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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Ⅰ] 직업이 CEO인 사람들
말 잘 부리는 기수는 바꾸지 않는다

[Special ReportⅠ] 직업이 CEO인 사람들
말 잘 부리는 기수는 바꾸지 않는다

김원배(55) 동아제약 대표는 제약업계에서 보기 드문 연구소장 출신 CEO다. 2002년 동아제약의 효자제품 중 하나인 ‘스티렌’을 개발한 주인공이 그다. 위점막보호제 스티렌은 지난해 88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매출 기준으로 박카스(1501억원)에 이어 사내 2위다. 이를 통해 사업역량을 인정받은 그는 2005년 동아제약 사령탑에 올랐다. 올해로 7년째 CEO직을 수행하고 있다.

그간 동아제약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 동아제약이 제네릭(복제약)에서 신약 중심 회사로 변신한 것은 김 대표의 공이라는 평가가 많다.

올해 3월 동아제약 주주총회가 열렸다. 김 대표의 4선 여부가 화두로 떠올랐다. 3월 주총은 김 대표가 ‘장수CEO’의 반열에 오르느냐가 달린 심판대였다. 많은 사람이 김 대표를 두고 “신약을 개발하고 회사를 키우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김 대표의 4선을 장담하지 못했다. CEO 자리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건 이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주총 결과 김 대표는 4선 연임에 성공했다. 별 탈이 없다면 2015년까지 동아제약의 CEO는 ‘김원배’다. 그가 제약업계 최초로 10년 넘게 CEO직을 수행할 가능성도 커졌다. 김 대표의 어깨 역시 그만큼 무거워졌다. 동아제약의 더 큰 변신을 이끌어야 할 뿐만 아니라 실적개선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성과가 좋지 않으면 CEO직을 내놔야 할 지 몰라서다.



국내 30대 기업 CEO 재임기간 3.2년10년 이상 CEO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장수CEO’가 되는 길은 가시밭의 연속이다. 때가 되면 주주들의 재신임을 받아야 한다. 윗사람은 물론 아랫사람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좋은 실적은 기본이다. CEO의 인생을 ‘파리목숨’에 비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LG경제연구원의 분석을 보면 국내 30대 기업 CEO의 평균 재임기간(2010년 기준)은 고작 3.2년이다. 글로벌 기업이라고 다르지 않다. 글로벌 150대 기업의 CEO 재임기간은 6.1년에 불과하다. 더구나 CEO의 재임기간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5년 국내 30대 기업 CEO의 재임기간은 4.2년이었다. 5년 만에 1년이 짧아졌다. 미국과 유럽은 각각 8.9년, 6.5년이었다.

그렇다고 기업 오너, 오너 후계자 등 특별한 사람만이 장수CEO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장수CEO를 만드는 건 ‘특별한 업적’이다. 포스코경영연구소가 2006년 발표한 ‘장수 CEO, 이것이 다르다’는 보고서에 따르면 장수CEO는 특별한 경영철학·비전·리더십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을 추구했다.

김반석(63) LG화학 부회장은 LG그룹을 대표하는 장수CEO다. 2001년 LG석유화학 대표를 시작으로 LG대산유화·LG화학에 이르기까지 11년째 CEO를 맡고 있다. 그는 오너 일가도 아니고, 윗선에서 발탁한 ‘영입인사’도 아니다. 1984년 LG화학에 공채로 입사했다. 기업의 꽃이라는 임원에 오른 것도 입사한 지 13년 만인 1997년(LG화학 폴리에틸렌 상무)이었다.



독특한 경영철학, 장수CEO의 제1요건평사원 출신인 김 부회장이 장수CEO로 거듭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성실함’이다. 그는 남들보다 2시간 일찍 출근한다. CEO에 오른 뒤에도 오전 6시30분이면 사무실에 도착한다. 아랫사람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다. 그는 “오랫동안 CEO를 할 수 있는 것은 ‘솔선수범’을 실천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솔선수범만이 아니다. 그는 비범한 경영능력으로 그룹 안팎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2006년 위기에 빠진 LG화학의 CEO에 임명된 것도 그의 남다른 경영능력 때문이었다. 2006년 3월 LG화학은 최악의 경영환경에 직면했다. 고유가로 원자재값이 크게 오르면서 수출전선에 먹구름이 끼었다. 회사로선 ‘터닝포인트’가 필요했다. LG그룹은 김 부회장을 구원투수로 등판시켰다.

취임 직후 그는 기업비전을 새롭게 만드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기업이 새 비전을 만들 땐 으레 컨설팅 회사에 맡긴다. 김 부회장은 달랐다. 3개월 동안 1만명이 넘는 직원과 씨름했다. CEO가 앞에서 끌고 직원이 뒤를 받치자 LG화학은 빠르게 변신하기 시작했다. 전통적 사업영역인 석유화학사업에서 벗어나 정보소재·배터리사업 등 신성장동력을 찾는데 성공했다. 이는 LG화학이 다른 석유화학기업과 차별화된 부분이다. 특히 전기차용 2차전지에 뛰어들어 GM·르노 등 세계 10개 글로벌 자동차와 공급계약을 체결할 정도로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김 부회장이 취임한 이후 LG화학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2006년 11조4537억원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22조6756억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6747억원에서 2조8354억원으로 증가했다. 한때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던 LG화학은 그룹을 대표하는 계열사로 우뚝 섰다. 이런 성과의 중심에 ‘장수CEO 김반석’이 있다는 데 이론을 제기하는 이는 거의 없다. LG 관계자는 “김 부회장이야말로 장수CEO가 될 만한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한샘하면 부엌가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맞는 말이지만 언젠가부터 한샘을 상징하는 게 또 생겼다. 토털 홈 인테리어 패키지 사업과 온라인 비즈니스다. 한샘은 사업 포트폴리오의 다각화를 통해 경기침체를 뚫고 고속성장하고 있다. 이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사령탑은 최양하(63) 한샘 회장이다.

그는 독특한 이력이 있다. 1979년 한샘에 입사하기 전 대우중공업에 다녔다. 대기업에서 작은 가구업체로 이직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대가 심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가시밭길을 걸으려는 이유가 무어냐는 거였다. 최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기에 한샘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생산과장으로 일을 시작한 최 회장은 대기업의 경험을 살려 생산라인을 자동화시켰다. 수작업에 의존하는 가구생산방식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가구생산방식을 바꾼 한샘은 국내 대표 부엌가구회사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1994년 한샘의 CEO에 오른 그는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가구뿐만 아니라 벽지·창호·바닥재 등 인테리어 제품까지 팔기 시작한 것이다. 1995년 바닥재 시장에 진출한 한샘은 연 12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욕실 인테리어 사업에서도 연 3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건설경기침체로 국내 가구업계가 실적부진에 빠져 있지만 한샘의 실적은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7000억원을 넘었고, 2013년에는 1조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과 순이익 역시 전년 대비 38.3%, 34.1% 늘어난 516억원, 393억원을 기록했다. 최 회장은 장수CEO가 된 비결에 대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 대해 끝없이 도전한 덕”이라고 말했다.

하나금융그룹의 비은행 부문의 핵심 계열사인 하나대투증권 사장으로 2008년 2월 부임한 김지완(66) 사장은 취임 이후 조직에 새 바람을 불어넣으며 하나대투증권을 단기간에 국내 TOP 5에 근접한 종합증권사로 육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지완 사장은 부국증권과 현대증권 대표이사를 비롯해 증권사 임원 경력만 30년이 넘는 베테랑 증권맨이다. 변화의 속도가 빠른 증권계에서 14년간 CEO로 활동하며 ‘직업이 CEO’‘증권계 맏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김 사장은 취임 초기부터 ‘현장경영’을 강조했다. 그는 연초마다 전국 100개 지점을 직접 돌며 영업망 관리에 앞장선다. 김 사장 자신이 1981년 부국증권 영업이사로 임원직을 시작한 만큼 영업에 일가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는 해외영업력을 강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미 2010년에 홍콩 현지법인 ‘Hana Asia Limited’를 설립해 해외 네트워크 거점 마련했다. 지난해에는 중국 내 현지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북경사무소를 설립했다. 금융그룹의 장점을 살려 하나은행·외환은행의 해외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해외진출 교두보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김 사장은 영업 인프라 개선으로 효율적인 영업활동을 지원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또한 직원 평가제도 개선을 통해 목표를 성취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직원이 우대받을 수 있는 조직문화를 정착시켰다.



이채욱 사장 GE 시절부터 23년째 CEO

이채욱(66)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은 1989년 삼성과 GE의 합작투자사인 삼성-GE 의료기기 회사의 대표로 부임하며 경영자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이 사장이 부임하면서 창업 이래 손실만 냈던 삼성-GE 의료기기 회사는 연평균 45%의 기록적인 매출 성장을 올린 우량기업으로 성장했다. GE초음파부문 아시아 총괄사장을 맡아 2년 만에 시장점유율 6위에서 1위로 올려놓는 등 각종 성과를 내며 20여 년간 글로벌 전문 경영인으로서 활약했다.

이채욱 사장의 별명은 ‘변화와 혁신의 전도사’다. 글로벌 기업의 전문 경영인으로서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2008년 9월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또 변화에 도전했다. 그간 경영인으로서 체득한 성장, 성과창출, 인재육성, 사회적 책임, 윤리경영의 5대 경영철학을 중심으로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변화를 이끌었다.

이 사장은 취임 이후 인천국제공항공사는 내부혁신 Slim 10% 목표에 따라 정원 11% 감축, 조직 20% 슬림화, 비용예산 10% 절감, 공기업 최초 신입사원 대졸초임 삭감 등 과감한 경영효율화와 영업·마케팅 기능 강화 등 성과와 성장 중심의 조직 체질 개선을 단행했다. 특히 적극적인 환승여객 유치 마케팅 활동으로 2001년 개항 이후 줄곧 12%대에 머무르던 인천공항의 환승률을 2009년 18.5%(520만명)으로 끌어올렸다. 이는 개항 이후 최대치다. 2011년 인천공항의 환승여객은 566만명을 기록하며 일본 나리타공항을 앞섰다. 이채욱 사장은 세계 공항 관계자가 집결하는 국제공항협의회 세계총회와 세계 최대의 항공물류엑스포인 국제항공물류회의를 잇따라 유치하며 인천공항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이상운 부회장 “소통이 장수의 힘”이상운(60) 효성그룹 부회장도 장수CEO 중 한명이다. 1976년 효성물산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2002년 효성 사장에 오른 이후 10년 째 CEO직을 유지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장수CEO가 될 수 있었던 첫째 원동력은 책임감이다. 그는 신입사원 시절부터 항상 오전 7시 반 이전에 출근할 만큼 부지런하고 책임감이 강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둘째는소통이다. 그는 매월 전 직원에게 ‘CEO레터(e메일)’를 보낸다. 각종 우화나 인생 철학이 담긴 훈훈한 얘기를 전달하기도 하고 직접적으로 경영 현안을 나누기도 한다. CEO레터 하단에는 임직원들이 무기명 응답메일로 자연스럽게 건의사항을 낼 수 있도록 했다.

이 부회장은 현재 효성주력사업의 글로벌화와 신성장동력 발굴을 주도하고 있다. 해외기업 M&A를 통해 사업다각화도 이끌고 있다. 이를 발판으로 효성그룹의 매출은 2008년 6조9200억원에서 지난해 8조1900억원으로 늘어났다. 영업이익은 5000억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효성그룹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소통경영은 효성인(人)이 뭉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효성이 경기침체를 뚫고 성장을 거듭하는 배경에는 이 부회장의 리더십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특별한 경영능력이 있다고 꼭 CEO로서 롱런하는 건 아니다. 기업 오너 또는 대주주와 관계가 좋은 CEO만이 장수할 수 있다. 장수CEO에게 비결을 물으면 이런 답이 돌아온다. “오너(대주주)가 하라니까 하는 거죠.”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박종원(68) 코리안리 사장이 이를 잘 보여준다.

박 사장은 직업이 CEO다. 벌써 14년째 CEO로 재직하고 있다. 연임만 무려 다섯 차례 했다. 국내 500대 기업 CEO 중 최장수다. 그가 장수CEO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마법 같은 실적개선’ 때문이다. 박 사장 부임 후 코리안리는 연평균 13%(매출액 기준) 성장하고 있다. 800원에도 미치지 못했던 주가는 현재 1만3500원에 이른다. 1999년 294억원에 불과했던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1600억원으로 증가했다. 재보험사의 매출액이라고 할 수 있는 수입보험료(손해보험회사가 다른 보험사가 인수한 위험의 일부 또는 전부를 부담하는 것) 역시 지난해 5조원을 훌쩍 넘었다. 1999년에는 1조2641억원에 불과했다. 코리안리의 괄목성장을 이끈 건 박 사장의 강력한 리더십이라는 평가다. 그는 솔선수범하는 CEO다. ‘CEO도 열외는 없다’는 게 경영철학이다. 직원보다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한다. 폭탄주조차도 직원보다 한잔 더 먹는다. 그는 “김매는데 주인은 아흔아홉 몫을 한다”고 말했다.



실적만큼 중요한 건 대주주와의 관계그러나 이런 능력만으로 박 사장이 롱런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업 대주주가 박 사장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장수는 불가능했을 지 모른다. 코리안리의 대주주는 박 사장을 최고의 CEO로 여긴다. 원혁희 코리안리 회장이 먼저 연임을 요청하곤 한다. 2009년 코리안리 창립기념회 때 원 회장이 인사말 도중 박 사장에게 연임을 요청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특히 원 회장을 비롯한 대주주는 경영에 간섭하지 않는다. 인사에도 간여하지 않는다. 경영은 전적으로 박 사장에게 맡긴다. 당연한 일이지만 국내 재계에선 보기 드문 일이다. 이를 바탕으로 박 사장은 대주주 눈치 보지 않고 경영을 펼친다. 박 사장은 자신의 기준에서 옳지 않으면 대주주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한다. 반대로 옳아도 ‘Yes’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검토해 보겠다’는 말로 에둘러 답한다. 대주주와 전문경영인은 분리돼야 한다는 경영철학 때문이다. 박 사장 역시 자신의 롱런비결로 기업 오너의 결단을 꼽는다. 그는 “CEO의 자질을 운운하기 전 대주주가 먼저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며 “내가 장기적 안목으로 경영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대주주의 신뢰”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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