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법조인 ‘프로보노(전문성 활용한 사회공헌)’ 새 장 열겠다

법조인 ‘프로보노(전문성 활용한 사회공헌)’ 새 장 열겠다

개성공단 피해기업 무료 법률 자문부터 … “김앤장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돕겠다”



북한 개성공단 잠정 폐쇄로 123개 입주 기업은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됐다. 이대로 개성공단이 문을 닫으면 피해 규모는 수 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게 관련 업계의 주장이다. 개성공단기업협회 관계자는 “개성에 있는 공장 설비와 원·부자재는 물론이고 계약 불이행에 따른 원청업체의 배상 청구, 기존 거래처 상실, 신용도 하락 등 직·간접 피해 규모는 추산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개성공단 입주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가 잇따른다.

국내 최대 로펌(법률회사)인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이들을 돕기로 했다. 김앤장은 개성공단 피해 기업에 대한 무료 법률 지원에 나선다고 5월 14일 밝혔다. 최근 출범한 ‘김앤장 사회공헌위원회’의 첫 사업이다. 헌법재판관 출신인 목영준(58, 사법연수원 10기) 사회공헌위원장은 “개성공단 사태로 발생한 기업의 피해 복구가 조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9월 법복을 벗고 야인 생활을 하다 사회사업가로 변신했다. 목 위원장을 5월 7일 서울 종로구 내자동에 있는 사회공헌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어떻게 개성공단 입주 기업을 돕게 됐나?

“개성공단기업협회가 만든 개성공단 정상화 촉구 비상대책위원회가 김앤장에 법률자문을 요청했다. 무료로 해달라는 게 아니었다. 이 접수를 받고 내부 회의를 열었다. 입주기업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고 변호사 선임 비용도 부담스러울 테니 무료로 해주는 게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무료 법률 자문을 하게 됐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돕나?

“입주기업들이 피해 보상을 제대로 받으려면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잘 통과돼야한다. 피해자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피해 보상액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이런 법률안 초안을 김앤장 사회공헌위원회에서 만들어주겠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나 국회가 관련법안을 제출·발의하면 어떤 의미가 있고 효과가 있는지 입주기업에 자문도 할 것이다.”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입주기업을 돕기 위해 테스크포스(TF)팀을 구성했다. 상근 변호사와 행정법 전문가, 남북교류 전문가 등 6~7명으로 구성됐다. 희망자 지원을 받았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서울대 법과대를 나온 목 위원장은 하버드대 로스쿨을 마쳤고 연세대 법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 실장,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거쳐 2006년 헌법재판소 헌법재판관에 임명됐다. 2011년부터는 ‘법을 통한 민주주의 유럽위원회(베니스위원회)’ 정위원으로 활동한다. 그에 대한 세간의 평은 ‘성격이 담백하고 친화력이 뛰어나며 합리적인 사람’이다. 후배들의 덕망도 두텁다.

2006년 법원 공무원노동조합은 그를 헌법재판관으로 추천했다. 2011년에는 법조언론인클럽이 선정하는 ‘올해의 법조인상’을 받았다. 헌법 재판관으로 재직하면서 사회 전반에 헌법 정신이 뿌리내리는 데 기여한 공로다. 그런 그가 김앤장에 합류해 사회공헌 활동에 나선다고 했을 때 법조계 안팎의 우려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대기업이 주고객인 김앤장이 과연 공익소송 대리 활동을 할 수 있을까?’ 목 위원장은 “안에 들어와서 보니까 김앤장이 그동안 소리 없는 실천이라는 모토 아래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해왔더라”며 “일반 국민이 잘 모르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공헌위원회는 법률적 약자 보호를 공익 활동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는다”고 강조했다. ‘무늬만 사회공헌’이 아니라는 얘기다.

위원장을 맡은 계기는?

“30년간 법관 생활을 하면서 사회적 약자의 법률적 위치와 형편에 대해 고민을 해왔다. 그들을 위한 공익소송 사건도 유심히 관찰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약자를 위해 헌신하는 법조인이 많다. 그들의 실천적인 삶을 존경한다. 법복을 벗으면 직접 공익 법률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마침 김앤장이 본격적으로 공익 법률 활동을 하면서 내게 제안을 했다.”

기존 공익활동 조직과 뭐가 달라지나?

“사회공헌위원회는 법률적 약자 보호를 공익 활동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는다. 김앤장은 그동안 소리 없이 사회공헌 활동을 해왔는데, 이제는 활동의 폭과 깊이를 심화할 때가 왔다고 본다. 법률 구조를 절실히 원하는 사람들이 김앤장을 활용해 고민을 해소할 수 있도록 법률적 공익활동을 널리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복잡하고 어려운 형사사건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접견을 할 때 생기는 의사소통 문제 등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개인도 돕나?

“개인은 법률구조공단 등 다른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을 돕기보다는 장애인·이주 노동자·중소기업 등 어려움을 겪는 집단을 도울 방침이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의 사회공헌 활동에 법조계 안팎의 관심이 크다.

“법조계의 공익 활동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김앤장이 가진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은 방대하다. 600여명에 달하는 최고 수준 전문가들의 역량을 공익 활동에 조금씩만 기부해도 큰 파급 효과가 나올 것이다. 세금과 특허는 물론 해외사건 등에서 김앤장이 보유한 고도의 법률적 지식과 경험을 활용할 것이다. 공익적 기여의 질이 더 높은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김앤장은 조합형 로펌이다. 전사적인 공익 활동을 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김앤장은 세계 100대 법률 회사에 속한다. 구성원이 매우 우수하다. 개개인의 자부심과 노력도 굉장하다. 조합형 로펌은 오히려 강점이다. 여러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변호사가 포진한 조합 형태의 로펌은 일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 고객이 필요한 서비스를 즉각 종합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 이 같은 선진 시스템은 공익활동을 펼칠 때에도 강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김앤장 변호사들은 일이 많기로 소문났는데 공익 활동에 참여할 시간이 있겠나.

“위원회 명칭과 사업 아이디어를 김앤장 전 구성원에게 공모를 했다. 김앤장 변호사들한테 ‘우리가 만든 사회공헌위원회’라는 생각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로펌의 공익활동은 구성원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다면 의미가 없다. 앞으로 위원회의 모든 활동과 성과를 구성원에게 공개하고 소통할 것이다. 아이디어도 수시로 받고 포상도 할 계획이다.”

국내 많은 로펌은 제각각 사회공헌 활동을 한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로펌 공익활동 평가 지표를 개발하는 등 로펌과 변호사들의 공익 활동을 독려한다. 하지만 공익소송 부문 활동은 미미하다. 국내에 공익 전담 변호사는 20여명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김앤장 사회공헌위원회가 공익소송 대리 활동에 나서는 것에 놀라움을 표시하는 이들이 많다.

공익소송을 위한 법률 지원 배경은?

“사회공헌위원회 내에 공식소송 법률지원을 전담하는 공익법률센터를 만들었다(목 위원장이 센터장을 겸직한다). 공익소송 대리 활동을 강화해 법조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더 높여야 한다. 로펌이 공익소송 대리에 소극적인 것은 주 고객인 기업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쌍방대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분야기도 하다. 때문에 김앤장은 활발한 공익소송 대리를 위해 공익 전문 법무법인과 업무협약을 맺을 계획이다. 김앤장이 수행하기 힘든 사건은 공익법무법인에 맡기고, 공익법무법인도 규모가 큰 사건을 김앤장에 맡기는 식으로 역할 부담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

주로 어떤 분야에 역점을 두나.

“공익소송 대리 분야와 관련해서는 헌법·행정·형사 사건에 역점을 둘 것이다. 소송대리뿐 아니라 입법지원 활동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어떤 단체가 꼭 필요로 하는 법률을 제정하려고 할 때 탄원만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법률 초안을 만들어야한다. 이 단계에서 필요한 전문 지식을 우리 변호사들이 제공할 것이다.

이주 노동자나 장애인을 위한 권인 보호 입법안 초안을 작성하는 일들을 펼쳐갈 것이다. 이와 함께 개발도상국의 법률 제·개정에도 적극 나설 방침이다. 그간 개도국의 법률제정에는 미국 카네기·포드재단 같은 민간 단체의 역할이 매우 컸다. 김앤장이 개도국 법률지원 사업에 나서면 국격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를 하리라고 생각한다.”

김앤장의 사회공헌 활동에 대해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선도 있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앤장은 많은 사회공헌 활동을 해왔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식이어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김앤장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양극단이라는 것을 잘 안다. 김앤장도 이미지를 쇄신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해 기여한다는 것을 알릴 필요도 있지 않겠는가. 또한 단순히 금전적 지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 지식을 ‘프로보노’함으로써 김앤장의 일원들도 사회에 기여한다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사회공헌위원회는 독립기구로 운영되지만 예산은 김앤장에서 나온다. 목 위원장은 “궁극적으로 재단법인 형태로 가는 게 맞다”면서 “1~2년 정도 운영해 가면서 고민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위원회 활동에 필요한 예산은 아직 한계를 두지 않았지만 1년 정도 운영해보면 적절한 예산이 산출될 것”이라며 “우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예산과 인력을 아낌없이 투입하겠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50조 회사 몰락 ‘마진콜’ 사태 한국계 투자가 빌 황, 징역 21년 구형

2노르웨이 어선 그물에 낚인 '대어'가…‘7800t 美 핵잠수함’

3'트럼프의 입' 백악관 입성하는 20대 女 대변인

4주유소 기름값 5주 연속 상승…“다음주까지 오른다“

5트럼프에 뿔난 美 전기차·배터리업계…“전기차 보조금 폐지 반대”

6"백신 맞고 자폐증" 美 보건장관의 돌팔이 발언들?

7‘APEC CEO’ 서밋 의장된 최태원 회장…‘b·b·b’ 엄치척 의미는

8기업가치 70조 머스크의 ‘xAI’…“엔비디아 칩 10만 개 매입 예정”

9윤-시진핑, 한중정상회담서 방한-방중 서로 제안

실시간 뉴스

150조 회사 몰락 ‘마진콜’ 사태 한국계 투자가 빌 황, 징역 21년 구형

2노르웨이 어선 그물에 낚인 '대어'가…‘7800t 美 핵잠수함’

3'트럼프의 입' 백악관 입성하는 20대 女 대변인

4주유소 기름값 5주 연속 상승…“다음주까지 오른다“

5트럼프에 뿔난 美 전기차·배터리업계…“전기차 보조금 폐지 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