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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T코리아, 실적 악화로 담뱃값 인상?

BAT코리아, 실적 악화로 담뱃값 인상?

최근 일부 브랜드가 담뱃값을 올렸다. 직장인들이 시내 한 건물 비상계단에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다.

물가인상으로 고통 받는 서민이 더 힘들어지게 됐다. 소주와 함께 서민경제를 대표하는 담배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던힐, 켄트, 보그 등의 담배를 판매하는 BAT코리아는 4월 28일 담뱃값을 8% 올렸다.

BAT코리아는 담뱃값 인상 배경으로 경영난을 들었다. 이 회사는 “2005년 대비 담뱃잎 가격이 60%, 인건비가 30%가량 상승하면서 최근 2년간 영업이익이 34% 감소했다”고 밝혔다. 또 “원자재값 상승과 물가인상률에 따른 불가피한 가격 인상”이라고 주장했다. 신제품 가격이 오른 게 아니다. 이미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제품 가격을 2500원에서 2700원으로 올렸다.

BAT코리아의 경영상황은 왜 이렇게 악화됐을까? 담배회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0~30%다. 하지만 공시된 BAT코리아의 재무제표를 보면 2010년 국내 매출이 5870억원이었으나 영업손실이 무려 1105억원에 달했다. 경영악화라는 말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실상은 딴판이라고 지적한다.

엽연초생산협동조합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BAT코리아의 손익계산서를 살펴보면 매출원가가 5801억원으로 매출원가율이 98.8%인데 이는 국내에서 영업하는 다른 담배회사의 매출원가율 40%와 비교해 볼 때 높은 수치”라고 말했다. 숨겨진 비용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2009년에 323억원 현금 배당금융감독원에 제출된 감사보고서에는 BAT코리아가 매년 순매출액의 5%를 상표사용료로 지급한다고 돼 있다. 2001년부터 10년 동안 해외로 나간 상표사용료만 2500억원으로 추산된다.

또 문제가 되는 것이 배당금이다. BAT코리아는 2010년 당기순이익이 122억원이었다. 그런데 이 회사는 당기순이익 전부를 주주에게 현금배당했다. 주당배당률이 무려 2189%다. BAT코리아는 1990년 미국 회사인 브라운앤윌리엄슨홀딩스가 100% 출자해서 만든 회사로 설립 당시 보통주 8000주를 발행했고, 자본금은 5억6000만원이었다. 1주당 액면가는 7만원이다. 그런데 주당배당률이 2189%였으니 7만원짜리 주식 1주만 갖고 있어도 무려 153만원의 현금을 손에 쥐었다는 뜻이다.

BAT코리아는 2009년에는 323억원의 현금을 배당했다. 7만원짜리 1주당 현금 404만원을 배당했다. 이 같은 현금배당은 2006~ 2008년을 제외하고 매년 있었다. 2001년에는 84억원이었고 2002년에는 141억원, 2003년에는 109억원이었다. 2004년과 2005년에도 각각 62억원과 46억원이나 되는 현금을 배당했다. 그리고 이 돈은 모두 지분 100%를 가지고 있는 외국계 지주사로 직행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통 큰 현금배당과 거액의 상표사용료는 모른 척하면서 BAT코리아가 경영상황이 악화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 업계 일각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 담뱃값을 올려서 순이익이 난다면 관행처럼 대주주에게 배당금으로 지급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담배는 특수한 상품이다.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 상당히 낮다. 어느 정도 올라도 소비자는 담배를 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더구나 담뱃값 인상의 고통은 주로 저소득층에로 전가된다. 통계청이 4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담뱃값이 가계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저소득층이 고소득층보다 2배가 넘는다. 지난해 소득 상위 20%에 해당하는 5분위 가구는 소득 대비 담배구입비 비율이 0.5%지만, 최하위인 1분위 가구는 이 비율이 1.2%나 된다. 전체 가구당 소득 대비 담배구입비 비율은 0.8%다.

이뿐만이 아니다. 보건복지부와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소비자물가 산출에 포함되는 498개 물품 가운데 담배의 가중치는 7.4(전체=1000)로 전체 29위를 차지한다. 그래서 담뱃값은 다른 상품의 가격인상보다 소비자물가에 훨씬 더 악영향을 준다. 만약 담뱃값이 2500원에서 500원 인상되면 전체 소비자물가는 무려 0.148%포인트(0.74%×0.2%) 정도 오르게 된다.

한국은행의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5%다. 향후 4년간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치가 3.0%이니 올해 물가상승률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러나 담뱃값이 500원 오른다면 한국은행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3.6%로 올라간다.

한국은행이나 기획재정부는 담뱃값 인상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외국 브랜드 제품을 만드는 제조사는 국내에서 수매되는 엽연초보다 싼 외국 엽연초를 전량 수입해 쓰기 때문에 원가부담이 덜할 것”이라며 경영악화라는 설명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물가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저소득층의 얇은 지갑을 더 가볍게 하고 있는 담뱃값 인상이 서민들에게 달가울 리 없다. 심지어 금연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곳인 한국금연연구소조차 외국계 담배회사의 가격 인상에는 무척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 연구소 측은 4월 21일 논평을 내고 “정부가 세수로 거둬들이는 담배 관련 세금은 국민을 위해 쓰이지만, 정부는 서민물가 상승 등을 고려해 담뱃값 인상을 유보하고 있다”며 “(가격 인상은) 탐욕에 눈이 멀어 흡연자를 우롱하는 짓이고 정부까지 우습게 아는 횡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BAT코리아의 담뱃값 인상 발표가 나오자 국산 담뱃잎 생산업체 모임 한국엽연초생산협동조합중앙회는 4월 26일 대전에 위치한 중앙회 사무실 앞에서 ‘BAT코리아의 담배가격 인상 규탄을 위한 집회’를 열었다. 김운식 엽연초중앙회 기획감사부장은 “2001년뿐만 아니라 2002년에도 BAT코리아 측이 사천에 공장을 세우면서 국산 잎담배 사용 비율을 50%까지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아직까지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국내 담뱃잎을 전량 수매하는 KT&G의 점유율이 점점 떨어지고 BAT코리아와 같은 외국계 담배회사의 점유율이 올라가면 우리에게 손해”라고 밝혔다.



“국산 잎담배 사용 약속 어겨”BAT코리아가 담뱃값을 올려 배당금과 거액의 로열티를 내고도 과연 경영정상화를 할 수 있을지는 시장의 반응에 달려 있다. 그러나 시장 상황은 여의치 않아 보인다. 담배 소비자는 자신이 애용하던 담배의 가격이 인상되면 인상되지 않은 다른 브랜드로 옮겨갈 생각을 갖고 있다는 설문이 나온 것. 사단법인 한국담배판매인회(회장 강희룡)가 리서치 전문기관 패널인사이트에 의뢰해 전국 담배 소비자 34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결과가 그랬다.

설문 결과 담뱃값이 100원 인상될 경우에 전체 소비자의 18%가 다른 브랜드로 바꾸겠다고 응답했다. 200원이 오르면 다른 브랜드로 바꾸겠다는 응답자가 30%, 300원 인상 시에는 45%나 되는 소비자가 가격이 오르지 않은 다른 브랜드로 바꾸겠다고 응답했다.

가격 인상 선봉에 선 BAT코리아 고객의 반응은 더 부정적이었다. 설문 결과 BAT 고객은 담뱃값이 200원 오르면 전체 평균보다 8%포인트나 높은 38%가 다른 브랜드의 담배로 바꿀 생각이 있다고 답했다. 담뱃값이 오르면 다른 제품을 사겠다는 전환 의사를 밝힌 BAT 고객 중 과반수인 51%는 KT&G를 대안으로 꼽았고, 32%는 PM, 16%는 JTI를 선택했다.

이번 담배 가격 인상과 관련해 한국금연연구소 최창목 소장은 “(BAT코리아의) 기습적인 담배 가격 인상이 경쟁업체의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고 주장했다.

한정연 기자 ja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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