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꼭 필요할 때만 지갑을 열어라
[Trend] 꼭 필요할 때만 지갑을 열어라

대한민국은 지금 로봇들의 전쟁에 열광하고 있다. 영화 트랜스포머 이야기다. 엉성한 스토리 전개와 황당한 설정 등이란 혹평이 줄을 잇고 있지만 지구의 운명을 건 외계 로봇의 전쟁은 연일 흥행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로봇들의 전쟁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나면 마법사의 전쟁이 또다시 펼쳐질 것 같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계를 사로잡았던 해리포터의 마지막 편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런 환상적인 전쟁을 간접 경험하러 극장으로 향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역사는 말 그대로 전쟁사였다. 지금도 다양한 형태의 피 말리는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지금 경험하고 있는 전쟁은 총알과 폭탄이 난무하는 피의 전쟁이 아니라 기업과 기업이 생존을 놓고 벌이는 기업전쟁, 개발업자와 환경단체가 벌이는 환경전쟁, 기업가와 노동자가 맞붙는 노사전쟁 등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직접 경험하는 가장 치열한 전쟁은 아마 우리의 지갑에 있는 돈을 놓고 공격하는 기업과 그걸 방어하는 우리와의 지갑전쟁이다. 상품을 생산해 팔아야 하는 기업은 다양한 전략으로 우리의 지갑을 공격한다. 소비자에게 그 물건이 필요한지 아닌지, 소비자의 경제적 형편에 적합한지 아닌지는 고려사항이 아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갑을 열어 상품을 사도록 유혹한다.
스토리텔링, 쇼핑의 과학으로 유혹지갑을 방어해야 하는 우리는 자신에게 꼭 필요한 물건만 사고 나머지 소득은 지켜야 하지만 매번 무차별적인 공격에 지고 만다. 그래서 매월 통장에 입금되는 월급은 통장을 스쳐 지나가는 ‘사이버 머니’가 되고 기업과 카드사의 이윤은 늘어간다. 매일매일 벌어지고 있는 이 전쟁터에서 어떻게 하면 지갑을 지킬 수 있을까? 적을 알아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법. 먼저 파는 자의 공격 전략에 대해 알아보고 지갑을 지키는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과잉 공급의 시대에 품질만으로 승부할 수 없는 걸 아는 기업은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 수립과 판매기술 향상에 온 힘을 기울여 왔다. 핵심적인 전략 세 가지만 정리해 보자. 기업의 첫째 공격 전략은 스토리텔링이다. 요즈음 광고에는 상품의 스펙이 나열되지 않는다. 좋은 재료와 우수한 기술로 만들어진 훌륭한 상품은 이제 기본이다. 그래서 상품의 효용이 아니라 스토리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또 하나의 가족’ ‘사람을 향합니다’ ‘피로회복제는 약국에 있습니다’ 등 제품명과 기업명이 아니라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 속으로 소비자를 초대한다. 멋진 아파트에서 우아하게 사는 여배우의 광고를 보면서 그곳에 살면 마치 그 여배우가 보여주는 모습이 자신의 모습이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에 자신도 모르게 아파트 브랜드를 이야기한다. 사막을 건너고 암벽을 오르는 자동차를 보면서 SUV를 모는 강한 남자인 자신을 상상하고, 커피타임을 이야기하는 우아한 여배우의 모습은 엄마와 아내가 아닌 여자를 꿈꾸게 한다. 영화보다 재미있는 광고가 속삭이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오라는 유혹이 우리의 지갑을 열게 만든다.
둘째 공격 전략은 심리전이다. 한정 세트판매, 다시 오지 않을 기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라는 멘트를 날리는 홈쇼핑의 광고는 이번 기회를 놓치면 합리적이지 않은 소비자, 좋은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어리석은 소비자가 될 것 같은 두려움에 빠져들게 한다. 소셜커머스, 공동구매 등도 가격의 합리성으로 포장한 채 우리의 불안한 심리를 공격한다. ‘물건이 다 팔리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이미 지갑은 열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셋째는 쇼핑의 과학이다. 백화점, 할인점은 고객의 동선과 구매스타일을 철저하게 분석한다. 각 상품의 종류와 대상 고객에 따라 어떤 상품을 어디에 배치해야 구매계획이 없이 들어온 사람까지 유혹할 수 있는지 철저하게 연구하고 그 결과에 따라 상품을 배치한다. 파코 언더힐의 저서 『쇼핑의 과학』을 보면 소비자의 지갑을 열려는 유통업계의 노력이 얼마나 집요하고 치밀한지를 알 수 있다. 그들은 상품을 구매하는 고객들의 60~70%가 충동구매라는 걸 알고 ‘신체가 허락하는 한 가장 자연스럽고 편안한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고객의 편의를 제공해 최종적으로 구매로 이뤄지기까지 과정을 정교하게 유도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실천한다.
무차별적인 공격에 맞서 지갑을 지키려면 적절한 방어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마음이 가는 대로, 손이 가는 대로 지갑을 열기에는 사야 할 상품이 너무 많고 지갑에 든 돈은 한정돼 있어서다. 첫째 방어 전략은 이성의 극대화다.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스토리텔링과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는 절판 마케팅의 협박(?)에 맞서서 이성이 차분하게 평가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 내가 사야 할 것 같은 그 상품이 과연 나에게 필요한지, 비용은 감당할 수 있는지 결정하기 전에 감성을 차단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정도 제품이 이 정도 가격이라면 사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라는 질문에 사지 않을 이유를 찾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상품을 꼭 사야 할 이유가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심리적인 공격에는 심리적인 방어가 필요한 것이다.
둘째 방어 전략은 발 들여놓지 않기다. 백화점이나 아웃렛매장에 갔을 때 ‘한번 입어 보세요’라는 판매원의 말로 시작된 쇼핑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냥 한번 입어 보는 거야 뭐 어때’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행동이 지갑을 여는 것으로 끝나곤 한다. 일단 한발을 들여놓으면 쉽게 빠져나오기 힘들다. 발 들여놓기를 유혹하는 최고의 멘트는 ‘언제든지 반품 가능합니다’라는 말이다. ‘일단 사용해 보시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반품해 드립니다’라는 말에 약하다. 꼭 사야 할 물건은 아니지만 저 정도 상품에 저 가격이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한번 사용해 보면 상품을 잘못 살지도 모르는 위험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생길 때, 홈쇼핑의 쇼 호스트는 ‘다시 오기 힘든 기회니까 일단 신청하시고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얼마든지 반품하셔도 됩니다’라고 말한다. 보험설계사도 가입을 고민하는 고객에게 ‘청약철회 기간 중 얼마든지 철회가 가능하니 일단 사인하시고 더 고민해 보세요’라고 말한다. 그들은 고민을 뒤로 미루어 놓으면 반품해야 할 특별한 하자가 없으면 반품하지 못하는 우리의 심리를 잘 알고 있다. 불필요한 ‘일관성의 함정’에 자주 빠지는 우리는 일단 한발을 들여놓으면 그걸 빼기 위해 엄청난 노력과 결단을 해야 한다.
카드를 버리고 현금을 써라셋째 방어 전략은 쇼핑의 과학 무력화다. 매장을 방문하는 사람의 구매패턴을 분석하고 심리를 파악해 충동구매를 자극하는 ‘쇼핑의 과학’으로 무장된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면 정말 많은 상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처음 사려고 했던 상품만 구매하기에는 유혹이 너무 강하다.
매번 갈 때마다 계획에 없던 지출을 하고, 지갑에 들어 있는 카드명세표를 꺼내 들고 후회한 경험이 많을 것이다. 쇼핑의 과학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백화점이나 마트에 갈 때 오늘 구입하려고 계획했던 상품만 구입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쇼핑목록을 작성해 목록에 있는 상품만 구입하고, 아이쇼핑은 쇼핑의 과학에 확실하게 지는 방법임을 알고 쇼핑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는 게 좋다. 적당한 현금만 가지고 가는 것도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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