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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차 전성시대 - 올해 신차만 100종 불황에도 고속 질주

수입차 전성시대 - 올해 신차만 100종 불황에도 고속 질주

한국에 진출한 수입차 브랜드는 올해 경기 침체 우려에도 성장세를 이어갔다. 10월까지 누적 판매량은 이미 지난해 전체 물량을 넘어섰다. 역대 최단 기간 10만대 판매 돌파 기록도 세웠다. 국내 시장의 점유율도 10%대로 올라섰다. 특히 10월까지 새 차도 80여종이 나왔다. 12월까지 20종이 더 나온다. 소비자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2000만~3000만원대 소형차가 늘었다. 해치백, 웨건, 컨버터블 등 종류도 다양해졌다. 부족한 AS망, 비싼 부품값이 여전히 문제로 지적되지만 내년에도 수입차 시장은 커질 전망이다. 독일, 일본, 미국 브랜드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수입차 춘추전국시대의 명암을 살펴봤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는 10월 22일 기준으로 올해 나온 새 차(부분 변경 모델 포함)가 80종이라고 발표했다. 지난해 전체(76종)보다 많았다. 3.7일에 한 대 꼴로 새 차가 나온 셈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서 누락한 일부 차종과 연말 출시 예정인 자동차까지 더하면 올해 나오는 수입차는 100종이 넘을 전망이다. 역대 가장 많은 새 차가 나온 2006년(80종)의 기록도 무난히 갈아치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25개 브랜드 380종의 수입차를 골라 탈 수 있게 됐다.

차종의 수만큼이나 브랜드별 경쟁이 치열했다. 가장 많은 신차를 출시한 브랜드는 독일의 BMW다. 이 회사는 1월 소형 해치백 미니쿠퍼 디젤을 시작으로 무려 18종의 신차를 국내에 들여왔다. 특히 미니브랜드에서만 9종의 신차를 발표했다. 미니 브랜드에서 생산하는 차는 그렇게 판매량이 많은 차가 아니다. 오히려 개성이 강한 소수 소비자를 타깃으로 하는 차다.

그럼에도 공격적인 신차 출시로 브랜드 이미지 강화에 나섰다. 차종의 다양화에도 큰 공을 들였다. BMW는 원래 세단의 이미지가 강한 브랜드다. 올해는 달랐다. 18종의 신차 중 세단은 3종 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해치백(7종), 웨건, 컨버터블, SUV(각 2종), 쿠페, 고성능 스포츠카(각 1종) 등으로 채웠다.

또 다른 독일 브랜드인 아우디는 쿠페와 컨버터블, 수퍼카를 포함한 11종의 신차를 시장에 쏟아냈다. 일본의 토요타 역시 럭셔리 브랜드인 렉서스를 포함해 11종의 차를 내놨다. 그중에는 ‘86’이라는 스포츠카도 포함돼 있다. 3000만원대의 성능 좋은 저가형 스포츠카로 소비자를 유혹했다. 올 한해 신차를 전혀 출시하지 않았던 혼다도 연말 5종의 신차를 한꺼번에 내놓는다.

최근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서다. 신차 출시 행렬에는 수퍼카 브랜드로 수억원대의 차를 파는 포르쉐도 가세했다. 이 회사가 올해 출시한 신차는 8종. 이 중 4종이 완전 변경모델이었다. 대우증권 박영호 애널리스트는 “품질로 고급차의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성공한 수입차 브랜드가 차종을 늘려 저변확대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BMW 신차 18종 내놔주목할 만한 점은 정확한 차종을 분류하기 힘든 차가 늘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세단, SUV, 쿠페 등 차의 종류를 나눌 수 있는 기준이 많지 않았다. 최근에는 세단과 SUV를 결합한 CUV, 쿠페형 세단, 스포츠 세단, 박스카까지 등장했다. 이런 차들이 등장할 때마다 수입차 브랜드가 쓴 카피는 ‘세상에 없었던 차’였다. 다양한 형태의 차를 내놔 개성을 강조하면서 자동차의 기본 성능도 잃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그만큼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세계 각국의 브랜드가 왜 시장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한국에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걸까. 국내 자동차 시장의 판매대수는 연간 120만대 정도다. 10년 가까이 100만~120만대를 유지하고 있다. 세계 전체적으론 7800만대에 이른다. 수입 자동차 브랜드 입장에서는 별로 큰 시장이 아니다. 너무 많은 차종을 들여왔다가는 수익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많이 팔고도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들여온다고 다 팔리는 것도 아니다. 새로 출시하는 차에 들어가는 마케팅 비용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수입차 브랜드가 한국 시장에서 물량 공세를 펼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성장 가

능성이 큰 나라’라는 점이다. 국내 수입차 시장은 몇 년간 해마다 20~30%씩 성장해왔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대부분 “국내 시장에서 수입차 점유율이 15%선까지는 무난히 오를 것”이라고 예측한다. 전 세계가 경기 침체로 시장이 축소되는 시장에서 판매량이 늘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다. 절대 판매량은 적지만 미국이나 유럽의 감소분을 메울 수 있는 매력적인 시장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 자동차 시장은 브랜드간 경쟁을 통해 서로의 장단점을 파악할 수 있는 테스트 베드로도 안성맞춤이다. 소비자의 요구가 까다롭고 변화무쌍한데다 25개의 브랜드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한 수입차 관계자는 “한국처럼 유행이 빠르게 변하고 변덕스러운 소비자도 드물다”며 “한국에서 잘 팔리는 차는 세계 어디에서도 잘 팔린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현대·기아차 견제 목적도생산 기술의 발달도 한국 시장에서 많은 차종을 부담 없이 내놓을 수 있게 만든 배경이다. 유진증권 장문수 애널리스트는 “과거에는 한 개의 생산라인에서 한 종류의 차 밖에 생산할 수 없어 새로운 차종을 추가하는데 많은 비용이 들었지만 요즘에는 달라졌다”고 말했다. 한 차종의 기본 생산라인에서 차의 지붕을 없애 컨버터블로 생산하거나, 뒤를 깎아 쿠페로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케팅 비용 문제는 수입차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늘면서 어느 정도 해결됐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한 해 가장 많이 팔린 차가 1000대를 넘기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판매량이 6000~7000대에 이른다. 올 한해 벌써 1만대 이상의 차를 판매한 브랜드가 4개나 되고, BMW는 2만대 이상의 차를 팔았다.

현재 세계 시장에서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현대·기아차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한국은 현대·기아차가 시장 전체의 75~80%를 장악하고 있는 나라다. 사실상 독과점 구조다. 자동차 시장이 개방돼 있는 나라 중에서 자국의 자동차 브랜드 점유율이 이 정도에 이르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밖에 없다.

대신 일본은 한국과 달리 토요타와 닛산, 혼다 등 여러 브랜드가 치열하게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상현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회사가 현대·기아차”라며 “외국 브랜드들이 현대·기아차의 안방인 한국에서 판매를 늘려 압박하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수입차 브랜드의 적극적인 시장 진입에 국내 자동차 시장도 급변하고 있다. 단순히 차종만 늘어난 게 아니다. 가격대도 다양해졌다. 무엇보다 3000만원대 수입차가 늘고 있다. 내년에는 1000만원대 수입차가 등장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대형 승용차에 대한 수요가 줄면서 자동차 브랜드마다 앞다퉈 적은 배기량의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해서다. 거기에 FTA 효과로 가격 하락 요인이 늘었다. 각종 금융혜택을 제공하고 할부 프로그램으로 목돈을 들이지 않고 수입차를 탈 수 있도록 하는 마케팅도 활발하다. 이는 자연스럽게 20대와 30대 소비자의 수입차 구매 증가로 이어졌다.

올해 수입차를 구입한 사람의 25.1%가 20~30대 소비자다. 수입차는 ‘고급 대형 세단’이라는 편견을 깨고 2000cc 이하 자동차의 판매량이 48.1%까지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장문수 애널리스트는 “가격이 싼 수입차가 늘어나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낮은 20~30대 직장인도 ‘나도 한번 수입차를 타볼까’하는 생각을 하게됐다”며 “개성 강한 젊은 소비자들이 새로운 차종을 원하면서 다시 신차가 늘어나는 순환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선 수입차 점유율 늘다 급감하기도수입차 시장 확대로 생긴 또 하나의 변화는 디젤차에 대한 인식의 변화다. 수입 디젤차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건 2004년 무렵이다. 이후 큰 인기를 끌지 못하다 2009년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판매된 수입차 중 절반이 디젤차였다. 윤대성 한국수입자동차협회 전무는 “한국은 과거부터 유난히 디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 디젤차의 불모지였는데 수입차가 ‘디젤차는 매연이 많이 나오고 소음과 진동이 심한 차’라는 편견을 깼다”고 말했다. 금융위기 이후로 고유가와 경기 침체로 연비에 대한 관심이 커진 점도 한 몫 했다. 자연히 디젤차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고, 디젤차를 타는 소비자들의 좋은 평가가 이어지면서 탄력을 받게 됐다는게 윤 전무의 설명이다.

수입차 브랜드의 성장은 국산 자동차 회사에도 자극이 됐다. 기존에 국내 브랜드는 소형, 준중형, 중형, 대형 등 각 세그먼트에서 1~2종의 자동차만 생산했다. 수입차를 구매할 생각이 없는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선택이 폭이 좁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현대·기아차는 독일차와 경쟁하기 위해 해치백, 웨건, 쿠페 등 다양한 종류의 차를 내놓기 시작했다. 올해에는 국내에서 깜짝 돌풍을 일으킨 닛산 큐브에 맞서 박스카 큐브를 출시하기도 했다.

내년에는 국가 대표 준중형 자동차인 아반떼의 2인승 쿠페도 선보일 예정이다. 그간 약점으로 분류됐던 디젤엔진 라인업도 점차 늘려가고 있는 추세다. 르노삼성은 소형 CUV를 내년 도입할 예정이다. 올해 열린 부산국제모터쇼에서 ‘캡처’라는 컨셉트카로 첫 선을 보였다. 쌍용차 역시 모스크바 모터쇼에서 프리미엄 CUV 콘셉트카 ‘XIV-1’을 선보이며 차종 늘리기에 나섰다.

120만 소비자를 놓고 벌이는 국산차와 수입차의 대결은 갈수록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많은 수입차 브랜드가 수입차 다양한 차종과 폭넓은 가격대로 더 많은 소비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가격을 낮추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과감하게 불필요한 편의장치를 대폭 줄인차도 크게 늘었다. 고급차의 기본이라 여겨졌던 후방 카메라를 뺀 폭스바겐의 파사트나 운전석 조절 장치를 수동으로 바꾼 토요타의 ‘프리우스E’가 대표적인 예다.

BMW 뉴1시리즈 5도어 모델은 에어컨 장치를 손으로 돌리는 로터리 방식을 채택하고 버튼식 주차 브레이크 대신 핸드 브레이크를 달기도 했다. 반면 현대·기아차는 편의장치 늘리기로 맞섰다. 기아차 K9은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포함해 최고급 승용차에 장착되는 대부분의 최첨단 장치를 갖췄다. 올 하반기 출시된 K3 역시 그간 준중형 자동차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편의장치를 대거 장착했다.

한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이를 “현대·기아차의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수입차들이 가진 기술을 현대·기아차도 모두 구현해 낼 수 있으며, 그 모든 장치를 장착하고도 수입 자동차보다 싼 가격에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장문수 유진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내 자동차 시장의 흐름은 2~3년 앞을 내다보기가 힘들어지고 있다”며 “경쟁 브랜드의 신차 출시나 마케팅에 반응하는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현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당분간은 수입차의 상승세가 이어지겠지만 현대·기아차, 르노삼성, 한국GM이 당하고만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가까운 일본의 경우 수입차 점유율이 8%까지 늘다가 다시 5%대로 추락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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