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률로 본 미국 경제 - 임금·금리 모두 오를 가능성
실업률로 본 미국 경제 - 임금·금리 모두 오를 가능성
새해 들어 글로벌 금융시장은 새로운 불확실성을 안게됐다. 크게 꼽는다면 두 가지다. 먼저 하나는 미국의 경제 모멘텀이 다시 둔화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지난해 12월부터 미국의 각종 경제지표들은 일제히 속도가 떨어지는 모습이다. 기존 추세에서 크게 벗어났을 뿐 아니라 한껏 낮춰진 시장 예상치에도 번번이 못 미칠 정도로 강도가 약화돼 있다.
이례적으로 추웠던 날씨와 폭설 탓이 크다는 판단이 우세하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의 고속성장 역시 일시적 호조에 불과했던 것 아니냐는 우려도 크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 동안 부풀어왔던 ‘2014년 미국 경제 가속도’ 기대감은 또다시 무산될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불확실성은 새롭게 고개를 들고 있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하 연준) 내부의 ‘조기 금리인상론’이다. 연준이 공개한 의사록에 따르면, 지난 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적지 않은 위원들이 조기 금리인상을 주장했다. 일부 위원들은 자산시장 거품 우려가 고개를 들 경우 금리인상으로 대응할 것임을 명백하게 천명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경기의 실상 나타내는 가장 정확한 지표이런 두 가지 불확실성 이슈는 표면상 서로 충돌하고 있다. 경기 모멘텀 둔화 우려가 고조된 상황에서 연준 내부에서는 오히려 조기 긴축 필요성을 거론하고 있기 때문이다. FOMC 내부의 매파적 분위기는 미국 경제에 대한 낙관론에 근거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활동이 혹독한 겨울 날씨 탓에 일시적인 위축양상을 보이고 있을 뿐 기존의 회복 추세에는 변화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일각의 우려와 달리 미국 경제의 추세를 낙관하게 하는 근거를 든다면 ‘실업률’을 꼽을 수 있다. 미국은 매월 첫째 주 금요일마다 바로 직전 달의 실업률을 발표한다. 수많은 데이터 중에서도 가장 신속하게 실물경제 동향을 보여주는 통계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10% 수준으로까지 치솟았던 미국의 실업률은 이후 빠른 속도의 하락해 지난 1월 현재 6.6%로 떨어졌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실업자들이 노동시장에서 대거 이탈한 효과까지 작용하긴 했지만, 2009년 이후 경제회복기 동안 여러 차례의 경기 부침에도 꾸준히 하락 추세를 이어왔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실업률은 경제의 호황과 불황을 측정하는데 있어서 가장 신뢰성 높은 지표 역할을 해왔다. 실업률은 경제가 후퇴기에 빠지기 직전에 항상 먼저 바닥을 치고 올라가 불황을 예고했다. 회복기가 시작된 직후에는 항상 고점을 찍고 내려와 불황 탈출을 확인시켜줬다. 따라서 최근의 미국 실업률 추세는 경제가 최소한 후퇴기에 임박한 것은 아님을 알려주고 있다.
특히 지난 60여년 간의 통계를 보면, 실업률이 하락하는 추세 속에서도 균형 수준(natural rate)보다는 높은 상태에 머물러있는 동안에는 경제가 불황에 빠지는 일이 없었다. 모든 불황기는 실업률이 균형 수준 아래로 떨어진 과열상태 이후에 나타났다.
단 한 차례의 예외가 있었는데, 1980년 7월부터 단 1년 동안만 진행된 경기회복기였다. 당시 폴 볼커 연준 의장은 실업률이 균형 수준보다 높은 상태였음에도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공격적인 긴축정책을 지속했다. 이로 인해 미국 경제는 전후 가장 짧은 회복기를 거친 뒤 불황에 진입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의 회복 속도가 수시로 둔화를 반복한 배경 중 하나로는 더딘 임금상승 속도가 꼽힌다. 이 때문에 미국 경제는 저성장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임금의 정체에는 경기순환적 요인이 작용하기도 한다.
경기 상승국면을 ‘회복기’와 ‘팽창기’로 나눌 경우 일반적으로 실업률이 균형 수준보다 높은 ‘회복기’에는 임금의 증가 속도가 더디다. 유휴 노동력의 공급이 수요에 비해 많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대신 취업자 수가 증가하는 양적 고용시장 개선이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실업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해 균형 수준에 근접하게 되면 비로소 임금상승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현재 미국의 단기 자연실업률(short-term natural rate of unemployment)을 5.9%로 추정하고 있다. 자연실업률은 물가상승 압력을 발생시키지 않으면서 달성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실업률 수준을 의미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자연실업률은 5.0% 수준이었으나, 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해 1%포인트 가량 높아졌다.
위기 이후 건설업 등에서의 노동수요 기반이 대폭 약해진 영향으로 보인다. 1월 현재 미국의 현행 실업률과 자연실업률 차이는 0.7%포인트로 좁혀졌다. 이르면 연내에, 늦어도 내년에는 이 격차가 완전히 소멸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의 실업률이 자연실업률 수준에 근접해 가고 있다는 사실은 두 가지 시사점을 갖는다.
“금리 올려라” Fed 내 매파 목소리 커져첫째, 미국의 임금상승 압력이 점차 커지고 이에 따라 미국 소비 경기도 가속도를 낼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실업률은 평균값이기 때문에 이 수치가 자연실업률에 완전히 도달하기 이전에라도 일부 업종에서는 임금상승 압력이 먼저 발생할 수 있다. 미국의 실업률 급락세는 노동시장의 개선 정도를 과장되게 표현하는 측면이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활동참가율이 대폭 하락한 탓이다.
그럼에도 실업률은 그 자체로 임금상승 압력을 측정하는데 유효한 지표다. 노동시장에 존재하는 유휴자원의 정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구직을 포기하고 노동시장에서 이탈한 노동력 가운데 상당수는 기업들이 원하는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유휴자원’으로 간주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는 기업들의 설비투자 전망에도 참고가 된다.
실업률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노동시장에 남아 있는 유휴 노동력의 생산성은 낮아진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임금인상 압력까지 가해지게 된다면 기업의 생산성은 더욱 저하된다. 따라서 기업들은 생산성 하락으로 인한 이윤율 저하를 극복하기 위해 설비투자를 증대해야 할 압력을 받게 된다. 이는 임금상승과 더불어 미국의 경제성장을 가속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경제가 회복기에서 팽창기로 넘어갈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둘째, 실업률이 균형 수준을 향해 꾸준히 하락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미국의 첫 금리인상 시점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상할 수 있다. 지난 1월 FOMC에서 일부 위원들이 연내 금리인상 주장을 제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2월 21일 제임스 불라드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미국의 실업률이 올해 중 6% 아래로 떨어질 전망”이라며 “실업률이 6%라는 것은 완전고용 상태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년 초에는 금리를 인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에는 당장 올해 말에 금리를 올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최근 경제지표들이 일제히 둔화된 것을 감안해 그 시기를 약간 늦추게 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닷컴 버블 붕괴 직후인 2000년대 초 연준은 디플레이션 압력에 맞서 금리를 1.0%로 인하했다. 이후 연준은 6.3%에 달했던 실업률이 5.6%로 하락한 것을 확인하고는 2004년 6월 들어 금리인상 사이클에 돌입했다. 당시 실업률은 자연실업률(5.0%)보다 0.6%포인트 높은 상태였다. 그동안 연준은 “실업률이 6.5%를 웃도는 동안에는 금리를 인상하지 않겠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조만간 이 약속은 새로운 ‘포워드 가이던스’로 대체할 예정이다. 실업률이 이미 ‘6.5%’라는 기준선에 근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준은 새 가이던스에서 실업률 기준을 아예 폐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경제회복세가 아직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황인 만큼, 불필요한 조기 금리인상 우려감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다.
각국 중앙은행은 여전히 ‘장기 부양’ 입장그러나 새로운 가이던스는 지금과 달리 상당히 모호한 기준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첫 금리인상 시기를 예상하기가 매우 힘들어질 전망이다. 최근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도 그런 식으로 포워드 가이던스를 개편했다. 약간의 금리인상 경계감을 유발해 통화정책 정상화 가능성에 미리 적응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1월 FOMC 의사록에 등장한 갖가지 매파적 발언들 역시 그러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실업률의 지속적인 하락과 그에 따른 금리인상 개시 전망은 미국 경제에 대한 낙관적인 시각에 근거하고 있다. 만약 미국 경제가 과거에 전혀 보이지 않았던 패턴, 예를 들어 실업률이 균형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침체에 돌입해버리는 꼬리위험이 발현된다면, 이 전망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미국의 첫 금리인상이 애초 예상했던 대로 내년 하반기쯤에나, 혹은 그보다 더 늦은 2016년 이후에야 비로소 단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기와 고용시장 회복세에 속도가 붙으면서 퇴장했던 노동력이 대거 고용시장에 재진입, 실업률 하락세가 일정 기간 멈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업률 하락에도 미국의 고용률(노동가능인구 중 취업자 비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비해 여전히 매우 낮다. 따라서 임금상승 압력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광범위한 물가상승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운 정황이 있다. 이 경우 연준은 실업률이 균형 수준 아래로 떨어진 뒤에도 한참 동안 초저금리를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미국의 경제규모(명목 GDP)가 잠재수준은 물론 경제위기 이전의 추세선을 회복할 때까지 고도의 부양정책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영란은행 역시 최근 새로 개편한 포워드 가이던스에서 “1~2년 내 유휴자원을 완전히 소진하는 것”을 부양정책의 목표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영란은행은 금리를 매우 점진적으로만 인상할 것이며 금융위기 이전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서 인상사이클을 끝낼 것이라고 약속했다.
결국 조기 금리인상 논의가 고개를 들었음에도 중앙은행들의 전반적인 입장은 여전히 ‘장기간의 부양’에 기울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첫 금리인상에 관한 소통이 시작되는 과정에서 나타날 금융시장의 변동성이다. 지난해 여름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소동에서 배운 것이 많다면, 연준은 보다 매끄러운 출구전략을 가동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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