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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음울한 지식인···오늘날의 닥터 둠(경제 비관론자)

Management - 음울한 지식인···오늘날의 닥터 둠(경제 비관론자)

염상섭 『표본실의 청개구리』의 비관론 … 누리엘 루비니 교수 금융위기 예견



‘나’는 현실고에 지쳐있다. 동네 산보만으로 식은 땀을 흘릴 정도로 몸이 약한데 신경은 예민해 잠자리에서도 쉬이 잠을 잘 수가 없다. 8년 전 중학교 2학년 시절 개구리 해부장면이 떠오른다. 해부된 개구리가 사지에 핀이 박힌 채 칠성판 위에 놓여있다. 개구리의 오장을 다 빼낸 뒤 뾰족한 바늘로 여기저기를 콕콕 찌르니 사지에 못박힌 개구리가 벌떡벌떡 움직인다. 새파란 메스와 바늘 끝의 전율이 머리끝을 쭈뼛쭈뼛하게 할 정도로 나의 신경을 건드린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던 차에 친구 H가 제안했다. 내친 김에 친구 Y군이 있는 남포로 갔다. Y군은 A와 함께 있다. 이들과 위스키를 나누다 대화가 ‘3원50전에 삼층집을 지었다’는 대건축가로 옮겨간다. 취기가 오른 내가 말했다. “우리 (삼층집) 구경가 볼 까?” 이들이 몰려가 만난 사람은 ‘김창억’이었다.

『표본실의 청개구리』는 소설가 염상섭의 첫 소설이다. 1921년 8월부터 10월까지 『개벽』에 연재됐다. 3·1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지 3년 뒤 쓴 작품인 만큼 당시 암울하고 어두웠던 시대상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일제 강점기 젊은 지식인들이 겪은 비애·우울·좌절·분노·낙심·비탄·피로 등이 ‘나’와 ‘김창억’으로 표현된다.

이야기는 ‘나’가 김창억을 만나기까지는 1인칭으로, 김창억의 사연을 설명할 때는 3인칭으로, 다시 김창억의 그 뒷이야기는 1인칭으로 서술된다. 단어도 생경한 게 많고 구성도 파격적이라 처음 이 소설을 대하면 생각보다 쉽게 읽히지 않는다. 이 소설은 ‘자연주의 소설’로 불린다. 개구리 해부를 사실적으로 표현했고, 나와 김창억의 신경쇠약을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분석해 표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김창억은 사범학교 재학 때 가세가 기울어져 학업을 그만 둔다. 아버지가 죽고 머지않아 어머니가 죽고, 5년 전에는 누이마저 잃은 터라 심한 우울증에 빠진다. 소학교 선생이 되고 딸아이를 얻었지만 곧 아내를 잃는다. 술과 방랑에 빠져 지내다 재혼을 한다. 비로소 유쾌한 삶을 살려 하나 싶더니 불의의 사건에 빠져 4개월 간 옥살이를 한다. ‘불의의 사건’은 3·1운동이다. 옥살이는 그의 잔약한 신경을 바늘 끝까지 예민하게 하는데, 아내는 집을 나가버렸다.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한 창억은 미쳐버린다.



일제 강점기 암울한 시대상 반영정신이 오락가락하던 창억은 어느 날 하늘로부터 ‘동서친목회’를 조직하라는 명을 받는다. 세계가 일대 가정을 이룰 시기가 됐으니 이를 구현할 조직을 만들라는 계시를 받은 게다. 창억은 유곽 거리 뒤편에 원두막 같은 3층집을 짓는다. 이 집을 짓기 위해 쓴 돈이 목재값 3원50전이다.

김창억은 3층 ‘양옥집’을 3원50전에 짓게 된 것을 ‘하나님의 은택’이라고 말한다. 이 소설은 당시 화제였다. 김동리는 염상섭에 대해 “강적이 나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섭의 출현에 몹시 불안을 느끼면서도 새로운 햄릿의 출현에 통쾌감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러시아 문학가를 좋아했다.

김동인은 톨스토이를, 염상섭은 도스토예프스키를 신봉했다. ‘나’가 평양에서 돌아온 2개월 뒤 Y군으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김창억이 그 3층집을 불태우고는 종적을 감추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김창억은 아내가 있다는 평양에 갔다. 그는 보통강 가에서 걸인으로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창억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소설 속 인물들은 지독한 우울감과 절망감, 냉소에 시달린다. 김창억은 ‘나’의 중학시절 개구리를 메스로 해부하던 박물선생을 닮았다. 신경이 예민할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이다. 나와 김창억의 정신세계는 이렇게 연결된다.

경제에서도 미래를 우울하게 전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앞으로 경제를 부정적으로 예견하는 경제 비관론자를 ‘닥터 둠(Dr. doom)’이라고 부른다. ‘둠(doom)’은 불길한 운명을 뜻하는 단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대표적인 닥터 둠으로 불린 사람이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다. 그는 2006년 9월 국제통화기금(IMF) 강당에 모인 경제학자들에게 “곧 경제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 과정을 12개로 나눠 설명했다.

‘12단계 붕괴론’을 보면 미국 역사상 최악의 주택시장 침체(1단계)를 시작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손실 확대→신용카드 대출 연체 확대→최우량등급(AAA) 채권 보증업체의 신용등급 하향→상업용 부동산 시장 붕괴→대형 은행 파산→금융회사의 차입매수(LBO)에 따른 손실 확대→기업 연쇄 부도와 신용부도스와프(CDS) 손실 확대→헤지펀드 등 자금 추적이 어려운 금융회사의 붕괴→주가 급락→금융시장 유동성 고갈’로 이어진 뒤 부실 금융회사를 청산하고, 자산을 헐값 매각하는 현상이 반복되는 금융위기가 온다고 예측했다.

당시 미국의 제로금리를 바탕으로 사상 최고의 주택가격 급등을 경험하고 있던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그를 비웃었다. 하지만 2년도 채 안돼 그의 예측과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그는 일약 세계적인 스타 경제학자로 떠올랐다.

닥터 둠의 시조는 미국의 투자전략가 마크 파버다. 그는 1987년 블랙먼데이(뉴욕 증시 대폭락)을 예견해 고객들에게 보유 주식을 현금화하라고 권유했다. 마크 파머는 올해도 비관론자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는 애플에 대해 “어른들을 겨냥한 시시한 장난감을 만드는 회사에 불과하다”며 파산을 예고했다. 미국 증시에 대해서도 “증시가 고평가 상태며, 짧은 시간에 급하게 오른 금리 역풍과 미국의 시리아 개입과 같은 중동발 리스크가 1987년과 유사하다”며 폭락을 점쳤다.

경제에 대한 대표적인 비관론자는 영국의 역사가인 토머스 칼라일을 빼놓을 수 없다. ‘경제학은 암울한 학문’이라는 엄청난 명언을 남겨 경제학을 ‘재미없고 차가운’ 학문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칼라일이 경제학을 비관적으로 본 데는 맬서스의 ?인구론? 영향이 크다. 맬서스는 여기서 “인류는 섹스의 본능을 제어하지 못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텐데, 식량 공급은 이에 따르지 못해 결국은 파멸할 것”이라는 암울한 미래 전망을 냈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있다. 심리가 어떠냐에 따라 투자와 소비가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다는 의미다. 시장에는 통상 낙관론자들이 많다. 증권사애널리스트들은 ‘낙관적 전망’을 해야 투자자들을 유치할 수 있고, 기업들도 물건을 팔 수가 있다.

그래서 좋지 않은 지표가 감지돼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닥터둠’들은 시장이 과도하게 긍정론에 빠져서 그렇지 자신들은 결코 ‘비관론자’가 아닌 ‘현실론자’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문제를 객관적으로 제기하는 게 무슨 비관론자냐는 얘기다.



비관론자냐, 긍정론 의심하는 현실론자냐염상섭은 언론인으로도 널리 기억된다. 1920년 동아일보 창간 때 초대 정경부 기자를 시작으로 1929년 조선일보 학예부장, 1932년 중앙일보 사회부장, 1946년 경향신문 초대 편집국장을 지냈다. 늘 시간에 쫓기며 글을 썼던 염상섭은 ‘작가가 되려거든 기자 생활을 집어치우든지, 기자가 되려거든 작가는 아예 단념해 버려야 하겠거늘, 붓 한 자루로 되는 일이라 해서 그런지, 쌍수집병(雙手執餠)으로 두 갈래 물결에 쓸려 내려왔던 것이 나의 과거 문필 생활이었다’고 훗날 회상했다. 염상섭의 사실주의적 소설은 오랜 기자생활이 바탕이 됐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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