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중세의 향기에 취하다
Travel - 중세의 향기에 취하다
중세의 향기가 짙은 몽펠리에, 세잔의 도시 엑상 프로방스와 지중해 최대 항구도시 마르세유…. 지중해의 햇살과 바람이 넘치는 프랑스 남부로 자동차 여행을 떠났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차를 빌려 프랑스 남부로 갈 거예요. 몽펠리에, 엑상 프로방스, 마르세유로 갑니다. 친구들과 같이요.”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부러움에 가득 찬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이 정도면 정말 부러워할 만한 여행이라고 내 스스로도 생각했다. 오픈카까지는 아니더라도 시트로엥 C4 피카소를 타고 지중해 감성 풍만한 프랑스 남부 도시를 달린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가슴 벅찼다. 서울에서 내비게이션까지 대여해 마음 맞는 친구 셋과 드디어 바르셀로나를 출발했다.
4월 중순 이미 싱그런 연두빛 잎이 눈부시게 돋아난 나무, 이런 나무들이 도열한 길을 달리며 우리는 한껏 봄기운에 취해 있었다. 고속도로를 타고 몽펠리에까지 대략 3시간. 그런데 2시간 넘게 달렸는데도 아직도 400km 넘게 남았다. 고속도로로 내비게이션을 몇 번이나 설정했는데, 이 망할 기계는 엉뚱하게도 국도로만 계속 우리를 안내한 것이다.
“저 왼쪽 도로는 뭐야? 저거 고속도로 아니야?” 우리는 어떻게든 고속도로를 올라타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번번이 길을 만날 것 같다가 멀어졌다. 결국 3시간이면 가는 몽펠리에를 6시간 걸려 간신히 도착했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기진맥진해 있었다.
몽펠리에 1년에 300일 화창이튿날 아침, 원기를 회복하고 모인 4인방. 본격적으로 몽펠리에 시티 투어에 나섰다. 프랑스 남부의 랑그독 루시옹 지방의 주도인 몽펠리에는 연중 300일 가까이 해가 나는 화창한 도시다. 마음만 먹으면 구시가지의 관광지는 반나절이면 다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도시다. 그러나 인구로 보면 프랑스에서 여덟 번째로 큰 도시다. 몽펠리에는 10세기 말에 건설돼 1000년의 오랜 역사가 있다. 그럼에도 대대적인 도시 계획을 추진해 지금은 유럽에서 도시개발의 모범 사례로 손꼽힌다.
스페인의 유명 건축가인 리카르도 보필이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건설한 신시가지 앙티곤과 레즈(Lez) 강가의 마리안항, 새로 건설된 시청사 주변의 신시가지는 몽펠리에의 현재를 보여준다. 이 도시 인구의 3분의 1은 학생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가 있는 ‘대학 도시’로 유명하다.
이렇게만 얘기하면 몽펠리에는 무척 현대 도시처럼 느껴지겠지만, 1000년에 달하는 역사가 구시가지에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우선 여행자들을 가장 먼저 반기는 곳은 몽펠리에역 가까이 있는 코메디 광장이다. 18세기에 만든 이 광장의 가운데에 세 여신상이 있다. 그 주변으로 오페라 하우스를 비롯한 역사적 건축물이 둘러싸고 있다. 구시가지를 도는 관광열차를 타고 주요 유적을 돌아볼 수 있다.
생 클레망 수로로 가는 길은 무척 아름답다. 1772년 도시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든 로마식 아치교와 그 주변으로 완벽하게 보존된 중세 분위기 마을이 역사책 속 사진처럼 완벽하게 남아 있다. 몽펠리에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명소는 파브르 미술관(Le Musee Fabre)이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컬렉션을 대거 소장한 아름다운 미술관이다. 특히 17세기 플랑드르와 네덜란드 화가, 유럽 회화대가의 작품을 두루 감상할 수 있다.
엑상 프로방스는 세잔과 분수의 도시엑상 프로방스는 걸어서 반나절이면 구시가지를 다 돌아볼 수 있을 만큼 작은 도시다. 전형적인 프랑스 남부 도시의 아름다움이 넘치는 곳이라 걷다가 그냥 길을 잃어도 좋을 것만 같았다. 우선 관광안내센터에 들러 먼저 가볼 만한 곳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지도를 챙겼다. 아주 잘 정리된 지도여서 주요 명소는 지도만 가지고도 다둘러볼 수 있었다.
엑상 프로방스는 무엇보다 폴 세잔의 고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중심지인 미라보 거리에는 그가 자주 갔다는 200년 넘은 카페 ‘레 되 가르송’이 있다. 언덕배기를 쭉 오르면 그가 쓰던 가구와 물건이 그대로 남은 세잔 아틀리에도 있다. 또 세잔의 그림에 등장하는 생 빅투아 산에 올라 프로방스의 자연을 만끽할 수도 있다.
엑상 프로방스는 예전부터 분수가 많고 온천수가 나오는 지역으로 유명해 ‘물의 도시’로 불렸다. 도시 안에는 20여 개의 크고 작은 분수가 물줄기를 뿜으며 도시를 반짝이게 만든다. 미라보 산책로를 걷다 보면 17~18세기의 화려한 귀족의 대저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또 유명한 생 소뵈르 대성당에 다다르면 13~17세기에 걸쳐 덧대어진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의 건축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 방돔 공작의 별장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별장은 방돔 공작이 그의 연인인 라 벨르 두 카네와 지내기 위해 1652년에 지었다. 별장 안에는 잘 가꾸어진 정원과 분수, 그리고 3층으로 지어진 정육면체의 건물이 자리했다. 머리로 테라스를 받치고 있는 문 양쪽의 아틀란테스 조각상은 오래도록 시선을 끈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개조돼 엑상 프로방스 시민들의 느긋한 휴식처 노릇을 한다. 4월의 따스한 햇살이 이 별장 안에 한 가득 담겨 잠시 잠을 청하고 싶었다.
작은 프로방스의 도시를 거쳐 마르세유에 도착했다. 첫 인상은 우선 도시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이었다. 그도그럴 것이 마르세유는 프랑스 남서부에서 가장 큰 항구 도시다. 프랑스 전체로 따져도 세 번째로 큰 도시다. 동시에 2600년의 역사를 간직한,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다.
프랑스가 19세기에 알제리를 점령하면서 북아프리카와 교역하는 항구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때문에 아랍과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띈다. 항구 주변에는 오래된 중세 시대의 건물이 프로방스의 유구한 역사를 대변한다. 빼곡히 정박한 고급 요트는 부유한 도시의 향내를 풍긴다. 도시를 한눈에 둘러보기에는 관광버스 투어가 제격이다. 탁 트인 버스의 2층에 앉아 마르세유의 오래된 구시가지며, 쇼핑타운이며, 지중해 바람 넘실대는 바닷가, 모래사장에 누워있는 사람들을 골고루 둘러볼 수 있다.
2600년 역사 간직한 마르세유시간이 부족한 여행자라도 마르세유의 상징인 노트르담 성당과 샤토 디프섬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1853년과 1864년 사이에 신 비잔틴 양식으로 지은 노트르담 성당은 시가지 전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언덕 위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성당의 탑 위에는 10m 높이에 달하는 금색의 성모 마리아 동상이 있다. 어부들은 바다로 나갈 때마다 성모마리아에게 무사 안전을 기원한다. 노트르담 성당에서는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에 등장하는 이프섬도 보인다. 오랫동안 요새로 쓰이다가 나중에는 감옥이 됐다.
구항구에서 유람선을 타고 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마르세유에서 가장 좋은 건 흰살 생선과 조개·새우 등을 넣어 만든 브야베스 스프, 각종 해산물요리, 화이트와인을 함께 즐긴 시간, 화사하고 활기찬 지중해의 햇살과 바람을 마법처럼 느낀 순간이었다. 프랑스 남부에서 보낸 4월은 어느 봄보다 따사롭고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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