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대기업의 이색사업 봇물
[Trend] 대기업의 이색사업 봇물
1970~90년대 공중전화는 아날로그 시대의 상징으로 군림했다. 황색 다이알식 공중전화기와 DDD(다이얼식) 공중전화기는 서민의 최고 통신수단이었다. 공중전화의 활용도는 무선호출기(일명 삐삐)가 출현한 1990년대 더 늘어났다. 삐삐 내용을 확인하려는 사람들로 공중전화 부스는 늘 북적였다. 공중전화 관리업체 KT링커스는 덩달아 호황을 누렸다. KT링커스는 KT의 100% 자회사다. 1999년 공중전화기는 56만대에 달했다. 회사 매출은 한때 7000억원까지 치솟았다.
상조업계 진출한 그린손해보험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휴대전화 보급률이 늘어나면서 공중전화기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50만대가 넘었던 공중전화기는 현재 8만대에 불과하다. 공중전화 이용률은 2% 남짓이다. KT링커스에는 “왜 우리 집 앞에 공중전화부스를 설치했느냐”는 민원까지 접수된다. 공중전화부스에서 취객이 소리를 지르거나 잠을 자는 사례가 많아서다. KT링커스는 2007년 하반기부터 문자서비스형 공중전화, 휴대전화 배터리 충전이 가능한 공중전화 등을 출시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1조원을 바라보던 회사 매출은 2010년 800억원대로 감소했다. 인력 구조조정도 이어졌다. 1990년대 말 3000명에 달했던 직원 중 3분의 2가 회사를 떠났다.
KT링커스는 2010년 4월 반전카드를 뽑았다. 프리미엄 캡슐커피와 커피머신 판매·렌탈사업이었다. 2010년 2월 CEO에 임명된 명성호 KT링커스 전 사장은 한 언론에서 “원두커피를 KT의 조직망을 이용해 팔면 승산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KT링커스가 도입한 브랜드는 10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이탈리아의 ‘라바짜’였다. KT링커스는 KT 올레 인터넷과 올레TV를 동시 가입하는 고객에게 캡슐커피머신을 무료로 설치하는 공동 마케팅을 벌여 지난해 보급대수를 2만여대로 늘렸다. 회사 관계자는 “캡슐커피와 커피머신 판매·유통사업으로 지난해 90억원의 매출을 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런 새로운 비즈니스로 KT링커스는 위기에서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대기업이나 대기업 자회사의 이색사업 진출이 가속화하고 있다.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것이다. 조선업체 대우조선해양의 자회사 대우조선해양E & R은 2010년 금광개발업체 순신개발(현 대우조선SMC)을 인수해 금광사업에 진출했다. 대우조선SMC는 전남 해남의 은산모이산광산에서 금광을 개발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300㎏ 이상의 금이 생산된다. 국내 금 생산량의 95%에 해당한다. 대우조선SMC는 지난해 200억원의 매출을 올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 매출(116억원)보다 2배 가량 많다.
담배회사 KT & G는 최근 화장품 사업으로 재미를 보고 있다. KT & G는 2010년 11월 화장품업체 KGC라이프앤진을 설립했고 지난해 6월 소망화장품의 지분 60%를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소망화장품은 남성용 화장품 브랜드 ‘꽃을 든 남자’로 유명한 업체다. 지난해 9월 첫번째 홍삼화장품 브랜드 ‘랑(LLang)’을 출시한 KGC라이프앤진은 10월에는 프리미엄 홍삼화장품 ‘동인비’를 론칭했다. 한국인삼공사의 6년근 홍삼원료와 112년 홍삼 제조 노하우를 접목시킨 화장품이다. KGC라이프앤진의 실적은 예상보다 좋다. 자회사 소망화장품은 지난해 3분기까지 8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메릴린치는 “KGC라이프앤진의 화장품·건강식품 사업이 2012년 198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상조업에 진출한 보험사도 있다. 그린손해보험은 지난해 7월 우리상조개발의 지분을 인수해 계열사 ‘그린우리상조’를 출범했다. 보험사가 상조업에 진출한 것은 그린손해보험이 최초다. 우리상조개발은 고객 선수금 부문에서 상위 10위권에 해당하는 유력 상조업체다. 그린손해보험의 상조업 진출을 이끈 주인공은 이광수 그린우리상조 대표다. 그는 삼성화재에서 20여년 동안 마케팅·총무업무를 담당했다. 그린손해보험 관계자는 “포화상태에 진입한 보험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며 “상조업은 그린손해보험의 또 다른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와 KT 본연의 업종과 다른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LG전자는 ‘수(水) 처리’라는 낯선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공공 수처리 운영관리 전문 업체인 대우엔텍(현 하이엔텍)을 인수하기도 했다. 수 처리 사업은 해수 담수·민물 정수·용수 재이용·폐수 처리 등을 포함한다. LG전자는 향후 10년간 5000억원 이상을 투자해 2020년까지 글로벌 수 처리 시장에서 7조원의 매출을 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수 처리 기술의 핵심 소재인 ‘멤브레인’도 자체 개발할 방침이다.
이동통신업체 KT는 최근 태양광 발전사업에 진출했다. 2008년 서울 중랑구 신내사옥과 경기도 화성송신소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해 내부용으로 전기를 만들었는데, 이를 사업화한 것이다. 첫 사업으로 강원도 강릉시 KT강릉수신소 부지에 발전용량 423㎾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했다. KT는 이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연간 53만㎾h의 전기를 주요 발전회사에 판매해 연 2억여원의 수익을 창출할 계획이다.
소상공인 업종 진출은 부정적대기업의 이색사업 진출은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부분도 있다. 무분별한 신규사업 진출로 기존 업체와 경쟁이 치열해지는 사례가 많다. 특히 이런 사업은 대부분 중소기업이 영위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최근 대기업이 제빵·커피 등 프랜차이즈 업계에 진출한 것을 두고 논란이 제기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정옥임 한나라당 의원은 올 1월 떡볶이를 비롯한 분식사업과 제빵업·세탁업 등 영세 소상공인이 주로 영위하는 업종에 대기업의 진출을 금지하는 내용의 ‘소기업 및 소상공인 지원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지경부 장관이 ‘소상공인적합업종심의위원회’를 신설하고, 이 위원회를 통해 ‘소상공인적합업종’을 지정하도록 했다. 대기업과 그 계열사에 대해서는 소상공인 적합업종 사업의 인수·개시·확장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도록 규정했다.
정 의원은 “대기업과 대기업 계열·자회사가 막대한 자본력을 등에 업고 분식사업과 소상공인 업종에 무분별하게 진입하거나 사업을 확장해 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며 “개정안이 통과되면 대기업·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과 소상공인간 공생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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