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 박태원作 『소설가 구보씨···』의 ‘돈과 행복’
Management |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 박태원作 『소설가 구보씨···』의 ‘돈과 행복’
![](/data/ecn/image/2021/02/24/ecn11150553.jpg)
소설가 구보씨는 고독하다. 글 쓰는 자란 으레 그렇다. 직업도 없는 스물여섯, 노총각이다. 동경에서 공부한 재원이 이렇다. 어느 날 구보는 제방에서 나와 서울을 거닌다. 1938년. 일제 강점기 조선의 지식인들은 무력했다.
‘구보’는 작가 박태원의 호다. 박태원은 소설가 이상과 친했다. 소설 속 구보가 기다리는 다방의 벗은 소설가를 이상으로 보는 해석이 많다. 이상의 죽음에 대해 박태원은 “그는 그렇게 계집을 사랑하고 술을 사랑하고 벗을 사랑하고 또 문학을 사랑하였으면서도 그것의 절반도 제 몸을 사랑하지는 않는다”고 애석해 했다. 박태원은 월북작가다. 1948년 해방공간 때 보도연맹에 가입했고 1950년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북으로 갔다. 북한에서 그는 대하역사소설 『갑오농민전쟁』을 썼다.
행복을 찾기 위해 거리를 방황박태원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소설 쓰기가 고현학(考現學·modernology)을 기반했다고 밝혔다. 고현학이란 현대인의 풍속을 조사하고 분석해 그것을 기록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구보씨의 동선을 따라가면 1930년대 후반 경성의 모습과 사람들의 움직임이 눈에 잡힐 듯하다.
집을 나선 구보는 광교 쪽으로 향한다. 종로 네거리에 다다라 화신백화점에 들어간다. 동대문행 전차를 탔다. 전차 안에서 1년 전쯤 맞선을 보았던 여자를 만난다. 말을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데 그녀가 내린다. 그녀는 청량리행 전차를 타고 갔다.
구보는 조선은행(현 한국은행) 앞에 내려 장곡천정(현 소공로)으로 간다. 오후 2시다. 이따금 찾는 다방에서 커피 한잔을 청한다. 불편한 사람이 들어오자 자리를 피한다. 다방 옆 골목 안 골동점을 찾는다. 이곳을 경영하는 젊은 화가를 만나기 위해서지만 그는 출타 중이다. 다시 거리를 나왔다 보통학교 때의 동무를 만난다. 초라한 행색의 동무가 자리를 피하자 구보는 고독감을 느낀다. 남대문 밖으로 나가 사람 많은 곳을 찾는다. 그곳이 경성역(현 서울역)이다.
경성역에서 한 사나이를 만난다. 중학 동창생, 공부를 지지리도 못하던 전당포집 아들은 자신 있게 구보에게 악수를 청한다. 때는 바야흐로 황금광 시대. 광산에서 돈을 번 모양이다. 동창생은 여자를 달고 있다. 어여쁘다. 월미도로 놀러 가는 그들과 헤어진 구보는 조선은행 앞을 간다. 돌아간 다방에서 신문사 기자로 일하는 친구를 불러낸다. 초저녁. 구보는 종로경찰서 옆에서 다방을 경영하는 친구를 찾아가 만난다. 하지만 그 친구도 바쁘다. 설렁탕을 먹다 밤 열 시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진다.
이슬비가 내린다. 광화문통이다. 구보는 다시 다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생명보험 외판원인 중학 선배를 만난다. 자신의 애독자를 자처하는 자다. 벗이 돌아와 구보와 함께 밖을 나간다. 여름 밤이다. 조선호텔 앞을 지나 말없이 걷는다. 낙원정에 있는 카페를 찾는다. 예닐곱 된 계집아이에게 다음날 정오 화신상회 옥상에서 만나자고 한다. 동의하면 O, 싫어하면 X다. 오전 두 시 종로 네거리. 빗속에서 구보와 벗은 헤어진다. 구보는 말한다 “내일부터 나 집에 있겠소. 창작하겠소.”
구보가 방랑을 하는 근원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다. 화신백화점에서 젊은 부부를 만난다. 그들은 가정을 가졌고, 그곳에서 행복을 찾을 것이다. 구보는 생각한다. ‘나는 어디서 행복을 찾아야 하나’.
요즘 경제학의 화두는 ‘행복’이다. 박근혜 정부가 ‘국민행복시대’를 모토로 삼은 것은 이런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메르켈 행복 독트린’을 제시한 독일 메르켈 총리의 고민도 다르지 않다. 메르켈 총리는 어떻게 하면 국민의 행복수준을 높일 수 있을 지 전문가들에 연구하도록 지시했다. 앞서 폴 새뮤얼슨은 행복을 간단명료하게 정의했다. ‘행복=소비/욕망’이라는 것이다.
욕망보다 소비가 많으면 행복한 거다. 소비를 많이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과연 돈이 많을 수록 행복할까. 독일 전문가들의 연구는 국내총생산(GDP)은 한 국가의 성과를 재는 척도로서는 문제가 많다는 결과를 얻었다. ‘행복이 돈의 양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경제학 이론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레이어드 가설이고 또 하나는 이스털린의 역설이다.
‘행복경제학’의 아버지 레이어드 영국 런던 정경대학(LSE) 석좌교수는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선 뒤에는 소득이 늘어나는데 비례해 행복해지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물질적 욕구에는 ‘만족점’이있는데 이 점을 넘어서면 물질적 욕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레이어드 교수는 만족점으로 1인당 국민소득 1만5000달러~2만달러를 제시했다.
1974년 미국 경제학자 이스털린도 “소득이 어느 수준에 올라 국민의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면 소득 증가가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른바 ‘이스털린의 역설’이다. 이스털린도 1만5000달러 내외를 변곡점으로 본다.
레이어드는 행복감이 꺾이는 이유를 ‘부의 습관화’와 ‘부를 향한 경쟁’ 때문이라고 했다. 돈을 어느 정도 갖게 되면 소득에 대한 눈높이가 달라지고 그 소득을 얻기 위해 경쟁은 더 거칠어진다. 그러다 보면 더 갖고, 더 누리고 싶다는 것보다 더 쉬고, 더 여유를 갖고 싶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뀐다는 것이다. 레이어드와 이스털린의 주장에 대한 반박도 있다.
저스틴 울퍼스와 베시 스티븐슨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과 교수는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넘더라도 소득이 늘어나는 만큼 행복감은 커진다”고 주장했다. 150여개 나라를 조사한 결과 돈이 많아 복지가 잘된 나라일 수록 행복도가 커지더라는 것이다. 가난하지만 행복하다는 부탄이나 경제성장에 비해 행복도가 떨어지는 한국이 예외라는 주장을 폈다. 2만 달러를 넘으면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도 많아진다고 두 사람은 반박했다. 돈과 행복과의 상관관계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국민소득 2만 달러는 넘어야 행복쥐꼬리 만한 고료로 생활고를 겪는 구보에게는 ‘돈’이 행복을 줄 수 있다. 구보에게 ‘행복’을 느끼게 할 돈의 규모는 얼마일까. 정답은 약간의 여행비다. 자신이 유학한 동경이든, 혹은 오십리 이내 여정이라도 조그만 수트케이스를 들고 경성역에 선다면 구보는 행복을 느끼리라 믿는다. 구보는 생각한다. ‘8원 40전을 가지면 우선 조그만 몇 개의 행복을 가질 수 있을 게다. 오직 고만한 돈으로 한때 만족할 수 있는 그 마음은 애달프고 또 사랑스럽지 않은가’.
레이어드 교수는 행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곱 가지 요소인 빅‘ 세븐’이 있다고 했다. 가족·돈·일·친구·건강·자유·가치관 등이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관계 즉 가족과 친구다. 구보가 하루 종일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이유는 벗과 교유하기 위해서다. 레이어드 교수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행복을 찾기 위해’ 구보는 벗을 찾고 있다.
그래서 다방엘 가고 골동품 상점을 간다. 하지만 그 행복은 쉽게 오지 않는다. 다들 자리를 비웠다. 대신 행색이 초라한 보통학교 친구, 탄광으로 성공한 중학 동창생, 자신을 ‘구포’라 부르는 보험사 외판원을 하는 중학 선배 등을 만났다. 만나도 행복감을 주지 못하는 인물들이다. 아무리 소박해 보이더라도 행복은 결코 쉽게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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