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혁신·인재·소프트’로 초일류기업 약속 지켰다

‘혁신·인재·소프트’로 초일류기업 약속 지켰다

변방의 기업에서 상전벽해…추격자에서 선도자로 변신 중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2월 1일 취임 25주년을 맞는다. 이 사이 삼성은 한국 GDP의 33%를 담당하는 간판 기업으로 성장했다. 글로벌 무대에서는 소니를 넘어 세계 최고의 IT기업으로 떠오른 애플과 겨루고 있다. 과감한 혁신과 위기대처 능력, 인재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는 삼성의 핵심 DNA다. 이 회장이 바꿔놓은 삼성의 25년 역사와 그의 경영론을 분석했다.



해외 여행을 좀 다녀본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아직도 한국을 모르는 외국인이 제법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묻고는 대답도 하기 전에 ‘China?’, ‘Japan?’하며 알은체를 한다. ‘South Korea’라는 대답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라도 하면 대번에 기분이 나빠지지만 그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보고선 미소가 돈다. ‘Samsung’이라는 로고가 선명하다. 당신의 스마트폰을 만든 회사가 한국 기업이라고 하면 ‘아. 쌤쑹!’ 하며 자기집 TV도 삼성제품이라고 시키지도 않은 말까지 꺼낸다.

과장된 얘기가 아니다. 삼성이 어느새 대한민국을 가장 잘 설명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됐음을 부인하긴 어렵다. 눈에 보이는 스마트폰과 TV는 물론 그 안에 든 반도체와 각종 부품, 건설, 인프라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 삼성 제품이 안 팔리는 곳이 없다. 일단 국내에서는 ‘원 오브 뎀(One of them)’이 아닌 ‘넘버 원(No.1)’이 됐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성적표로는 그렇다.

이건희(71) 삼성전자 회장이 그룹을 지휘하기 시작한 1987년 삼성그룹의 매출액은 10조원에 약간 못 미쳤다. 하지만 올해는 383조9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2012년 예산(325조원)을 훌쩍 넘어선다. 같은 해 1조원에 불과했던 삼성의 시가총액은 303배나 늘어 올해 처음으로 300조원을 넘어섰다. 국내 상장사 시가총액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나라 예산보다 많은 삼성의 1년 매출해외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글로벌 기업이 됐다. 인터브랜드가 10월에 발표한 세계 100대 기업 브랜드 가치 순위에서 삼성은 9위를 차지했다.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지난해보다 40% 성장해 328억9000만 달러(약 35조6000억원)를 기록했다. 국내 기업 중에선 단연 1위고 토요타, 벤츠, 디즈니마저 제쳤다.

불과 10~20년 전만해도 상상 밖의 범주에 속했던 기업들이다. 넘을 수 없는 산이라 했던 소니는 40위로 처졌다. 20~30년 전 소니는 미국과 유럽의 가정집을 점령했다. 하지만 이제 그 자리는 삼성이 차지했다.

2000년대 들어 TV 등 주요 제품 경쟁력에서 삼성 등에 밀리면서 소니의 수익성은 급격히 악화했다. 위기를 인식했지만 과거의 ‘워크맨’과 같은 혁신적인 제품을 더 이상 내놓지 못했다. 4년 연속 대규모 적자에 시달리며 이제는 버틸 체력조차 잃었다. 국내 언론이 이 회장의 취임 25주년을 맞아 삼성의 성공을 되짚어보는 기사를 쏟아내던 11월 22일 공교롭게도 신용평가사 피치는 소니의 신용등급을 ‘정크(투자부적격)’ 수준인 ‘BB-’로 낮췄다.

같은 날 삼성전자의 주가는 사상 최고가(141만7000원)를 경신했지만 11월 15일 소니의 주가는 1980년 이후 32년 만에 최저가(739엔)를 기록했다. 정상에 섰던 2000년 3월 주가(1만6950엔)의 5%에도 못 미친다. 소니와 함께 일본 전자업계의 3강으로 불렸던 파나소닉과 샤프의 처지도 다를 바없다.

혁신 대신 안정을 택한 것이 잘 나가던 소니의 발목을 잡았다.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소니는 리스크를 줄이는데 힘을 쏟은 탓에 도망갈 방법을 마련하지 못했고 추격자의 실력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같은 기간 삼성은 리스크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전략을 택했다. 투자에 망설임이 없었고, 새 시장 진출에 주저함이 없었다.

2004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윌슨 로스만은 “삼성은 모두가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내놓는다”며 “삼성은 혁신자(Innovator)”라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은 위기를 혁신으로 넘긴 대표적인 기업이다. 그 중심에는 이 회장이 있었다.

이제는 삼성의 핵심 사업으로 자리잡았지만 1970년대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것 자체가 당시로서는 엄청난 도전이었다. 사재까지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했지만 사업은 쉽지않았다. 매년 개발비로 엄청난 비용이 들어갔음에도 좀처럼 성과는 나지 않았고 회사 내 반발도 심했다. 하지만 1983년 이 회장은 오히려 최첨단 D램 반도체 개발에 도전하겠다고 나섰다. 그룹의 미래를 모두 걸어야 할 도박에 가까웠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국내 최초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했다.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지만 1984년부터 D램 가격이 폭락하면서 또 다시 위기에 처했다. 선친 이병철 회장과 이 회장의 대처는 예상과 달랐다. 당장은 힘들어도 반도체 수요가 급속하게 늘 것이라 예측한 두 사람은 생산라인 증설을 지시했다. 이 판단은 적중했고 1988년 삼성전자는 4000억원에 가까운 흑자를 올리며 단숨에 세계 반도체 시장의 중추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불량품을 파는 것은 고객 기만하는 것”1987년 4메가 D램 개발 방식을 스택(Stack, 회로를 고층으로 쌓는 방식)으로 할 것인지 트렌치(Trench,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형식)로 할 것인지 고민하다 전문가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스택으로 결정한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주류는 트렌치였지만 이 회장은 오랜 고민 끝에 스택을 선택했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트렌치 방식을 고집하던 반도체 기업들은 생산성 저하로 고역을 치렀고, 스택을 선택한 삼성은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잡게 됐다. 꾸준히 영역을 확장하던 삼성은 1992년 세계 최초로 64메가 D램을 개발하면서 본격적으로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기 시작했다.

1993년 이 회장은 또 다른 결단을 내린다. 기존 6인치 웨이퍼가 주류를 이루던 반도체 시장에서 8인치 생산을 결정한 것. 일본이 이미 자리를 잡은 6인치를 고집해서는 일본을 이길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 결정 역시 주효했다. 8인치 전환은 D램 생산량 증가로 이어졌고 기술과 생산 양면에서 일본기업을 앞서는 계기가 됐다.

삼성은 올해 4월 세계 최초로 20나노급 4기가 D램 양산에 들어갔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는 일본이나 대만기업을 2~3년 가까이 앞섰고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도 인텔을 맹추격할 만큼 위상이 달라졌다.

휴대폰 시장을 점령한 과정도 드라마틱했다. 삼성이 본격적으로 휴대폰 생산에 뛰어들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초다. ‘국내에서 모토로라를 꺾겠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나온 것은 이 회장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발표한 1993년이다. 당시 이 회장은 독일 출장길에서 불량제품 관련 보고를 받고 크게 노해 품질경영을 역설했다.

양으로 승부하던 타성을 버리고 질 좋은 제품으로 고객의 만족까지 생각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의미였다. 변신에 목숨을 걸라는 회장의 메시지는 임직원들의 마음을 크게 움직였다.

그러니 휴대폰은 삼성 품질경영의 첫 작품이나 마찬가지다. 개발팀은 빠르게 움직였다. 경쟁사의 휴대폰을 분해해가며 단점을 파악했다. 무게는 줄이는 대신 디자인에 신경을 썼다. 소위 ‘잘 터지는’ 것이 중요하던 시절이었으니 전화 품질 확보도 중요한 과제였다.

시험모델이었던 SH-700을 거쳐 마침내 1994년 10월 삼성은 ‘애니콜’ 브랜드를 내건 첫 휴대폰 SH-770을 출시했다. ‘한국 지형에 강하다’는 광고 문구를 내걸었고 직원들은 전국 산을 누비며 홍보에 나섰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SH-770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하지만 또다시 불량품이 발목을 잡았다. 제품 출시를 서두르다 보니 불량률이 10%를 넘어서는 불상사가 발생한 것. 이에 이 회장은 불량품을 무조건 새 제품으로 바꿔줄 것을 지시하고는 수거된 불량 휴대폰 15만대를 구미사업장 운동장에 모은 뒤 2000명의 임직원이 보는 앞에서 불태웠다. 널리 알려진 삼성의 ‘휴대폰 화형식’이다.

‘불량을 용인하던 과거와 단절하지 않으면 회사의 미래는 없다’는 회장의 결단이었다. 이날 불구덩이에 던져진 제품은 500억원 상당이었는데 당시 삼성전자 총 영업이익의 7~8%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돈을 받고 불량품을 파는 것은 고객을 기만하는 것”이라며 전 직원을 향해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후 삼성은 확실히 변했다. 불량률이 낮아지면서 고객의 불만도 크게 줄었고 삼성전자는 1995년 8월 처음으로 국내 시장에서 모토로라를 앞지르며 점유율 1위에 올라섰다. 휴대폰 화형식의 효과는 그룹 전체로 퍼졌다. 휴대폰뿐만 아니라 삼성이 만드는 모든 제품에 품질경영이 자리잡는 계기가 됐다. 삼‘ 성 제품은 믿고 써도 된다’는 신뢰가 퍼지면서 이후 삼성이 더 빠르게 시장을 점령하는 원동력이 됐다. 고객이 불만을 가질 때 가장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서비스 기업으로 전환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다.

현재 삼성의 휴대폰은 애니콜 시대를 거쳐 갤럭시 시리즈로 진화했다.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의 전환은 애플보다 늦었지만 삼성은 또 한번 추격자의 모범답안을 보여줬다. 소비자는 원하지만 애플에는 없었던 혁신적인 기능을 빠르게 찾아내 스마트폰에 탑재했고 더 쉽게 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갤럭시 시리즈는 어느새 삼성 휴대폰의 이미지를 ‘인기 있는 폰’에서 ‘머스트 해브 아이템(Must Have Item)’으로 바꿔놨다. 삼성의 올 3분기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31%다. 절대강자였던 노키아를 한참 뒤로 밀어냈고, 숙적이었던 애플마저 제치고 단연 1위다.





출신·학벌 필요 없다 천재를 키워라물론 삼성의 이러한 획기적인 경영성과는 이 회장 혼자 이룬 것이 아니다. 위기 그 너머를 보는 경영자의 과감한 판단도 필요하지만 이를 실제 혁신으로 연결하려면 인재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재 확보는 모든 기업의 숙제지만 삼성의 인재 사랑은 유별나다.

국내 다른 기업들은 삼성이 인재를 싹쓸이 한다면서 불만을 토로할 정도다. 사실 삼성이 후발주자에서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나 2000년대 이후 디지털 TV 전환기에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소니 등 경쟁사를 압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를 뒷받침하는 우수한 기술인력과 탁월한 전략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1987년 취임사부터 “50년의 맥을 이어 온 엄격한 신상필벌과 학연, 지연, 혈연을 철저히 배제한 공정한 인사의 전통은 영원 불변”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 원칙을 실제로 지켰다. 이 회장은 1994년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을 발탁해 무선사업부 책임자를 맡겼다.

일부 대학 출신이 임원을 독점하던 시절 지방대 출신 임원의 발탁에 많은 이들이 의아해했지만 이 부회장은 ‘애니콜 신화’를 쓰며 이 회장의 기대에 부응했다. 최근 ‘지방대생 채용 비중’ 확대를 직접 나서 지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삼‘ 성=엘리트’라는 자만의식에 안주해선 안 된다는 경고 메시지기도 하지만 ‘인재가 대학 이름 따라 나오진 않는다’는 평소 지론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임원들에게는 학연, 지연, 성별을 따지지 말고 진짜 숨어있는 인재를 찾는데 에너지를 쏟으라고 주문했다. 이 회장은 2002년 핵심 인재확보 사장단 회의를 주재하면서 “계열사별로 월별 핵심인재 확보 실적을 직접 챙기겠다”며 “나 자신부터 업무의 절반 이상을 핵심인력 확보에 비중을 두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삼성그룹은 인재 영입 실적을 연말 사장단 업적 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인재 욕심은 ‘1명의 천재가 1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이 회장 특유의 천재론과 맞닿아 있다. 윤종용, 이윤우, 최지성 전 삼성전자 부회장 등은 그의 천재론을 현실로 옮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글로벌화를 추진하면서 젊은 사원들을 해외 각지로 보내 전문가로 키우는 ‘지역전문가제도’ 역시 이 회장이 애착을 가진 부분이다. 현재까지 삼성이 해외로 내보낸 지역전문가는 약 4000여명에 달한다. 한 명의 지역전문가를 키우려면 현지 체류비 등 투자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철저한 현지화가 사업 성공의 열쇠라 믿는 이 회장은 이들을 통해 얻는 회사의 이득이 훨씬 크다고 봤다. 지역전문가 양성에 투자한다는 그의 결정은 실제로 전세계에 삼성이란 브랜드를 빠르게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실적만 놓고 본다면 더할 나위 없는 호시절임이 분명하지만 지금 삼성 그룹 내에는 긴장이 넘친다. 이 회장은 잘한다는 평가가 나올 때 오히려 위기를 더 강조하면서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경영자다. 2010년 2년 만에 경영 일선에 복귀하면서 이 회장은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라며 “머뭇거릴 시간 없이 다시 시작해야 된다”고 말했다. 임직원들을 향해 다시 한번 정신 재무장을 당부한 셈인데 이 회장 특유의 충격요법이다. 그리고는 소프트 경쟁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이 회장은 수원사업장을 찾은 자리에서 “소프트웨어, 디자인, 서비스 등 소프트 기술의 경쟁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며 “소프트웨어 인력은 열과 성을 다해 뽑고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융합이 대세가 될 시대에 삼성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단점으로 여겨졌던 소프트 분야를 더욱 키워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1996년 ‘기업 디자인은 기업의 철학과 혼을 담아야 한다’며 디자인 혁명을 선언한 것과 맞닿아 있다. 경영 여건의 변화 속도가 빠른 만큼 유연하고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도입하는 데도 관심이 크다.

이 회장이 최근 틈만나면 ‘여성 인재 육성’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평소 “여성인력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자전거 바퀴 가운데 하나를 빼놓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해왔다. 소프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여성인력의 활용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삼성그룹은 1993년 신경영 선언 이후 여성 대졸 공채를 시작했는데 올해 신입사원 중 여성의 비율이 처음으로 30%를 넘어섰다. 지난해 삼성그룹 연말인사에서 는 삼성전자 최초의 여성 부사장이 탄생하기도 했다.



‘소프트’가 앞으로 25년 좌우이미 삼성은 소프트 기업으로의 전환을 시작했다. 지난해 삼성전자 내에 소프트웨어직군을 별도로 신설한 데 올해는 미국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인 엠스팟을 인수했다. 소프트웨어 관련 인력은 3만명, 디자인 인력은 3000명 규모로 늘렸다. 최근 출시한 갤럭시 S3와 갤럭시노트2의 메인 광고 카피는 각각 ‘Designed for Humans’와 ‘Be Creative’다.

둘 다 강력한 하드웨어 바탕에 감성과 소통이란 키워드를 담아냈다. 갤럭시S3는 3분기 글로벌 시장에서 1800만대나 팔려나갔다. 갤럭시노트2 역시 출시 한 달여 만에 누적판매량 300만대를 돌파했다. 이 둘 덕분에 삼성전자는 올해 사상 최초로 스마트폰 연간 판매량 2억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유무형 자산의 조화가 삼성의 새로운 DNA로 자리를 잡은 모양새다. 장기적으로는 모든 가전제품과 스마트폰, PC를 하나의 생태계 안에서 연결하는 스마트홈 시장을 노린다.

물론 이 회장의 말처럼 안주할 단계는 아니다. 지금까지는 삼성이 최강의 추격자이자 역전의 대명사지만 앞으로는 아니다. 초일류기업의 자리에 올라선 만큼 업계를 리드하고 시장의 성장을 견인해야 할 책임도 생겼다. 삼성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갤럭시 시리즈로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제는 ‘지금 나와있는 것 중 최고’가 아닌 ‘이제껏 시장에 없던 것’을 내놔야 한다. 앞으로 25년 후 삼성이 어떤 모습일지는 여기에 달려있을 공산이 크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1147회 로또 1등 ‘7, 11, 24, 26, 27, 37’…보너스 ‘32’

2러 루블, 달러 대비 가치 2년여 만에 최저…은행 제재 여파

3“또 올랐다고?”…주유소 기름값 6주 연속 상승

4 정부, 사도광산 추도식 불참키로…日대표 야스쿠니 참배이력 문제

5알렉스 웡 美안보부좌관 지명자, 알고 보니 ‘쿠팡 임원’이었다

61조4000억원짜리 에메랄드, ‘저주받은’ 꼬리표 떼고 23년 만에 고향으로

7“초저가 온라인 쇼핑 관리 태만”…中 정부에 쓴소리 뱉은 생수업체 회장

8美공화당 첫 성소수자 장관 탄생?…트럼프 2기 재무 베센트는 누구

9자본시장연구원 신임 원장에 김세완 이화여대 교수 내정

실시간 뉴스

11147회 로또 1등 ‘7, 11, 24, 26, 27, 37’…보너스 ‘32’

2러 루블, 달러 대비 가치 2년여 만에 최저…은행 제재 여파

3“또 올랐다고?”…주유소 기름값 6주 연속 상승

4 정부, 사도광산 추도식 불참키로…日대표 야스쿠니 참배이력 문제

5알렉스 웡 美안보부좌관 지명자, 알고 보니 ‘쿠팡 임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