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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사령관’ 오바마의 승리

‘최고사령관’ 오바마의 승리

대담한 빈 라덴 사살작전은 대통령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줬지만 이 방아쇠를 당기기까지 그는 인내심을 갖고 준비했다
오바마는 마침내 지미 카터처럼 나약한 대통령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게 됐다.



지난 5월 1일 백악관 서관에 모인 오바마 대통령의 국가안보팀은 1980년 4월 24일의 그 장면을 절로 떠올렸다. 당시 지미 카터 대통령은 이란의 미국 대사관에 억류된 인질 52명을 구출하려고 헬기 8대를 보냈다. 도중에 한 대가 추락했다. 한 대는 회귀했다. 또 한 대는 고장을 일으켰다. 겁에 질린 카터는 더 이상의 피해를 막으려고 작전을 취소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남은 헬기 중 한 대가 수송기와 충돌해 화염을 일으키며 추락했다. 대원 8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작전 실패 후 카터는 임기 끝까지 지지도를 회복하지 못했다.

백악관 서관의 상황실에서 오바마와 관리들은 잠시였지만 과거 카터의 작전 실패가 되풀이되지 않느냐는 아찔한 느낌에 몸을 떨었다.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 팀을 실은 헬기 중 한 대가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 위치한 오사마 빈 라덴 숙소의 높은 콘크리트 담장 뒤로 강하하면서 털털거리더니 엔진이 꺼져버렸다. “그 순간 얼마나 긴장했는지 설명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백악관의 한 관리가 뉴스위크에 말했다. 확실한 출구전략 없이 적의 영역에 들어선 네이비실 대원도 그랬지만 더 안전한 방법을 제쳐두고 그처럼 위험한 임무를 지시한 오바마 대통령 자신은 더했다. 상황실에 모인 관리들의 생각은 한결같았다. ‘아… 실패한 이란 인질구출 작전의 재판(再版)일까?’

지금은 그 작전이 성공했다는 사실을 전 세계가 다 안다. 네이비실 대원들이 무사히 착륙해 표적을 사살했다. 2008년 이래 보수파는 오바마를 카터에게 견주었지만 그런 비교에 종지부를 찍는 멋진 성공이었다. 보수파는 오바마를 ‘제2의 카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워싱턴타임스 보도). 또 “동맹국에는 엄하면서도 적에게는 약한 인물”이라고 불렀다(내셔널 리뷰 보도). 그러나 빈 라덴의 사살로 오바마는 그런 이미지를 일거에 불식하게 됐다. 백악관 테러담당 보좌관 존 브레넌은 “오바마는 근래의 기억에서 어떤 대통령보다 더 담대한 결단을 했다”고 말했다. 이제 문제는 오바마가 카터의 더 큰 운명도 피하게 될지 여부다. 공화당에서 로널드 레이건이 등장해 ‘현재의 최고사령관이 미국을 이끌기엔 너무 심약하다’는 점을 유권자에게 확신시키면서 카터는 인기 없는 단임 대통령이 됐다.

초기 증거는 빈 라덴의 죽음으로 오바마의 지지도가 올라간다는 점을 보여준다. 뉴스위크/데일리 비스트 여론조사에서는 즉각적인 지지도 상승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다른 조사들에 따르면 오바마의 지지도가 분명히 올랐다. 5월 5일 9·11 테러공격의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에서 한 연설로 지지도가 더 오를지도 모른다. 9·11 테러 공격 직후 조지 W 부시는 그곳에서 휴대용 확성기로 대국민 성명을 발표해 자신의 지지도를 끌어올리며 미국을 결집시켰다. 이번에도 그런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아보타바드 작전의 성공만으론 미국인에게 새로운 목표 의식을 심어주거나 오바마의 재선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한두 주만 지나면 유권자들은 다시 실업과 국가 부채를 걱정하게 된다. 그 때문에 빈 라덴의 제거는 오바마가 국가 담론을 다시 주도하고 2012년 대선 준비 태세를 강화하면서 국가를 단합시킬 절호의 기회다. 그 기회를 잘 잡는다면, 그리고 새로운 테러공격이 게임을 다시 바꿔놓지만 않는다면, 빈 라덴의 죽음은 오바마의 대통령직에서 결정적인 순간이 될지 모른다. “역사를 보면 대통령들에겐 중대한 순간이 있다. 트루먼의 베를린 공수작전(1948년 소련의 봉쇄 당시 서베를린 지역에 생필품 공수를 강행했다), 부시의 9·11 직후 대응이 그 예”라고 역사학자 더글러스 브링클리가 말했다. “미국인들은 늘 오바마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가 진짜 최고사령관인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이제 그들은 분명히 안다.”

오바마에게 주어진 새로운 기회를 이해하려면 그의 국가안보관의 형성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오바마는 이상적인 언급에도 불구하고 2008년 대선에 출마하면서 냉정한 현실주의자로 진화했다. 9·11을 전후한 기간에 그는 극단주의를 야기한 이슬람적 분노와 경제·사회적 조건의 뿌리에 관한 일관된 견해를 형성했다. 2002년 이라크 전쟁에 반대한 유명한 연설에서 말했듯이 그는 일반적으로 전쟁에 반대하지는 않으며 단지 확실한 국익을 증진시키지 않는 ‘멍청한 전쟁’을 반대했을 뿐이다.

9·11 당시 조지 W 부시의 테러담당 조정관을 지냈고 2007년 중반부터 오바마의 자문역을 맡은 리처드 클라크는 오바마의 지적인 엄격함이 중요한 자산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아울러 그는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대선 정치가 그의 신중한 태도에 우호적이지 않으리라는 점도 알았다. 그래서 테러퇴치 의지를 둘러싼 불가피한 공격에서 그를 보호하려면 아주 두꺼운 정치 방패막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오바마가 가진 소프트파워/하드파워 개념을 테러전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융합하는 일이었다. 어렵긴 하지만 비상한 접근법이었다.

오바마는 2007년 8월 1일 워싱턴 DC의 우드로 윌슨 센터 연설에서 대(對)알카에다 전쟁을 어떻게 재조정할지 밝히기로 결심했다. 그 며칠 전 클라크와 랜드 비어스(민주·공화당 행정부에서 30년의 경험을 쌓은 대테러 전문가)가 오바마를 만나 그의 거시적 목표를 설정했다.

첫째, 그는 선거운동 기간에 일어날지 모르는 어떤 테러공격도 전면에서 맞서야 했다. 세계적인 안보자문회사를 운영하는 클라크는 첩보원들과 대테러 소식통을 통해 수시로 위협 환경을 측정했다. 그는 테러공격을 받을 확률이 높으며 오바마 선거운동에 재앙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우리는 오바마에게 그런 사태가 발생하면 공식적으로 전임 행정부의 책임으로 돌려야 한다고 확실히 다짐했다”고 클라크가 말했다. “부시 행정부의 행동과 계속되는 테러위협 사이의 인과관계를 지적해주기를 우리는 원했다.”

둘째, 오바마는 군사력을 신중하면서도 자신 있게 사용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줘야 했다. 오바마는 무력과시의 필요성을 이해했고 받아들였다. 동시에 오바마는 ‘제거와 포획’에만 기대는 전략은 승리하더라도 그 대가가 너무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연설에서 자신의 목표가 “극단주의에 물을 대는 높아가는 샘물을 말라붙게 만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급진주의 이슬람 학교에 맞서 빈곤 감소와 교육에 수십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오바마의 연설에는 가치와 경제 지원이라는 부드러운 이야기 이면에 강철 같은 단단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연설의 중간쯤 오바마는 목소리를 높이며 부시 행정부를 비난했다. 대테러전에서 무기력하다는 비판이었다. 그러면서 보기 드물게 남성다움을 과시하며 “중요한 테러표적에 대해 행동할 수 있는 정보가 있고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이 행동을 거부할 때는 우리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2005년 초 부시는 아프가니스탄 접경지역 북와지리스탄에서 알카에다의 2인자 아이만 알 자와히리 등의 체포를 목표로 대담한 작전을 계획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작전을 취소했다. 부분적으론 부시가 파키스탄 정권의 신경을 건드리기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달리 오바마는 파키스탄 안에서 독자적 군사작전을 약속했다. 파키스탄은 아무리 경미하더라도 주권 침해로 간주되는 행위를 하면 여론이 악화되고 극단주의의 입지가 강화되기 쉬운 나라다. 오바마의 말은 처음엔 부시-럼즈펠드 각본을 그대로 본뜬 듯했다. 손을 부들부들 떠는 외교관들을 제쳐두고 직접 테러리스트와 싸우는 전략을 가리킨다. 그러나 오바마는 부시를 능가하려는 시도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파키스탄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적을 패퇴시킬 미국의 능력을 약화하는 믿지 못할 정권이라고 판단했다. 오바마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다시 집중하는 노력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파키스탄에 압력을 가해 현지 테러리스트 피난처를 소탕하라고 단호히 나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제 아보타바드 작전의 정치적 파급효과는 오바마 대통령직을 재규정할 힘을 지녔다. 가장 확실한 효과는 오바마의 대테러전 방식의 정당성을 입증했다는 점이다. 이제 공화당은 오바마가 나약하고 순진하며 우유부단한 인도주의자라고 주장할 명분을 잃었다. 공화당 후보들은 수십 년간 그런 식으로 민주당 후보를 공격했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어 한다. 하지만 2012년 대선에서 다른 후보자들이 오바마의 최고사령관 역할을 의심하는 상황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 문제를 꺼내면 오바마는 조지 W 부시가 8년 동안에도 못 이룬 일을 2년 만에 해냈다는 사실을 유권자에게 주지시킬 소중한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아주 훌륭한 반격이 된다.

그러나 아보타바드 작전 성공의 효과가 오바마의 좀 더 넓은 대통령 리더십 접근법까지 그 정당성을 입증해줄지는 아직은 덜 확실하다. 늘 오바마는 부시가 그랬듯이 ‘임무 완료!’라고 외치는 쇼보다는 계산적이고 기술적이며 목표지향적인 집요함을 강조했다. 뉴트 깅리치와 팀 폴렌티 같은 2012년 공화당 대선후보 유망주가 최근 오바마-카터 비교하기를 다시 거론하지만 그들의 문제점은 오바마가 이뤄낸 실제적 결과를 무시한다는 사실이다. 의료의 국민개보험, 월스트리트 개혁, 경기부양책, 이라크전 종료, 그리고 이제 빈 라덴 제거까지 착실히 일을 해냈다.

폴렌티를 비롯한 공화당 대선 예비후보들은 오바마의 정책엔 반대하지만 오바마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대부분 얻는 재주를 가졌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부동층은 정치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따라서 그들이 대통령의 냉철한 리더십 방식을 좋아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하지만 그가 빈 라덴을 제거했다는 사실을 고맙게 여기고 기억할 가능성은 크다. 무소속 유권자에게 아보타바드가 단순한 행운이 아니라 리더십의 직접적인 산물이라는 점을 강조할수록 자신의 나머지 실적을 홍보하기가 더 쉬워진다. “빈 라덴 제거에서 오바마가 결단한 방식은 국내 문제에서 그가 결정을 내리는 방식과 흡사하다”고 역사학자 도리스 컨스 굿윈이 말했다. “정보를 수집하고 토론을 거친 뒤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한다.”

빈 라덴의 제거가 오바마에게 가져다주는 다른 중요한 이득은 정치 기후가 달라져 앞으로 그의 경력을 빛낼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공화당이 인신공격의 반사적 행동을 어쩔 수 없이 몇 주만 억누른다면 오바마는 그동안 도널드 트럼프에게 집중된 국가적 이목을 자신의 ‘균형 잡힌’ 예산적자 탈출 계획으로 돌리기가 가능해진다. 그러면 제 방식으로 담론을 규정하면서 어느 누구보다 많은 정치적 자본을 가지고서 예컨대 국가부채 한도 협상에 나설 수 있다.

이제 빈 라덴이 사라졌기 때문에 오바마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루려 했던 일을 완수했으며 철수할 때가 됐다고 주장할 만하다. 전쟁에서 ‘승리’한 대통령은 유권자의 표로 징계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 아보타바드는 이달 하반기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예정된 정상회담을 앞두고 오바마에게 “일시적인 지지의 파도를 타고 팔레스타인과 진지한 협상을 하도록 네타냐후에게 압력을 가할 기회”를 제공할지도 모른다고 텔아비브의 일간지 하레츠가 5월 3일 보도했다. 적어도 시간은 오바마의 편이다. 5월 초는 여러 지명도 높은 공화당 인사가 2012년 대선출마 의사를 밝히겠다고 약속한 시점이다. 아보타바드의 후광 효과 때문에 잠재적 출마자가 더 줄어들지 모른다.

빈 라덴 사살의 정치적 이득이 지지도의 신속한 반등을 넘어서긴 하지만 오바마는 장기적인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41대 대통령 조지 H W 부시도 오바마처럼 임기 중반을 넘긴 시점에 걸프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 결과 부시의 지지도는 89%로 치솟았고 논평가들은 그가 1992년 대선에서 승리하리라 예측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그때도 미국은 경기침체에서 막 벗어나려던 시점이었고 실업률이 높았다. 민주당 후보 빌 클린턴과 무소속 후보 로스 페로의 끊임없는 공격으로 유권자들은 부시가 경제엔 별 뜻이 없다고 판단했다(실제로 그는 외교가 더 “재미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러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 국내 문제에는 무관심한 와스프(WASP: 백인 앵글로색슨계 신교도)로 인식됐다.

이제 오바마가 자신과 미국을 위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뭘까? 41대 대통령 부시나 그의 아들 43대 대통령 부시가 자신들의 전쟁 승리 뒤에 하지 못했던 일이다. 미국인들을 가장 골치 아픈 문제인 구조적인 실업과 장기 부채에 그의 아보타바드 결단 같은 합리적이고 인내심 있고 근면함으로 접근하도록 설득하는 일을 말한다. 아보타바드 작전 다음날 백악관 동관에서 양당 의원들과 만찬을 하면서 오바마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요약한 짧은 즉흥연설을 했다. “어젯밤 우리는 9·11 직후 미국이 보였던 결집력을 다시 경험했습니다. 오늘밤 그 결집력과 자긍심의 일부를 우리가 지금 직면한 많은 문제를 극복하는 데 사용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 일은 테러리스트 한 명의 사살보다 훨씬 더 훌륭한 업적이다. 전도 유망한 대통령을 더욱 위대한 인물로 만들어줄지 모른다.

[필자는 뉴스위크 부편집장 출신으로 오바마 대통령과 테러전을 주제로 책을 집필 중이다.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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