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한국서 굴착기 만들어 130개국 수출
CEO - 한국서 굴착기 만들어 130개국 수출
11월 6일 경남 창원의 볼보건설기계코리아 공장. 건설현장에서 땅을 파는 굴착기 수십 대가 육중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곳은 볼보그룹의 전 세계 굴착기 생산공장 8곳 가운데 핵심 부품인 유압기를 유일하게 생산하면서 완성품의 85% 이상을 유럽·북미·아시아 등 세계 130여국에 수출하는 글로벌 생산기지다. 공장 부지는 118만8000㎡(약 35만평)로 축구장 170여개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다.
특이한 것은 길이 480m가 넘는 직육면체 모양의 2층 빌딩에 용접·가공·조립공장뿐만 아니라 연구소와 사무직 인력까지 한 곳에 모았다. 작업 현장과 사무실을 연결하자는 의미에서다. 조수형 공장장(부사장)은 “창원공장은 4개의 생산라인에서 5t에서 80t까지의 굴착기를 생산한다”며 “20여 종의 기본 모델을 바탕으로 수출국에서 요구하는 3800여 옵션을 적용해 볼보그룹 굴착기 생산량의 50% 이상을 담당한다”고 말했다.
공장을 방문했을 때 마침 전체 작업자 교육시간이라 거대한 쇳덩어리가 작업 컨베이어 벨트에 놓여 있다. 조 공장장은 “창원공장은 1990년대부터 재고를 최소화하는 도요타 생산방식을 도입해 작업 공정과 비용은 줄이고 생산성은 높여 낭비를 최소화했다”며 “한국 기계공장 가운데 도요타 생산방식을 가장 우선적으로 도입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1998년에는 조립라인의 동선은 250m였다. 이후 2000년 210m, 2008년 125m, 현재는 110m로 줄어들었다. 그만큼 일손이 덜 가고 낭비가 준 셈이다. 이런 효과로 2010년에는 12분에 굴착기 1대 꼴로 만들던 게 현재 8분에 1대 꼴로 생산성이 높아졌다.
조립 라인은 자동차를 생산하는 도요타 공장과 흡사하다. 곳곳에 도요타 생산방식이 접목됐다. 하루 생산 목표와 실제 생산수치를 나타내는 전광판(도요타에서 ‘안돈’이라 부른다)뿐 아니라 조립할 때 작업자의 실수를 방지하거나 오차가 나지 않도록 로봇이 검사하는 포카요케(POKA-YOKE) 등이 그것이다.
이 회사 석위수(63) 사장은 “1990년대 삼성중공업 시절부터 생산성을 높이고 낭비를 줄이자는 도요타 생산방식을 적극 도입한 게 계기”라며 “10년 정도 시행착오를 겪었더니 이제는 도요타 공장에 비해 생산성이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한다. 창원 공장은 볼보에 인수되기 이전인 1989년부터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무재고 시스템인 ‘저스트 인 타임(JIT)’을 도입했다. 여기에 볼보가 인수한 이후에는 ‘품질·환경·안전’이라는 볼보의 핵심가치가 접목됐다.
도요타 생산방식 접목해 생산성 높여“좋은 직장 팽개치고 왜 기계조립 일을 하려고 왔나. 돌아가라.” 석유공사에서 1년 만에 삼성중공업으로 이직한 첫날 회사 선배의 첫마디였다. 당시 삼성중공업의 월급이 석유공사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그는 선배의 충고를 마다했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완성품이 10여 분마다 한 대씩 쏟아지는 기계 조립산업이 좋았다. 굴착기를 끝없이 파고들었다. 시간을 흘러 입사한 지 36년이 지난 지난해 12월 기업인 최고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의 주인공이 됐다.
빠른 성장과 안정된 품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비결은 연구개발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다. 석 사장은 “건설기계는 정보기술(IT)이나 자동차 산업의 하이테크 연구보다는 수출 국가의 요청에 맞게 제품을 개량하고 적용하는 미드테크가 중요하다”며 “수도권 대학보다는 창원 인근 지역에서 인력을 뽑아 장기간 성실하게 근무하는 게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우수 인력을 유치하기 연구직 연봉을 사무직보다 높게 책정해 신입사원의 경우 4000만원이 넘는다. 입지 여건도 경쟁력 강화에 한 몫 했다. 200여개 협력업체의 80∼90%가 1시간 이내의 거리에 있다.
품질 좋은 철강을 공급하는 포스코나 현대제철 공장도 2시간 거리다. 수출을 위한 물류 여건도 탁월하다. 5분 거리에 있는 마산항을 통해 전 세계로 수출한다.
석 사장은 회사나 직원이나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어야 업무 개선에 힘을 쏟고, 이는 곧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한다. 두 번이나 부진한 실적으로 회사 주인이 바뀐 것을 경험한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경영철학은 지속적인 성장이다. 이는 개인과 회사, 협력업체의 비전이 서로 연결돼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인생에 비전이 없는 건 깜깜한 밤에 등불 없이 걸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임직원 1600명과 협력업체 직원 수만 명이 모두 확실한 비전을 갖고 서로 의사소통 해야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경북 성주 출생으로 성주농고, 고려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1975년 대한석유공사 입사했다가 이듬해 볼보건설기계의 전신인 삼성중공업으로 옮겼다. 이후 창원공장에서 줄곧 근무하다 1998년 7월 볼보가 삼성중공업 굴착기 사업부문을 인수한 이후 승승장구했다. 1999년 볼보건설기계코리아 창원공장 공장장(부사장), 2003년 굴착기 사업부문 글로벌 생산총괄 부사장, 2009년 볼보그룹코리아 대표이사 사장 및 볼보건설기계 아시아 오퍼레이션 총괄사장으로 승진했다.
인수 15년 만에 수출 5배로 증가창원공장은 볼보가 인수했을 당시만 해도 적자에 허덕였다. 인수 2년 만인 2000년 중장비 단일 품목으론 최초로 2억 달러 수출탑을 수상했다. 이어 지난해 20억 달러 수출탑을 기록하는 등 발빠른 성장을 이뤄냈다.
지난해 이 회사는 굴착기 1만4924대 생산해 이 가운데 83%인 1만2396대를 수출했다. 볼보에 인수될 당시인 1998년에는 3543대를 만들어 2261대를 수출했다. 그때에 비해 생산은 4배 이상, 수출은 5배 이상 성장했다. 고용 역시 크게 늘었다. 인수 당시 사내도급을 포함해 1000명 수준이던 창원공장 근로자는 현재 1700명에 달한다. 노사관계도 인수 이후 점점 좋아져 지금까지 무파업으로 노사협상을 마무리했다.
굴착기 완제품을 수출하는 것 외에 부품과 모듈을 해외의 볼보그룹 공장에 공급한다. 한국의 협력업체가 생산하는 부품이 전세계 볼보의 공장에 뿌려지는 것이다. 그 결과 협력업체 가운데 연간 매출이 1000억원을 넘는 곳도 다수 생겨났다. 창원공장은 지난해 볼보 생산시스템(VPS) 평가에서 5점 만점에 3.4점을 받아 트럭과 버스 공장 등을 포함한 전 세계 볼보 생산시설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창원공장 인수 전까지 세계 시장에서 극히 미미한 존재이던 볼보의 굴착기는 세계 시장에서 굴착기 분야 세계 1,2위인 미국의 캐터필러, 일본의 고마츠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호평을 받는다. 조두섭 요코하마국립대 교수(국제경영)는 “볼보건설기계는 그동안 한국 기업을 인수한 수십 건의 사례 가운데 고용 확대뿐 아니라 수출로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에 기여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한국뿐 아니라 스웨덴도 득을 봤다. 2011년 퇴임한 레이프 요한슨 볼보그룹 회장은 임기 중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창원공장 인수를 꼽았을 정도다.
올해 이 회사의 매출은 지난해(2조3281억원)보다 소폭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및 글로벌 건설 시장의 부진 때문이다. 그러나 전 세계 건설기계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 시장이 불황을 감안하면 괜찮은 실적이다. 이런 악조건 속에 선방한 이유는 저가형과 고급형을 철저히 구분한 ‘듀얼 브랜드’ 전략 덕분이다. 볼보 본사는 2006년 중국의 현지 굴착기 업체인 SDLG를 인수해 저가 브랜드(SDLG)와 프리미엄 브랜드(볼보) 두 가지로 중국시장을 공략했다. 프리미엄 제품의 대부분은 창원공장에서 수출한다.
석 사장은 “듀얼 브랜드 덕분에 올해 4월 이후 중국의 굴착기와 휠로더 시장에서 볼보는 SDLG와 실적을 합쳐 시장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삼성이나 현대자동차 같은 수출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볼보건설기계는 외국계 기업이지만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으로 일한다”며 “외국 기업이 기술이나 자본을 빼가는 데만 치중한다는 이른바 ‘먹튀’라는 시선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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