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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저가항공 신칸센과 레이스

일본 저가항공 신칸센과 레이스

피치 에비에이션의 이노우에 신이치(가운데) CEO는 5월 항공기 디자인과 승무원 유니폼을 발표했다.

일본 항공사 전일본공수(ANA)가 출자한 저가항공사 피치 에비에이션(Peach Aviation)이 내년 봄 첫 운항을 착착 준비하고 있다.

피치의 최대·유일의 무기는 가격이다. 일본 저가항공 업계에서는 스카이마크(Skymark) 항공이 먼저 ANA 등 대형 항공사의 반값 수준 운임으로 영업하고 있다. 하지만 이노우에 신이치 피치 에비에이션 CEO는 “고객을 더 깜짝 놀라게 하려면 어느 정도 요금이 적당할지 현재 모색 중”이라고 말했다. 스카이마크를 따라 대형 항공사 요금의 반값 이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제까지 없던 초저가항공 서비스가 등장하면 교통시장의 세력판도는 어떻게 변하게 될까.



내년 5월 오사카~서울 취항 예정유럽·미국 등지에서는 20~30년 전 저가항공사가 나타났지만 아시아에서는 2000년대 급성장한 말레이시아의 에어아시아(AirAsia)가 대표적이다. 에어아시아는 ‘전설’을 남겼다. 편도 몇천 엔이라는 싼 운임 덕분에 장거리 이동을 하지 않거나 해도 장거리 버스를 이용하던 사람들이 처음으로 항공기를 타도록 만들었다. 항공시장의 파이도 커졌다.

그럼 피치의 경우는 어떨까. 피치는 벌써 간사이 국제공항을 거점으로 내년 3월부터 오사카~후쿠오카, 오사카~삿포로 노선에 취항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먼저 이들 노선의 기존 교통기관별 점유율을 살펴보자. 오사카~후쿠오카 노선은 신칸센이 약 66%로 단독 1위를 점하고 있고 항공기가 약 23%로 2위다. 반대로 오사카~삿포로 노선은 항공기가 약 90%, 철도가 약 7%를 차지한다. 2개 노선 모두 야간 고속버스나 페리선의 점유율은 이상하게 적다.

이제 높은 점유율을 가진 항공기와 신칸센의 경쟁관계를 정리해 보자. 중요한 요소는 운임과 이동시간이다. 시장의 경험법칙으로는 신칸센의 이동시간이 항공기의 2.5배 이내라면 소비자는 신칸센을 선택한다고 한다. 운임이 상대적으로 싼 이유도 있지만 약 10분의 배차 간격, 기차역의 좋은 접근성 등 신칸센의 편리함이 항공기를 현격히 능가하기 때문에 이동시간이 2.5배 이내라면 시간이 더 걸려도 신칸센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더 많다는 원리다. 실제로 신칸센의 점유율이 높은 오사카~후쿠오카 노선은 신칸센의 이동시간이 항공기의 약 2배다.

피치는 이런 오사카~후쿠오카 노선을 대형 항공사의 반값 이하 운임으로 치고 들어갈 예정이다. 이 노선의 기존 항공운임은 2만1900엔, 신칸센은 1만4690엔이지만 피치의 경우 1만 엔 이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칸센보다 확실히 싸질 것이다. 그런데도 이동시간은 신칸센의 절반이다. ‘피치는 신칸센 고객을 빼앗을 전략인가’라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이노우에 CEO는 “우리 회사가 신칸센의 명확한 대항마가 되는 것은 무리”라고 강조한다. “항공기는 2시간에 1편이라든가 1일 몇 편이라는 운항 편수 때문에 특히 비즈니스 이용 등에서는 경쟁력이 낮다. 또 16량 편성으로 약 1300명이 승차할 수 있는 신칸센에 비해 우리 회사는 좌석을 다 채워도 1기 180명이다. 규모가 전혀 다르다.”

선배 격인 스카이마크는 이미 고베~도쿄 노선 등에서 신칸센보다 싼 운임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노우에 CEO의 예상을 뒷받침하듯 “육체적으로 편안한 이동을 선호하는 사람이나 공항 대기시간에 일을 하려는 사람들은 스카이마크를 선호하지만 운송규모의 한계도 있어 신칸센 수요를 전면적으로 끌어오지는 못한다”고 익명의 업계 관계자는 지적한다.

신칸센에서 고객을 빼앗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면 피치의 목표는 무엇일까. 이노우에 CEO는 이렇게 답한다.

“움직이지 않던 사람이 움직이는 잠재적 수요를 발굴하고 싶다. 결과적으로 교통시장 전체의 파이를 키울 수 있었으면 한다.”

이노우에 CEO의 설명에 따르면, 예를 들어 고령층은 야간 고속버스를 타는 것도 힘들어한다. 오사카~후쿠오카 노선을 버스요금인 편도 5000엔 정도로 항공기로 갈 수 있다면 고령층이 육체적으로 편안하게 후쿠오카에 사는 손자를 만나러 가기에 적당하다는 계산이다. 거점인 간사이권에는 2000만 명이 넘는 배후지 인구가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잠재 수요는 크다. 이렇게 주판을 튕기고 있다.

피치의 일본 마케팅 전략은 에어아시아의 성공담을 방불케 하지만 솔직히 말해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부분도 많다.

그러나 피치의 타깃은 일본만이 아니다. 항공수요가 현저히 확대되고 있는 극동아시아 시장도 노리고 있다. 내년 5월에는 오사카~서울 노선을 취항할 예정이고, 머지않아 중국 각 도시에도 날개를 펼칠 생각이다. 피치라는 브랜드명이나 분홍색이라는 파격적 기체 컬러를 선택한 이유도 실은 이 때문이다.

이노우에 CEO는 “피치의 모토는 큐트&쿨(cute & cool)이다. 아키하바라로 대표되는 일본의 새로운 문화와 정보를 계속 보여주겠다. 동남아시아와 달리 극동아시아에서는 아직 저가항공사들이 도토리 키 재기로, 성숙한 강적이 없다. 마음껏 튀어 이 브랜드명으로 다른 회사와 차별화하고 가격 경쟁력을 갖춰 나간다면 일정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항공사 비용분석에 자주 쓰이는 지표로 CASK(cost of available seat-kilometer·발행좌석-㎞당 가격)가 있다. 항공사의 생산량은 발행한 항공권에 대응하는 좌석 수로 표현된다. 그 수식은 ‘보유 항공기 수×1기당 좌석 수×연간 운항횟수’다. 다만 이 수식으로는 단거리·장거리 관계없이 1좌석당 생산량이 동일하게 나오기 때문에 각 항공편의 운항거리와 좌석 수를 곱한 발행좌석-㎞라는 수치를 사용한다. CASK는 총비용을 이 발행좌석-㎞로 나눈 값이다. ‘1좌석을 1㎞ 운항하는 데 얼마나 드는지’를 나타내며, 유닛 가격(unit cost)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CASK를 구성하는 각 비용항목의 비율은 대형 항공사나 미국의 오랜 저가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 항공이나 별로 차이가 없다. 다만 대형 항공사는 판매비나 광고선전비 등 ‘기타비용’과 감가상각비의 비율이 높다. 역으로 대형 항공사와 저가항공사의 CASK의 비용항목 비율은 비슷해도 모든 항목에서 비용액수는 대형 항공사보다 저가항공사가 낮다. 실은 여기에 저가항공사 저가구조의 비밀이 숨어 있다.



영국 저가항공 전문가 고문 영입그 해답은 CASK를 계산할 때 분모로 쓰이는 발행좌석-㎞ 값이 대형 항공사보다 저가항공사 쪽이 더 크다는 사실이다. 보유 항공기 수가 동일하다는 조건에서 발행좌석-㎞ 값이 커지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항공기 1대당 좌석 수를 늘리면 된다. 둘째로 연간 운항횟수·운항거리를 늘리면 된다. 첫째 방법은 좌석 간격이 좁고 최대 가능 좌석 수에 꽉 차게 고객을 채워 넣는 저가항공 서비스의 특징과 직결된다. 둘째 방법은 공장으로 말하면 가동률을 높이는 식으로, ‘공항 정박시간을 얼마나 줄이고, 운항시간을 얼마나 늘리는가’ 하는 문제다.

이노우에 CEO는 “예를 들어 ANA는 평균 1기 1일 7시간밖에 비행하지 않지만 피치는 고객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운항시간표를 희생하더라도 공항에서의 회항시간을 적극적으로 줄여 평균 1기 1일 비행시간을 10~12시간으로 늘려야 한다. 물론 (보유한 A320 항공기의) 최대 가능 좌석 수 180석을 꽉 채울 것”이라고 말한다.

피치는 스카이마크의 8.6엔을 밑도는 7~7.5엔 정도의 CASK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영국 저가항공을 대표하는 라이언에어(Ryanair)의 전 회장 패트릭 머피를 고문으로 영입, 항공기 가동률을 가장 중시하는 라이언에어의 DNA를 흡수하는 데 열심이다.

초저가의 이면에는 기존 대형 항공사와는 다른 저가항공사의 편리함이나 서비스가 있다. 피치의 한 수를 주목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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