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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에 빠져 풍수 담은 건축을 하다

동양철학에 빠져 풍수 담은 건축을 하다

프랑스에서 건축상을 휩쓸던 기대주가 동양철학에 심취해 한국에 정착했다. 그의 건축물엔 풍수지리와 샤머니즘이 녹아있다. 여수엑스포 프랑스관에서 16년지기 이다도시와 만났다.



지난 7월14일 여수세계박람회는 프랑스 국가의 날을 맞아 프랑스 사람들로 북적였다. 엑스포 홀에서 오전 10시에 개최된 ‘프랑스의 날’ 행사에는 질 로슈 에어프랑스·KLM 한국 지사장, 벵상 베르나르 크리스찬 디오르한국지사장, 리차드 생베르 로레알 한국 지사장, 에르베부비에 에스티로더 한국 지사장, 다비드 피에르 잘리콩한불상공회의소(FKCCI) 회장 겸 D.P.J.&파트너 대표등이 참석했다. 한국 측에서는 박윤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원장, 박은경 한국물포럼 총재 겸 수자원협력대사의 모습이 보였다.

이 날 모인 사람들은 프랑스관을 화제로 삼았다. 이번 박람회에서 인기를 끈 프랑스관은 바닷물이 담수화되는 과정을 쉽고 재미있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프랑스관을 설계한 건축가 다비드 피에르 잘리콩은 한불상공회의소 회장을 겸직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건축가로 일하던 그는 ‘프랑스 젊은 건축가 대상’을 수상하고 부상으로 주어진 해외업무연수를 위해 한국에 왔다. 평소 동양 철학에 관심이 있던 그는 1996년 테제베(TGV) 도입연구를 맡으면서 한국에 매료됐고 2000년 서울에 잘리콩 건축연구소를 설립했다. 이다도시와는 한국 땅을 처음 밟았을 때 만나 지금껏 친구로 지내고 있다.

이다도시) 우리가 만난 지 벌써 16년 됐다. 세월이 정말빠르지 않나.

잘리콩) 처음 행사장에서 만나 나누던 이야기가 생각난다.이다도시가 교외에 집을 짓고 싶다며 내게 상담을 해왔다.그렇게 알게 돼 에어프랑스 사장 등 서로 교류하는 친구들을 통해 더 친해졌다.

이다도시) 당시엔 교외에 예쁜 집을 짓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아이 둘을 낳고 나니 서울 밖에서 산다는 게 너무 힘들다는 걸 깨닫고 집 짓는 것은 포기했다(웃음). 당신은 왜 건축가가 됐나?

잘리콩) 집안 내력인가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건축가다. 하지만 가족 중 아무도 내게 건축가가 되길 권하지 않았다. 특히 어머니와 할머니는 고생한다며 말렸다.처음엔 엔지니어링 학교에 입학했지만 건축이 운명이었는지 자꾸 하고 싶었다. 뒤늦게 건축을 공부해서 건축가가 됐다. 힘든 직업이라 어릴 적부터 건축가가 되겠다는 강한 결심이 있어야 한다. 창의력이 뛰어나면서도 튼튼하고 안전한 건물을 지어야 하니 어렵다. 경쟁도 심하다.하지만 지금껏 후회한 적 없다. 안 했으면 후회할 뻔했다.너무 행복하고 내 직업을 사랑한다.



프랑스에서 젊은 건축가 대상 수상이다도시) 잘리콩의 건축물은 다른 건축가 작품과는 다르다. 풍수지리 등 동양철학을 접목한다고 들었다.

잘리콩) 도교, 샤머니즘, 풍수지리학 등 동양 철학에 관심이 많아 건축을 전공하면서 박사과정을 따로 밟았다. 프랑스 젊은 건축가 대상을 받고 부상으로 해외업무 특전이 주어졌을 때 망설임 없이 한국을 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동양철학을 근거로 건물을 지으니 한국 건축주들이 무척 좋아했다. 한국에서 롱런 할 수 있었던 가장 큰이유다.

이다도시) 예전 당신의 강연을 들어봤는데 풍수지리학 등 한국 문화에 해박하더라. 서양 건축가가 다리 하나, 건물하나에 풍수지리학을 접목한다니 놀랍다.

잘리콩) 그 나라의 문화를 담는 건 매우 중요하다. 동양철학을 접목한 건축물은 이젠 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1999년 준공된 서래마을의 프랑스 학교(Lycee Francais de Seoul)를 지을 때는 태극기의 괘 모양을 창문으로 만들어 독특한 컨셉트의 건물을 완성했다. 2004년 준공된 예술의 전당 옆의 아쿠아 브리지를 지을 때도 연결된 산이 불의 기운이 많다고 하여 물을 사용해 눌러주면서 상징적인 다리를 만들었다. 2009년 준공한 대명리조트 소노펠리체는 산 위에 리조트를 짓는 프로젝트였다. 산의 굴곡을 따라 기(氣)가 통하도록 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작은 건축물에도 ‘스토리 텔링’이 있다는 게 내 건축의 중요한 포인트다.

이다도시) 까르띠에, 루이비통 등 명품 브랜드 매장을 도맡아 짓고 있다. 당신만의 럭셔리 건축 코드가 있나.

잘리콩) 명품 브랜드와 일을 할 때는 브랜드 DNA 등 그들이 제시한 부분을 꼭 지켜주면서 한국적인 독특함을 부여하는 게 중요하다. 2008년 청담동 까르띠에 메종을 지을때 알록달록한 한국의 색동보자기에서 영감을 받아 매장전면의 모양을 만들었다. 브랜드 요소와 컴포지션을 위해 까르띠에의 다양한 심볼을 사용해 보자기를 만들듯 조합한 작품이었다. 현관은 런던과 파리에 있는 까르띠에 매장의 현관에서 따와 까르띠에와 대한민국의 상징을 모두 살렸다. 건물이 멋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미와 느낌이 있어야 한다.

잘리콩 회장의 건축 철학이 담긴 프랑스관은 여수엑스포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하루 평균 방문객 수가 8000명에서 많게는 1만2000명에 달한다. ‘담수화 또는 소그미의 여행’이라는 컨셉트를 가지고 있다. 수자원이 고갈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담수화가 그 해결 방법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움직이는 모래시계의 카운트다운 이 긴급함을 표현하고 있다. 바다 물방울이 담수로 변화하는 과정을 4개의 다른 공간을 따라가며 관람객들이 상호작용 및 시각적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이다도시 이번 엑스포의 프랑스관이 인상적이다.잘리콩 엑스포 프랑스관의 설계에 들어가기 전부터 ‘바닷물의 담수화’라는 테마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다소 딱딱한 컨셉트를 설명하기 위해 입구에 수많은 모래시계를 상징적으로 세워 카운트타운을 표현했다. 지구의 물 부족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으며 시간이 촉박하니 정신차렸으면 좋겠다는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다. 마지막 방은 생명이 가득한 방이다. 꽃도 있고 나비도 있다. 물이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자연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여수엑스포 프랑스관 설계이다도시) 물 부족에 대한 경고를 실감나고 멋지게 표현한 것 같다. 공감이 가는 테마다.

잘리콩) 언제든 누구든지 쉽게 어려운 시스템을 이해할 수있도록 설계했다. 목표는 과학적인 레슨이 아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이 중요했다. 프랑스관에서 사람들이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어려운 문제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 기회를 갖자는 것이다.

이다도시) 프랑스관 하면 문화적인 게 먼저 떠오르는데 반전이다.

잘리콩) 프랑스 문화에 다양성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목적도 있다. 프랑스를 생각하면 패션, 명품 등만 떠올리는데 하이테크놀로지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프랑스는 오랜 동안 해양자원 연구 및 보호에 각별한 관심을 쏟았다. 파브리스 레제리 주한 프랑스 대사대리는 이 날 행사 연설문을 통해 “오늘날 전세계에서 발간된 해양 연구 자료 중 7% 이상이 프랑스 연구진에 의해 이뤄

지고 있다”고 밝혔다.프랑스는 ‘뿌꾸아 파’ ‘아탈랑트’ ‘마리옹 뒤프렌’ 등 우수한 해양 탐사선단을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 탐사선단은 해양 관찰, 심해저 연구, 해양생물학, 해양자료 교류및 관리 체계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또 1975년 설립된 연안보존소가 오늘날 13만8000 헥타르에 이르는 프랑스 연안지역 보호를 책임지고 있다. 연안보존소는 오는 9월 제주도에서 세계총회를 여는 세계자연보존연맹 소속기관이기도 하다.

이다도시) 20여 년간 건축 일만 하다가 한불상공회의소 회장을 겸임하려니 정신 없겠다.

잘리콩) 오히려 업무에 균형이 잘 잡혀서 좋다. 건축과 사업을 하다 보면 외로울 때가 많다. 조언 받고 싶을 때 누구를 찾아야 할지 몰랐다. 건축은 창의력이 중요한데 특별한 영감이 안 떠오를 때면 외롭고 힘들었다. 한불상공회의소 회장직을 겸임하면서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일을 하니 좋다. 회장이라서 가야 할 자리가 많고 신경 써야 할게 늘어나기는 했다.

이다도시) 한·EU FTA 이후 두 나라 비즈니스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잘리콩 두 나라는 이미 FTA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한국의 대 프랑스 수입은 30% 증가했다. 정열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한국에 온 젊은 프랑스 사업자들이 많아져 상공회의소 회원은 15%, 한불상공회의소가 중개하는 건수도 40% 늘었다.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다도시) 한불상공회의소에선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

잘리콩) 한불상공회의소를 통해 한국에 진출해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에 입점한 프랑스 자동차 부품회사 Forecea가 2500만 유로를 투자했다. 한불상공회의소는 현재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하는 중이다. 더욱 활성화를 위해 비즈니스센터를 마련하기로 했다. 해마다 젊은 사업가를 선정해 지원도 하게 된다. 선발되면 장학금을 받게 되며 1년간 무료로 비즈니스센터를 쓸 수 있다. 그 분야를 잘 아는 사업 멘토도 붙여 준다. 한국에 처음 와서 고생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국인도 지원 가능하다.

이다도시) 인생의 반 가량을 한국에서 살았다. 왜 한국인가.

잘리콩) 고객들이 내게 올 때 항상 새로운 걸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한다. 한국에서는 다이내믹하고 다양한 걸 할 수있어서 좋다. 여가 시간은 한남동 유엔빌리지에 있는 집에서 부인과 둘이 오붓하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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