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 장원석 기자의 ‘앵그리 2030’ ④ 대한민국에 청년당이 없는 이유 - 소선거구제 그대로 두실 겁니까?
Issue | 장원석 기자의 ‘앵그리 2030’ ④ 대한민국에 청년당이 없는 이유 - 소선거구제 그대로 두실 겁니까?
우리나라에는 청년당이 없습니다. 공식적으로는 그렇습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청년당이 기호 17번을 받고 선거에 뛰어든 적이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과 시민단체 활동을 하던 20~30대가 주축이 됐습니다. 당시 큰 화제를 모았던 안철수 의원의 ‘청춘콘서트’와 맞물려 출범 초기 제법 관심을 받았지만 현실 정치의 벽은 높았습니다.
당시 청년당에서 활동하며 선거 준비를 했던 제 지인은 지금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될 것도 같았는데 막상 선거를 치러보니 우린 너무 힘이 없었다’는 말을 남기고요. ‘힘이 없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엄밀히 말하면 ‘힘을 발휘할 수가 없다’는 말이 정확합니다.
애초에 청년당과 같은 소수 정당이 기성 정치에 발 붙이기 어려운 구조기 때문입니다. 정당은 자선사업을 하는 곳이 아닙니다. 돈이 필요합니다. 정책을 만들고, 사람을 모으고, 홍보도 하려면 돈 나갈 곳이 많죠. 특히 선거를 한 번 치르려면 엄청난 비용을 각오해야 합니다. 심지어 지지율이 10%에 못 미치면 선거비용 보전도 못 받습니다. 그런데 청년당은 돈이 없습니다. 실제로 청년당은 19대 총선에서 선거 공보조차 배포하지 못했습니다.
국회든 지방의회든 의원을 배출해 정강에 부합하는 정책을 법과 제도에 반영하는 것이 정당의 설립 목적이나 의원 하나 배출하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 입니다. 돈도 돈이지만 더 큰 문제는 선거 제도에 있습니다. 왜 그런지 살펴볼까요? 얼마전 스웨덴에서는 총선이 치러졌습니다. 8년 만에 사회민주노동당(사민당)이 주도하는 좌파연합이 정권을 되찾았습니다. 좌파연합은 유효표의 43.6%를 얻어내 온건당 등 중도우파연합(39.5%)을 근소한 차로 제쳤습니다. 349개 의석 중 158개를 따냈습니다. 158석 중 사민당이 113석, 녹색당이 24석, 좌파당이 21석을 가져가게 됐습니다.
청년당의 첫 도전에서 지지율 고작 0.34%
우리에겐 연합이란 말이 익숙하지 않지만 내각제 국가에선 비슷한 성향을 가진 정당끼리 손을 잡고 선거에 나서는 일이 흔합니다. 우파연합 역시 온건당·중앙당·자유당·기독교민주당이 힘을 합해 선거에 임했죠. 어떤 쪽이 이기든 간에 소수 정당이 의원을 배출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독일이나 일본 등도 스웨덴과 유사합니다. 일본 참의원 242명의 소속 정당은 10개로 비교적 다양합니다. 주로 2개의 정당이 주도권을 잡는 것은 전 세계 어딜 가나 비슷하지만 적어도 소수 정당이 숨 쉴 구멍은 있습니다.
미국은 확연히 다릅니다. 미국은 연방 하원의원 435명 중 공화당이나 민주당 소속이 아닌 의원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주별로 2명씩 뽑는 상원의원 역시 100명 전원이 양당 소속입니다. 완벽한 양당제입니다. 하원의원의 경우 각 주의 인구에 따라 의석 수가 할당되고 개별 선거구 마다 딱 1명씩만 선출합니다. 1~2등을 다툴 정도가 아니라면 소수 정당 후보는 명함조차 내밀기 어렵습니다. 미국은 1868년 이후 실시한 37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표 차이가 20% 이상 벌어진 적이 딱 6번 밖에 없습니다. 상당수 유권자 역시 선거를 양당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으로 인식합니다. 이러니 소수 정당이 선거에 나서도 별 관심을 못 받죠.
따지자면 우리나라는 미국과 비슷합니다. 어떤 선거든 1당과 2당이 대부분의 자리를 독식합니다. 19대 총선에서 246개의 지역구 의석 중 94.7%인 233석을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현새정치민주연합)이 차지했습니다. 54개의 비례대표 자리 역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46개를 나눠가졌습니다. 선거에 나선 20개 정당 중 당선자를 낸 곳은 단 4개뿐이었습니다. 올해 6월 열린 제6회 지방선거도 비슷했습니다. 시·도지사와 시·군·구의 장은 모두 양당 후보가 나눠가졌습니다. 광역의원 당선자 705명 중 무소속 20명을 제외하고 제 3당 출신은 딱 1명뿐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미국이나 한국처럼 완벽에 가까운 양당제를 운영하는 나라는 10여 곳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소수정당이 자리를 잡지 못하는 이유는 승자가 독식하는 소선거구제입니다. 우리나라는 원래 한 선거구에 2명씩 뽑는 중선거구제를 채택했지만 1988년 13대 총선부터 소선거구제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선거구제는 하나의 선거구에서 1등을 한 1명만 당선됩니다. 2등이 불과 몇 표 뒤져 낙선하는 일이 종종 있는데 유권자가 2등 후보자에 보낸 지지는 모두 사표(死票)가 됩니다.
물론 소선거구제도 장점이 있습니다. 선거구가 작으니 아무래도 선거 집중도가 높고, 비용도 적게 듭니다. 소수 정당이 난립해 정국이 불안정해지는 부작용도 줄일 수 있습니다. 일본이나 독일 등 상당수의 국가가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죠.
주권은 국민 아닌 공천권에서 나온다?
그러나 유독 우리나라에서 소선거구제의 단점이 부각되는 건 지역주의 때문입니다. 소선거구제가 처음 도입된 13대 총선에서 평화민주당은 호남의 37석 중 36석을 따냈습니다. 대구·경북에선 민주정의당이, 부산·경남에선 통일민주당이 크게 이겼습니다.
호남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승리하는 게, 영남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승리하는 게 불가능한 일이 된 것도 이때부터였습니다. 최근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이 공식을 깨뜨리긴 했지만요. 당선이 보장(?)된 안정적인 지역구의 공천을 받으려고 유력 정치인에게 줄 서는 문화가 고착화된 것도 이 때문이었죠.
20년 넘게 양당이 지역을 나눠먹는 일이 반복되는 동안 소수정당은 아예 낄 자리도 못 찾았습니다.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소속 후보가 대거 국회에 입성하며 ‘제3의 정당’의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양당의 틈바구니에 끼여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분당(分黨)과 종북 논란을 거치면서 이젠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죠.
이처럼 지역주의의 틀 안에서 소선거구제는 정국을 안정시키긴 커녕 오히려 정쟁을 부추기는 일이 잦았습니다. 문제가 많으니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1999년 정치권이 ‘중대선거구제+정당명부 비례대표제’에 합의한 적 있으나 최종 단계에서 무산됐습니다. 그 뒤로도 상당수 의식 있는 정치인들이 이 문제를 언급했지만 묻혔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도농복합선거구제(농촌의 인구가 적은 현실을 반영해 도시는 중대선거구제, 농촌은 소선거구제로 운영하는 것) 도입에 정치 생명을 걸기도 했습니다. 역시 잘 안 됐습니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중대선거구제는 대통령제에 맞지 않다”고 반대한 바 있습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인지 궁금해지네요.
청년 문제 해결은 20~30대가 직접 나서야
최근 선거구제 개혁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는데 정의화 국회의장의 제헌절 축사가 시발점이었습니다. 정 의장은 “승자독식의 현행 선거제도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하는지, 우리의 미래에 과연 합당한지,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차기 총선을 1년 반 앞둔 지금 여야가 당리당략을 떠나 선거제도개혁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달라”고 강조했습니다.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선거법만 개정하면 됩니다. 헌법을 바꿔야 하는 대통령 선거보다 훨씬 간단하지요. 그런데 과연 기득권을 가진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법 개정에 나설까요? 당장 다음 선거 공천이 불안해지는데 선뜻 찬성하고 나설까요? 이 문제를 두고 김성식전 의원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밝힌 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역주의와 낡은 이념 대립으로 점철된 우리 정치에서 소선거구제는 민생 해결보다는 정쟁을 가속화하는 기제로 전락한지 오래다. 특정 지역, 특정 정당 싹쓸이는 해당 정당에게는 기득권이지만 국민주권 왜곡의 상징이다. 다소 경쟁적이라는 수도권 지역구의 경우도 절반 이상에서 사실상 투표는 요식행위다. 사표는 넘쳐나고 국민의 다양한 이해와 성향은 대변되지 않는다. 주권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공천권으로부터 나오는 꼴이다. 나아가 국회의원이 지방의원과 다름없이 지역구에 지나치게 매이고, 다음 공천을 위해 국민보다는 보스의 눈치를 보고, 소신보다는 지역정서에 갇히게 되니 생산적인 정치는 점점 더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습니다. 좋은 정치는 국민의 다양한 이해와 성향을 반영해야 합니다. 지금은 둘로 양분된 정치가 국민마저 둘로 나누고 있습니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목소리도 두 정당의 입을 통하지 않으면 묻혀버립니다. 다시 청년 문제로 돌아가 볼까요? 선거 때마다 20~30대 지지율을 노린 ‘청년 공약’이 쏟아져 나옵니다. 여야 할 것 없죠. 청년당원제를 운영하고, 그 몫으로 비례대표 자리도 줍니다. 그러나 여전히 청년 실업이 젊은이의 꿈을 옥죄고, 사회 진출의 선물(?)로 ‘빚’을 받습니다. 기성정당에게 20~30대는 늘 차순위입니다. 공약을 설계할 때도, 정책을 구현할 때도 그렇습니다. 선거공학적으로 투표율이 낮으면 ‘표값’도 덜한 탓이겠지요.
지난 총선에서 청년당은 청년 일자리와 대학 등록금 등의 문제를 기존 정당이 해결할 수 없다고 보고 직접 선거판에 뛰어들었습니다. 비록 실패했지만 그들의 도전은 충분히 응원할 만했습니다. 2년 전엔 0.34%였지만 앞으로 더 두드리면 3%에 도달하고, 지역구에서도 당선자를 낼 수도 있습니다. 그래야 20~30대가 제기하는 문제들이 사회적 의제가 되고, 기존 정당을 압박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당연히 받아들여진 각종 여성 정책과 친환경 무상급식 등은 대부분 소수 정당의 정책에서 출발했습니다.
물론 전 세계 어딜 가도 청년당이 국회에 입성한 경우는 많지않습니다. 그러나 청년당 자체가 없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기성세대에게 ‘우리는 힘듭니다’라고 토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우리 스스로 무언가를 바꾸려는 적극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제대로 된 청년단체 하나 없는 상황, 젊은 세대가 해묵은 이념 논쟁에 빠져 비상식적 대립을 이어가는 상황, 이를 개선하려면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그 동력을 하나로 모을 새로운정치세력이 출현해야 합니다. 당원이 되거나 후원금을 내고, 그 밖에 다양한 방식으로 응원하는 것도 좋겠네요.
20~30대가 가장 먼저 나서야 합니다. 언제까지 ‘투표도 안 하면서’라는 비난을 듣고 있을 건가요? 다음 번에는 ‘청춘을 좀먹는 결혼의 경제학’을 주제로 지혜를 모아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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