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만 보는 외환당국 - 强달러가 한국 경제에 유리?
바라만 보는 외환당국 - 强달러가 한국 경제에 유리?
달러화 가치 상승 국면 속에 외국인의 자금 이탈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엔저 여파로 국제시장에서 한국 상품의 가격 경쟁력은 나날이 약해지고 있다.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 환율이 악재로 더해진 것이다. 그러나 외환당국은 환율 변동성 확대에만 주목할 뿐 뾰족한 대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경기를 띄우기 위해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내렸다. 일본을 제외한 주요 무역 경쟁국 통화에 대해 원화 가치가 상대적 강세인 상황에서 국내 증시 등 금융시장에는 부담이 더해진 것이다. 금리를 내려도 국내 기업의 실적 전망이 밝지 않은 가운데 자칫 외국인의 ‘셀 코리아’를 부채질할 수도 있다.
달러화 가치는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고 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지난 9월 1일 1013.10원(종가 기준)을 저점으로 가파르게 올라, 한 달 반 새 1070원 수준까지 치솟았다 (원화 가치 하락). 9월 중에만 41.20원 급등했다. 월간으로 치면 미 연방준비제도의 양적완화 종료로 달러 가치가 급등했던 2012년 5월(50.30원) 이후 2년 4개월 이래 최대폭의 상승이다. 10월 15일 전후로 미국의 부진한 경기지표가 발표되면서 주요 통화 대비 달러가 약세를 보였지만, 중기적으로 달러 강세 기조는 이어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최근 외국인은 국내 증시에서 9월 6225억 원, 10월 들어 보름 만에 2조971억 원을 빼갔다. 달러화가 강세로 돌아서자 은행 창구에는 기업들의 환 헤지 문의가 빗발쳤고, 주가는 급락하고 외환·채권 선물시장이 요동쳤다. 그런데 이런 혼란 속에서도 외환당국의 움직임은 어째서인지 미적지근하다.
외환시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9월 들어 달러가 강세로 돌아선 이후 외환당국의 개입성 미세조정은 9월 12·19·30일, 10월 2·7일 등 5~6차례에 불과했다. 당국의 적극적인 대처를 시사하는 구두 개입도 없었다. 정부 측에서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자본 유출에 대비해 거시건전성 3종 세트 완화 여부를 검토해보겠다”고 말한 정도가 전부다. 통화당국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미국과의) 금리차가 줄고 환율이 절하(달러 상승)되면 자본 유입이 억제되고 자본 유출이 될 수 있다”며 “국제 금융시장에서 금리 상승이 예상되는 시점을 면밀히 지켜 볼 것”이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당국이 당장은 외국인의 자금 유출을 막을 생각이 없다’는 해석이 나온다. 현재 국내 경기와 대내외 여건을 봤을 때 오히려 강(强)달러가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이를 용인하는 분위기라는 전언이다. 이유는 두 가지. 원화 약세가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인플레이션 심리를 자극하는 등 한국 경제에 유리한 한편,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달러 강세를 거스를 수 없다는 관측에서다.
정부 입장에선 달러화 강세가 우리의 경상수지를 끌어올리기 위한 좋은 여건이다. 내수가 부진한 가운데 수출전선에서 선전하려면 원화 가치 하락을 부추겨야 유리하다. 문제는 엔화도 약세란 것이다. 일본은 IT·자동차·철강·화학·정유 등에서 한국과 수출 경합관계다. 아베노믹스 영향으로 엔화 가치는 크게 떨어진 상태. 달러화 대비 엔화 환율은 9월 말 현재 109.41엔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8% 상승했다(엔화 가치 하락). 이에 비해 원화는 달러화에 대해 1.8% 절상됐다. 엔화 가치는 떨어지고 원화는 오른 것이다. 원과 엔을 직접 비교해도 원·엔 환율은 964.80원(9월 말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089.89원)에 비해 11.4%, 2년 전(1434.81원)에 비해 32.7%나 올랐다. 정부로서는 원화를 더 떨어트릴 필요가 생긴 셈이다. 오정근 건국대학교 특임 교수는 “엔화가 하락할 때마다 한국의 경상수지는 악화된 경험이 있다”며 “그동안 일본 기업이 엔고에 따른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이익을 축적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행 전망에 따르면 현재의 환율 흐름이 계속될 경우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올해 840억 달러에서 내년 700억 달러로 쪼그라든다. 일본은 지난 8월 2871억엔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등 만성적자에서 최근 어느 정도 탈피한 모습이다.
한국은행도 달러 강세가 통화정책 운용에 유리하다고 보고 있는 듯하다. 현재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수요 부진이다. 통화당국으로서는 인플레이션율을 높이는 한편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도 자극할 필요가 있다.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 수입물가가 올라 공급 측면에서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 최근 2년 새 소비자물가는 한국은행의 물가관리 목표 구간인 2.5~3.5%에 못 미치는 1~2%대 초반에 머물고 있다. 기대 인플레이션율 2.8~2.9%보다도 낮다. 한국은행이 자금 이탈 우려에도 10월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2.00%로 낮춘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달러화 강세에 대해 정부와 한국은행 모두 방관하는 자세에 가깝다”며 “특히 한국 은행 입장에서는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기 위해 원화 약세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외환시장을 보면 한국은행보다 오히려 기획재정부의 매수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달러화 강세는 중장기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점도 당국의 움직임에 영향을 줬다. 수퍼 달러는 미 연준의 양적 완화 종료를 앞두고 나타난 현상이라 마땅한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구조적으로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줄어들면서 달러 강세는 중장기적인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최근 들어 달러화의 상승 강도가 다소 약해져 긴급히 대처할 필요성도 줄었다. 한 시중은행 외환 딜러는 “대외 변수에 따른 주가 등 금융시장의 변동은 이미 모두 반영됐다고 봐야 한다”며 “뒤늦게 대책을 내놔 봐야 큰 효과가 없으며, 일단은 1070원선에서 저지선이 형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당국은 원·달러 환율을 어느 선까지 용인할 것인가. 대응에 나선다면 어떤 정책적 수단이 있을까. 원·달러 환율은 올해 말 1100원, 내년 상반기 중 1150원선에 이를 것이란 게 시장의 컨센서스다. 내년 중순 이후 미 연준의 통화정책 방향에 따라 최고 1200원에 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현재 시장에서는 지난 2012년 중순과 비슷한 수준인 1150원 안팎을 적정 환율로 보고 있다. 이에 당국의 적극적인 개입 구간은 1150~1200원선이 될 것이며, 시기는 내년 중순이라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하루 3조 달러가 오가는 거대한 외환시장에서 한국 정부가 원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조정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본시장이 개방된 상황에서 외국인의 자금 유출을 막을 뾰족한 대책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당국은 핫머니 유출 등에 따른 단기 변동성 확대를 차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 정부가 가진 가장 강력한 정책 수단은 지난 2010년 도입한 ‘거시건전성 3종 세트’를 완화하는 것이다. 선물환포지션제도,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외환건전성 부담금 등으로 구성된 이 제도는 외국인 자금의 건전하고 장기적인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도입했다.
당국이 선물환포지션을 줄이고 부과되는 세금과 부담금을 낮추면 외국인 자금의 이탈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최경환 부총리도 거시건전성 3종 세트를 거론하며 외국인 자금의 이탈을 제어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국채 발행물량을 일시적으로 줄이거나 단기물을 늘려 달러를 끌어 들이는 것도 동원 가능한 수단이다.
지난 2012년 외환당국이 검토한 ‘토빈세(외환거래세)’ 도입도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천재 지변 등 경제 사정이 급격히 변할 경우 외환거래를 차단할 수 있는 외국환거래법 제6조의 ‘세이프가드’ 조항도 거론한다. 그러나 비상조치일 뿐 현실성은 없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인위적인 환율 조정보다는 시장의 흐름에 맡기는 게 맞는다는 의견도 있다. 최근 거론되는 여러 조치의 실효성이 떨어지는데다, 환율 조정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허인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외국인 자금이 빠지는 것은 대외 변수에 따른 것이라 정부의 여러 방책이 실효성이 있을까 의문이 들고, 통화당국인 한국은행의 정책 목표와 어긋날 수도 있다” 며 “미세조정 등을 통해 변동성을 낮추는 것 외에는 방법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달러 강세와 함께 엔화 약세에 대한 대책 마련도 관심사다. 장기 침체의 유일한 버팀목인 수출에서 약(弱)엔의 악영향을 받을 수 있어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달러·엔 평균 환율이 116엔대까지 오를 경우 우리 경제성장률은 0.27%포인트 하락하고, 수출증가율은 1.14%포인트 떨어진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한국과 일본 간 수출경합도가 증가하고 있으며, 주요 수출 품목인 컴퓨터·정밀기기· 통신기기 등에서 일본 제품에 비해 한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하락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일부 전문가들은 2~3년의 시차를 두고 한국의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것이란 극단적인 전망도 내놓는다.
이와 관련해 일본과 통화스와프를 확대하는 한편 원·엔 직 거래 시장을 개설해 엔저 충격을 상쇄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 된다. 일본과 통화스와프를 맺으면 외환보유액을 유지하면서 엔화를 조달할 수 있어 원·엔 환율 변동을 최소화할 수 있다. 직거래 시장을 열어, 일본과의 중간재 거래를 엔화로 결제하면 달러화 대비 통화 가치 절상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외환당국은 이 같은 제안에 대해 아직은 미온적인 모습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현재 원·엔 환율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도 “현재로서는 일본과의 통화스와프를 비롯한 정책 수단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우리나라는 2011년 10월 일본과 통화스와프 한도를 700억 달러로 늘렸다. 그러나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등으로 한·일 관계가 악화하면서 대폭 줄었다. 지난해 중순에도 두 나라가 외교 마찰을 빌미로 자존심 싸움을 벌이다 30억 달러 규모의 스와프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현재 남은 한·일 통화스와프 계약은 내년 2월 만료되는 100억 달러가 전부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급격한 환율 변화와 이와 관련한 금융시장의 불안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도 “달러 강세와 엔화 약세가 우리 경제에 앞으로 끼칠 영향에 대해서는 시간을 두고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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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화 가치는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고 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지난 9월 1일 1013.10원(종가 기준)을 저점으로 가파르게 올라, 한 달 반 새 1070원 수준까지 치솟았다 (원화 가치 하락). 9월 중에만 41.20원 급등했다. 월간으로 치면 미 연방준비제도의 양적완화 종료로 달러 가치가 급등했던 2012년 5월(50.30원) 이후 2년 4개월 이래 최대폭의 상승이다. 10월 15일 전후로 미국의 부진한 경기지표가 발표되면서 주요 통화 대비 달러가 약세를 보였지만, 중기적으로 달러 강세 기조는 이어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최근 외국인은 국내 증시에서 9월 6225억 원, 10월 들어 보름 만에 2조971억 원을 빼갔다. 달러화가 강세로 돌아서자 은행 창구에는 기업들의 환 헤지 문의가 빗발쳤고, 주가는 급락하고 외환·채권 선물시장이 요동쳤다. 그런데 이런 혼란 속에서도 외환당국의 움직임은 어째서인지 미적지근하다.
외환시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9월 들어 달러가 강세로 돌아선 이후 외환당국의 개입성 미세조정은 9월 12·19·30일, 10월 2·7일 등 5~6차례에 불과했다. 당국의 적극적인 대처를 시사하는 구두 개입도 없었다. 정부 측에서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자본 유출에 대비해 거시건전성 3종 세트 완화 여부를 검토해보겠다”고 말한 정도가 전부다. 통화당국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미국과의) 금리차가 줄고 환율이 절하(달러 상승)되면 자본 유입이 억제되고 자본 유출이 될 수 있다”며 “국제 금융시장에서 금리 상승이 예상되는 시점을 면밀히 지켜 볼 것”이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했다.
구두개입도 드문드문
정부 입장에선 달러화 강세가 우리의 경상수지를 끌어올리기 위한 좋은 여건이다. 내수가 부진한 가운데 수출전선에서 선전하려면 원화 가치 하락을 부추겨야 유리하다. 문제는 엔화도 약세란 것이다. 일본은 IT·자동차·철강·화학·정유 등에서 한국과 수출 경합관계다. 아베노믹스 영향으로 엔화 가치는 크게 떨어진 상태. 달러화 대비 엔화 환율은 9월 말 현재 109.41엔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8% 상승했다(엔화 가치 하락). 이에 비해 원화는 달러화에 대해 1.8% 절상됐다. 엔화 가치는 떨어지고 원화는 오른 것이다. 원과 엔을 직접 비교해도 원·엔 환율은 964.80원(9월 말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089.89원)에 비해 11.4%, 2년 전(1434.81원)에 비해 32.7%나 올랐다. 정부로서는 원화를 더 떨어트릴 필요가 생긴 셈이다. 오정근 건국대학교 특임 교수는 “엔화가 하락할 때마다 한국의 경상수지는 악화된 경험이 있다”며 “그동안 일본 기업이 엔고에 따른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이익을 축적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행 전망에 따르면 현재의 환율 흐름이 계속될 경우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올해 840억 달러에서 내년 700억 달러로 쪼그라든다. 일본은 지난 8월 2871억엔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등 만성적자에서 최근 어느 정도 탈피한 모습이다.
한국은행도 달러 강세가 통화정책 운용에 유리하다고 보고 있는 듯하다. 현재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수요 부진이다. 통화당국으로서는 인플레이션율을 높이는 한편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도 자극할 필요가 있다.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면 수입물가가 올라 공급 측면에서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 최근 2년 새 소비자물가는 한국은행의 물가관리 목표 구간인 2.5~3.5%에 못 미치는 1~2%대 초반에 머물고 있다. 기대 인플레이션율 2.8~2.9%보다도 낮다. 한국은행이 자금 이탈 우려에도 10월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2.00%로 낮춘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달러화 강세에 대해 정부와 한국은행 모두 방관하는 자세에 가깝다”며 “특히 한국 은행 입장에서는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기 위해 원화 약세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외환시장을 보면 한국은행보다 오히려 기획재정부의 매수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달러화 강세는 중장기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점도 당국의 움직임에 영향을 줬다. 수퍼 달러는 미 연준의 양적 완화 종료를 앞두고 나타난 현상이라 마땅한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구조적으로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줄어들면서 달러 강세는 중장기적인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최근 들어 달러화의 상승 강도가 다소 약해져 긴급히 대처할 필요성도 줄었다. 한 시중은행 외환 딜러는 “대외 변수에 따른 주가 등 금융시장의 변동은 이미 모두 반영됐다고 봐야 한다”며 “뒤늦게 대책을 내놔 봐야 큰 효과가 없으며, 일단은 1070원선에서 저지선이 형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금 유출보단 저물가가 걱정
현재 시장에서는 지난 2012년 중순과 비슷한 수준인 1150원 안팎을 적정 환율로 보고 있다. 이에 당국의 적극적인 개입 구간은 1150~1200원선이 될 것이며, 시기는 내년 중순이라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하루 3조 달러가 오가는 거대한 외환시장에서 한국 정부가 원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조정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자본시장이 개방된 상황에서 외국인의 자금 유출을 막을 뾰족한 대책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당국은 핫머니 유출 등에 따른 단기 변동성 확대를 차단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 정부가 가진 가장 강력한 정책 수단은 지난 2010년 도입한 ‘거시건전성 3종 세트’를 완화하는 것이다. 선물환포지션제도,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외환건전성 부담금 등으로 구성된 이 제도는 외국인 자금의 건전하고 장기적인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도입했다.
당국이 선물환포지션을 줄이고 부과되는 세금과 부담금을 낮추면 외국인 자금의 이탈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최경환 부총리도 거시건전성 3종 세트를 거론하며 외국인 자금의 이탈을 제어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국채 발행물량을 일시적으로 줄이거나 단기물을 늘려 달러를 끌어 들이는 것도 동원 가능한 수단이다.
지난 2012년 외환당국이 검토한 ‘토빈세(외환거래세)’ 도입도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천재 지변 등 경제 사정이 급격히 변할 경우 외환거래를 차단할 수 있는 외국환거래법 제6조의 ‘세이프가드’ 조항도 거론한다. 그러나 비상조치일 뿐 현실성은 없다는 지적이다.
한·일 통화스와프 확대할 필요
달러 강세와 함께 엔화 약세에 대한 대책 마련도 관심사다. 장기 침체의 유일한 버팀목인 수출에서 약(弱)엔의 악영향을 받을 수 있어서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달러·엔 평균 환율이 116엔대까지 오를 경우 우리 경제성장률은 0.27%포인트 하락하고, 수출증가율은 1.14%포인트 떨어진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한국과 일본 간 수출경합도가 증가하고 있으며, 주요 수출 품목인 컴퓨터·정밀기기· 통신기기 등에서 일본 제품에 비해 한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하락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일부 전문가들은 2~3년의 시차를 두고 한국의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설 것이란 극단적인 전망도 내놓는다.
이와 관련해 일본과 통화스와프를 확대하는 한편 원·엔 직 거래 시장을 개설해 엔저 충격을 상쇄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 된다. 일본과 통화스와프를 맺으면 외환보유액을 유지하면서 엔화를 조달할 수 있어 원·엔 환율 변동을 최소화할 수 있다. 직거래 시장을 열어, 일본과의 중간재 거래를 엔화로 결제하면 달러화 대비 통화 가치 절상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외환당국은 이 같은 제안에 대해 아직은 미온적인 모습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현재 원·엔 환율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도 “현재로서는 일본과의 통화스와프를 비롯한 정책 수단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우리나라는 2011년 10월 일본과 통화스와프 한도를 700억 달러로 늘렸다. 그러나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등으로 한·일 관계가 악화하면서 대폭 줄었다. 지난해 중순에도 두 나라가 외교 마찰을 빌미로 자존심 싸움을 벌이다 30억 달러 규모의 스와프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현재 남은 한·일 통화스와프 계약은 내년 2월 만료되는 100억 달러가 전부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급격한 환율 변화와 이와 관련한 금융시장의 불안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도 “달러 강세와 엔화 약세가 우리 경제에 앞으로 끼칠 영향에 대해서는 시간을 두고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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