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 모종혁의 ‘술로 만나는 중국·중국인’ ⑤ 윈난성 샹그릴라의 칭커주(靑果酒)
Travel | 모종혁의 ‘술로 만나는 중국·중국인’ ⑤ 윈난성 샹그릴라의 칭커주(靑果酒)
1933년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튼은 샹그릴라라는 이상향을 다룬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을 발표했다. 이 소설은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됐고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1937년에는 미국 컬럼비아영화사에 의해 영화로도 제작됐다. 당시 세계는 유례없는 대공황으로 사회가 크게 황폐해져 있었다. 소설 속에서 묘사된 유토피아는 심신이 피폐해진 서양인들에게 희망의 빛줄기를 비춰주었다.
소설·영화 속의 유토피아소설과 영화로 샹그릴라를 접한 사람들은 이상향을 찾아 나섰다. 그중에는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도 있었다. 히틀러는 샹그릴라를 ‘순수 아리안 혈통의 진원지’로 규정하고 나치 친위대에서 탐험대를 구성해 7차례나 파견했다. 탐험대의 일원이었던 하인리히 하러와 페터 아우프슈나이터는 인도 주둔 영국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티베트로 탈출했다. 두 사람이 티베트에서 지내면서 겪은 일을 쓴 논픽션은 훗날 영화로 만들어졌다. 바로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티벳에서의 7년’이다.
이런 샹그릴라가 1997년 9월 다시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중국 윈난성 정부가 기자회견을 통해 “전설로만 내려져 온 샹그릴라의 실체가 확인됐다”고 발표한 것. 윈난성은 “1년여 동안 역사·지리·종교·민속·언어 등 각 분야 50여명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사단이 모든 티베트인 거주지를 탐험하고 연구한 결과, 디칭 티베트 자치주 중뎬현이 샹그릴라로 판명됐다“고 주장했다.
본래 샹그릴라의 후보지는 여러 곳이었다. 티베트 서부 카일라스산 인근의 다와쫑을 비롯해 부탄, 네팔, 쓰촨성 등 히말라야산맥의 여러 마을이 신경전을 벌였다. 이 마을 모두는 이상향에 대한 전설을 가졌고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췄다. 이런 와중에 윈난성이 선수를 쳤다. 윈난성은 저돌적으로 중뎬을 샹그릴라로 만들어갔다.
먼저 중뎬 내 사찰과 관광지를 정비했다. 기존 도로를 포장하고 새로 공항을 개통했다. 뒤이어 중뎬만의 특징과 장점을 적극 홍보해 나갔다. 첫째, 중뎬은 소설이 묘사한 외적 조건을 모두 갖췄다. 찾는 이를 매혹시키는 아름다운 자연, 설산을 배경으로 한 드넓은 초원, 불심이 깊은 라마승이 사는 거대한 불교사원 등이 그것이다.
둘째, 디칭 토속어로 샹그릴라는 ‘내 마음 속의 해와 달’이라는 뜻이다. 이는 티베트어 ‘샴발라(Shambala)’의 방언 격인 샹그릴라의 어원과 정확히 일치했다. 셋째, 중뎬의 주민들은 타지의 티베트인과 달리 품성이 유순하고 이민족에게 우호적이다. 중뎬은 경작할 농토가 넉넉하고 물산이 풍부하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멀리서 온 이방인을 언제나 환대해왔다.
윈난성은 2001년 12월 중뎬의 이름을 샹그릴라로 고쳤다. 2003년에는 샹그릴라의 산야를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했다. ‘샹그릴라 공정’의 완결판이었다. 윈난성이 샹그릴라를 독점한 위력은 컸다. 2011년 샹그릴라를 찾은 관광객 수는 613만명을 넘어섰다. 이들이 뿌린 돈만 58억1100만 위안(약 1조169억원)에 달했다. 1995년 방문객이 7만명에 불과했던 해발 3280m의 작은 도시는 오늘날 전 세계인이 가고 싶어하는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필자는 1998년 7월 샹그릴라를 처음 방문했다. 그림같은 설산과 울창한 원시림, 드넓은 초원과 검푸른 호수, 신비로운 불교 사원과 순박한 티베트인 등에 금방 매료됐다. ‘그곳은 사계절 항상 푸르고 / 새들 지저귀고 꽃들 향기로운 곳이라네 / 그곳은 고통, 근심, 걱정이 없는 곳이라네 / 그곳의 이름은 샴발라 / 신선들의 낙원이라네’는 티베트의 유행가 가사처럼 매력적이었다.
도심에서 5㎞ 떨어진 포핑산 기슭에는 작은 포탈라궁이라 불리는 간덴 숨첼링 곰파가 있다. 숨첼링 곰파는 1676년 달라이 라마 5세가 청나라 강희제에게 주청해 지은 티베트불교 13대 사원 중 하나다.
황금빛 장식을 한 지붕은 햇빛이 비치는 날이면 반짝여서 강렬함을 준다. 거대한 대경당 및 주전과 달리 소박한 승방은 잿빛을 띠면서 묘한 운치를 더한다. 사원 곳곳에는 전통의상을 입은 티베트인을 쉽게 볼 수 있다. 그중에는 멀리 티베트 본토와 쓰촨성에서 온 티베트인도 적지 않다. 외부인들 사이로 붉은 가사를 입은 라마승들이 분주히 오고 간다. 현재 숨첼링 곰파에 거주하는 라마승은 700여명에 달한다. 가장 흥성했던 시기에는 1600여명의 승려와 8명의 린포체가 있었다.
독자적인 문화예술 창조한 캄파의 생명력숨첼링 곰파는 게룩파 사원이다. 게룩파는 티베트불교를 일신한 대학승 총카파가 창시했다. 총카파는 무분별했던 라마승의 생활을 비판하고 전통 수련생활로 돌아갈 것을 갈파했다. 티베트에 만연했던 신비주의적 의식과 주법도 타파했다. 1409년 티베트력 1월 1일부터 보름간 총카파는 라싸의 조캉 사원에서 신년법회 몬람을 열어 게룩파를 정식 출범시켰다. 청나라 순치제 때부터 게룩파 영수를 달라이 라마라고 칭하고 티베트의 통치자로 모셨다.
관세음보살은 티베트 민족의 창조자이자 수호자이다. 티베트인은 불세출의 영웅 송첸감포왕과 달라이 라마를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여긴다. 티베트인이 언제나 읊조리는 ‘옴 마니 파드메 훔’은 천수경에 나오는 관세음보살의 진언이다. 샹그릴라는 관세음보살 후예들이 사는 대지 ‘캄(Kham)’ 남단에 위치해 있다. 캄은 티베트 중부지역과 중국 사이로, 전체 티베트 영토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화마로 100여채 건물 잿더미로 변해예부터 캄의 티베트인을 ‘캄파’라 불렸다. 캄파는 거친 고산에 사는 유목민답게 정열이 넘치고 억세다. 이들은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한 이후 무장투쟁을 주도했다. 중국은 티베트와 중국 문화를 흡수·융합해 독자적인 문화예술을 창조하는 캄파의 생명력을 두려워했다. 티베트가 중국에 점령된 뒤 본토는 시장자치구로 바꿨고 캄은 공중분해 됐다. 영토는 칭하이·간쑤·쓰촨·윈난으로 찢겨져 사분됐다.
그러나 티베트력에 따라 새해를 지내는 풍습은 어딜 가든 똑같다. 올해는 티베트력으로 1027년으로, 새해 첫 날은 3월 2일이다. 티베트인들은 보름 간 설을 지낸다. 보통 첫 날부터 일주일 간은 가족·친척·이웃과 새해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8일부터는 사원이나 성산에 가 오체투지를 하며 예불을 올린다. 티베트인의 새해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칭커주다. 이 술은 보리의 일종인 칭커를 주원료로 발효해 만든 증류주다. 티베트어로 ‘나란’ ‘창’이라 불린다. 칭커는 해발 3000m 이상의 티베트고원에서만 자라나는 티베트인의 주식이다.
칭커주가 언제부터 만들어지게 됐는지는 고증하기 어렵다. 단지 중국 기록에 따르면, 7세기 송첸감포왕에게 시집간 당나라 문성공주가 가져간 양조기술과 티베트 제조법이 더해져 지금의 형태로 발전됐다고 한다. 칭커주의 양조법은 쌀로 미주를 만드는 방식과 동일하다. 이 때문에 숙성이 끝난 칭커주는 빛깔이 하얗고 술맛도 소주에 막걸리를 섞어 놓은 듯하다. 보기와 달리 도수가 높아서 40~50도에 달한다.
고산에서 뽑아낸 천연 광천수로 제조하기에, 마신 뒤 숙취가 없고 입 안이 촉촉해지며 정신이 빨리 되돌아온다. 티베트인은 설뿐만 아니라 전통축제, 결혼식, 아이를 낳았을 때 칭커주를 마시며 축원한다. 멀리서 온 손님에게 흰색 천인 하다를 걸어주고 쑤요차를 대접하며 칭커주로 노고를 위로하는 것은 티베트인이 표하는 최대의 예의다. 티베트인의 심성이 순박한데다, 집집마다 쑤요차를 만들고 칭커주를 빚기에 가능한 일이다.
티베트 곳곳을 다니며 다양한 칭커주를 마셨지만, 샹그릴라는 내게 칭커주의 술 맛을 처음 맛보게 해준 곳이다. 샹그릴라는 티베트 3대 칭커 생산지 중 하나이자, 독특한 칭커주를 지니고 있다. 18세기 프랑스 선교사가 가져온 서구 양조기술에 티베트 제조법이 더해져 만들어지는 ‘칭커 포도주’가 그것이다. 윈난성 정부는 2007년 칭커주와 그 양조법을 중국에서 처음으로 비물질문화유산에 지정했다.
무엇보다 양질의 토양에서 자라나는 샹그릴라의 칭커는 맛 좋은 칭커주의 원천이다. 샹그릴라는 하천과 호수가 많아 물을 대기 쉽다. 샹그릴라 주민은 오래 전부터 반농·반목의 생활을 해와 타 지역 티베트인보다 농사 기술이 뛰어나다. 여기에 매년 수백만의 관광객들이 뿌린 돈으로 이룬 경제적 풍요는 샹그릴라 칭커주를 고도화·산업화시켰다.
지난 10여년 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지만, 올 들어 샹그릴라는 최악의 시련을 겪고 있다. 1월 11일 두커 쭝고성에서 화재가 발생해 100여채의 건물이 잿더미로 변한 것. 길게는 300년에서 짧게는 수십 년 된 티베트 전통민가는 목조로 지어진데다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순식간에 번진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고산에서 질긴 생명력을 지니며 자라나는 칭커처럼 샹그릴라의 순조로운 복구와 빠른 재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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