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폐지 논란
[Issue]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폐지 논란
“민주(통합)당이 19대 국회에서 전속고발권 폐지를 들고 나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입장 아닌가. 공약은 민주당이 했지만, 새누리당이 이번 (18대)국회에서 주도적으로 제기한 문제고 시민단체의 관심도 높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국회에서 논의가 될 것으로 본다.”
4·11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한 새누리당 의원의 말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갖고 있는 전속고발권 폐지 논란을 두고 한 얘기다. 전속고발권은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기업이나 기업주의 형사처벌에 필요한 고발권을 공정위만 독점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이 담합을 해도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으면 검찰이 공소를 제기할 수 었고, 피해자들도 소송을 할 수 없다. 1981년 도입된 전속고발권 제도는 1990년대 초반부터 줄곧 폐지 논란에 휩싸여 왔다.
공정위와 검찰 세 차례 충돌4월 17일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는 ‘19대 국회 개혁입법과제 제안’을 발표하면서, 전속고발권 폐지를 포함시켰다. 4.11 총선 전 민주통합당은 담합 등 중대범죄 행위에 대해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한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남경필, 구상찬, 김세연 의원 등 새누리당 쇄신파 의원들도 당 공약과 상관없이 전속고발권 폐지를 약속했다.
전속고발권 폐지 논란은 케케묵은 얘기다. 논란이 불거진 첫 번째 사건은 헌법소원으로까지 이어졌다. 18년 전 일이다. 1994년 7월 검찰은 4개 백화점이 식품류의 가공날짜를 조작했다며 공정위에 고발을 의뢰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시정명령을 내리면서 과징금만 물렸다. 검찰 고발은 하지 않았다. 그러자 소비자단체가 공정위 전속고발권이 재판청구권 침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는 전속고발권제도가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이후에도 논란은 계속됐다. 불씨를 다시 지핀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공정위만 갖고 있는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한 전속고발권을 민간기업도 소송을 낼 수 있도록 조치해 경영을 외부에서 감시하는 활동을 촉진하겠다”며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대선이 끝나고, 공정위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협상을 벌여 이 제도 존속을 관철시켰다. 공정위는 당시 “공정거래법 위반은 경제적 효과에 따라 위반 여부가 달라지므로 곧바로 형사 사건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공정위의 오랜 반대 논리다.
2007년에는 전속고발권을 가진 공정위와 기소독점권이 있는 검찰이 충돌했다. 당시 이 문제는 양 권력기관의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2007년 11월 초 검찰은 합성수지 가격 담합에 가담했으나 자진신고 등의 이유로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은 2개 회사와 임원을 약식 기소했다.
당시 공정위는 7개 합성수지 회사의 담합을 적발해 105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뒤 담합에 가담한 업체 중 자진신고한 2곳을 제외하고 5곳을 검찰에 기소했다. 하지만 검찰은 공범 중 일부가 고발됐다면 다른 공범들에게도 고발 효력이 미친다는 ‘고소고발 불가분의 원칙’을 들어 기소를 결정했다.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은 업체를 검찰이 기소한 첫 사례였다. 공정위는 헌법소원을 검토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했다. 그러자 검찰은 같은 해 11월 말 설탕가격 담합에 가담한 CJ, 삼양사, 대한제당 3개사를 불구속 기소했다.
당시 공정위는 CJ가 자진신고했다는 이유로 고발하지 않았지만, 검찰은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존중과는 무관한 문제”라며 CJ를 기소 대상에 포함시켰다. 결과는 공정위의 승리였다. 이듬해 2월 서울중앙지법은 두 사건에 대한 검찰의 기소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공정위 고발 없이 공소가 제기된 것이어서 공소 제기 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위반돼 무효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후 검찰은 한 차례 더 유사한 기소를 강행했다. 2008년 4월 비닐원료 값을 짬짜미한 업체를 공정위 고발 없이 검찰이 기소한 것이다. 하지만 2010년 2월 법원은 마찬가지로 “공정위 고발이나 검찰총장 고발 요청 없이 기소돼 공정거래법상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공정위가 양보의 뜻을 비친 적은 있다. 2007년 3월 당시 권오승 공정위원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은 공정위가 전속고발권을 갖지만, 장기적으로 이를 털어버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 위원장은 “경미한 위법사건은 공정위의 행정조치 대신 민사소송을 통해서 불공정 행위 사건이 해결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며 “그러나 담합이나 독과점적 지위남용 등 중대한 위법사건에 대해서는 현행대로 형사 제재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카르텔(담합)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 제도는 도마 위에 올랐지만 제대로 칼을 댄 적은 없었다. 2008년 말 김영선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이 전속고발권 폐지를 골자로 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냈을 때, 2009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이귀남 당시 법무부장관이 “전속고발권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도 재차 공론화됐지만 흐지부지됐다. 2011년 4월 김영선 의원은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에 대해 소비자권익과 검찰 기소권 제한 등에 대한 논란이 제기돼 왔다”며 국회의원 30명의 서명을 받아 이 제도를 폐지하는 법률안을 수정해 발의했다. 이 법안은 상임위원회에 회부된 채 계류 중이다. 김 의원은 4·11 총선에서 낙선했다.
전속고발권 행사 비율 0.9%전속고발권 폐지 논란이 끊이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공정위가 칼을 솜방망이로 쓰고 있다’는 불신 때문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집중 거론했던 신건 민주통합당 의원에 따르면 1981년부터 2009년까지 공정위에 적발된 공정거래법이나 하도급 위반 행위는 5만3031건. 이 중 전속고발권을 발동해 형사고발한 건수는 472건으로 0.9%에 불과하다. 리니언시 제도를 통해 자진신고를 하는 기업은 원칙적으로 형사 고발하지 않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공정거래법에는 담합 자진신고자에 대해 형사고발을 면제하는 규정이 없다. 다만 공정위는 운영고시를 통해 형사고발을 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전속고발권은 제한되거나 폐지돼야 하며 감면제도도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속 고발권 폐지에 대한 공정위 입장은 확고하다. 공정위 관계자는 “기존 입장과 다른 것은 없다”고 말했다. 반대 논리는 분명하다. 담합 사건은 경제분석을 거쳐 경쟁제한성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경쟁당국이 전문성을 갖고 다뤄야 한다는 게 큰 원칙이다. 또한 고발권을 폐지할 경우 소송 남발로 기업 활동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공정위의 주장이다. 또한 경찰과 검찰 수사가 확대될 경우 대기업은 방어 능력이 있지만, 중소기업은 처벌 대상이 늘어날 수 있다는 것도 공정위가 이 제도 폐지를 반대할 때 내세우는 논리다. 공정위 측은 “지난해 공정위 형사고발권은 전년에 비해 100% 증가했고, 과징금 부과도 66건에서 156건으로 늘었다”며 “법 위반 기업에는 제재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윤 이코노미스트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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