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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RET WAR - 조국에 배신당한 러시아 군인들

SECRET WAR - 조국에 배신당한 러시아 군인들

러시아 중부 코스트로마주의 작은 마을 수디슬라브스키. 류드밀라 말리니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최근 어느 날 밤 목격한 은밀한 시신 매장에 관해 이야기했다. 저녁 8시쯤 말리니나의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공동묘지에 트럭 한 대가 멈춰 섰다. 트럭의 전조등이 계속 땅을 비추는 동안 사내 여러 명이 황급히 무덤을 팠다. “장물을 파묻어 숨기려는 도둑 같았다”고 말리니나가 말했다.

이웃들도 하나 둘씩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거나 현관 앞에 나와 그 기이한 광경을 보며 수군거렸다. 왜 하필 이 밤중에? 게다가 누군가가 지적했듯 공동묘지의 그쪽 구역은 전사자들의 자리로 할당된 곳이었다.


지휘관들은 러시아 정규군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부대원들에게 서방 군대의 사막 위장복으로 갈아입도록 지시했다.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심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정부와 휴전 협상을 성사시키는 동안 러시아인들은 우크라이나에서 전사한 군인들의 은밀한 장례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몸서리쳤다. 아들이 실종됐다, 전투에 시달리는 남편이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는 제발 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는 이야기. 니즈니 노브고로드, 오렌부르크, 프스코프, 무르만스크, 다게스탄 등지로 운구된 사지 없는 시신들에 관한 이야기 등. 8월 12일부터 9월 2일까지 러시아군 전사자는 200명 이상으로 늘었다. 그들은 공식적으로는 발발하지 않은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다.

러시아의 군인 아내들은 전선에서 아연 관에 담겨 귀환하는 전사자들을 ‘화물 200’이라고 부른다.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런 아연 관들이 수없이 귀환했을 때부터 러시아인들의 귀에는 ‘화물 200’이라는 말이 저주처럼 들린다. 모스크바에서 북쪽으로 320㎞ 떨어진 코스트로마에 사는 한 공수부대원의 아내는 남편의 전선 배치를 전혀 몰랐다며 군이 그런 사실을 감춘 것이 “정신분열증 환자가 만들어낸 덫”과 같았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 파견됐던 한 계약 군인은 뉴스위크와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전선에서 보낸 “가장 긴 8월”에 관해 이야기했다. 무엇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을까? 로스토프 병원에서 부상한 전우가 죽어가던 모습, 아연 관에 실려 귀환하는 전사자들, 자신도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고 그는 돌이켰다. 러시아 98 방위공수사단 331연대 소속인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달 로스토프행 기차를 탔을 때 우리가 우크라이나로 가는 줄은 전혀 몰랐다. 우리 모두는 정례 훈련을 위해 러시아 내의 한 기지로 가는 줄 알았다. 전쟁에 나갈 줄 알았다면 코스트로마에 있을 때 군복을 벗었을 것이다. 내겐 어린 자녀 두 명이 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좌우에 있던 전우들, 코스트로마의 집에서 그를 기다리는 자녀와 아내였다. 그에 따르면 자신과 동료 전우들은 우크라이나 동부에 독립국 노보로시야(Novorossiya, ‘신러시아’라는 뜻)를 세우겠다는 푸틴의 발상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러시아의 주적이 누구인가? 러시아인 누구나 쉽게 떠올리듯이 ‘미국’이 아닌가. 포화가 끊이지 않는 전선에서 며칠을 지내는 동안 그 공수부대원은 “몸이 바짝 말랐다”고 말했다. 먹을 게 없어서가 아니라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끊임없는 죽음의 공포 때문이었다.

어느 날 일찍 그의 부대는 로스토프 지역의 기지로 돌아가 러시아식 증기탕 바냐에서 목욕을 하고 하룻밤 푹 잤다. 부대원들은 8월 18일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은 이래 처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가족과도 짧게나마 통화했다. 지휘관들은 러시아 정규군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부대원들에게 서방 군대의 사막 위장복으로 갈아입도록 지시했다. 아내들이 자비로 구입한 잉여 군복이었다.

기존의 복무 계약은 외국 배치에 관한 조항이 없었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추가 계약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30대의 장교인 그는 익명을 요구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전선 배치를 자원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이젠 그만두려 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기존 계약에 따라 그들이 내일 우리를 ‘고기 분쇄기’ 속으로 다시 데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진실을 일찍 알았더라면 우크라이나에서 산 채로 튀겨지는 대가로 한 달에 1000달러를 받는 데 서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러시아 군사 전문가들은 비밀 작전 수행을 위해 외국 영토에 침투할 때 가짜 군복을 착용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듯하다.위해 외국 영토에 침투할 때 가짜 군복을 착용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듯하다.

모스크바에서 활동하는 한 군사 분석가는 과거 소련군과 러시아군 특공대를 현지인 차림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체첸에 파견한 사례를 돌이켰다. 익명을 요구한 그 분석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군은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이런 식으로 비밀 작전을 수행했다. 푸틴의 전술이 새로운 게 아니다.”

러시아 당국은 강하게 부인했지만 휴대전화 대화방과 소셜미디어 포럼은 러시아 대포와 ‘그라드 로켓’ 발사대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는 영상으로 가득했다. 러시아의 인터넷 사용자들은 군인의 부모와 아내가 눈물에 젖은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는 동영상을 봤다. 그들은 푸틴에게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제발” 놓아달라고 애원했다. 또 우크라이나군에 포로로 잡힌 러시아 병사들의 기자회견 동영상도 봤다.

매일 아침 일찍 공수부대원들의 아내들은 공수사단 사령부 밖의 니키츠카야로(路)에 모여 “로스토프에서 훈련을 받는” 남편들에 관한 공식적인 설명을 좀 더 듣기 위해 기다렸다.

결국 그들은 남편과 통화한 뒤 진실을 알게 됐다. 그중 한 명인 베로니카 치루예바는 이렇게 말했다. “아들이 나에게 교회에 가서 아빠의 무사 귀환을 위해 촛불을 밝혀두라고 말했다. 남편이 다시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봄부터 서서히 진행됐다. 4월 16일 오후 녹색 군복을 입은 무장대원들이 우크라이나 동부 도시 슬라비안스크의 10월 혁명 광장에 있는 정부 청사를 에워쌌다.

그중 한 명이 나에게 말했다. “우리는 소련에서 태어난 ‘정중한 녹색 사나이들’이다. 크림반도에서도 우리가 활동했다.” 며칠 뒤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러시아 반군은 또 다른 도시 호르리브카를 점령했다. 그들의 지휘관인 아나톨리 스타로스틴은 러시아 특수부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어서 “크게 안도했다”고 말했다. 스타로스틴은 ‘정중한 녹색 사나이들’을 두고 “그들은 약 60명으로 구성된 최정예 직업 군인들”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특수부대가 TV 송신소를 점령한 뒤 주민들은 크렘린의 공식 노선을 선전하는 러시아 국영 채널만 볼 수 있었다.

얼마 후인 6월 2일 육중한 트럭이 러시아로 돌아왔다. 측면에 커다랗고 비뚤어지게 ‘200’이라고 적혀 있었다. 우크라이나 사태 후 귀환하는 첫 ‘화물 200’이었다. 대부분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인 러시아 ‘자원’ 군인 전사자 31명의 시신이 실려 있었다. 얼마 후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시아 반군 거점인 도네츠크의 키로프스키 병원 영안실 마당에서 기자들은 의사와 반군들이 관들을 두고 수군거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러시아 국영 TV는 해바라기 밭을 가로질러 귀환하는 31구의 전사자 시신에 관해 보도하지 않았다. 며칠 뒤에야 ‘자원’ 군인의 가족들은 얼어붙은 시신을 보고 진실을 알 수 있었다.

러시아군은 9월 중 전례 없는 핵전력 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다. 초음속 미그 31 전투요격기와 수호이 Su-24MR 정찰기가 동원될 예정이다. 나토가 우크라이나 서부 국경 지대에서 훈련에 돌입하자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경고했다. 내전 당사자들이 휴전을 협상하는 상황에서 푸틴의 안보 참모들은 군사교리를 수정했다.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문턱을 낮춘 것이다. 국영 TV가 매일 같이 반미 선전에 몰두하는 동안 군 지휘부는 미국과 나토를 상대로 전쟁을 치를 수 있도록 장병들을 훈련시켰다.

한편 코스트로마주의 작은 마을 수디슬라브스키에선 은밀한 시신 매장에 관한 소식이 신속히 퍼져나갔다. 머지않아 마을 전체가 진실을 알게 됐다. 류드밀라 말리니나는 “그 날 매장된 사람은 드미트리 쿠스토프였다”고 말했다. “징집된 군인으로 지난해부터 복무했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그는 가족도 모르게 7월 말 우크라이나 전선에 배치됐다. 그의 나이 20세였다. “너무 일찍 생을 마쳤어.” 주민들은 어둠 속에서 은밀히 매장된 드미트리 쿠스토프를 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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