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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래 성도GL 대표>> 센트럴파크 뉴욕필 공연이 부러웠다

김상래 성도GL 대표>> 센트럴파크 뉴욕필 공연이 부러웠다

복합 예술관 ‘공간 퍼플’ 앞 공연장에 서 있는 김상래 대표.

인쇄 관련 솔루션 업체 성도GL. 전체 직원 60명이 지난해 약 5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한국 메세나협의회가 처음으로 중소기업 예술지원 매칭펀드를 맺은 곳도 이곳이다. 성도GL은 매칭펀드를 통해 2007년부터 1년에 두 번씩 파주 헤이리에서 ‘헤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연다.

이뿐이 아니다. 그동안의 문화·예술경영 성과를 인정받아 기업혁신대상 국무총리상(2005년), 사회책임경영 부문 중소기업청장표창(2007년), 중소기업 문화대상(2009년)을 수상했다.

성도GL의 문화·예술경영이 성공한 비결은 뭘까. 지난 6월 8일 오전 경기도 파주에 있는 예술마을 헤이리를 찾았다. 헤이리는 파주의 압구정동이라 불리는 곳이다. 숲 길을 따라 멋진 카페와 미술관이 즐비하다. 예술마을답게 박찬욱·김기덕 감독과 배병우 사진작가, 최만리 조각가 등 유명 예술인들이 살고 있다.

헤이리 중심에 들어서자 독특한 디자인의 보라색 건물이 눈에 띈다. 성도GL이 2008년 세운 복합예술관 ‘공간 퍼플(Purple)’이다. 이곳에서 성도GL의 김상래(53) 대표를 만났다. 그는 2002년부터 아버지 뒤를 이어 회사를 이끌고 있다.

김 대표는 금융전문가다. 씨티은행을 시작으로 한국 다우케미칼 재무담당을 거쳐 다우케미칼 아시아·태평양지역 CFO를 맡았다. 부친 건강이 나빠지면서 96년 장남인 김 대표를 회사로 불러들였다. 이후 6년 동안 경영수업을 받고 CEO가 됐다.

그는 공간 퍼플에 대한 소개부터 시작했다. “색상이 지닌 의미가 큽니다. 빨간색과 파란색이 합쳐지면 보라색이 되잖아요. 파란색은 하늘의 신성함을 나타내고, 빨간색은 인간의 화합을 표현한다고 해요. 하늘과 인간의 조화가 보라색의 의미라고 합니다. 로마 시대부터 제사장은 보라색 옷을 입잖아요. 저는 이곳을 예술과 대중의 만남이 풍요롭게 이뤄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예술관 이름을 지을 때도 신중을 기했다. 문화·예술경영이 성도GL의 핵심가치이기 때문. 그는 취임하자마자 며칠 동안 직원들과 회의를 했다. 회사의 새 가치관을 정립하는 과제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던 것.

1974년 설립된 회사는 37년 동안 그래픽 아트 업계 1위를 지켜왔다. 그래픽 아트란 문자, 그림, 서체, 색상 등을 종합적으로 관리해 최적의 인쇄판이 만들어지도록 지원하는 모든 공정을 의미한다. 그는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혁신이 필요하다고 봤다. “우리가 하는 인쇄·출판이 궁극적으로 인류문화 발전에 공헌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앞으로 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죠. 즉 문화경영을 통해 직원과 고객이 행복하고, 나아가 지역사회가 발전하는 걸 회사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헤이리에 복합 예술관 세워우선 마케팅을 확 바꿨다. 당시 인쇄업계에선 음주가무 접대가 흔했다. 김 대표는 고객사에 술 대신 뮤지컬 등 공연 티켓을 선물했다. 관행에 익숙했던 고객사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처음엔 공연 티켓의 절반가량을 날렸다. 티켓만 받고 공연 당일 오지 않은 것. 김 대표는 포기하지 않고 문화 접대를 계속 밀어붙였다. 외국인 고객이 찾아오면 국악 프로그램을 보여주고 난타, 점프 등 한국 유명 뮤지컬을 함께 관람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김 대표의 문화 접대 취지에 동감하는 고객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가족 동반이나 부부 초청 행사를 많이 하자 고객사 대표의 부인들이 좋아했다. 일부 고객사 대표 부인들은 성도GL 홈페이지에 감사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직원도 마찬가지. 회식 대신 1년에 네 차례 계절별로 직원과 가족을 초청해 뮤지컬, 오페라, 연극 등을 함께 감상한다. 공연 관람뿐 아니라 예술의전당 수석 큐레이터를 초청해 오페라와 뮤지컬에 관련된 다양한 강연을 듣게 했다.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먼저 하는 일이 있다. 김 대표와 함께 예술의전당에 콘서트를 보러 간다. 작년에는 ‘11시 콘서트’를 다녀왔다. 매달 첫째 주 목요일 오전 11시에 열리는 콘서트다. 송년회도 LG아트센터에서 열었다. 뮤지컬 ‘빌리엘리어트’ 공연에 직원과 직원 가족들을 초청했다. 직원과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 것.

1984년 김 대표가 씨티은행 미국 본사에서 일할 때다. 점심 무렵 미국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에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 손에는 와인, 다른 한 손에는 담요를 든 편안한 복장이었다. 인근 빌딩에서 근무하던 회사원도 넥타이를 풀고 공원으로 향했다. 수만 명의 뉴요커가 모인 곳에서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인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공연이 열렸다. 게다가 무료 공연이었다. 공원을 둘러싼 울창한 나무와 그 위로 솟은 빌딩 숲에서 사람들은 자유롭게 앉아 공연을 즐겼다. 알고 보니 씨티은행이 후원하는 행사였다. 그는 이 공연을 보면서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느꼈다.

이런 감동을 직원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2007년부터 시작한 헤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대표적이다. 한국메세나협의회의 중소기업 매칭펀드를 통해 지원하고 있다. 매년 두 번 파주 헤이리에서 무료 공연을 갖는다. 역시 격식이 없는 자유로운 공연이다. 공연 때마다 성도GL 전 직원이 가족과 함께 참석한다. 지금은 헤이리의 유명 행사로 자리 잡았다.

2008년엔 헤이리에 총 면적 1990㎡(약 602평) 규모로 복합 예술관 ‘공간 퍼플’을 세웠다. 헤이리에선 가장 규모가 크다. 헤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이 열리는 곳이 바로 공간 퍼플의 야외 전시장이다. 다양한 공연을 할 수 있도록 일부러 앞마당을 넓게 만들었다. 평소엔 마을 주민들의 쉼터였다가 공연장으로 바뀌는 것이다. 2층 건물로 1층은 미술관이다. 특히 한국 현대미술의 뿌리를 찾는 주제로 여러 차례 전시회를 열었다. 인문학과 불교철학의 근간인 추사 김정희의 작품이 시작이었다.

새로운 시도로 미술계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지금도 ‘추사와 함께’라는 제목으로 8월 31일까지 한국 현대미술전이 열리고 있다. 추사 김정희 예술세계를 통해 곽인식, 서세옥, 이우환 등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들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전시회다.

2층은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카페다. 이 건물에 숨겨진 공간이 하나 더 있다. 지하 1층 공연장이다. 이곳에서도 다양한 연주회가 열린다. 지난 4월엔 유영욱 피아니스트 연주회를 열었다. 이날 행사엔 구자준 LIG손해보험 회장, 홍석조 보광훼미리마트 회장 등 20여 명의 CEO가 참석했다.



직원 생일엔 친필 편지직원들에 대한 김 대표의 애정은 각별하다. 그는 직원들에게 친필 편지를 자주 보낸다. 직원 생일에는 책을 선물한다. 직원이 받고 싶은 책을 신청하면 여기에 축하 메시지를 적어 보낸다. 자신뿐 아니라 전 직원이 돌아가며 한마디씩 쓰도록 한다. 결혼 기념일에는 잊지 않고 배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축하인사를 한다. 직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배우자에게 전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직원이 만족해야 기업이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곳에선 자신에게 주어진 휴가를 무조건 다 써야 한다. 보통 직원들 휴가가 1년에 3~4주가량 된다. 1주일 붙여서 쉬는 것은 물론이고, 2주를 연달아 쉬도록 한다. 휴가 일정도 본인 자유다. “휴가를 가려면 적어도 6개월 전부터 준비를 해야겠죠. 설레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을 합니다. 긴 휴가 동안 푹 쉬고 나오면 다음 휴가를 계획하며 다시 열심히 일하는 거죠. 일과 여가가 균형이 잡히면 일에 대한 만족도 그만큼 높다고 봅니다.”

성도GL의 이직률은 1~2%대다. 동종 업계 평균 이직률이 30%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낮은 수치다.

요즘 김 대표는 신사업에 관심이 많다. 점차 종이 인쇄물 시장이 줄고 태블릿PC 등 IT기기가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역시 디지털 시대에 맞는 신규사업 엠북(MBook) 솔루션에 주력하고 있다. 인쇄 환경을 기존 종이에서 IT기기로 옮겨온 것. 이미 태블릿 PC용 콘텐트 제작 프로그램 개발에 성공했다. 명칭은 하모니(harmony)다. 예컨대 아이패드용 잡지를 만들 수 있는 편집 프로그램이다. 이 제품은 미국 컴퓨터 소프트웨어사 어도비가 만든 ‘스위트’보다 기능 면에서는 더 뛰어나다.

김 대표는 순수 국내 기술로 제작된 하모니가 국내 사용자에게 더욱 편리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특히 제작 과정이 간편하다. 기존에는 아이패드에 잡지와 책을 발행하려면 반드시 프로그램 개발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콘텐트 제작 업체가 편집 디자인 툴로 디자인을 짜면 그 위에 개발자가 사진 슬라이드, 영상과 음원 등을 얹어 애플의 앱스토어에 등록했다. 하모니는 개발자 도움 없이 에디터와 디자이너가 한번에 만들 수 있다. 프로그램 가격도 스위트보다 저렴하게 내놓을 계획이다.

김 대표는 신규사업에 힘입어 매출이 지난해보다 30% 이상 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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