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WARES - “사지 않고는 못 배긴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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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우드 쿠킹 셰프는 스탠드형 믹서와 영화에 나오는 로봇을 합쳐놓은 듯하다. 재료를 다지고, 저미고, 채 썰고, 혼합할 뿐아니라 음식을 조리하기까지 한다. 예전에 미국인들이 ‘젯슨 가족’(로봇 하인을 둔 가족을 그린 만화 시트콤)을 보며 ‘장차 저런 가사도우미를 두게 될 날이 올까’ 상상했던 것과 놀랍도록 비슷한 기기다.
지난 3월 초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국제 가정용품 박람회에서 이 기기는 주방가전관 한가운데서도 가장 좋은 자리에 전시됐다. 뉴욕에서 온 요리사가 이 기기를 이용해 거의 손을 쓰지 않고 나무랄 데 없는 리조토를 후다닥 만들어냈다. “정말 완벽하다”고 박람회에 참석한 시카고의 한 요리강사가 말했다. 맞다. 물론 집에서 이렇게 완벽한 리조토를 힘들이지 않고 만들려면 2000달러를 들여 이 기기를 장만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제 조리기구에 이 정도의 돈을 써도 될 만큼 미국 경제가 회복된 걸까? 지난 2월 28일 미 상무부 산하 경제분석국은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당초 -0.1%에서 0.1%로 상향 조정한다고 발표했다. 또 3월 8일엔 실업률이 7.7%로 떨어졌다는 뉴스 보도가 나왔다. 4년만에 최저 수준이다.
하지만 현재 실직자 수는 지난 2008년 1월에 비해 여전히 500만 명이 더 많다. 박람회가 열린 시카고 사우스 사이드 지역의 실업률은 11%에 육박한다. 아직 켄우드 쿠킹 셰프 같은 값비싼 조리기구를 장만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모두 허리띠를 조이고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까?
경기가 더 좋던 시절에도 미국인들은 유럽에서 인기를 끄는 값비싼 주방가전 제품에 관심이 없는 듯했다. 켄우드 쿠킹셰프의 경쟁 제품인 포르베르크사의 서모믹스는 지난 2004년 미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켄우드도 지난해 10월에야 윌리엄스-소노마(가정용품 전문점)를 통해 쿠킹 셰프의 미국 내 판매를 시작했다. 이런 기기들은 소비자들이 가정에서 손수 음식을 만들어 먹기 편리하도록 제작됐지만 미국인들은 집에서 요리를 해먹는 경우가 점점 줄고 있다.
미국 경제가 전세계의 부러움을 살 만큼 성장을 거듭하던 수십 년 동안 미국인들의 가정요리 부문지출은 뚝 떨어진 반면 외식비 지출은 증가했다. 쉬라타블(가정용품 전문점)의 CEO 잭 슈웨플은 “주방가전 제품이 제공하는 편리함은 미국 소비자가 기대하는 종류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경기침체가 닥치면서 값비싼 주방가전 제품의 소비가 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타던 자동차를 몇 년 더 타고, 휴가 때 바닷가로 여행을 가는 대신 집에 머물렀다. 2007~2012년 미국의 개인소비 지출 상승폭은 3.5%에 불과했다. (2001년 경기 침체 당시에는 5년 동안 15% 이상 상승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호화 주방기기에 여전히 많은 돈을 지출한다.
물론 켄우드 쿠킹 셰프 같은 고가의 주방가전 제품들은 시장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다양한 종류의 고급·전자동·최신식 주방기기기를 구입하는 미국인이 점점 늘고 있다. 스탠드형 믹서, 커피 메이커, 주서, 블렌더, 그리고 두 가지 이상의 기능을 가진 다용도 주방기기들이다.
시장조사 업체 NPD의 데브라 메드닉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주방가전 매출은 10% 상승했다. 이 조사는 단순히 매출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실제로 미국인들이 집에서 요리를 해먹는 경우가 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주방가전 매출 증가가 보여주는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앞으로 그렇게 하려고 준비하는 미국인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가정용품 박람회가 열린 시카고 매코믹 플레이스는 축구장 여섯 개 정도의 넓이다. 행사 기간 4일 동안 그 큰 전시 공간을 온갖 주방기기들이 가득 메웠다. 사실 그 제품들은 미국인들의 찬장에 넘쳐나는 물건들과 비슷한 것들이다. 다만 종류와 모양, 색상, 가격이 더 다양할 뿐이다.
난 이제 새 주방기기가 필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건 새 물건을 들일 만한 공간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집 주방 조리대엔 압력솥과 스탠드형 믹서, 서모믹스 다용도 조리기, 수비드(진공 저온 조리법) 기기, 진공포장기, 전기밥솥, 토스터 오븐이 놓여 있다. 찬장 아래쪽은 이야기안 하는 편이 낫겠다. 지하실과 복도에도 주방기기들이 넘쳐나 이젠 식당까지 침범했다.
쉬라타블의 슈웨플은 수납할 공간만 있다면 소비자들이 자신의 가게에서 더 많은 돈을 쓸 거라고 말한다. 시카고 박람회에는 그런 요구를 반영해 만든 온갖 주방기기들이 선보였다. 프로방스풍의 식탁보와 구리 식기로 꾸며진 아기자기한 코너가 있는가 하면 뢰슬레 소스팬과 모비엘 냄비 등 절제되고 품위 있는 디자인 위주의 코너도 있었다. 또 레이철 레이, 폴라 딘, 기 피에리 등 유명 요리사가 홍보한 제품들도 눈에 띄었다.
캐나다 노바스코샤주의 라치 우드는 내가 본 중 가장 아름다운 도마를 전시했다. 도마에 새겨진 문양이 얼마나 정교한지 마치 예술작품 같았다. 다만 가격마저 예술작품처럼 비싸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쿤 리콘과 옥소에서 나온 정교한 주방기기들과 프로그레시브의 형광색 제품들도 눈길을 끌었다. 그 물건들을 집에 가져다 놓으면 생활이 훨씬 편리해질듯한 생각이 들었다.
‘재료에 열을 가해 익힌다’는 요리의 기본 개념은 수천 년 동안 별로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새로운 발명품이 계속 나온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물건 하나 하나를 볼 때는 진보의 폭이 미미한 듯하지만 전체적으로 더 편리하고 멋진 삶을 약속하는 듯 보였다.
몇 분만에 뚝딱 식사 준비를 마칠 수 있는 전기 압력솥과 전자 레인지가 있는가 하면 요리 시간이 며칠씩 걸리는 슬로쿠커와 수비드 기기들도 있다. 분리하면 커다란 두 개의 숟가락이 되는 샐러드용 집게. 힘들게 펌프질을 하거나 손잡이를 돌리지 않고 단추만 한번 누르면 채소의 물기를 빼주는 채소 탈수기. 음료를 뜨겁거나 차갑게 보관할 수 있는 기기(단순한 보온용기와는 다르다) 등. 내가 이야기를 나눠본 모든 사람이 주방기기 중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보이는 쪽이 음료 부문이라고 말했다. 탄산음료 제조기부터 주서, 고급 커피 메이커까지.
레밍턴의 신제품 i커피로 뽑은 커피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감미로웠다. 분쇄 원두를 증기로 덥히기 때문에 쓴 성분이 추출되지 않는다. 그 기계를 발명한 사람은 내게 “이 기계를 만드는 데 개인 돈 1500만 달러를 쏟아 부었다”고 말했다. 우리 집엔 이미 꽤 좋은 커피 메이커가 3~4대 있지만 난 남편에게 전화해 이 멋진 기계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박람회에 오려고 공항으로 출발할 때 남편은 “사고 싶은 물건을 잔뜩 적은 쇼핑 리스트를 들고 오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건 정말 어려운 주문이었다.
하지만 모든 물건이 매력적이진 않았다. 롤리 에그매스터라는 제품이 그 예다. 프라이팬 없이 쉽고 빠르게 완벽한 달걀 요리를 만들어준다는 제품이었다. 겉보기엔 휴대용 머그컵과 비슷한데 음료가 들어갈 곳에 손가락보다 약간 더 길고 굵은 구멍이 나 있다. 그 안에 소시지 한 개를 넣은 다음 달걀 한 알을 깨 넣으면 5분만에 요리가 완성된다. 하지만 맛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러나 로테이토(과일이나 감자 껍질 깎는 기계)와 전기 달걀 조리기 같은 물건들을 사들인 내가 어떻게 “미국인들은 에그매스터를 살 때가 아직 안 됐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NPD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온갖 새로운 주방기기들을 사들이는 데 많은 돈을 쓰고 있다. 하지만 지출의 증가의 요인이 더 많은 기기를 사들이기보다는 더 좋은 기기를 장만하는 데 있다는 메드닉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
“주방가전 업체의 수입 상승엔 두 가지 요인이 있다”고 메드닉은 말했다. “제품 가격이 오르거나 소비자가 더 비싼 제품을 구입하는 것이다. 요즘 미국의 경우는 후자 쪽이다. 매출은 10% 올랐지만 판매량은 저조하다. 박람회장을 둘러보면서 가격을 물어보면 보통 가격의 5배, 10배, 20배에 팔리는 물건들이 눈에 띈다. “
미국 소비자 전문 잡지 ‘컨슈머 리포츠’에 따르면 키친에이드의 무겁고 값비싼 믹서가 현재 스탠드형 믹서 시장의 절반을 차지한다. 커피 메이커도 매출을 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라 카프레소는 전기제품관 입구에서 2000달러짜리 자동 에스프레소 메이커로 뽑은 커피를 무료로 나눠줬다.
또 다른 2000달러짜리 호화 주방기기가 있었는지 궁금한가? 박람회장에 모인 사람 중 누구도 대침체라는 말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듯 보였다. 우리는 미국을 대침체 속에 몰아넣은 낭비의 시대로 돌아간 걸까? 개인저축률 0%에 신용카드 사용은 최고한도에 달하고, 주택에 과도한 지출을 하던 그 때로 말이다.
어쩌면 고급 주방기기 구입에 돈을 쓰는 것은 과도한 지출을 줄이기 위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내가 이야기를 나눠본 사람 거의 모두가 고급 주방기기 구입은 엄청난 돈이 드는 주택 개조를 대체하는 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다양한 최고급 주방기기를 판매하는 슈웨플은 그런 제품의 구입이 생각처럼 낭비가 아니라고 말했다.
“2000달러짜리 커피 메이커를 사는 사람은 하루에 스타벅스에서 커피 사 마시는 돈 5~10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 기계 값은 금세 벌충된다.” 물론 평생 2000달러짜리 커피 메이커를 가져보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수퍼마켓에서 파는 14.99달러짜리 커피 메이커 대신 수백 달러짜리로 수준을 높이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비싼 기기는 집에서도 레스토랑 못지 않은 음식과 음료를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맛있고 개인취향에 맞는 음식을 거의 자동으로 만들 수 있다.
박람회 곳곳에 전시된 값비싼 기기들은 요리사의 일손을 덜어주고 기술도 거의 필요 없게 만들어준다. 테팔에서 나온 실내용 그릴은 생선, 고기, 야채와 샌드위치를 원하는 정도로 굽도록 선택할 수 있고 조리가 끝나면 불빛으로 알려준다. 고기를 원하는 정도로 딱 맞게 익힐 수 있는 수비드 기기도 판매가 점점 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전기밥솥 업체 조지루시(일명 코끼리 밥솥)는 수십 가지 방식으로 밥을 지을 수 있는 800달러짜리 신제품을 선보였다. 누룽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밥을 눌리는 기능도 포함됐다.
게다가 켄우드 쿠킹 셰프처럼 모든 재료를 한꺼번에 넣은 뒤 단추만 누르면 소스나 리조토를 만들어주는 기계도 있다. 기계를 작동시킨 뒤 다른 일을 보다가 시간이 돼서 돌아와 보면 완벽한 요리가 준비돼 있다. 슈웨플은 “이런 기기들과 고급 재료를 파는 슈퍼마켓을 잘 활용하면 매일 환상적인 음식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슈퍼마켓 대신 농산물 직판장을 이용하거나 아예 텃밭에서 채소를 길러먹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음식 재료 조달과 조리 측면에서 DIY 바람이 거세다”고 슈웨플은 말했다. 몇 년 전 슈웨플은 소호의 쉬라타블 매장을 돌아보다가 자가 병조림 용품 코너가 거의 비어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동안 소수의 소비자를 위해 소규모로 유지해 오던 코너가 갑자기 엄청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윌리엄스-소노마는 자가 식품생산 관련 부문을 한층 더 발전시켰다. 이 업체는 2012년 봄 홈 가드너(자가 농산물 재배자)를 위한 라인을 출시했다. 500달러짜리 초보자용 벌통 세트에는 보호용 의복이 포함돼있다. 또 재활용 삼나무로 만든 수제 닭장은 895달러에 구입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자가 식품생산 관련 사업과 고급 주방기기 사업이 동시에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두 가지가 반대되는 경향이 아니라는 사실은 더 흥미롭다. 신선한 달걀이 있다면 그 달걀로 완벽한 올랑데즈 소스를 만들어줄 고급주방기기도 필요하지 않을까? 직장 일과 가사를 병행하는 여성이 많은 요즘 시대에 그런 기기들은 주부의 수고를 덜어줄 뿐 아니라 시간도 절약하게 해준다.
사실 이 기기 중 다수는 작동을 시켜놓고 다른 일을 보는 동안 완벽한 요리를 만들어준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런 기기들은 “매일 환상적인 음식을 즐기는” 데 드는 비용을 낮춰준다. 난 주방기기 구입에 수천 달러를 들였지만 그 기기들로 남편과 나는 식사의 80%를 집에서 직접 요리해 먹는다. 레스토랑 음식보다 훨씬 싸고, 소금이나 설탕이 많이 들어간 슈퍼마켓 조리식품보다 건강에 좋다.
값비싼 주방가전 제품 없이도 가능한 일 아니냐고 따질 수도 있다. 맞다. 난 서모믹스를 구입하기 전엔 맛있는 리조토와 부드러운 홀랑데즈 소스를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내가 서모믹스나 슬로쿠커, 압력솥이나 수비드 기기로 하는 모든 요리는 구식 가스레인지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편리한 기기들을 이용하면 음식을 더 맛있고 더 빠르게 만들 수 있다. 미국인들은 지난 5년 동안, 특히 금융위기 이후 값비싼 주방기기에 많은 돈을 썼지만 차츰 기본으로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기본이 예전보다 훨씬 더 복잡해진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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