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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 ‘공익 vs 사익’ 기획소송의 두 얼굴

[Law] ‘공익 vs 사익’ 기획소송의 두 얼굴

아이폰 위치정보 수집 집단소송을 추진 중인 경남 창원시의 법무법인 미래로 변호사들이 7월 18일 경남변호사회관에서 간담회를 열고 이번 집단소송 수임료 일부를 공익을 위해 출연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재철 미래로 대표변호사, 김형석·김상군 변호사.

창원의 한 변호사가 애플이 불법적으로 아이폰 가입자의 위치정보를 수집했다는 이유로 위자료를 청구했다. 애플은 위 지급명령신청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법원은 위자료 100만원의 지급명령을 고지했고 이것이 그대로 확정됐다. 위 변호사가 소속된 법무법인은 인터넷을 통해 소송인단을 모집했다. 2만 명이 넘는 시민이 동일한 피해를 보았다며 참여신청을 했다. 아이폰 위치정보 수집 집단소송을 추진 중인 경남 창원시의 법무법인 미래로 변호사들은 7월 18일 경남변호사회관에서 간담회를 열고 이번 집단소송 수임료 일부를 공익을 위해 출연하겠다는 입장을 밝힐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요즘 들어 부쩍 기획소송, 집단소송, 공익소송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대개의 경우 소송을 의뢰하려는 사람이 변호사를 찾아가 사건을 맡기는 게 보통이다. 이와 달리 변호사 스스로 어떤 사안에 대한 소송을 기획하고 광고 등을 통해 원고가 될 만한 의뢰인을 모아 제기하는 게 기획소송이다. 대개 다수 당사자(단체)가 관여되는 사안이기 때문에 기획소송은 대부분 다수 당사자 소송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일부에서는 기획소송을 집단소송이나 공익소송과 혼동하기도 하지만 이들은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가지면서도 의미와 성격이 많이 다르다. 집단소송이란 집단의 대표 당사자가 소송을 수행하고 그 판결의 효력을 집단이 공유하는 소송제도를 말한다. 어느 피해자가 가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해 승소하면 다른 피해자들은 별도 소송을 하지 않아도 그 판결로 피해를 구제 받을 수 있는 제도다. 따라서 집단소송이 기획소송으로 제기되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기획소송이 반드시 집단소송의 형태를 취하는 건 아니다.

공익소송이란 개인의 권리 구제 차원이나 일반 분쟁의 해결 수단으로는 적절하지 않은 사회집단적 권리를 찾아내고 기획해 집단적인 이익으로 전환하는 소송을 말한다.마찬가지로 공익소송이 기획소송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지만 반드시 기획소송과 연관된다고 할 수는 없다.

변호사가 기획소송을 하면 우선 착수금을 받고 승소하면 배상액의 일부를 성공보수로 받는다. 변호사의 숫자가 대폭 증가해 변호사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사건 수임이 어려워지는 현실이다. 이에 변호사가 소극적으로 사무실에 앉아 당사자가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소송을 기획해 직접 사건 현장과 당사자를 찾아가는 사례가 늘었다. 당사자 수가 많기 때문에 착수금 규모를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소송에서 이기면 배상액의 일부를 받게 되는 성공보수가 수십억원에 이르기도 해서 꽤 매력적이다.



성공보수 수입억원에 이르기도기획소송은 한번 승소하면 전국적으로 비슷한 유형의 피해자를 원고로 모집해 계속 소송을 낼 수도 있기 때문에 척박한 여건의 변호사에게 매력적인 고정수입이 되기도 한다. 인터넷장터 옥션의 회원, GS칼텍스의 고객 등 1000만 명이 넘는 사람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건이 있었다. 여러 변호사가 인터넷을 통해 수만 명의 피해자를 모아 기획소송의 형태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 보급이 일반화되고 공동주택 품질에 대한 관심과 기대감이 커지면서 하자 보수와 관련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하자 기획소송이 전국적으로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송전선 부지의 무단이용료를 구하는 소송 역시 대표적 기획소송의 형태를 띤다.

이런 사건에서 승소가 예상되는 경우 착수금 없이 승소한 후 성공보수를 받는 방법으로 수임이 이뤄지기 한다. 땅 주인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게 없어 쉽게 소송에 응하게 되고 송전선이 지나는 땅의 등기부등본을 보고 토지 주인을 찾아 소송을 권유하는 사례까지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기획소송은 항공기 소음에 따른 손해배상, 택시기사가 정유회사들의 담합을 이유로 제기한 손해배상, 심지어 유방 성형수술 부작용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소송까지 대상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경우 각종 서류 준비 및 비용이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법적 지식은 모자라게 마련이어서 개인적으로 피해액이 미미하거나 피해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 소송을 포기해 버리고, 피해를 감수하는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가해자가 정부나 기업 등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들의 잘못으로 손해를 보고도 혼자서는 어찌할 엄두를 못 내는 힘없는 개인에게 소액의 착수금만으로 전문 변호사가 나서서 손해배상을 받아주는 기획소송 제도야말로 힘없는 개인의 권리구제에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기획소송이 장기적으로 사회 전체나 기업에도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정부가 법을 준수하고 국민을 위한 행정을 하도록 독려하는 효과도 있다. 기업이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완벽한 제품을 만들고, 법을 지키도록 유도해 경쟁력 향상에 도움을 줘 궁극적으로 경제성장에 보탬이 될 수도 있다.

이와 달리 기획소송의 어두운 면도 있다. 소송 만능 풍조를 조장하고 사회의 단합과 건전성을 해쳐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우려도 있다. 예컨대 하자 기획소송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주된 목적이 하자 보수 자체보다 금전적 이익을 추구하는 식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하자 보수를 통한 안전성 확보나 품질 향상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게 되고, 그 폐해는 고스란히 입주자와 건설업체의 부담이 된다.

기획소송은 우리 경제에 큰 타격을 주기도 한다. 기획소송을 통한 다수 당사자와 소송은 멀쩡한 기업을 망하게 할 정도로 큰 타격을 입히기도 한다. 재계에서 기획소송, 집단소송이 기업을 망하게 하는 제도라고 매도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하자 기획소송의 확산은 공동주택의 분양가 상승을 초래하고, 송전선 주변 주민의 기획소송에서 한국전력이 부담해야 할 배상액이 고스란히 전기 요금에 반영되는 구조여서 일반 시민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자기 이익만을 위해 기획소송을 남용하는 사례 탓에 일부 변호사가 비난 받기도 한다. 다수 당사자가 참여하는 기획소송의 특성상 의뢰인으로서는 수임료에 관해 별 부담이 없다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이를 악용해 소송에 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피해자를 부추기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어쩌다 승소하기라도 하면 성공보수가 상당하기 때문에 일부 변호사의 경우 소송비용을 대납해주는 경우까지 등장해 물의를 빚기도 한다.



사회 갈등 유발하는 요인 되기도애플 상대의 기획소송도 현재 승소가 보장돼 있는 상태는 아니다. 최종 법원인 대법원의 판결이 아니라 지방법원에 제기한 지급명령신청에 대해 애플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지급명령이 확정됐을 뿐이다. 애플이 소송 절차에서 본격적인 대응에 나설 경우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

시민들이 실생활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경우 피해자를 찾아내 소송을 기획하고 이를 통해 법과 제도 및 관행을 고쳐 나가는 건 기획소송의 긍정적인 면이고 매우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다. 변호사 업계로서도 변호사가 직접 현장과 피해 당사자를 찾아가 위로하고 법적 해결 방법까지 제시함으로써 그들이 개별 배상을 받고 나아가 불합리한 제도의 개선까지 이뤄내는 바람직한 기획소송의 정착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다만 소송 남발로 국가와 기업이 부당한 피해를 보고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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