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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파워피플[34] - 세계경제 좌우할 ‘양 적완화의 어머니’

글로벌 파워피플[34] - 세계경제 좌우할 ‘양 적완화의 어머니’

버냉키와 양적완화 프로그램 주도 ... 물가보다 경기 활성화와 일자리 중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하 연준) 부의장인 재닛 옐런(68)이 2월1일 연준 의장에 취임한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지난해 그를 의장에 지명했고, 올 1월6일 인준안이 상원을 통과했다. 연준 의장 취임에 필요한 모든 절차를 마쳤다.

연준 의장은 미국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막중한 자리다. 앞으로 그의 결정에 따라 세계의 기축통화인 달러화의 가치가 왔다 갔다 하고 세계경제가 영향을 받는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미국의 경제대통령’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자리다.

옐런은 준비된 연준 의장으로 불려왔다. 경제학자 출신으로 중앙은행가로서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이다. 연준에서도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부의장 등으로 오랫동안 경력을 쌓았다. 미국 정부에 오랫동안 거시경제정책과 관련한 자문을 해왔다. 해결 과제가 산적한 차기 연준 의장으로 가장 적합한 인물로 평가 받는다. 미국은 물론 글로벌 금융계에서도 환영하는 분위기다. 프랑스 출신인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적임자가 연준을 맡게 됐다는 평을 내놓았다.

미국의 거대 유대도시로 불리는 뉴욕의 브루클린 출신의 유대인인 옐런은 1967년 브라운대의 여자 칼리지인 펨브로크 칼리지를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1971년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임스 토빈 교수와 조세프 스티글리츠 교수가 박사논문 지도교수였다.

토빈 교수는 198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외환 이동에 세금을 물려 환투기를 막는 토빈세로 유명하다. 미국 경제자문위원회와 연준에서 활동한 그는 경기 후퇴를 진정시키기 위한 정부의 개입을 옹호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와 경제자문위 의장을 지냈으며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현재 컬럼비아대 교수로 세계화에 비판적이다.



100년 만의 첫 여성 연준 의장옐런의 박사학위 논문 제목을 보면 그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다. ‘개방 경제에서 고용, 산출량과 자본 축적: 불균형적인 접근(Employment, output and capital accumulation in an open economy: a disequilibrium approach)’이었다. 실제로 그때부터 최근까지 그의 주요 관심사는 실업문제 해결이었다. 그는 실업을 줄이기 위해 중앙은행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원래 연준의 최우선 목표가 물가안정이었지만 옐런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인플레이션쯤은 각오해도 괜찮다고 여겼다. 경기가 살아나 실업이 해소될 수만 있다면 달러를 얼마든지 쏟아 부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대학을 다니던 1960년대는 미국 사회에서 민권운동이 한창인 시기였다. 민권운동의 꽃은 가난한 흑인과 하층민에게 정부가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팽배한 시절이었다. 게다가 그의 박사과정 지도교수들도 서로 방법은 달랐지만 그런 생각을 옹호한 인물들이었다.

실제로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뒤 사실상 무제한으로 돈을 푸는 양적완화(QE) 프로그램을 벤 버냉키 의장과 함께 펼친 주인공이다. 그래서 그에겐 ‘양적완화의 어머니’란 별명이 붙었다. 지난해 말 버냉키의 양적완화 축소 발표가 있었지만 2월부터 연준의 조타수를 맡을 옐런이 어떻게 완급을 조절할지 세계인의 관심이 대단하다.

옐런은 지난해 10월 의장 지명 수락 연설에서 “미국인들이 일자리를 잃어 고통 받고 있다”는 말로 앞으로 실업난 해소에 정책의 초점을 맞출 것임을 예고했다. 앞으로 달러화 가치보다 미국인의 일자리 창출에 더욱 신경 쓸 가능성이 커 보인다.

옐런은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71~76년 하버드대 교수로 활동했으며 1982~85년 버클리대 교수를 지냈다. 연준과도 꾸준히 인연을 쌓아 1977~78년에는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했고 1994~97년 이사를 맡았다. 1997~99년 백악관 경제자문역을 지내고 2004~2011년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를 맡는 등 실력과 경력을 두루 갖췄다. 2011~2013년 연준 부의장을 지내다 마침내 지난해 10월9일 오바마로부터 차기 의장 지명을 받은 것이다.

사실 옐런은 상당히 어려운 시기에 연준 의장에 취임하게 됐다. 우선 지난 연말 전임자 버냉키가 발표해 추진 중인 양적완화 축소 정책을 안정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지금까지 시장에 풀린 3조 달러를 시장 충격과 불만을 최소화하며 다시 거둬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미국경제는 지난해 3분기에 3.6% 성장했으며 11월 실업률은 양적완화 축소에 나설 만한 7%대로 떨어졌다. 버냉키가 지난해 말 양적완화 축소에 들어간 배경이다.

하지만 그를 지명한 오바마 대통령과 지명을 인준한 미 상원은 그에게 미국 경기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들어 지난해 12월 기준 7%인 실업률을 더 떨어뜨리기를 기대할 것이다. 기막힌 균형이 필요한 시점이다. 까다로운 선택이 옐런을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는 미국 경기에 불을 지피면서 금융시장도 살려야 한다. 앞으로 한동안은 옐런의 수완에 전 세계가 울고 웃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전현직 ‘경제 대통령’이 한자리에 모였다. 재닛 옐런 차기 미 연준 의장, 폴 볼커, 앨런 그린스펀, 벤 버냉키(왼쪽부터).





돈 거둬들이면서 경기도 살려야옐런의 연준 의장 취임은 미국 사회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 첫째는 여성 인력의 유리 천장 깨기다. 옐런은 탄생 100년을 넘어선 연준의 의장에 여성으로선 처음 올랐다. 뉴욕 브루클린의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고교를 졸업한 그는 브라운대의 여자대학인 펨브로크 칼리지를 1967년 졸업했다. 일부 언론은 옐런이 브라운대를 졸업했다고 보도했지만 당시 브라운대는 남성 전용 대학이었다.

하지만 옐런이 브라운 동문인 것은 맞다. 거기에는 이런 사연이 있다. 펨브로크 칼리지는 남학생만 다닐 수 있었던 브라운대에서 1891년 만든 여성 교육용 칼리지로 1971년 브라운대에 흡수된 때문이다. 하버드대의 래드클리프 칼리지(1999년 하버드와 합병)나 컬럼비아대의 버나드 칼리지처럼 남성 전용 대학의 부설 여성대학으로 출발했으나 양성평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면서 하나의 남녀공학대학으로 합병된 것이다.

펨브로크 칼리지는 초기에 남학생이 하교한 뒤인 오후 2시 이후 여학생을 등교시켜 수업을 진행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여성 교육을 개척한 이 학교는 수많은 여성 지도자를 배출했으며 상당수가 미국 사회에서 여성 권리신장과 사회 참여를 위해 열렬하게 활동했다. 그중의 한 명이 옐런이다.

미국 여성계와 노동계는 옐런의 연준 의장 취임을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금융 부문에서의 뛰어난 실력을 보이며 훌륭한 경력을 쌓은 것은 물론 여성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말해온 인물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연준 의장 취임은 전 세계 여성들에게 큰 희망을 줄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연준 의장 자리를 벤 버냉키에 이어 다시 유대계인 옐런이 맡았다는 의미가 있다. 월가를 비롯한 전 세계 금융계에서 유대계가 차지하는 위상을 반영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유대계 중심의 미국 금융계와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을수 있다.

셋째는 바로 그 점이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유대계 경제학자로 이스라엘 중앙은행인 이스라엘은행(BOI)의 총재를 지낸 스탠리 피셔(71)가 옐런의 취임에 맞춰 연준 부의장을 맡는다. 파워피플 시리즈 첫 회에 소개한 인물이다. 1943년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북로디지아(지금의 잠비아) 남부의 1200명 규모 유대인 공동체에서 태어난 피셔는 영국 런던정경대학(LSE)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 MIT에서 1969년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시카고대 조교수를 거쳐 1973년 MIT 교수가 됐다. MIT에서 버냉키 연준 의장의 논문 지도교수를 맡았다. 중앙은행 수장의 스승인 셈이다.

피셔는 교수로선 물론 국제금융 분야 실무에서도 많은 업적을 쌓았다. 1988년 이후 2년 간 세계은행(WB) 부총재를 맡았으며 1994~2001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겸 부총재를 맡아 1997년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경제위기,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을 무난하게 처리했다는 평이다.

IMF에서 물러난 2001년 말부터 시티그룹 부회장을 맡다 2005년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로 발탁돼 지난해 6월까지 맡았다. 한때 그가 제자인 버냉키의 임기가 끝난 뒤 연준 의장 자리를 노린다는 추측도 나돌았다. 버냉키의 스승인 피셔는 실제로 그런 역량을 충분히 갖춘 인물로 평가 받아왔다.

하지만 오바마는 결국 버냉키 후임으로 옐런을 낙점했다. 피셔는 균형을 중시하는 인물이라 옐런이 지나치게 성장 쪽으로 가지 않게 조언하는 역할을 할 것이란 게 주변의 관측이다. BOI 총재를 맡은 2005년 이후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려 이스라엘의 거시경제를 제대로 관리했다는 평이다. 실제로 BOI는 2009년 이후 4년 연속 세계 최고 중앙은행가로 평가 받았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하면 견제와 균형을 통한 합리성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게 오바마의 노림수일 수도 있다.

피셔가 옐런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것도 아니다. 피셔는 선제적 대응론자로 알려졌다. 언제 성장론을 들고 나와야 하는지, 언제 통화가치를 지키는 데 매진해야 하는지를 잘 파악하는 날카로운 통찰력의 소유자로 인정 받는다. 게다가 버냉키가 양적완화 정책을 펴는 동안 이를 지지해왔다. 죄는 스타일도, 푸는 스타일도 아닌 시기를 잘 따지는 합리적인 스타일인 것이다.



남편도 노벨경제학상 받은 유대인또 하나 지적할 점은 옐런의 남편인 조지 애컬로프도 유대인 경제학자라는 점이다. 애컬로프의 어머니인 로살리 히르슈펠더(결혼전 성)는 독일계 유대인이며 아버지 괴스타 오컬뢰프는 스웨덴계 약사다. 유대인은 부계가 아닌 모계를 따져 유대인 여부를 결정하므로 애컬로프는 당연히 유대인이다.

예일대를 나와 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버클리대 교수로 활동하던 애컬로프는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로버트는 영국 워릭대 경제학 교수다). 이 정도라면 옐런의 주변을 온통 유대인 경제학자가 둘러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옐런으로선 금융계를 넘어서서 미국과 세계의 다양한 인사들과의 소통이 필요해 보인다. 옐런의 또 하나의 과제다.

옐런은 언뜻 보기에 자상한 동네 할머니 같은 인상이다. 작은 체구에 늘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을 친근감 있게 맞아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게다가 그는 한번 방향을 잡으면 자신의 논리를 관철하기 위해 격렬한 토론을 마다하지 않는 강인한 인물이다.

조직 장악력과 카리스마도 대단하다는 평이다. 옐런은 경제학자로서 통찰력도 유명하다. 그는 미국경제가 활황세로 모두가 태평가를 부르고 있을 때 2005년 주택 가격에 거품이 심하다는 지적을 내놨다. 2008년 미국경제가 추락하고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의 지적은 대부분 맞았다. 게다가 누구보다 앞서 나왔다. 연준 의장 옐런의 통찰력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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