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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 콘서트’ 에서 음악경영 배워보세요

‘토크 콘서트’ 에서 음악경영 배워보세요

김남윤 음악감독(가운데)이 W 필하모닉 단원들을 소개했다. (왼쪽부터) 더블베이스 최계환, 바이올린 방그린, 악장이자 바이올리니스트 정우균, 첼로 손정훈.

“오케스트라 공연을 한 번이라도 보신 분 손들어 보세요.”

김남윤(58) W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은 몇 달 전 공연에서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150여 명 가운데 25명이 손을 들었다. 질문을 바꿨다. “TV, 인터넷에서라도 오케스트라를 접하신 분은요?” 다시 비슷한 수의 손이 올라왔다. 이날 관객은 40~50대의 나름대로 잘나간다는 대기업 팀장들이었다. 맨 앞줄에서 손을 든 사장이 뒤를 돌아보고 고개를 숙였다. 한국 오케스트라의 현주소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날 관객의 반응은 뜨거웠다. 김 감독의 오케스트라 대중화 전략이 제대로 먹힌 덕이다. 상임지휘자를 겸하고 있는 김 감독은 연주에 앞서 관객들에게 오보에, 트롬본, 호른, 콘트라베이스 등 악기를 소개했다. 이름과 소리를 제대로 알고 들어보라는 뜻에서다.

“문턱(음악의 질)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다리(관객의 수준)를 높이 들 수 있게 해 문턱을 넘어오게 하는 게 대중화 아닌가요?”

오케스트라 공연은 고급문화에 속한다. 높은 수준을 갖추는 것은 관객의 몫으로 여겨졌다. 김 감독은 “관객의 수준을 높이는 일은 음악인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양에서는 어릴 때부터 클래식을 들으니 관심이 있고 친근하죠. 한국에서 오케스트라가 활성화된 건 2000년부터입니다. 편하게 즐기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요.”

김 감독은 2008년 1월 W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미국에서 27년 만에 돌아와서다. 그는 어렸을 때 성악을 하고 싶었지만 지휘에 더 소질이 있다는 얘기에 중앙대 작곡과에 입학했다(당시 한국에는 지휘과가 없었다). 졸업 후 고등학교 음악교사로 안정된 삶을 누렸지만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답답했다고 한다. 결국 미국으로 떠나 뉴저지 필하모닉 상임지휘자로 다시 한국을 찾았을 때 가능성을 봤다.

“서울, 강릉, 김해, 포항 같은 도시에서 공연하며 참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했어요. 또 젊은 부모들의 교육열이 높아 클래식이 되겠다 싶었죠.”

미국에서 1년 동안 사전작업을 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쉰을 훌쩍 넘긴 나이에 시작하는 것인 만큼 잘하고 싶었다. “민간 오케스트라로는 처음으로 단원들에게 4대 보험, 월급을 지급했습니다. 단원이 자주 바뀌면 안 된다는 생각이 확고했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이 미국 가더니 복권에 당첨됐느냐고 물어볼 정도로 흔치 않은 일이었어요.”

처음에는 아는 사람이 없어 추천으로만 단원을 뽑아 교체가 잦았지만 오디션을 본 이후로 안정됐다. 현재 상근단원이 70명에 이른다. 연중 공연 횟수가 90회가 넘고, 적자를 이유로 민간 오케스트라들이 피하는 정기 연주회도 연 20회나 치른다. “창단 공연을 크게 하고 야심 차게 시작했는데 그해 글로벌 경제위기가 왔어요. 좀 나아지나 싶더니 다음해에는 신종플루가 퍼져 공연사업이 난항이었죠. 참담했습니다.”

관객을 모으기 위해 ‘3인 3색’ ‘교향곡 시리즈’ 같은 테마가 있는 공연을 기획했다. 3인 3색은 뮤지컬 배우 홍지민, 국악인 오정해, 재즈 보컬리스트 웅산이 함께하는 W 필하모닉의 ‘효자 상품’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관객과 본격적으로 소통한 것은 ‘김남윤의 오케스트라 토크 콘서트’를 하면서부터다. 딱딱한 강의와 다르게 참석자들과 대화하며 콘서트를 즐기는 형식이다. 김 감독은 이 콘서트에서 30~40대 직장인에게는 음악으로 은퇴 후 인생을 즐기는 법을, 기업 CEO에게는 직원들의 사기와 생산성을 높이는 음악경영을, 아이를 둔 부모에게는 악기를 이용한 인성교육법을 전했다. 콘서트가 끝난 자리에서 다음달에 3회 더 진행해 달라는 요청을 받을 정도로 그의 새로운 시도는 인기를 끌고 있다. 클래식계의 곱지 않은 시선도 따랐지만 오케스트라 대중화를 향한 그의 의지는 확고하다.

“격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정해진 바탕을 벗어나진 않아요. 말하자면 팝을 클래식 악기로 더 듣기 좋게 연주하는 것이죠. 미국 보스턴심포니와 보스턴팝스는 같은 팀이지만 연주곡에 따라 이름을 다르게 써요. 뉴욕필하모닉은 1년에 한 달은 재즈만 연주합니다. 오케스트라도 재미있고 볼거리가 많다는 것을 알려야 해요.” 김 감독은 관객의 90%가 오케스트라 매니어가 될 때까지 악기 소개를 계속할 생각이다. 언제 그렇게 되느냐고? 이미 변화를 느끼고 있다. W 필하모닉의 다음 공연은 9월 19일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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