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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일본 D램산업 사실상 붕괴

[world] 일본 D램산업 사실상 붕괴

일본에서는 파산한 엘피다(ELPIDA)를 둘러싼 인수 쟁탈전과 위기에 직면한 르네사스(RENESAS) 구제가 한창이다. 엘피다를 누가 지원할 것이냐가 논쟁거리지만 거기에는 엘피다의 재생지원이 아닌, 파탄기업의 자산을 싸게 사들이려는 양육강식이 존재할 뿐이다. ‘엘피다가 착수한 D램 시장은 완전히 성숙한 상태기 때문에 진심으로 엘피다를 인수하려는 기업은 없다. 단지 목표하는 싼 가격 사들이면 그만’이라는 평가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사실상 해체 과정이다.

이런 엘피다 사태 이면에 절박한 상황으로 치닫는 또 하나의 반도체기업이 있다. 바로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다. 르네사스는 2010년 히타치제작소와 미쓰비시전기의 통합회사가 NEC 반도체 자회사와 합병해 탄생했다. 그동안 경제산업성의 후원을 받으며 엘피다와 견줄만한 위치까지 부상했다. 규모로는 세계 5위, 자동차용 컴퓨터로는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 40%라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자랑한다.



르네사스 6월 위기설 돌아그런 의미에서 엘피다 이상으로 일본 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업이다. 하지만 통합 후 구조개혁 없이 잉여시설과 인원을 끌어안은 탓에 적자가 심상치 않다. 재무 밸런스가 심각하게 나빠지자 정부가 출자 요청에 나섰다. 엘피다에 르네사스까지 그 행방은 아직 유동적이지만 수면 밑에서는 치열한 힘겨루기가 펼쳐지고 있다.

도요타자동차의 한 임원은 르네사스에 대한 정부의 출자 요청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거기에는 히타치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 회사는 그냥 넘어가 주시죠. 헤엄치고 있는 사람(르네사스)을 구하는 것보다 물에 빠진 사람(엘피다)을 돕는 편이 차라리 낫겠습니다”

르네사스를 둘러싼 움직임이 긴장감을 더해가고 있다. 고질적인 적자체질에 재무 악화는 언뜻 보기에도 분명하다. 업계 관계자 사이에서는 ‘6월 위기설’까지 터져 나오고 있다. 한시라도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이에 정부가 나섰다. 대주주인 히타치와 그 뒤를 따르는 미쓰비시에도 출자 요청이 전해졌다.

NEC에도 요청이 해야겠지만 NEC 자체가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어 면책을 받았다. 미쓰비시는 회사 규모나 영향력 면에서 히타치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출자여부는 오로지 히타치의 손에 달려있는 상황이다. 르네사스 사장이 히타치 출신이라는 점에서도 업계에서는 ‘히타치가 뒤를 봐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그러나 히타치는 반도체 사업을 철수하고 미국 GE나 독일 시멘스 등과 같은 인프라 기업으로 변신하려는 방침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제 와서 르네사스에 출자한다면 주주들을 설득할 명분이 없다. 르네사스 설립 전후 위자료 명목으로 약 2000억엔(3사 합계)의 증자자금을 내놓은 것을 감안하면 추가 출자는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자금마련이 상당히 어려운 거 아닌가?’ 3월 중순 르네사스로부터 지불조건 변경을 요구 받은 거래처는 불안에 휩싸였다. 르네사스는 시스템 통합에 따른 것으로 자금융통과는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왜 굳이 통합한 지 2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그러는지 거래처는 동요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엘피다처럼 1000억엔을 넘는 엄청난 채무를 눈앞에 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엘피다 파산 여파가 은행에 미치면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른다.

르네사스 관계자는 “정부가 공적자금을 들인 엘피다가 파탄함으로써 은행가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며 “3월은 간신히 지나갔지만 앞으로 3개월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르네사스의 매출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그럼에도 재고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한 관계자 “가동률을 떨어뜨리면 적자가 늘기 때문에 감산은 하지 못하고 재고가 쌓여갔다”며 “제품 적재에 곤란을 겪어 여기저기서 창고를 빌리고 있다”고 증언했다. 재고증가는 재무 리스크와 직결되는 문제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나오지만 3사 통합으로 불어난 과잉 설비와 인원을 줄일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시동이 걸리지 않고 있다. 정부 구제안이 지지부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업은 살아남기 위해 통합하고 규모를 확대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 생겨난 것이 지금의 르네사스다. 그리고 지금 엘피다 파탄과 르네사스 위기로 또 한번 재편 시나리오가 꿈틀대고 있다. 앞장서 나선 것이 중소형액정인 재팬 디스플레이를 병합한 산업혁신기구다. 이 기구는 르네사스와 후지쯔, 파나소닉의 반도체 설계부문을 일체화하는 방향으로 조정에 나서고 있다. 엘피다의 히로시마 공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미국 글로벌 파운더리즈(GF)가 그 열쇠를 쥐고 있다. 이 재편안이 실현되면 르네사스는 부담되는 야마가타 공장을 현금화헤 강점인 자동차용 컴퓨터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후지쯔 역시 ‘머지않아 불필요해질’ 미에 공장을 떠나 보낼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그러나 이런 재편안은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그 동안 각 공장의 차별화에 힘을 쏟아왔기 때문에 생산라인도 고정화되어 있어 공장 집약이 간단하지 않다. 잉여설비와 인원 항상 문제다. 더구나 반도체의 경우 다른 종류의 제품으로 통합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필요하다. 비즈니스에서의 리스크도 크다. 조달처가 한 곳에 집중되는 것을 꺼려하는 자동차 메이커들이 이미 르네사스 이외의 조달처를 찾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도시바는 엘피다의 렉스칩 공장에 관심엘피다를 둘러싼 각 사의 이해관계 또한 교차한다. 4월 말 2차 입찰을 실시할 예정인데 이르면 5월 골든위크 연휴 직후 지원기업을 결정할 전망이다. 1차 입찰에서 입찰금액이 낮아 탈락한 도시바는 2차 입찰에 남은 후보와 손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상대로는 차세대 메모리라 불리는 M램의 공동개발에 착수한 SK하이닉스가 유력하다. 사실 2001년 D램 사업을 철수하고 미국 공장을 마이크론에 팔아 넘긴 도시바의 심경은 복잡하다. 도시바의 한 임원은 “리먼 사태 후 위기에 빠졌을 때 엘피다의 사카모토 사장이 구제요청을 해왔지만 도시바가 거절한 전례가 있기 때문에 이제 와서 D램 사업에 투자할 생각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도시바가 왜 엘피다에 눈독을 들이는 것일까. 엘피다의 거점은 히로시마 공장이지만 도시바의 관심 대상은 바로 대만에 있는 자회사 렉스칩(Rexchip)의 공장이다. 렉스칩은 엘피다가 자랑하는 최첨단 공장이다. 도시바가 반도체 사업에서 주력하는 것은 낸드 플래시. 앞으로의 증산 대응 및 리스크 분산, 엔고 대책, 중국 수송 문제 등을 고려하면 대만에 공장을 가지게 됐을 때의 이점은 크다.

D램는 낸드 플래시와 생산과정이 유사하기 때문에 설비 전환이 어렵지 않다. 또 모바일 기기 비즈니스에서는 낸드 플래시와 D램을 세트로 판매하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는데 이런 분위기에서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도시바는 가지고 있다. 엘피다가 개발에 힘을 쏟고 있는 Re램이라는 차세대 메모리의 존재도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엄청난 대금을 지불하면서까지 엘피다를 손에 넣을 의도는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최소한의 부담으로 갖고 싶은 자산을 손에 넣고 싶은 것이 도시바의 본심이다.

마이크론과 하이닉스는 엘피다 인수를 통해 점유율 확대를 노린다. 엘피다가 가진 저소비전력 모바일 D램 기술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양 사 역시 고비용의 히로시마 공장을 유지할 생각이 있는지 분명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히로시마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엘피다의 파산으로 세금은 날렸지만 실업만은 피하고 싶은 것이다. 이에 아부다비 펀드가 출자한 글로벌 파운더리즈(GF)가 부상하고 있는데 엘피다가 히로시마 공장을 GF에 매각하는 방안을 산업혁신기구가 계획 중이다.

여러 가지 역학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엘피다 지원문제지만 D램 사업에 큰 장래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스마트폰과 태블릿 단말기의 보급으로 D램의 최대 수요처인 컴퓨터 시장의 성장률이 둔화하고 있는 데다 1대 당 D램 탑재용량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아서다. 앞으로 생산기술의 향상에 의한 공급량 증가가 수요를 뛰어넘을 가능성이 크다. 당분간 수요층이 보장되어 있는 낸드 플래시와는 명암이 극명하게 나뉜다.

이러한 상황에서 D램 사업은 라이벌을 내치고 남은 이익을 확보하는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파산 전 엘피다도 타사를 제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으나 결국 먼저 지치고 말았다. 엘피다 회생계획이 어떤 국면으로 치닫든, 일본 D램 산업에 끝이 왔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일본 반도체산업 20년 연속 뒷걸음후지쯔와 도시바가 D램 사업에서 철수하는 가운데 엘피다는 국내 마지막 D램 메이커가 되어 일본을 짊어졌다. 사카모토 사장의 수완에 힘입어 한 때 자립한 것처럼 보였으나 리먼 사태 이후 시황 악화로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해졌다. 그럼에도 고비를 넘지 못했다. 엘피타의 실패로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많아졌다.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1980년대 후반 일본 반도체산업은 정부 주도하에 황금기를 맞이하기도 했으나 몰락의 계기를 만든 것 또한 정부였다. 실제로 어느 나라나 자국 산업에 대해서는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한국의 삼성이나 미국의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역시 정부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보는 것이 업계 정론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반도체 업계에 대한 지원책은 전부 반대결과를 낳고 있다.

2000년 이후 일본에서는 국가와 기업이 뜻을 모아 개발에 착수한 국가 프로젝트가 난립했다. 모두 반도체 제조과정 개발이 목적이었으나 만족스러운 성과는 얻지 못했다. 정부 관계자의 말은 이렇다. “기업들은 핵심 기술은 자체적으로 개발한다. 그런데 국가 프로젝트에는 성공 여부가 확실치 않은 2~3순위 기술과 2군 레벨의 기술자들이 모였다” 프로젝트에는 참여했지만 차후 책임 문제나 가격할당 등을 고려했을 때 발전적 연합은 어려웠다는 뜻이다.

최근 들어 일본 정부가 주도하는 것은 궁지에 몰린 반도체사업을 구제하기 위한 재편안뿐이다. “생산현장에서 청사진을 그려도 정부에 의한 낙하산 의혹과 대기업의 이해관계에만 부합은 정책들로 시장은 왜곡 되고 있다”는 것이 경제산업성 관계자의 지적이다.

물론 기업측에서도 문제는 있다. 반도체 사업을 종합 전기의 일부분으로 치부한다는 점이다. 일본 반도체 메이커는 적자수주를 당연시한다. 한 외국계 반도체 메이커 사장은 “우리 회사는 이익률이 일정수준 이하가 되면 수주하지 않는데 일본 메이커들은 2에 팔아야 될 제품을 1.5에 팔아버린다”며 경악한다.

원래 일본 반도체 사업은 사내거래 등 자사 시스템에 의해 발전되어 왔기 때문에 채산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그래서 제품마다 사양이나 가격교섭을 행하는 마케팅 기능은 부실하고 맹목적으로 따르는 하청회사 체질이 강하다.

종합전기 산하에 있는 점은 투자 경쟁에서도 마이너스로 작용한다. 큰 투자가 필요하더라도 전체적인 회사 밸런스를 생각했을 때 쉽사리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다. 이러한 구조가 개선되지 않은 채, 정부에 의존하여 업체를 재편한다 한들 똑같은 실패가 반복될 뿐이다.

도시바 출신으로 차세대 메모리 개발 등에 관여한 츄오대학의 다케우치 교수는 “틈새시장이라도 세계 최고가 된다면 득”이라며 “그러한 기술이 있다면 대기업 사이에서 매몰되지 않도록 떼어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도 일본의 반도체 메이커가 승부를 걸 만한 기술이 남아있다. 그렇다면 각 기업은 적자사업 통합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유망기술을 독립시켜 자립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이란 그것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번역=김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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