없는 오너라고 생각했다면 오해다. 그의 말투는 조곤조곤하다. 목소리가 가늘고, 말은 느릿하다. 영락없는 충청도 남자다.
아랫사람을 유독 아끼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 최 회장이 현장에 가면 불문율로 통하는 게 있다. 건설현장에선 우두머리 격인 소장이 아니라 반장이 옆에 앉아야 한다. 아랫사람 이야기를 더 많이 들으려는 최 회장의 노력이 읽힌다. 골프장에 가면 풀 뽑는 아줌마, 휴게소에선 청소 아줌마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다. 본사에서도 그렇다. 실무진이 직접 들어가 결재할 때가 많다. 대보에서 회장 결재는 ‘임원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 사람, 아랫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안다. 최 회장은 “역사는 바닥에서 시작되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헐렁하게 봤다간 큰코다친다. 그토록 아끼는 아랫사람이라도 변명하거나 “죄송합니다”고 말하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최 회장은 “죄송합니다”를 ‘나는 못난 사람’ ‘업무에 혼신의 힘을 쏟지 않는 사람’으로 이해한다. 가까이서 본 최 회장은 무척 냉철하고 대단히 명확한 사람이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두뇌회전이 빠르다’고 평한다. 대보그룹 최성규(기획조정실) 부장은 “앞을 내다보는 혜안이 빼어나다”고 말했다.
재주만 가지고 사업을 키웠으랴. 그의 별명은 ‘악바리’, 경영철학은 ‘남과 똑같이 해서는 남 이상 할 수 없다’이다. 최 회장이 대보를 중견그룹 반열에 올려놓은 첫째 동력은 근성이었다. 1981년 대보의 모태인 대보실업(토목전문 건설사)을 세웠을 때 일이다. 첫 수주는 청주공항 활주로 토목공사. 그는 CEO이자 현장인력이었다. 인부들과 현장에서 함께 뒹굴며 일했다. 그는 “당시 4시간을 넘게 잔 기억이 없다”고 회상했다. 그래도 첫 수주인데, 그때의 환희를 기억하고 있진 않을까.
“남과 똑같이 해선 이길 수 없어”“즐길 정신이 있었겠는가. 이제 막 첫 삽을 떴을 뿐이었는데. ‘아! 드디어 해냈구나’가 아니라 ‘이제 더 뛰어야겠구나’ 하고 마음먹었어요.” 최 회장은 그때를 ‘우물 파는 마음’에 비유했다. 집안 사정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고 상경하기 전 그는 집 앞에 우물을 팠다. 마을 우물이 집에서 300m가량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보름이 꼬박 걸렸다. 무너지면 또 팠고,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해 돌을 쌓아 날랐다. 그러면서 그는 근성을 키웠고, 도전정신을 곱씹었다. “성공하기 전엔 절대 고향에 내려오지 않겠다”면서…. 최 회장의 이런 근성은 대보 고속성장의 밑거름이었다.
1992년 그는 새로운 도전을 했다. 대보건설을 세우고 종합건설업에 출사표를 던진 거다. 그렇게 좋은 시기는 아니었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건설업 비중이 1988년 12%에서 1992년 20%로 8%포인트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보건설은 역경을 딛고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다. 대보의 핵심 계열사는 대보건설이다. 전체 매출의 62%를 맡고 있다. 건설 시공능력은 84위(2010년 기준), 신용도는 AA다. 부채비율은 88%에 불과하다(※대보그룹의 채무는 모두 퇴직금충당금·매출채권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이 없기 때문에 무차입 경영인 셈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5300억원. 건설경기가 바닥이었던 2008년보다 86% 성장했다. 탄탄함과 성장엔진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는 얘기다. 근성과 도전정신만으로 이렇게 성장한 걸까. 물론 아니다. 최 회장은 독특한 전략을 썼고, 이게 통했다.
대보건설은 변변한 주택 브랜드가 없다. 민간주택 사업에 적극 뛰어들지 않아서다. 주택경기가 과열된 2000년대 초, 주택건축 사업에 올인한 대부분의 건설사와는 다른 발걸음이었다. 최 회장이라고 유혹이 없었던 건 아니다. 건설부문 임직원은 최 회장을 볼 때마다 “주택사업을 추진하자”고 간청했다. 스스로도 “흔들렸다”고 말했다. “다른 건설사들이 아파트 분양사업으로 수천억원씩 이익을 내는 걸 보면서 흔들렸던 건 사실이에요. 유혹이 세더라고요.(웃음)”
최 회장은 끝내 주택사업을 추진하지 않았다. 이유는 이랬다. “아파트 분양사업을 위해선 많은 돈이 필요하다. 그러면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등을 통해 차입을 해 부지를 매입해야 하고, 아파트를 선(先)시공해야 한다. 그러다 부동산시장이 어려워져 미분양이 속출하면 어쩌겠는가. 회사의 기둥뿌리는 흔들리고, 직원은 길거리에 나앉을 수 있다. 그건 죄를 짓는 거다.” 그는 무차입 경영을 ‘황금알’보다 중시한다. “경주에선 둔하긴 하지만 꾸준한 거북이가 승리한다”는 것이다.
지금 와서 보면 최 회장의 선택은 백 번 옳았다. 건설업계 위기는 사실 건설사 스스로 구덩이를 판 측면이 많다. 주택수요를 감안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사업확장을 꾀한 탓이라는 지적이다. 주택경기가 꺼지면서 미분양→현금 적자→차입금 증가→시행사 대여금 증가→부채비율 급상승 등 악순환이 반복됐다. 주택사업에 전력을 쏟은 건설사들은 2007년 이후 문을 닫거나 심폐소생기를 달았다. ‘예화음인’이라는 브랜드로 폭넓은 인기를 누렸던 한승종합건설은 2007년 무너졌다. 공사 실적 100%가 아파트 등 건축부문이었다. 올 2월 법정관리를 신청한 월드건설도 ‘월드메르디앙’이 핵심 사업이었다.
반대로 안정적 관급공사에 매진한 대보건설은 정부의 신뢰를 한 몸에 받는 기업으로 우뚝 섰다. 최 회장은 “지금껏 준공일을 지키지 못해 위약금을 낸 경우가 단 한번도 없다”며 “지난해 LH공사의 우수 시공업체로 선정됐고,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의 우수 건설업자로 선정되는 등 발주처로부터 기술력과 품질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차입 경영은 박테리아 키우는 것과 같아최 회장의 고집스러운 무차입 경영은 머리로 구상한 게 아니다. 뼈아픈 실패에서 얻은 교훈이다. 시계추를 1970년대 말로 돌려 보자. 당시 일본엔 건설 붐이 일었고, 한국에선 건축재료인 화강석 수출이 인기를 끌었다. 최 회장은 ‘바로 이거다’ 싶어 화강석 생산사업에 도전했다. 쉽지 않았다. 화강석의 질이 생각보다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급해진 최 회장은 더 많은 화강석을 캐려 했고, 은행은 물론 친척·지인에게 빚을 졌다. 하지만 헛수고. 졸지에 그는 빚꾸러기가 됐다. 가족은 뿔뿔이 헤어졌다. 자신의 거처는 종로 단독주택에서 70만원짜리 사글셋방으로 옮겨야 했다. 최 회장은 그때 마음을 고쳐 먹었다. “남의 빚 내서 장사하지 않겠다. 빚은 박테리아처럼 밤낮 가리지 않고 증식한다.” 그의 무차입 경영, 안정경영 철학이 단단한 까닭이다.
이 대목에선 오해가 있을 수 있겠다. 무차입 경영에 안정경영까지 펼치니 ‘최등규는 보수적’이라고. 아니다. 그런 성향이었다면 독서실 주인에 만족했을 거다. 그는 ‘되는 사업’엔 과감하게 투자했다. 되레 공격적 투자를 즐기는 편이다. 몇 가지 조건만 맞는다면 말이다. 1995년 옥산휴게소(경부고속도로)를 M & A(인수합병)하면서 고속도로 휴게시설 운영사업에 뛰어들었다. 1999년엔 화성·옥천·황간휴게소와 주유소를 더 M & A했다. 대보의 그룹 매출이 1000억원을 돌파한 건 이 무렵이다.
여기까진 약과다. 2000년엔 동아그룹의 골프장 서원밸리GC를 인수했고, 2002년엔 한국도로공사 자회사 고속도로정보통신공단을 M & A하는 데 성공했다. 모두 대기업과 경쟁해 따냈다. “서원밸리GC를 인수할 땐 계약금 60억원을 준 바로 다음날 260억원을 추가 지급했어요. 해약을 방지하기 위해서였죠. 고속도로정보통신공단을 M & A할 땐 삼성SDS 등 국내 굴지의 기업과 경쟁했어요. 300억원에 가까운 실탄(자금)을 쏟아부었는데, 2위보다 80억원이나 많은 금액이었어요.” 최 회장의 말이다.
물론 대보의 인수금액은 자기자본이었다. 최 회장은 “M & A에 실패해도 기존 사업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무조건 자기자본으로 도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많은 기업이 자신들의 역량을 뛰어넘는 M & A를 시도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 과잉투자를 하게 되고, 인수자금을 구하기 위해 풋백옵션 등 조건을 다는 겁니다. M & A는 결과가 좋으면 알찬 과실을 얻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회사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어요. 오너는 이런 리스크에 둔감해선 안 됩니다.” 최 회장은 이처럼 안정적 M & A를 추진했지만 그룹 임직원은 반대했다. 대보의 DNA가 흐트러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최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대보의 중심인 건설에 유통·통신·레저를 합치면 ‘종합서비스 업체’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논리는 단순했다. ‘도로에 서비스 DNA를 심자’는 것이었다.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그곳에 있는 휴게시설을 운영하면 시너지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했죠. 통신 역시 고속도로 시스템이 주 사업이었기 때문에 우리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었어요. 골프장도 서비스업을 강화하자는 차원에서 M & A했고요.”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유통 계열사의 매출은 2008년 1125억원에서 2010년 1500억원으로 1.3배가 됐다. 고속도로 휴게소·주유소 총 24곳을 운영하는 대보는 국내 고속도로 유통분야 1위 기업으로 거듭났다. 통신 계열사의 활약은 더 눈부시다. 인수 당시인 2002년 초 직원 183명, 매출 256억원에 불과했던 DB정보통신(옛 고속도로정보통신공단)은 5년 만인 2007년 직원 973명, 매출 1010억원의 알짜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금은 첨단 교통시스템 분야 국내 1위 기업으로 평가 받는다.
서원밸리GC도 마찬가지다. M & A 당시엔 수백억원대 적자에 시달렸지만 인수 3년 만인 2004년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200억원, 당기순이익은 30억원으로 추정된다. 대보로선 M & A를 통해 ‘승자의 찬가’를 부르는 셈이다.
대보가 M & A 효과를 톡톡히 본 덴 또 다른 이유도 있다. PMI(합병 후 통합) 전략을 적절하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M & A로 성장한 기업은 (인수기업과 피인수기업의) 각기 다른 조직문화 때문에 시너지 효과를 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피인수기업의 직원은 사소한 일에도 ‘차별 받는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이를 두고 ‘화학적 결합의 실패’라고 한다.
대보는 달랐다. 기업을 먼저 합병하고 조직문화는 나중에 통합했다. 피인수기업의 조직문화를 먼저 존중하고 이해한 거다. 고속도로정보통신공단을 인수했을 땐 그들의 노조문화를 수용했다. 피인수기업 직원을 구조조정한 적도 없다. 최 회장의 아들인 최정훈 경영혁신팀장은 “조직문화를 서서히 통합하는 전략이 대보와 피인수기업이 화학적으로 결합하는 데 도움을 줬다”며 “대보의 M & A가 성공의 과실을 맺고 있는 덴 PMI 전략이 한몫했다”고 말했다.
최 회장도 이런 전략에 동참했다. 그는 대보 직원이든 피인수기업 직원이든 똑같이 대했다. 고속도로정보통신공단 출신 인사의 말이다. “공단이 인수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보 체육대회가 열렸다. 최 회장이 나타나 일일이 악수하더라. 뻔한 연례행사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직원 대부분의 이름은 물론 특성·성향까지 알고 있었다. 300여 명과 인사하는 데 꼬박 세 시간이 걸렸다. 깜짝 놀랐다. ‘잘해 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최 회장의 이런 스킨십 경영이 M & A 후유증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준 건 분명해 보인다.
성공적인 M & A를 발판으로 대보는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1999년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한 후 2009년까지 연평균 20% 성장을 계속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도 질주를 막지 못했다. 그룹 매출은 2008년 5888억원에서 2009년 7787억원으로 32% 커졌다. 1981년 창업한 후 30년 연속 흑자 기록도 이어가고 있다.
대보는 오늘도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최 회장은 “2011년을 기존 성장 방정식을 재정비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해로 삼겠다”며 “대보가 창업 40주년을 맞는 2020년엔 매출 5조원 시대를 엶과 동시에 종합서비스 그룹의 면모를 갖추겠다”고 말했다. 올해를 대보의 새로운 10년을 만들어갈 출발선으로 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걱정거리가 없지는 않다. 성장세는 계속되지만 성장곡선이 다소 완만해졌다. 지난해 매출 성장률은 9%(2009년 7787억원→2010년 8500억원)에 그쳤다. 2009년 425억원을 기록했던 경상이익은 지난해 252억원으로 30%가량 줄었다. 구멍이 난 곳은 건설이었다. 스리랑카 국제회의장 건설 등 해외사업에서 손실이 났다. 경험 부족이 이유였다. 철근값이 상승하고, 관급공사 경쟁률이 높아져 낙찰가격이 하락한 것도 경상이익 감소에 영향을 끼쳤다.
올해, 대보 새 미래 시작하는 원년최 회장은 “조급해할 필요 없다”며 말을 이었다. “대보는 건설·유통·레저·통신 등 네 축을 기본으로 돌아갑니다. 지난해 건설 계열사의 경상이익이 줄었지만 우리가 잘못했다기보단 외부 요인이 컸죠. 올해는 건설부문이 활력을 찾을 걸로 봅니다.” 그러면서 그는 “대보 직원 한 명 한 명이 한걸음씩 더 뛰면 된다”고 당부했다.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표현도 썼다. 초심을 잃지 말고 도전하자는 소리다.
새 지평을 열기 위해선 막힌 길을 시원하게 뚫어야 한다. 잡초와 가시덤불을 제대로 걷어내지 못하면 전진하기 어렵다. 그만큼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리더가 길을 뚫지 못하면 조직의 행군은 멈출 수밖에 없다. 최 회장은 이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마아철저(磨我鐵杵·쇠를 갈아 절굿공이를 만들 듯 계속해 나를 단련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었다. 대보그룹 직원에게 이야기하듯 말이다. ‘자신을 믿고 따르라’는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읊은 셈이다. 대보 직원들은 이 말을 듣지 않아도 최 회장을 신뢰하는 이가 많을 수도 있겠다. 작은 독서실 주인에서 중견그룹 오너로 성장한 것도 마아철저 덕분이지 않은가.
최등규 회장의 말 속에 숨은 경영철학
■ 망한 기업 오너는 죄인이다
■ 빚은 박테리아다“박테리아는 낮이든 밤이든 번식한다. 빚도 마찬가지다. 한번 쌓이기 시작하면 어느새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남의 돈으로 사업을 하면 기업 위험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익이 났다고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면 ‘빚잔치’에 홀릴 수 있다.”
■ 악바리 같은 프로 근성이 있어야 한다.“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남들보다 한 발, 아니 두 발 더 뛰면 실패할 가능성이 준다. 혹여 실패해도 여한이 남지 않는다.”
■ 손끝에 정성을 모아라“고객은 우리 손끝에 감동하고 실망한다. 요리사가 정성을 다하면 손맛이 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손끝에 정성을 모으자.”
■ 노조, 거추장스럽지 않다“난 무엇도 부끄럽지 않다. 거리낄 것도 없다. 노동조합보다 투명하고 깨끗할 자신이 있다. 고속도로정보통신공단을 인수할 때 노조를 수용한 이유다.”
아들도 예외 없는 현장경영
휴게소에서 김밥 파는 MIT 출신 장남
“무엇이든 현장에 답이 있다.” 최등규 회장의 지론이다. “바닥을 알지 못하면 경영을 할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최 회장이 일주일에 두세 번씩 현장을 방문하는 이유다. 그냥 가 폼만 잡고 오는 게 아니다. 그의 현장방문엔 원칙이 있다. 하나는 불시방문, 다른 하나는 오전 체조를 함께하는 것이다. 건설현장에선 오전 6시30분께 체조를 하는데, 이를 같이하는 것으로 현장경영을 시작한다는 얘기다. 현장에 가면 최 회장의 눈은 더 매서워진다. 허투루 넘기는 법이 거의 없다. 잘못된 관례가 있으면 사진을 찍거나 문서를 작성해 다른 현장에 전달한다. 회장만 그런 게 아니다. 대보의 임원은 주말마다 현장을 꼭 방문한다. 최 회장이 세운 또 하나의 원칙이다.
최 회장의 장남 정훈(32)씨는 대보 경영혁신팀장이다. 한양대 토목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 MIT에서 부동산 금융·개발 석사를 받았다. 사회경험도 많다. 현대건설 견적부, 메릴린치 파이낸셜 자문역 등을 두루 거쳤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최 팀장이지만 대보에 입사한 이상 어쩔 수 없다. 지난해 입사한 그는 건설현장에서 살고 있다.
이번 설에는 화성휴게소 김밥집에서 10시간 근무하면서 김밥을 팔았다. 지난 추석 땐 각 휴게소에 들러 화장실 청소, 음식물 쓰레기 분리수거, 주차관리 등을 도왔다. 최 팀장은 “진정한 경영은 현장에서 시작된다는 게 회장의 강력한 방침”이라며 “이런 현장경영은 대보의 전형적 경영 스타일로 굳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둘째 아들 재훈(31)씨는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윤찬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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