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ity : Port-au-Prince] 생존자들의 도시 포르토프랭스
[The City : Port-au-Prince] 생존자들의 도시 포르토프랭스
EDWIDGE DANTICAT 6월 23일 성체 축일의 아침, 아이티를 방문했다. 태양은 일찍 떴고, 수도 포르토프랭스 전역에서 찬송가가 울려 퍼졌다. 하얗고 긴 복사(服事) 의복을 갖춰 입은 소년들과 영성체 예복을 입은 소녀들은 로자리오 묵주를 손가락 사이로 굴리며 행렬을 이루었다. 부모님과 함께 걸어가는 이들의 얼굴은 햇살 속에서 반짝반짝 빛났다.
성체 축일 행렬은 고통을 겪었던 그리스도의 성체를 기리기 위함이지만, 많은 아이티 주민들은 이미 자신의 고통 속에 허덕이고 있다. 행렬은 난민촌 옆도 지나갔다. 난민촌에서 어머니들은 ‘집’이라 부르는 다 낡아빠진 방수포와 천막 앞에서 아이들을 목욕시키고 있었다. 아이티 대지진이 발생한 2010년 1월 12일 이후 처음으로 포르토프랭스를 방문한 여섯살배기 딸 미라는 도시에 도착한 후 수없이 했던 말을 되풀이하며 할머니와 함께 행렬에 합류했다.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을 줄 알았어요.”
원래는 주민 20만 명을 계획하고 도시를 설계했지만, 현재 200만 명 이상이 살고 있는 포르토프랭스는 여섯 살짜리 아이의 눈에도 명백히 보이는 사실을 끝없이 상기시킨다. 미라의 말대로, 모든 건물이 파괴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죽지도 않았다. 정치적 격동부터 화재, 허리케인, 대지진까지, 도시를 파괴하려고 작정한 듯한 각종 재난이 포르토프랭스를 덮쳤다. 그러나 도시는 살아남아 질긴 목숨을 이어간다. 지진으로 기울어진 주택이나 건물 파편 사이에서는 잡초가 자라기 시작하고, 난민 캠프는 그 자체로 작은 도시가 됐다. 이들을 보면 도시는 오래전 활동을 멈추고 죽음을 맞이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포르토프랭스는 숨을 멈추지 않고 꿋꿋이 버텨간다.
공화국이라 불리는 이 도시는 생존자들의 도시다. 도시 대로의 벽면에는 그림이 가득하다. 특정 정치인을 비방하거나 찬양하는 낙서로, 누구에게 돈을 받았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교통 정체가 극심해 지름길과 뒷길이 발달한 도시이며, 휴대전화의 도시이기도 하다. 포르토프랭스에서는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다 갑자기 뚝 끊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누군가 선불로 지급한 통화량을 다 써버렸기 때문이다.
포르토프랭스는 기업가 도시이자, 시장에 나온 물건만큼 많은 상인이 있는 시장의 도시다. 자기가 파는 약품의 가치를 선전하는 약장수 음악과 원색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대중 교통수단 ‘탭탭’에서 귀청이 터질 듯 울려 나오는 콘파 음악으로 가득 찬 도시다. 또한, 각종 스티로폼 음식 포장재와 버려진 플라스틱이 수로를 막는 도시이며, 끊임없이 소각되는 쓰레기와 먼지가 가라앉은 나무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 포르토프랭스는 여진의 도시다. 다른 사람과 함께 앉아 있을 때, 상대방은 느꼈는데 나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던 기억이 남아 그와 비슷한 여진을 때때로 느끼는 도시다. 여진이 오고 다른 사람들이 두려움에 차서 창문 밖으로 뛰쳐나가는 모습을 볼 때면 공포를 함께 느끼는 도시이기도 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포르토프랭스는 독자와 작가의 도시다. 성체 축일에 개최되는 도서전 ‘책에 대한 열정(Livres en Folie)’에는 수천 명이 한때 사탕수수 농장이었던 행사장에 모여 135명의 아이티 작가들과 만남을 가진다. 이번 도서전에는 한때 음악가였던 아이티 대통령과 경찰서장, 작가로 활동하는 상원의원, 현 대통령에 관한 글을 쓴 전 육군 대령 등이 참석했다.
육군 대령의 책에 친필 서명을 해줄 때에는 뭐라고 써줘야 할까?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크리올어로 “작가로 새롭게 성공하시길 빕니다”라고 쓰면 된다.
25살 된 사촌 패트는 80만 명의 다른 아이티 주민과 함께 콜레라에 걸려 포르토프랭스 병원에 사흘간 입원했다. 퇴원 후 패트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친구 넬과 함께 도서전을 묵묵히 돌아보며 생각에 잠겼다. 넬은 다른 많은 아이티 사람과 마찬가지로 대지진 후 수도를 바꿔야 한다고 믿지만 그렇게 될 거라고 확신하지는 않는다.
“포르토프랭스는 세계에서 가장 파괴하기 힘든 도시 중 하나예요”라고 넬은 말했다. “우리 모두가 죽어 없어진 후에도 포르토프랭스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겁니다.”
[‘이민자 예술가의 활동상(Create Dangerously: The Immigrant Artist at Work)’을 저술한 필자는 최근 아이티 포르토프랭스를 방문해 ‘책에 대한 열정’ 도서전에 참석했다. 이 글은 필자가 생애 첫 12년을 보내고 이후에도 자주 방문했던 자신의 고향에 바치는 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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