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f] 드라이버는 쇼, 퍼팅은 돈
[Golf] 드라이버는 쇼, 퍼팅은 돈
‘믿을 수 없는 김인경의 30cm 미스(Incredible, Kim’s 1-foot miss)!’ 4월 2일(한국시간) 골프계에서는 단연 김인경(24·하나금융그룹)이 화제였다. 김인경은 이날 미국 캘리포니아주 란초 미라지 미션힐스 골프장에서 열린 LPGA 투어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 마지막 18번홀(파5)에서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을 가져다 줄 30cm 퍼트를 놓쳤다. 김인경은 16, 17번 두 개의 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아내며 1타 차 단독 선두로 18번홀 그린에 올랐다. 버디 퍼팅이 홀에 못 미쳤지만 공은 홀 30cm에 멈춰서며 우승을 눈 앞에 뒀다.
웬만해선 실수하기 어려운 30cm의 우승 퍼트였지만 김인경은 그것을 놓치고 말았다. 그는 공이 홀로 향했다가 다시 튀어나오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그만 소스라치게 놀랬다. “악~”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 순간 모든 주변 사물은 정지해버린 듯했다. 결국 김인경은 보기를 한 뒤 연장전 끝에 유선영(26·정관장)에게 승리를 빼앗겼다.
야후골프의 칼럼니스트 제이 버스비는 “우리는 스포츠 역사에서 매우 거북했던 순간을 ‘최악’이라고 과장하여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점은 자주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골프 역사상 ‘최악의 실수’라는데 논란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고 논평했다.
골프 역사상 최악의 실수과연 메이저 대회에서 놓쳐 버린 최단 거리의 퍼트는 몇 cm일까. 1983년 잉글랜드 사우스포트의 로열 버크데일 골프장에서 열린 디오픈 챔피언십(브리티시오픈)에서 헤일 어윈(미국)에게 닥친 불행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3라운드 14번홀(파3·198야드). 어윈은 이 홀에서 불과 2인치(5cm) 파 퍼팅을 앞 뒀다. 툭 치는 것만으로도 파를 기록할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방심하는 바람에 그만 그 공은 공중으로 붕 떠오르면서 홀을 벗어났다. 스코어 카드엔 파가 아니라 보기라고 적혔다. 이 여파는 다음 홀에서 또 보기로 이어졌다. 이 5cm 퍼트는 결국 우승자의 얼굴까지 바꿔놓았다. 24시간 뒤 최종 4라운드에서 우승한 선수는 톰 왓슨(미국)이었고 어윈은 왓슨에게 1타를 뒤져 공동 2위에 만족했다. 이 때문에 어윈은 역대 메이저 대회에서 놓쳐 버린 최단 거리의 퍼트 1위란 불명예를 안았다.
그러나 버스비의 말처럼 이제 그 불명예는 김인경의 몫이 됐다. 홀까지의 퍼팅 거리만 놓고 보면 어윈의 5cm가 김인경의 30cm보다 6배는 더 짧다. 하지만 어윈의 퍼팅 실수는 3라운드 상황이었고, 김인경은 마지막 72번째 홀에서 우승을 결정짓는 퍼팅이었다는 점이다. 그 충격과 패배는 어윈의 자괴감을 뛰어 넘기에 충분하고도 또 남는다.
미국 오클라호마의 서던힐스 골프장에서 열렸던 2001 US오픈 때도 이런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스튜어트 싱크(미국)와 레티프 구센(남아공)은 대회 최종 4라운드에서 5언더파 공동 선두로 18번홀(파4)에서 들어섰다. 2위 그룹인 마크 브룩스(미국)에게 1타 앞선 채였다. 생애 첫 메이저 대회, 그것도 US오픈 우승이란 압박감은 싱크와 구센의 심장을 요동치게 했고 이성을 잃게 했다.
구센은 2온에 성공해 3.7m의 버디 퍼팅을 남겨놓았지만 싱크는 2온에 실패한 뒤 어프로치 샷으로 3온을 했다. 싱크에게는 정말 지옥이 따로 없었다. 첫 파 퍼팅은 홀을 46cm(18인치)나 지나치고 말았다. 싱크는 이제 기회가 날아가버렸다는 생각에 허둥대며 퍼트를 했다. 그런데 46cm의 보기 퍼트마저 홀을 외면했다. 싱크는 더블보기를 하는 바람에 3언더파 단독 3위에 그쳤다.
주사위는 구센에게 넘어갔다. 아뿔싸~. 이게 웬일인가. 3.7m 거리에서 첫 퍼팅을 한 뒤 싱크와 똑같은 46cm의 파 퍼트를 남겨놓고 있던 구센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그 퍼팅만 성공하면 PGA 투어 생애 첫 승을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에서 달성하려는 그 순간 구센의 퍼팅은 홀로 들어가지 않았다. 보기. 18번홀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수많은 갤러리들의 탄성이 순식간에 구센의 귓전을 때렸다. 그래도 구센에게는 그 다음날 웃을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구센은 브룩스와 4언더파 공동선두로 동타를 이룬 뒤 18홀 연장전에서 승리해 우승트로피를 끝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냈다. 싱크의 이날 저주는 8년만인 2009년 브리티시오픈 우승으로 풀렸다.
흔히 사람들은 골프 역사상 최악의 역전패로 다음 세 선수를 꼽는다. 1966년 US오픈에서 7타 차이의 우위를 날려버린 아놀드 파머(미국), 1996년 마스터스에서 6타를 앞서다 역전패한 그레그 노먼(호주)의 몰락, 그리고 1999년 브리티시오픈의 마지막 홀에서 트리플보기를 하는 바람에 연장전 끝에 우승을 날려버린 장 방 드 벨드(프랑스)다. J골프의 임경빈 해설위원은 “당시 생중계 방송을 하면서 받은 느낌은 김인경 선수가 너무 긴장을 많이 한 것처럼 보였다”며 “너무 짧은 퍼트인데 미세하지만 홀을 먼저 쳐다 본 게 화근이었다”고 분석했다.
한마디로 머리가 들렸다(헤드 업)는 얘기다. 1m 이내의 짧은 퍼팅 때 공이 오른쪽으로 밀리면서 빠지는 경우는 십중팔구는 궁금한 나머지 머리를 들고 홀을 쳐다 볼 때 발생한다. 퍼팅 스트로크의 임팩트 때 머리가 들리게 되면 퍼터의 진행 방향에 제동이 걸리면서 클럽 페이스가 열리기 때문에 공은 오른쪽으로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최경주(42·SK텔레콤)는 “퍼팅 때는 머리가 들리지 않았더라도 눈의 시선과 마음이 공보다 먼저 홀 쪽으로 향하게 되면 헤드 업과 똑같은 결과를 낳는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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