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Ⅱ - 올해 첫 경매 낙찰률 79%…차분한 출발
Special ReportⅡ - 올해 첫 경매 낙찰률 79%…차분한 출발
“800(만원), 800 나왔습니다. 가운데 남자분, 네 840 나왔습니다. 880 없습니까? 네 880. 880, 880, 더 없습니까? 880, (탕) 낙찰됐습니다.” 일순간 200여명이 빼곡히 들어찬 공간이 술렁였다. 60만원에서 출발한 이대원의 판화 ‘농원’이 880만원에 팔린 것이다. 애초 이 작품의 추정가는 100만~300만원 수준이었다. 언뜻 긴장감이 흘렀지만 환호성을 지르거나 탄식을 내뱉는 모습은 없었다. 전반적으로 침체를 겪고 있는 국내 미술시장의 상황을 대변하듯 이날 경매는 2시간 여 동안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서울 평창동에서 1월 31 열린 올해 첫 경매 풍경이다. 미술품 경매 회사 서울옥션이 ‘마이 퍼스트 콜렉션’이라는 주제로 연 이번 기획 경매는 경매를 막 시작하는 초보자를 대상으로 했다. 300만~500만원대의 중저가 작품이 주를 이룬 것도 그 때문이다. 최윤석 서울 옥션 미술품경매팀장은 “미술 경매의 대중화를 위해 일반 직장인도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작품을 위주로 경매를 기획했다”며 “초보자에게는 보통 연봉의 10%에 해당하는 가격대의 작품을 고르라고 추천한다”고 말했다.
남편과 함께 경매장을 찾은 김진아(33)씨는 “두 달 전 결혼했는데 신혼집에 걸 그림을 사기 위해 왔다”며 “온라인 경매 입찰은 해본 적있지만 직접 경매에 참여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중저가 작품이 주를 이뤘지만 정조대왕의 서‘ 첩’처럼 추정가만 1억원이 넘는 고가 미술품도 있었다. 이번 행사는 경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3월을 한 달 앞두고 올해 미술시장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초보자를 대상으로 했다고는 하지만 화랑을 운영하는 전문가의 발길도 줄을 이었다. 서울 인사동에서 화랑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중저가 작품이긴 해도 이름난 블루칩 작가의 작품이 많아 분위기를 볼 겸 참여했다”며 “작품의 수준에 비해 가격대가 낮게 책정돼 있어 탐나는 작품이 제법 있다”고 말했다.
이날 경매 낙찰률은 79%를 기록했다. 지난해 평균 낙찰률이 65~70%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순조로운 출발이다. 이날 출품작 103점 중 81점이 거래됐다. 낙찰 총액은 10억6700만원이다. 조각 작품은 출품된 29점이 모두 팔려 100%의 낙찰률을 보였다. 조각 작품 가운데 최고 경합을 일으킨 강관욱의 ‘구원’은 160만원부터 시작해 현장과 전화·서면의 열띤 경합 끝에 시작가의 5배 이상의 금액인 830만원에 낙찰됐다.
유영교의 ‘모자상’(추정가 100만~300만원)은 630만원, ‘자매’(추정가 200만~400만원)는 580만원에 외국 콜렉터에게 팔렸다. 이날 경매 최고가는 1억7800원에 경매된 김창열의 ‘물방울’로 외국 콜렉터가 샀다. 300호 크기의 물방울 작품 ‘해체’도 1억원에 외국 콜렉터가 가져갔다. 정조대왕의 ‘서첩’은 1억3000만원에 낙찰되며 고미술 가운데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번 경매에서는 현장보다 전화 응찰을 통한 해외 콜렉터의 반응이 뜨거웠다. 서울옥션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중국·홍콩 등 아시아 미술에 관심이 커졌는데 이게 국내 작가의 작품으로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여명의 전화 응찰 직원이 쉴새없이 응찰패를 들어 경합을 펼치는 장면이 연출됐다.
짧게는 10~15초면 낙찰이 되는 일반적인 경매와 달리 인기 작품은 10여 분 동안 긴 레이스를 펼치기도 했다. 이학준 서울옥션 대표는 “마이퍼스트콜렉션은 중저가 미술품으로 구성돼 초보 콜렉터가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어 외국 콜렉터의 전화 응찰이 많았다”며 “이번 경매 결과는 미술 시장의 긍정적인 신호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세계 미술시장의 호황에 힘입어 2005년부터 성장을 거듭하던 국내 미술품시장 거래 규모는 2007년 2000억원대에 이르렀다. 국내에서 갤러리와 경매회사가 우후죽순으로 문을 열던 것도 바로 이 시기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후 아직 옛 영화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거래 규모를 850억원 수준으로 추정했다. 올해도 난항은 거듭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해 미술시장의 향방을 좌우할 변수인 미술품 양도세(미술품이나 골동품을 사고 팔 경우 생기는 차익에 대해 세금을 물리는 것으로 6000만원 이상 미술품을 거래할 때 발생) 과세가 1월 1일부터 시행되면서 침체 분위기는 더 깊어졌다.
서울옥션 경매장에서 만난 한 화랑 대표는 “침체에 빠진 미술시장에 지원은커녕 오히려 세금을 거둔다니 부당하다”며 “미술품을 사고 파는 것을 문화 활동으로 보지 않고 투기나 비리와 연관시키는 사회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술계 사람들은 경제규모에 비해 미술시장이 취약한 우리나라 실정 상 양도세 부과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이 대표는 “콜렉터의 절반 이상이 기업을 비롯한 법인 콜렉터인 선진국에 비해 개인 콜렉터 비중이 88%에 달하는 국내 미술시장 실정에 맞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개인 콜렉터들은 세금에 대한 부담보다는 심리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개인 콜렉터는 “콜렉션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그림이 좋아서 사모은다”며 “우리 같은 사람이 작품의 가치를 높여줘야 신인작가도 양성하고, 전체적인 미술시장도 발전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10~20년 장기적인 안목으로 미술품에 투자할 수는 있어도 부동산 투기하듯 작품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그림을 뇌물로 주고 받는 등 일부 비리 사건을 두고 미술계 전체를 매도해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그는 “돈을 벌 생각이라면 미술품 말고 투자할 데가 얼마나 많으냐”고 했다.
미술계 전체 싸잡아 비난은 곤란양도세 부과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미술시장에 미칠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다. 아직 세부 시행령이 나오지 않아 실질적으로 변화를 느끼고 있지는 않다는 게 일선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학준 대표는 “미술품 양도세 부과로 분위기가 가라앉을 수 있지만 고가 미술품 콜렉터 수가 적은 만큼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며 “미국·유럽·중국 등 해외 미술시장이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어 점차 활기를 되찾을 것”으로 전망했다.
배혜경 홍콩크리스티 서울사무소장도 최근 세계 미술시장의 중심이 상하이와 홍콩으로 이동하고 있는 현상을 들어 올해 국내 미술시장의 선전을 전망했다. 그는 “올 연말께 큰 손 콜렉터가 움직이면 시장이 달아오를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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