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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파워피플 [53]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 좌파 게릴라 출신의 실용주의자

글로벌 파워피플 [53]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 좌파 게릴라 출신의 실용주의자

부드러운 듯 단호한 리더십으로 브라질 부흥 이끌어 파업·시위 속 안전한 월드컵 다짐
우승컵 앞에 선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66) 브라질 대통령은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가 지난 5월 선정해 발표한 ‘2014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여성 100명’에서 4위에 올랐다. 앙겔라 메르켈(59) 독일 총리와 재닛 옐런(67)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멜린다 게이츠(49)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 공동이사장의 다음 순위다.

메르켈은 2013년 국제통화기금(IMF) 통계 기준 3조6359억 달러의 국내총생산(GDP)으로 세계 4위의 경제대국인 독일의 총리이자 유럽연합(EU)과 유로존의 실질적인 지도자로 평가 받는 인물이다. 옐런은 GDP 16조7997억 달러로 세계 최대 경제국인 미국의 중앙은행장으로 지난 2월 취임했다. 게이츠는 빌 게이츠의 부인으로 세계 최대의 자선기구인 빌&맬린다 게이츠 재단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그런 인물의 바로 다음 여성지도자로 호세프 대통령이 꼽힌 것이다.

크리스틴 라가드르(58) IMF 총재와 힐러리 클린턴(66) 전 미국 국무장관, 미셸 오바마(50) 미국 영부인 등이 호세프 대통령의 뒤를 이었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11위에 이름을 올렸다. 호세프 대통령은 포브스가 지난해 10월30일 발표한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 명단에서도 20위에 올랐다. 여성으로선 5위에 오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 이어 둘째를 기록했다.

호세프가 대통령을 맡고 있는 브라질은 떠오르는 경제 강국이다. IMF 통계에 따르면 브라질은 지난해 GDP가 명목금액 기준으로 2조2428억 달러로 세계 7위다. 신흥개발국가를 일컫는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중 중국(9조1813억 달러, 세계 2위) 다음의 규모다. 브라질은 2014 FIFA 월드컵을 주최하는 데다 2016년 여름올림픽도 개최한다. 월드컵과 올림픽을 계기로 성장이나 국가 성숙도에서 큰 변화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세계적인 경기 침체 여파로 성장세가 주춤하긴 했지만 전 세계가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경제 대국이다.

호세프는 특히 올해 월드컵 개최국의 국가원수로서 주목 받고 있다. 삼바 축구의 본고장 브라질에서 64년 만에 열리는 월드컵이다. 6월13일 개막전부터 7월14일 결승전까지 한 달 동안 축구로 하나 되는 지구촌 축제를 주관하는 리더인 셈이다. 호세프는 대회 전 2014 월드컵 경기대회를 참가팀 선수들과 임원, 팬들 모두에게 가장 안전한 대회로 치르겠다는 선언을 반복해 왔다. 하지만 더딘 경기장 완공으로 FIFA의 지적을 받은 게 사실이다. 거기에 월드컵에 쓸 돈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라는 국내의 반(反)월드컵 정서로 인한 각종 파업과 시위 사태로 몸살을 앓아 왔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4위사실 월드컵을 한 달 정도 남겨둔 5월 중순까지만 해도 브라질은 전국이 대회 반대 시위와 파업, 그리고 그 틈을 탄 무장강도의 약탈 등 각종 범죄로 어수선했다. 심지어 불법 시위를 막아야 할 지역 경찰이 근무조건 개선과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는 바람에 범죄가 만연해도 당국은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상파울루에서는 금속노조원 1만5000여명이 조업을 중단해 경제가 한때 마비상태에 이르렀다. 심지어 공립학교 교사와 고속도로 관리업체 근로자, 건설 노동자 등도 파업과 시위를 벌여 학교에서 수업이 중단되고 고속도로 통행료가 징수되지 않았다. 월드컵 개최도시를 포함해 전국 50여 도시에서 열린 시위에서 시위대는 월드컵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것을 비난하고 복지 예산을 늘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때문에 월드컵이 유례없는 혼란 속에 치러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사기도 했다. 하지만 대회는 개막 이후 별다른 사고없이 무난하게 치러지고 있다. 이에 따라 호세프의 리더십이 새삼 주목 받고 있다. 호세프는 8억 달러를 안전 월드컵 보안 유지에 투입했다. 대회가 열리는 전국 12개 도시에 17만명의 군, 경찰, 민간 부문 보안 요원들을 배치해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안전한 대회가 되도록 하겠다고 밝혀온 그의 다짐이 빈말이 아님을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그를 주목할 또 다른 요소는 글로벌 가치에 대한 비전이다. 대표적인 것이 인종차별 철폐다. 그는 월드컵 개막 행사에서 “인종차별이 없는 평등과 평화를 위한 행사를 치를 것”이라며 인종차별 반대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해 개념 있는 글로벌 지도자로서도 인정 받았다. 호세프는 6월 초 국제축구연맹(FIFA)의 제프블래터 회장으로부터 FIFA 우승컵을 전달 받는 행사장에서 “모든 브라질 국민과 외국 방문객들에게 성공적인 대회를 치르기 위해 필요한 안전과 평화로운 마음을 보장하겠다”고 강조했다.

당시만 해도 각종 시위와 늑장 공사, 치안 불안 등으로 월드컵에 대한 우려가 상당했지만 대회 개막 이후 이런 우려는 사라져가고 있다. 제프 블래터 FIFA 회장은 이 자리에서 “이번 월드컵은 단순히 축구 강국 브라질의 역량을 과시하는 행사일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한 달여 동안 브라질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홍보하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블래터의 말처럼 호세프는 월드컵을 브라질이 거듭나는 계기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호세프가 월드컵 개막 행사장에서 ‘인종차별이 없는 평등한 세상’을 강조한 것은 인종화합과 관련해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은 사실 오랜 세월을 두고 전 세계에서 이민을 받아 현재 세계 최대의 다민족·다문화 국가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 등과 달리 인종차별의 잔혹한 역사나 전통이 비교적 적어 이상적인 다문화 국가이자 인종평등사회의 하나로 꼽힌다.

인구 비율도 독특하다. 블랑쿠라고 불리는 백인이 47.7%라 가장 많지만 파르두라고 불리는 갈색인종, 즉 혼혈인이 43.13%로 비슷한 비율이다. 브라질 국가대표 축구팀의 주전 네이마르는 파르두이고 카카는 블랑쿠에 해당한다. 하지만 브라질 내에서 이들을 피부색으로 나누는 경우는 찾기가 힘들다. 네그루라고 불리는 흑인이 7.61%, 황인종이라는 뜻의 아마렐루라고 불리는 동아시아계도 0.43%가 각각 있다. 일본과 한국의 이민도 일부 있다.

일본의 프로레슬러로 1976년 프로권투 챔피언 무함마드 알리와 대결해서 유명해진 안토니오 이노키도 브라질 이민 출신이다. 이렇듯 브라질은 다양한 인종이 서로 공존하며 화합하는 사회로 다문화가 갈수록 중요해지는 한국에서도 눈 여겨 볼 대상인데 호세프가 이를 하나의 모범으로 천명한 셈이다.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1일(현지시간) 3살 난 외손자 가브리엘을 품에 안고 차를 타고 가다 교통법을 위반해 논란이 됐다. 그는 이에 대해 트위터를 통해 공식 사과했다.





인종차별 없는 브라질 천명2011년 브라질 대통령으로 취임한 호세프는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다. 하지만 그는 여성 대통령이라는 타이틀보다 ‘룰라의 후계자’라는 이미지가 더욱 강하다. 그는 게릴라 출신의 좌파 정치인이지만 실용주의를 택해 브라질의 경제 발전과 안정을 주도하고 있다. 좌파 게릴라 활동을 하다 1970~72년 옥살이를 한 뒤 석방된 호세프는 리오그란데 데 술이라는 지역에서 민주노동당(PDT) 결성과 일련의 선거 유세에 참가하면서 정치에 나서게 됐다. 주로 재정과 에너지 분야에서 활동했다.

2000년 그는 내부 분규에 빠진 당을 떠나 노동자당(PT) 결성에 동참했다. 2002년 그는 야당연합 대통령 후보로 나선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후보를 도와 에너지 정책을 담당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룰라의 눈에 들어 룰라가 당선한 뒤 에너지 장관을 맡게 됐다. 2005년 대통령 비서실장이 부패사건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자 호세프는 그 뒤를 이어 자리를 맡았다. 그는 이후 ‘룰라의 비서실장’으로 불렸다.

호세프는 민중을 위해야 한다는 신념을 잃지 않으면서도 나라가 부강해져야 민중이 가져갈 파이도 커진다는 실용주의적 철학을 갖고 있었는데 이는 룰라와 일치했다. 룰라는 호세프를 신뢰했으며 그를 자신의 정치적 후계자로 키웠다. 대통령 후보로 나선 호세프는 룰라의 높은 인기에 힘입어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고 대통령에 당선했다.

호세프는 좌파 정치인이지만 부유한 집안 출신이다. 그는 1947년 불가리아에서 이민 온 변호사 출신 기업인 페드루 호세프와 농장주의 딸로 학교 교사였던 지우마 제인 다 실바 사이에서 벨라 호리존테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1920년 대 불가리아 공산당에서 활동했으며 1929년 정치적 박해를 피해 프랑스로 떠났으며 1930년대에 브라질로 이주했다. 브라질에서 변호사이자 기업인으로서 성공해 재산을 모았다.

호세프는 젊은 시절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다. 부유한 아버지 덕분에 청소년기에는 수녀들이 운영하는 보수적인 사립기숙여학교를 다녔는데 학생들이 교사들과 프랑스어로 대화하는 등 엘리트 교육을 하는 곳이었다. 1962년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 남녀공학의 공립학교로 옮기면서 정치의식의 싹이 텄다고 본인은 밝히고 있다.

20세 때인 1967년 브라질 사회당의 한 분파인 ‘노동자의 정치학(POLOP)’이라는 조직에 가담해 본격적으로 좌파활동을 시작했다. 이 조직은 사회주의를 완수하는 방법을 놓고 분열했다. 제헌의회 구성을 위해 매진하자는 파와 무장활동을 벌이자는 파로 나뉜 것이다. 호세프는 무장활동을 선호했다. 호세프는 젊은 시절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했으며 좌파 군사조직인 민족해방사령부 소속으로 군부독재에 대항하는 게릴라 조직에 가담하기도 했다. 노조에서 활동하며 ‘피케트’라는 이름의 좌파 매체에서 편집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브라질 언론은 호세프가 청년기에 조직업무에만 가담했다고 보도했으나 일부에선 무기를 직접 들기도 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호세프는 자신의 사상이 마르크스주의에서 실용적인 자본주의로 바뀌었다고 말하고 있으나 자신의 급진적 활동에 대해서는 긍지가 있다. 이 시절에 대해 호세프는 2005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요약했다.

“우리는 더 나은 브라질을 건설하기 위한 꿈에 동참했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우리는 많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그게 우리의 특징을 만든 건 아니다.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과감하게 나섰다는 게 우리들의 특징이다.” 이렇게 질풍노도와 전환의 과정을 잇따라 거치며 브라질 중도좌파 정부의 핵심이 된 그는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지도자의 한 명으로서 월드컵 개최와 브라질의 경제 성장 재점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보여준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리더십은 그의 특징이 되고 있다.



가족 중시하는 온화한 할머니?호세프는 두 차례 결혼했다. 1968년 자신을 군사독재에 대항하는 지하활동으로 인도했던 기자와 결혼했으나 곧 헤어지고 1970년대 초 카를로스 프랑클린 파이하오 데 아라우호라는 인물과 재혼했다.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던 이 남자와도 2000년 이혼했으나 그와의 사이에 1976년 외동딸 파울라 호세프 데 아라우호를 얻었다.

그는 이 딸과 손자를 너무도 사랑해 자신의 승용차에서 손자를 안고 가다가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브라질에서 일정 연령 이하의 아기는 베이비시트에 앉혀서 가야 하는데 이를 어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화도 ‘사소한 법은 안 지키는 권력자’ 이미지보다 ‘가족을 중시하는 온화한 할머니’ 이미지로서 그의 정치적 자산이 되고 있다. 인간적인 면은 정치가의 주요 자산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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